2013. 11. 29.

易學原理總論 - 易學으로 본 人生問題

        易學原理總論  - 易學으로 본 人生問題 -

第一章   천지(天地)의 조직(組織)
第一節   음양(陰陽)과 생명(生命)

■ 운동(運動)은 음양(陰陽)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천지간(天地間)에는 만물(萬物)이 가득히 차 있는데, 이 만물(萬物)들은 하나도 운동(運動)치 아니하는 것이 없고 또 잠시(暫時)도 운동(運動)을 계속(繼續)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니, 우리는 이것을 살아있다 하고 역학(易學)에는 이것을 생생(生生)이라 한다. 생생(生生)이라 함은 만물(萬物)이 모두 살아 있어, 공간적(空間的)으로는 무한(無限)히 벋어 나가는 확대운동(擴大運動)을 행(行)하고, 시간적(時間的)으로는 생(生)하고 자라고 여물고하는 생장성(生長成)의 작용(作用)으로써 무궁(無窮)히 이어나가는 계승운동(繼承運動)을 행(行)하여. 공간적(空間的) 시간적(時間的)으로 항구(恒久)하여 그치지 아니함을 말함이다. 역학(易學)에서는 우주(宇宙)라는 말과 천지(天地)라는 말을 아울러 쓰고 있는데, 우주(宇宙)라 함은 상하(上下) 사방(四方)의 공간(空間)과 고왕금래(古往今來)의 시간(時間)을 총칭(總稱)하는 말이오 천지(天地)라 함은 태양(太陽)을 중심(中心)한 태양계(太陽系)의 우주(宇宙)를 말하는 것이니, 우주(宇宙)와 천지(天地)는 말뜻이 대체(大體)로 동일(同一)하며 다만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을 총칭(總稱)할 때에는 우주(宇宙)라하고 만물(萬物)의 생생(生生)하는 현상(現象)을 말할 때에는 천지(天地)라 하는 것이다. 천지간(天地間)에 공간적(空間的) 시간적(時間的)으로 운동(運動)이 그치지 아니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역학(易學)에는 이 운동체(運動體)를 태극(太極)이라 하는데, 태극(太極)의 운동(運動)은 능동(能動)과 수동(受動), 발현(發顯)과 수렴(收斂)등(等) 상반(相反)하면서 또한 상합(相合)하는 대대작용(對待作用)에 의(依)하여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의 운동(運動)이 일어나며, 능동(能動) 발현(發顯)등(等) 동적(動的)작용(作用)을 양(陽)이라하고, 수동(受動), 수렴(收斂)등(等) 정적(靜的)작용(作用)을 음(陰)이라 하니, 음양(陰陽)은 역학(易學)이 천지(天地)만물(萬物)의 생생(生生)하는 원리(原理)를 설명(說明)하는 용어(用語)로서, 만물(萬物)의 조직(組織) 운행(運行) 생성(生成) 변화(變化)등(等) 온갖 상태(狀態)를 음양(陰陽)이라는 두마디의 말속에 포괄(包括)치 아니함이 없는 특수(特殊)한 용어(用語)이다. 지금 과학(科學)의 전기(電氣)에 음전(陰電) 양전(陽電)이 있고, 자기(磁氣)에 음극양극(陰極陽極)이있고, 원자(原子)에 전자(電子)양자(陽子)가 있는 것 등(等)이 모두 이 음양(陰陽)의 이(理)에 의(依)한 것이다.
이제 천지간(天地間)에서 음양(陰陽)의 운동(運動)하는 상태(狀態)를 보건대, 음(陰)과 양(陽)은 서로 대대(對待)하여 상합(相合)하지도 못하고 상리(相離)하지도 못하여, 음(陰)이 있는 곳에 반드시 양(陽)이 있고 양(陽)이 있는 곳에 반드시 음(陰)이 있으며, 음양(陰陽)은 대대작용(對待作用)으로써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면서 스스로 운동(運動)치 아니할 수가 없으므로 그 운동(運動)은 한번 닫히고 한번 열리고 하는 고동(鼓動)운동(運動)이 되는 것이니, 심장(心臟)의 약동(躍動), 조수(潮水)의 왕래(往來)같은 것이 바로 이 음양(陰陽)의 고동(鼓動)운동(運動)이다.
 

■ 음양(陰陽)의 호근(互根)만물(萬物)은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반드시 어떠한 형태(形態)로든지 그 조직체(組織體)를 가지고 그 조직체(組織體)에는 반드시 운행력(運行力)이 있어 그 조직체(組織體)를 운영(運營)하여 이에 운동(運動)이 계속(繼續)하는 것이다. 천지간(天地間)의 만물(萬物)은 모두 지(地)의 형질(形質)에 의착(依着)하고 지(地)의 형질(形質)은 천(天)의 인력(引力)에 근저(根柢)하니, 천(天)의 인력(引力)은 기(氣)의 유행(流行)함이오 지(地)의 형질(形質)은 정(精)의 응주(凝做)함이라, 그러므로 천지간(天地間)에 생생(生生)하고 있는 만물(萬物)은 모두 천(天)의 기(氣)와 지(地)의 정(精)을 취(聚)하여 이루어진 것이니, 계사(繫辭)에 「정(精)과 기(氣)가 물(物)이 된다」함은 이를 말함이다. 정(精)이라 함은 만물(萬物)의 형체(形體)를 조직(組織)하는 본질(本質)로서 곧 수화(水火)의 정(精)을 말함이오 기(氣)라 함은 만물(萬物)의 운행(運行)하는 힘으로서 곧 뇌풍(雷風)의 기(氣)를 말함이니, 정(精)은 승수(承受) 포함(包含) 수장(收藏) 응취(凝聚) 등(等)의 음성작용(陰性作用)을 행(行)하고, 기(氣)는 발시(發施) 유행(流行) 출현(出顯) 고동(鼓動) 등(等) 양성작용(陽性作用)을 행(行)하므로, 만물(萬物)을 조직(組織)한 정기(精氣)의 두 작용(作用)은 곧 음양(陰陽)의 대대(對待)이다. 만물(萬物)은 정(精)의 조직체(組織體)만 있고 기(氣)의 운행(運行)이 없으면 생생작용(生生作用)이 행(行)치 못하고 또 조직체(組織體)가 없이는 기(氣)의 운행(運行)이 있을 수 없으니,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반드시 조직체(組織體)가 있고 그 조직체(組織體)는 스스로 운동(運動)을 일으키지 아니할 수 없도록 구성(構成)되어 있는 것이오 이것을 음양(陰陽)의 호근(互根)이라 한다. 호근(互根)이라 함은 양(陽)이 음(陰)에 의착(依着)하여 능동작용(能動作用)을 행(行)하고 음(陰)은 양(陽)의 고동(鼓動)을 승수(承受)하여 수동작용(受動作用)을 행(行)하여 상리(相離)하지도 못하고 상합(相合)하지도 못하고 이(二)하면서 일(一)하고 일(一)하면서 이(二)함이다. 호근(互根)하고있는 양물(兩物)은 하나는 동작(動作)하려하고 하나는 정지(靜止)하려하며, 하나는 출현(出顯)하려하고 하나는 수렴(收斂)하려하여 거기에 스스로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에 의(依)한 동작(動作)이 생(生)치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니, 이가 곧 운동(運動)이다. 천지(天地)는 태극(太極)이라는 운동체(運動體)에서 음(陰)과 양(陽)의 두 작용(作用)이 생(生)하고 그 음양(陰陽)의 교호작용(交互作用)에 의(依)하여 운동(運動)이 일어나서 무한무궁(無限無窮)한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니, 태극(太極)과 음양(陰陽)은 물(物)의 조직체(組織體)가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의 두 작용(作用)을 생(生)한 연후(然後)에 운동(運動)이 일어난다고 하는 일체양용(一體兩用)의 이(理)이다.

■ 음양(陰陽)의 호선호후(互先互後)만물(萬物)의 체(體)를 조직운행(組織運行)하고 있는 음양(陰陽)의 양작용(兩作用)은 일물(一物)의 양면작용(兩面作用) 즉(卽) 일체양용(一體兩用)으로 되어 물(物)의 생(生)하는 때에 음양(陰陽)의 작용(作用)이 함께 생(生)하는 것이오 음(陰)이 먼저 취응(聚凝)한 연후(然後)에 양(陽)이 스스로 생(生)하는 것도 아니오 또 양(陽)이 먼저 발동(發動)한 연후(然後)에 음(陰)이 스스로 생(生)하는 것도 아니다. 음양(陰陽)의 조직(組織)에는 선후(先後)의 별(別)이 없는 것이나, 그 조직(組織)에서 운동(運動)이 생(生)하는 때에는 스스로 선후(先後)의 별(別)이 있으니, 물(物)의 능동(能動)하는 것은 양(陽)의 작용(作用)이오 수동(受動)하는 것은 음(陰)의 작용(作用)이라, 만물(萬物)이 운동(運動)하는 때에는 반드시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이 있어 능동(能動)이 선(先)하고 수동(受動)이 후(後)하는 것이므로 물(物)의 운동(運動)에는 능동(能動)하는 양(陽)이 선(先)하고 수동(受動)하는 음(陰)이 후(後)하는 것이며, 이 이(理)에 의(依)하여 일년중(一年中)에는 춘하(春夏)가 양(陽)이오 추동(秋冬)이 음(陰)이므로 일년(一年)의 절서(節序)는 춘하(春夏)의 양(陽)이 선(先)하고 추동(秋冬)의 음(陰)이 후(後)하는 것이다. 그러나 운동(運動)이 일어나는 때에 비록 능동(能動)하는 양(陽)이 선(先)하고 있으되, 그 양(陽)은 정지(靜止)하고 있는 음(陰)속에서 발생(發生)하는 것이니, 이는 음(陰)이 선(先)에 있고 양(陽)이 후(後)에 있음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운행(運行)하는 작용(作用)으로써 볼 때에는 능동(能動)하는 양(陽)이 선(先)하고 수동(受動)하는 음(陰)이 후(後)하며, 만물(萬物)의 조직(組織)된 본체(本體)로써 볼 때에는 형질(形質)인 음(陰)이 선(先)하고 기력(氣力)인 양(陽)이 후(後)하는 것이며, 이가 음양(陰陽)의 호선호후(互先互後)하는 것이오 음양(陰陽)이 호선호후(互先互後)하는 까닭에 선(先)하던 것이 후(後)하고 후(後)하던 것이 선(先)하면서, 평등(平等)한 작용(作用)으로써 무한무궁(無限無窮)한 운동(運動)을 계속(繼續)하고 그 운동(運動)은 알이 닭을 낳고 닭이 알을 낳음과 같이 원상(圓狀)을 환행(圜行)하는 형태(形態)로 되는 것이다.

■ 음양(陰陽)의 호역(互易)음양(陰陽)이라 함은 만물(萬物)의 대대(對待)하는 체용관계(體用關係)에 따라서 생(生)하는 것이오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물(萬物)의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이 모두 음양(陰陽)의 양면(兩面)을 가지고 있으므로 물(物)과 물(物)이 상대(相對)하는 때에 능동(能動)하는 자(者)는 양(陽)이 되고 수동(受動)하는 자(者)는 음(陰)이 되는 까닭이다. 사물(事物)의 현상(現狀)은 수동작용(受動作用)을 행(行)하므로 음(陰)이되고 사물(事物)의 변통(變通)은 능동작용(能動作用)을 행(行)하므로 양(陽)이 되는지라, 일년중(一年中)의 음양체용관계(陰陽體用關係)로써보면 동지(冬至)에 일양(一陽)이 생(生)한 이후(以後)에는 음(陰)은 수동(受動)하는 현상(現狀)이 되고 양(陽)은 능동(能動)하는 변통(變通)이 되므로 음(陰)이 체(體)가 되고 양(陽)이 용(用)이 되며, 하지(夏至)에 일음(一陰)이 생(生)한 이후(以後)에는 양(陽)은 수동(受動)하는 현상(現狀)이되고 음(陰)은 능동(能動)하는 변통(變通)이 되므로 양(陽)이 체(體)가되고 음(陰)이 용(用)이되는 것이니, 이것은 음양(陰陽)이 서로 체(體)가되고 서로 용(用)이 되어 음양(陰陽)이 호역(互易)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은 모두 음양양면(陰陽兩面)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 물(物)이 있는 때는 반드시 그 속에 음(陰)과 양(陽)이 있고, 또 음(陰)의 속에도 음(陰)과 양(陽)이 있고 양(陽)의 속에도 음(陰)과 양(陽)이 있어, 수지상(樹枝狀)의 음양(陰陽)이 한(限)없이 분포(分布)하고 있는 것이니, 정기(精氣)의 관계(關係)로써 보더라도 기(氣)는 양(陽)이오 정(精)은 음(陰)인데, 동일(同一)한 기(氣)의 속에도 뇌(雷)는 양(陽)이오 풍(風)은 음(陰)이며, 동일(同一)한 정(精)의 속에도 수(水)는 음(陰)이오 화(火)는 양(陽)인 것이 그 일례(一例)이다.
천지간(天地間)에는 지대지광(至大至廣)한 자(者)로부터 지세지미(至細至微)한 자(者)에 이르기까지 모두 음양(陰陽)이 분포(分布)되어 있으므로 혹(或)은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여 한(限)없는 운동(運動)을 계속(繼續)하고 혹(或)은 음(陰)이 양(陽)으로 변(變)하기도하고 양(陽)이 음(陰)으로 변(變)하기도하여, 음양(陰陽)의 호역작용(互易作用)에 의(依)하여 만물(萬物)의 불측(不測)한 변화(變化)가 생(生)하는 것이다.


■ 음양(陰陽)의 호대호소(互大互小)만물(萬物)의 운동(運動)은 음양(陰陽)의 교호작용(交互作用)에 의(依)하여 일어나는 것이므로 거기에는 음양(陰陽)의 차등(差等)과 평등(平等)의 두 가지 작용(作用)이 있는 것이다. 음양(陰陽)은 일물(一物)의 양면작용(兩面作用)이므로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여 그 기능(機能)이 평등(平等)한 것이니, 만일(萬一) 음양(陰陽)에 우열(優劣)과 강약(强弱)의 차등(差等)이 고정(固定)되어 있다고 하면 우강(優强)한 자(者)가 상승(常勝)하고 열약(劣弱)한 자(者)가 상패(常敗)하여 그 운동과정(運動過程)에 스스로 편승편패(偏勝偏敗)가 생(生)하여 마침내 운동(運動)이 종지(終止)되는 것이다. 그러나 음(陰)과 양(陽)에 아무런 차등(差等)이 없고 고정적(固定的)으로 평등(平等)하다고 하면 혹(或)은 양세(兩勢)가 상적상지(相敵相持)하여 교호작용(交互作用)이 행(行)치 못하여 스스로 운동(運動)이 정지(停止)되고 혹(或)은 양세(兩勢)가 상촉(相觸)하는 때에 충돌(衝突)만 있고 조화(調和)가 없어서 모두 파괴(破壞)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양(陰陽)은 그 본체(本體)는 서로 차등(差等)하면서 그 운행(運行)은 평등(平等)한 것이니, 이것을 수화(水火)로써 보건대 수(水)는 음(陰)이오 화(火)는 양(陽)이라 동량(同量)의 수화(水火)를 서로 접촉(接觸)하면 수(水)가 능(能)히 화(火)를 멸(滅)하니, 이는 음대양소(陰大陽小)함이오 수(水)는 비록 화(火)의 근처(近處)에 있더라도 서로 접촉(接觸)치 아니하면 능(能)히 화(火)를 멸(滅)치 못하되, 화(火)는 수(水)의 근처(近處)에 있으면 열(熱)을 조사(照射)하여 능(能)히 수(水)를 말릴 수가 있으니, 이는 양대음소(陽大陰小)함이다. 수화(水火)는 그 조직체(組織體)로는 수(水)의 힘이 대(大)하고 화(火)의 힘이 소(小)하며, 그 운행작용(運行作用)으로는 화(火)의 힘이 대(大)하고 수(水)의 힘이 소(小)하니, 이가 음양(陰陽)의 호대호소(互大互小)이오 음양(陰陽)은 호대호소(互大互小)로써 서로 평등(平等)한 것이다.
만물(萬物)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은 대소장단등(大小長短等)의 차등(差等)이 없으면 조직체를(組織體)를 구성(構成)치 못하는 것이므로 그 체(體)는 각기(各其) 독자(獨自)한 형태(形態)를 가지고 스스로 차등(差等)이 있는 것이오, 그 운행(運行)은 편승편패(偏勝偏敗)가 있으면 교호작용(交互作用)이 행(行)치 못하여 생생(生生)이 끊어지는 것이므로 그 작용(作用)은 호대호소(互大互小)하여 차등(差等)하면서 평등(平等)한 운동(運動)을 행(行)하는 것이다. 인체(人體)로써 보면 남체(男體)는 양(陽)이오 여체(女體)는 음(陰)이라 남체(男體)의 체구(體軀)와 체력(體力)은 여체(女體)보다 대(大)하니, 이는 양대음소(陽大陰小)함이오, 여체(女體)는 태궁(胎宮)을 유(有)하고 모든 인류(人類)는 이 태궁중(胎宮中)에서 길러서 출생(出生)하니, 이는 음대양소(陰大陽小)함이며, 남체(男體)와 여체(女體)는 호대호소(互大互小)하여 서로 평등(平等)한 까닭에 역리(易理)에는 남녀평등(男女平等)을 원칙(原則)으로 한 일부일부제(一夫一婦制)를 말한 것이다.


■ 생명체(生命體)의 조직(組織)천지(天地)는 일태극(一太極)의 운동체(運動體)로서 그 속에 음양(陰陽)의 양작용(兩作用)이 있어 일체양용(一體兩用)의 상(象)이되고, 음양(陰陽)은 호근(互根) 호역(互易) 호선(互先) 호후(互後) 호대(互大) 호소(互小)의 여러 가지 작용(作用)으로써 부단(不斷)히 운동(運動)을 일으켜서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하니, 음양(陰陽)의 서로 작용(作用)하는 힘이 곧 생명(生命)이오, 그러므로 음양(陰陽)은 생명원(生命元)이 되어 음양운동(陰陽運動)의 행(行)하는 곳에 반드시 생명(生命)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生命)의 없는 곳에는 운동(運動)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오, 생명자체(生命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스스로 운동(運動)을 일으키는 때에 음양(陰陽)의 두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니, 태극(太極)이라 함은 천지(天地)를 일통(一統)한 하나의 생명체(生命體)이므로 태극(太極)의 운동(運動)에서 음양작용(陰陽作用)이 생(生)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양운동(陰陽運動)과 생명(生命)은 어느 것이 선(先)하고 어느 것이 후(後)한다는 선후(先後)의 별(別)이 없는 것인데, 이것을 우주(宇宙)의 조직(組織)으로써 보면  음양조직(陰陽組織)이 있는 까닭에 생명(生命)이 유행(流行)하는 것이므로 음양(陰陽)이 선(先)하고 생명(生命)이 후(後)하며, 우주(宇宙)의 운행(運行)으로써 보면 생명(生命)이 있는 까닭에 음양(陰陽)의 운동(運動)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생명(生命)이 선(先)하고 음양(陰陽)이 후(後)하는 것이며, 역경(易經)은 선천운행(先天運行)의 이(理)를 말한 까닭에 태극(太極)이 음양양의(陰陽兩儀)를 생(生)한다 하여 태극(太極)이 음양(陰陽)보다 선(先)한다 한 것이오, 이 글은 선천(先天)과 후천(后天)을 합(合)한 원천조직(原天組織)을 말한 까닭에 음양(陰陽)을 생명(生命)의 원(元)이라하여, 음양(陰陽)이 생명(生命)보다 선(先)하다 한 것이다.
음양(陰陽)은 만물(萬物)의 생명원(生命元)이 되고 음양(陰陽)의 교호작용(交互作用)하는 힘이 생명(生命)인데, 음(陰)과 양(陽)은 비록 하나의 생명(生命)을 생(生)하고 있으되 본시(本是) 대대(對待)되는 두 작용(作用)이므로 생명(生命)의 속에도 스스로 음원(陰元)과 양원(陽元)의 두 원(元)이 합(合)하여 있으니, 이는 부모(父母)가 상교(相交)하여 한 아이를 생(生)하되 그 아이에게는 부모(父母)의 두 원(元)이 합(合)하여 있음과 같음이다. 양(陽)은 능동(能動)하여 만물(萬物)을 창시(創始)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므로 이 창시작용(創始作用)을 양원(陽元)이라 하고 음(陰)은 수동(受動)하여 양원(陽元)을 승수(承受)하여 만물(萬物)의 형질(形質)을 창생(創生)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므로 이 창생작용(創生作用)을 음원(陰元)이라 한다. 음양(陰陽)은 음원(陰元)과 양원(陽元)으로써 상교(相交)하는 것이므로 음원(陰元)이 양원(陽元)을 승수(承受)하여 물(物)을 작성(作成)하는 것이 곧 생명체(生命體)의 창조(創造)이니, 그러므로 모든 생명체(生命體)는 음양이원(陰陽二元)의 묘합(妙合)한 운행(運行)에 의(依)하여 생생(生生)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곧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이(理)이다.
물(物)의 생생(生生)에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이(理)가 있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이는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에 음양(陰陽)의 체용대대(體用對待)가 있는 까닭이다.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에는 반드시 조직(組織)의 체(體)와 운행(運行)의 용(用)이 있으니 조직(組織)의 체(體)라 함은 여러 개체(個體)를 합(合)하여 하나의 생명체(生命體)를 구성(構成)하는 것이오 운행(運行)의 용(用)이라 함은 조직체(組織體)를 통일적(統一的)으로 움직이는 작용(作用)이며, 모든 조직체(組織體)는 운행(運行)의 용(用)이 있은 연후(然後)에 비로소 그 생생(生生)의 기능(機能)을 발휘(發揮)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이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는 어떠한 형태(形態)로든지 반드시 운행(運行)을 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고 또 잠시(暫時)도 운행(運行)을 계속(繼續)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며, 또 그 조직(組織)이 스스로 운행(運行)을 일으키지 아니할 수 없도록 구성(構成)되어 있으니, 조직(組織)의 체(體)는 음(陰)의 상(象)이오 운행(運行)의 용(用)은 양(陽)의 상(象)이라,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은 모두 음양(陰陽)의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이(理)로 되는 것이다.
음양(陰陽)의 교호작용(交互作用)하는 힘이 생명(生命)이오 원천(原天)의 음양(陰陽)이 교호작용(交互作用)하는 때에 우주(宇宙)의 생명(生命)이 나타나는 것인데,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에는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이(理)가 있으므로 우주(宇宙)의 생명(生命)도 단독(單獨)으로 존재(存在)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는 어떤 물(物)과 합체(合體)되어 있는 것이다. 우주(宇宙)를 사람의 일신(一身)이라고 하면 사람의 일신(一身)에 생명(生命體)로 되어 있는 형질(形質)과 그 형질(形質)을 움직이는 정신(精神)이 있음과 같이 우주(宇宙)에도 또한 생명체(生命體)와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는 것이니, 이는 생명(生命)이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는 반드시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영위(營爲)하는 정신(精神)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계사(繫辭)에 「형이상(形而上)한 자(者)를 도(道)라 이르고 형이하(形而下)한 자(者)를 기(器)라 이른다」하고 또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고 함을 도(道)라 이르고 음(陰)하고 양(陽)하고 하여 측(測)치 못함을 신(神)이라 이른다」하니, 유형이하(有形而下)하는 기(器)는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으로 화(化)하는 생명(生命)이오 형이상(形而上)하는 도(道)는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여 그 변화(變化)함을 측(測)할 수 없는 신(神)이며 신(神)은 우주(宇宙)의 정신(精神)인 유일신(唯一神)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신(神)과 생명(生命)은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로써 대대(對待)하여 생명(生命)은 형질(形質)의 생생(生生)이 되고 신(神)은 정신(精神)의 운행(運行)이 되어 음양(陰陽)의 있는 곳에 스스로 신(神과 생명(生命)이 있는 것이며, 신(神)과 생명(生命)은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가되어, 신(神)은 모든 생명체(生命體)의 주재(主宰)가되고 생명(生命)은 신(神)의 지령(指令)을 승수(承行)하여 만물(萬物)을 생(生)하는 것이니, 신(神)과 생명(生命)은 또한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이(理)이다.
신(神)과 생명(生命)은 모두 무형(無形)하여 외형(外形)에 나타나지 아니하고 있으나, 그 조화(造化)의 적(迹)은 만물(萬物)에 나타나고 있으니, 광명(光明)은 신(神)의 작용(作用)이오 만물(萬物)의 약동(躍動)은 생명(生命)의 작용(作用)이며, 물(物)의 영원계승(永遠繼承)은 신(神)의 작용(作用)이오 물(物)의 생멸(生滅)은 생명(生命)의 작용(作用)인 것 등(等)이 그 일례(一例)이오 이는 모두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의 구별(區別)에서 생(生)하는 차이(差異)이다.
과학자(科學者)의 말 = 생명체(生命體)는 무기물질(無機物質)에서 기원(起源)하였다고 한다. 지금에 과학자(科學者)들은 화학적(化學的)으로 생명(生命)의 기원(起源)을 구명(究明)하였다고 말하고 있으나 화학적(化學的)으로 말하는 생명(生命)은 생명체(生命體)의 분자조직(分子組織)을 구명(究明)함이오 생명(生命)의 구명(究明)이 아니니 이는 화학적생명론(化學的生命論)은 생명체(生命體)를 오직 물질적(物質的)으로만 보고 신(神)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모든 생명체(生命體)는 화학적(化學的)으로 분석(分析)하면 거의 동일(同一)한 물질(物質)로 이루어지고 모든 생명체(生命體)가  동일(同一)한 화합물(化合物)로 이루어졌다는 사실(事實)은 모든 생명체(生命體)의 기원(起源)이나 또는 화학적(化學的)으로 본 근본적(根本的)인 설계(設計)가 동일(同一)하다는 결론(結論)을 얻게 된다. 


第二節   생명(生命)의 형화(形化)
■ 무형(無形)과 유형(有形)물(物)의 생생(生生)하는 것은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한 형질(形質)이 생(生)하여 공간적(空間的)으로는 무한(無限)히 확대(擴大)하고 시간적(時間的)으로는 무궁(無窮)히 계승(繼承)하는 것인데, 음양생명원(陰陽生命元)에는 형(形)이 없으니, 형(形)이 없으면 또한 생생(生生)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원(生命元)은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스스로 무형(無形)으로부터 유형(有形)으로 화(化)하는 운동(運動)을 행(行)하는 것이니, 이는 천지간(天地間) 만물(萬物)은 각기(各其) 자체(自體)의 생생법칙(生生法則)을 가지고 자체(自體)의 법칙(法則)을 따라서 생생(生生)하고 있는 것이므로 생명원(生命元)도 또한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자체(自體)의 생생법칙(生生法則)을 따라서 무형(無形)으로부터 유형(有形)으로 화(化)하는 운동(運動)을 행(行)하는 것이다.
무형(無形)으로부터 유형(有形)으로 화(化)함에는 반드시 생명(生命) 기(氣) 정(精) 형(形)의 순서(順序)를 밟는 것이니, 이것을 사람의 생식작용(生殖作用)으로써 보면 남체(男體)와 여체(女體)는 생명원(生命元)의 상(象)이오, 처음에 양체(兩體)의 기(氣)가 상감(相感)하여 애련(愛戀)의 마음이 동(動)하는 것은 기화(氣化)의 상(象)이오 다음에 양체(兩體)의 수화작용(水火作用)이 행(行)하여 음정(陰精)과 양정(陽精)이 상합(相合)하는 것은 정화(精化)의 상(象)이오, 그 다음에 태아(胎兒)의 형(形)이 성(成)하는 것은 형화(形化)의 상(象)이니, 사람의 생식작용(生殖作用)은 무형(無形)으로부터 유형(有形)으로 화(化)하는 운동(運動)이므로 또한 생명(生命) 기(氣) 정(精) 형(形)의 순서(順序)를 밟는 것이오, 이것이 만물(萬物)의 형화작용(形化作用)의 원리(原理)와 상합(相合)하는 것이다.
천지간(天地間)의 만물(萬物)은 무형(無形)과 유형(有形)으로 대별(大別)되어있고 유형(有形)은 모두 무형(無形)에서 생(生)한 것이므로, 이 유형(有形)한 물(物)은 다시 무형(無形)으로 돌아가는 이(理)가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만물(萬物)에는 생(生)하고 멸(滅)하고 하는 현상(現象)이 있어, 무형(無形)에서 생(生)한 유형물(有形物)은 반드시 생멸(生滅)이 있는 것이오, 처음부터 형(形)이 생(生)치 아니한 자(者)는 형(形)이 멸(滅)할 것이 없는 까닭에 무형(無形)한 생명원(生命元)은 생멸(生滅)함이 없이 항구(恒久)히 계속(繼續)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생명(生命體)는 항구계승(恒久繼承)하는 생명원(生命元)을 포(包)하여 써 본(本)을 삼고, 생멸(生滅)하는 유형(有形)한 바탕을 얻어서 써 형질(形質)을 삼고 있으므로 만물(萬物)에는 세세(世世)로 계승(繼承)하여 항구존존(恒久存存)하는 작용(作用)과 생(生)하고 자라고 여물고하여 생생변화(生生變化)하는 작용(作用)과의 두 작용(作用)이 함께 행(行)하여 이 천지간(天地間)에는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이 그치지 아니하는 것이다. 만일 천지간(天地間)에 무형(無形)만 있고 유형(有形)이 없으면 비록 음양생명원(陰陽生命元)은 유행(流行)한다 하더라도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이 없어서 이 천지(天地)는 한 암흑(暗黑)한 공각(空殼)에 불과(不過)한 것이오, 또 만일(萬一) 유형(有形)만 있고 항구존존(恒久存存)하는 무형(無形)이 없으면 만물(萬物)은 한번 소멸(消滅)한 뒤에 다시 계생(繼生)하는 것이 없어서 또한 암흑(暗黑)한 공각(空殼)에 불과(不過)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간(天地間)에는 무형(無形)한 생명원(生命元)과 유형(有形)한 형질(形質)이 아울러 존재(存在)하여 항구(恒久)하면서 변화(變化)하고 변화(變化)하면서 항구(恒久)한 것이며, 만물(萬物)은 그 형태(形態)는 서로 다르되 모두 동일(同一)한 생명원(生命元)에서 출생(出生)하여 무형(無形)으로부터 유형(有形)이 생(生)한 것이므로 그 본원(本源)은 모두 동일(同一)한 것이다.


■ 생명(生命)의 기정형변화(氣精形變化)음양생명원(陰陽生命元)이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으로 화(化)하는 기정형(氣精形)의 순서(順序)를 보건대, 음양생명원(陰陽生命元)은 무형(無形)한 것이오, 만물(萬物)의 생생(生生)하는 운동(運動)은 모두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을 생(生)하기 위(爲)한 것이므로 음양생명원(陰陽生命元)은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유형운동(有形運動)을 일으키는 때에 뇌풍(雷風)의 기(氣)가 생(生)한 것이다. 생명원(生命元)의 형화운동(形化運動)에서 뇌풍(雷風)이 생(生)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생명원(生命元)은 양원(陽元)과 음원(陰元)으로 되는데, 양원(陽元)에는 분동(奮動)하는 작용(作用)이 있고 음원(陰元)에는 견입(牽入)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므로 양원(陽元)과 음원(陰元)이 형화운동(形化運動)을 행(行)할 때에는 분동작용(奮動作用)을 행(行)하는 기(氣)와 견입작용(牽入作用)을 행(行)하는 기(氣)가 생(生)하는 것이오, 우주(宇宙)를 운행(運行)하는 기(氣)로서 분동작용(奮動作用)을 행(行)하는 자(者)는 전기(電氣)이오 견입작용(牽入作用)을 행(行)하는 자(者)는 자기(磁氣)이므로 생명원(生命元)의 형화운동(形化運動)은 전기(電氣)와 자기(磁氣)를 생(生)하는 것이며, 전기(電氣)와 자기(磁氣)는 처음으로 기화(氣化)하고 아직 형화(形化)되지 아니한 것이므로 생명(生命)도 아니오 물질(物質)도 아니오, 생명(生命)과 물질(物質)의 중간성(中間性)을 띠고 있는 기(氣)이다. 전기(電氣)와 자기(磁氣)는 생명원(生命元)에서 제일(第一) 먼저 출생(出生)하여 음양대대관계(陰陽對待關係)를 가지는 것이므로 양원(陽元)과 음원(陰元)의 두 성(性)을 구유(具有)하여 전기(電氣)에는 음전양전(陰電陽電)이 있고 자기(磁氣)에는 양극음극(陽極陰極)이 있는 것이며, 전기(電氣)와 자기(磁氣)는 천지간(天地間)에 가득 차서 만물(萬物)의 운행(運行)하는 원동력(原動力)이 되고 있으므로 전기(電氣)의 동(動)하는 때에 뇌(雷)의 고동작용(鼓動作用)이 생(生)하고 자기(磁氣)의 행(行)하는 때에 풍(風)의 시행작용(施行作用)이 생(生)하는 것이니, 이가 생명원(生命元)이 뇌풍(雷風)의 기(氣)로 더불어 일체(一體)가되어 천지간(天地間)을 유행(流行)하고있는 기화생명체(氣化生命體)의 생긴 시초(始初)이다. 생명원(生命元)의 운동(運動)에 의(依)하여 전기(電氣)와 자기(磁氣)가 먼저 생(生)한 것이므로 전기(電氣)의 있는 곳에 반드시 자기(磁氣)가 있어 자기중(磁氣中)에 전기(電氣)를 함(含)하고 전류(電流)가 통(通)하면 그 주위(周圍)에 자장(磁場)을 생(生)하는 것이며 태양계우주(太陽系宇宙)의 중심(中心)이 되고 있는 태양(太陽)에도 또한 전기(電氣)와 자기(磁氣)가 있어 이 전기(電氣)와 자기(磁氣)가 태양(太陽)을 운행(運行)하고 모든 인력(引力)의 중심(中心)이 되고 있는 것이니, 태양광명(太陽光明)의 광파(光波)와 전파(電波)의 운동법칙(運動法則)이 동일(同一)한 것은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이 전기(電氣)로 되어 있는 까닭이오, 지상(地上)의 온갖 풍(風)의 변화(變化)는 태양(太陽)에서 오는 자장풍(磁場風)의 작용(作用)에 의(依)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뇌풍(雷風)의 기(氣)가 또한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유형운동(有形運動)을 일으키는 때에 기(氣)와 형(形)의 중간성(中間性)을 띤 정(精)이 생(生)하니, 정(精)이라 함은 취(聚)하면 유형(有形)이 되고 산(散)하면 무형(無形)이 되는 것이며, 우주간(宇宙間)에서 유형(有形)도 되고 무형(無形)도 되면서 그의 취산작용(聚散作用)에 의(依)하여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하는 정(精)은 수화(水火)이니, 그러므로 뇌풍(雷風)의 형화운동(形化運動)에 의(依)하여 먼저 생(生)한 것은 수화(水火)의 정(精)이다. 뇌풍(雷風)의 형화운동(形化運動)에서 수화(水火)의 정(精)이 생(生)하는 것은 뇌(雷)의 충격(衝擊)에 의(依)하여 전화(電火)가 일어나고 풍(風)의 영하(零下) 이백여도(二百餘度)의 냉응(冷凝)에 의(依)하여 수액(水液)이 생(生)하는 것이 그의 한 형태(形態)이며, 뇌풍(雷風)의 기(氣)는 무형(無形)하여 아무런 막힘이 없는 것이므로 뇌풍(雷風)에서 생(生)한 수(水)는 투명(透明)하고 화(火)는 광명(光明)한 것이다.
수화(水火)는 음양대대관계(陰陽對待關係)를 가지고 천지간(天地間)을 유행(流行)하면서 기(氣)가 취(聚)하면 응결(凝結)하여 유형(有形)한 정(精)이 되고 분(分)하면 발산(發散)하여 무형(無形)한 기(氣)로 화(化)하여 항상(恒常) 유동상태(流動狀態)로 되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수화(水火)는 무형(無形)과 유형(有形)의 중간상태(中間狀態)로 되고 만물(萬物)이 무형(無形)으로부터 유형(有形)으로 화(化)하는 과정(過程)과 또 유형(有形)으로부터 무형(無形)으로 변(變)하는 과정(過程)에는 반드시 수화(水火)의 취산작용(聚散作用)이 행(行)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수화(水火)의 정(精)이 또한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유형운동(有形運動)을 일으키는 때에 정(精)이 응고(凝固)하여 비로소 형질(形質)이 되는 것이오 정(精)의 응고(凝固)한 형(形)은 산택(山澤)이다. 수화(水火)의 정(精)이 산택(山澤)의 형(形)으로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수(水)는 유하(流下)하는 것이오 화(火)는 염상(炎上)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수화(水火)에는 취산작용(聚散作用)만 있는 것이 아니오 또한 상하(上下)로 오르내리는 승강작용(升降作用)도 있는 것이다. 수(水)는 유하(流下)하는 것이로되 수(水)가 유하(流下)치 아니하고 축저(蓄貯)하여 위로 승(升)하여 넘쳐흐르면 수(水)의 형체(形體)가 성(成)하여 택(澤)이 되는 것이니, 인체(人體)의 혈액(血液) 식물체(植物體)의 진액(津液)같은 것이 모두 택(澤)의 상(象)으로서 수(水)의 형화(形化)한 것이며, 화(火)는 염상(炎上)하는 것이로되 화(火)가 염상(炎上)치 아니하고 수렴(收斂)하여 아래로 강(降)하여 지중(地中)에 갈무리하면 화(火)가 토(土)로 더불어 형체(形體)를 성(成)하여 산(山)이 되는 것이니 산(山)이 지상(地上)에 솟아 있는 것은 화(火)의 승강작용(升降作用)을 인(因)하여 산(山)의 토석(土石)이 생기고 화(火)가 그 속에 갈무리하고 있는 것이며, 인체(人體)의 골육(骨肉) 식물체(植物體)의 목질(木質)같은 것은 모두 산(山)의 상(象)으로서 산(山)의 형화(形化)한 것이다. 산택(山澤)은 형(形)으로서 체(體)가 응고(凝固)하고 있으되 서로 음양대대(陰陽對待) 관계(關係)를 가지고 있으므로 응고(凝固)한 체(體)의 속에서 그 기(氣)가 상통(相通)하는 것이오 산택(山澤)의 속을 통(通)하는 기(氣)는 뇌풍(雷風)이니, 이는 뇌풍(雷風)의 기(氣)는 산택(山澤)의 형(形)에 의부(依附)한 연후(然後)에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하는 원동력(原動力)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것이오, 산택(山澤)의 형(形)은 내부(內部)에 뇌풍(雷風)의 기(氣)를 갈무리한 연후(然後)에 만물(萬物)의 분동(奮動)과 견입(牽入)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 팔괘(八卦)는 생명(生命)의 운동(運動)생명원(生命元)의 형화(形化)하는 기정형(氣精形)의 순서(順序)는 바로 역학(易學)의 건(乾) 곤(坤) 뇌(雷) 풍(風) 수(水) 화(火) 산(山) 택(澤)의 팔괘상(八卦象)의 순서(順序)로 되니, 이는 역학(易學)의 팔괘(八卦)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생(生生)하는 원리(原理)를 밝히는 가장 근본(根本)되는 도상(圖像)인 까닭이다. 팔괘(八卦)는 본시(本是) 천(天) 지(地) 뇌(雷) 풍(風) 수(水) 화(火) 산(山) 택(澤)인데, 여기에 천지(天地)를 말하지 아니하고 건곤(乾坤)을 말하는 것은, 천지(天地)라 함은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하는 위(位)를 말함이오 건곤(乾坤)이라 함은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하는 주체(主體)를 말하는 것으로서, 생명원(生命元)인 양원(陽元)과 음원(陰元)도 건원(乾元)과 곤원(坤元)으로 되어 있는 것이므로 만물(萬物)의 생생주체(生生主體)의 상(象)을 취(取)하기 위(爲)하여 건곤(乾坤)을 말한 것이다. 생명(生命)에는 시간적(時間的)으로 무한(無窮)히 계속(繼續)하는 계승성(繼承性)이 있고 공간적(空間的)으로 무한(無限)히 확대(擴大)하는 유행성(流行性)이 있는 것인데, 역리(易理)에 뇌(雷)에는 세세(世世)로 계승(繼承)하는 작용(作用)이 있고 풍(風)에는 사방(四方)으로 유행(流行)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므로 생명(生命)의 형화운동(形化運動)에는 스스로 세세계승작용(世世繼承作用)을 행(行)하는 뇌(雷)와 사방유행작용(四方流行作用)을 행(行)하는 풍(風)이 생(生)하는 것이며, 생명뇌풍(生命雷風)의 합체(合體)한 것이 곧 기화생명체(氣化生命體)이다. 만물(萬物)은 취(聚)하면 형(形)이 생(生)하고 산(散)하면 형(形)이 멸(滅)하는 것인데, 기화생명체(氣化生命體)가 형화(形化)하고저 하면 먼저 취(聚)하여야 하는 것이오 천지간(天地間)에서 취산작용(聚散作用)을 행(行)하고 있는 것은 수화(水火)의 정(精)이므로 뇌풍(雷風)의 형화운동(形化運動)에는 스스로 수화(水火)의 정(精)이 생(生)하는 것이오 기화생명체(氣化生命體)에 수화(水火)의 정(精)을 합(合)한 것이 곧 정기(精氣)의 합체(合體)한 정화생명체(精化生命體)이다.
수(水)는 유하(流下)하는 것이오 화(火)는 염상(炎上)하는 것이라, 수화(水火)의 정(精)의 형화운동(形化運動)에는 반드시 그 대대세력(對待勢力)을 우(遇)하여 기(氣)가 정(靜)하고 정(精)이 응(凝)한 연후(然後)에 형체(形體)가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러므로 유하(流下)하는 수(水)는 상승(上升)하여 택(澤)이 되고 염상(炎上)하는 화(火)는 하강(下降)하여 토중(土中)에 갈무리하여 산(山)이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수화(水火)의 형화운동(形化運動)에는 스스로 산택(山澤)의 형(形이 생(生)하는 것이오, 산택(山澤)의 형(形)이라 함은 모든 생물(生物)의 형질(形質)을 구성(構成)한 요소(要所)이다.
산택(山澤)은 이미 유형(有形)한 형질(形質)로 되고 있으므로 그 속에 무형(無形)한 뇌풍(雷風)의 기(氣)를 갈무리한 연후(然後)에 능(能)히 운동(運動)을 행(行)하는 것이니 이는 팔괘(八卦)의 상(象)에 산택(山澤)과 뇌풍(雷風)이 서로 반역(反易)하여 뇌풍(雷風)은 산택(山澤)에 의부(依附)하고 산택(山澤)은 뇌풍(雷風)에 의(依)하여 서로 통기(通氣)하는 이(理)이다.


註  ●역학(易學)의 팔괘원리(八卦原理)만물(萬物)의 생생(生生)은 반드시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으로 화(化)하고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으로 화(化)함에는 음양생명원(陰陽生命元) 뇌풍(雷風)의 기(氣) 수화(水火)의정(精) 산택(山澤)의 형(形)의 순서(順序)를 밟고 있는 것이오, 이 형화운동(形化運動)은 반드시 어떠한 생생원리(生生原理)의 속에서 어떠한 상(象)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이가 옛적의 복희씨(伏羲氏)라는 성인(聖人)이 천문(天文) 지리(地理) 조수(鳥獸)의 문(文) 초목(草木)의 지의등(地宜等) 형상(形象)과 인신(人身) 만물(萬物)의 생생(生生)하는 이(理)를 보고 비로소 팔괘(八卦)를 획(劃)하여 그 생생(生生)하는 원리(原理)를 밝히니, 그러므로 팔괘(八卦)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생(生生)하는 원리(原理)를 도상(圖像)으로써 표시(表示)한 학문(學問)이다.
팔괘(八卦)의 획상(劃象)은 생명원(生命元)인 음양(陰陽)에서 시(始)하니, 이는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은 반드시 남녀(男女) 자웅등(雌雄等)의 음양양성(陰陽兩性)이 있고 만물(萬物)의 조직(組織)에도 반드시 강유(剛柔) 장단(長短) 곡직등(曲直等)의 음양양성(陰陽兩性)이 있고 만물(萬物)의 운행(運行)에도 반드시 소장(消長) 취산(聚散) 왕래등(往來等)의 음양양성(陰陽兩性)이 있는 까닭이다. 물(物)의 음양성(陰陽性)을 표시(表示)함에 양(陽)을 −로 획(劃)하고 陰을 󰁌로 획(劃)하니 이는 양(陽)의 상(象)은 기(奇)하고 음(陰)의 상(象)은 우(耦)하여 기(奇)의 상(象)은 전일(專一)하고 우(耦)의 상(象)은 양분(兩分)하고 한 까닭이며, 모든 생물(生物)이 양체(陽體)의 생식기(生殖器)는 기(奇)하고 음체(陰體)의 생식기(生殖器)는 우(耦)하며 양성(陽性)인 마(馬)의 제(蹄)는 기(奇)하고 음성(陰性)인 우(牛)의 제(蹄)는 우(耦)하고 한 것이 그 일례(一例)이다.
기(奇)와 우(耦)는 물(物)의 음양조직(陰陽組織)이오, 음양(陰陽)의 조직체(組織體)가 상교(相交)하여 새로 일물(一物)을 생(生)하는 것은 물(物)의 음양운행(陰陽運行)인데 물(物)의 음양운행(陰陽運行)은 반드시 삼수(三數)로써 하니, 부(父)와 모(母)가 자(子)를 생(生)하는 것도 부모자(父母子)의 삼수(三數)의 운행(運行)이오 상반(相反)되는 두 운동(運動)의 속에서는 새로운 한 운동(運動)이 생(生)하여 삼수(三數)의 운동(運動)이 되는 것이오, 음양(陰陽)이 상교(相交)할 때에는 처음에 음양(陰陽)의 기(氣)가 상감(相感)하고 다음에 음양(陰陽)의 정(精)이 상취(相聚)하고 그 다음에 차세대(次世代)의 형(形)이 성(成)하는 것도 기정형(氣精形)의 삼수운행(三數運行)이니, 그러므로 삼수(三數)는 만물(萬物)의 시생(始生)하는 수(數)로 되고, 물(物)의 시생(始生)한 자(者)는 씨이므로 삼수(三數)는 또한 씨의 수(數)로 되는 것이다.
역괘(易卦)는 물(物)의 생생(生生)을 상(象)하여 획(劃)한 것이므로 생명원(生命元)의 상(象)인 음획(陰劃)과 양획(陽劃)을 서로 교착(交錯)하여 음양상교(陰陽相交)의 형태(形態)를 짓고 물(物)의 시생(始生)하는 수(數)인 삼획(三劃)으로써 괘상(卦象)을 작성(作成)하니, 괘(卦)는 모두 건(乾)☰ 곤(坤)☷ 진(震)☳ 손(巽)☴ 감(坎)☵ 리(離)☲ 간(艮)☶ 태(兌)☱의 팔괘(八卦)로 된 것이다.
삼획(三劃)과 팔괘(八卦)는 삼수(三數)와 팔수(八數)이오 천지자연수(天地自然數)에 일이삼사오(一二三四五)는 생수(生數)이오 육칠팔구십(六七八九十)은 성수(成數)인데, 삼(三)은 생수(生數)의 중수(中數)이오 팔(八)은 성수(成數)의 중수(中數)이니,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삼수(三數)에서 발현(發顯)하여 팔수(八數)에서 체(體)가 정(定)하는 것이오, 역괘(易卦)의 삼획(三劃)과 팔괘(八卦)는 또한 물(物)이 삼(三)에서 생(生)하여 팔(八)에서 체(體)가 성(成)한다는 원리(原理)를 상(象)한 것이다. 이 삼팔(三八)의 수(數)를 생성(生成)의 이(理)로써 보면 삼(三)은 정화(精化)의 씨의 상(象)이오, 팔(八)은 정화(精化)의 씨가 열매를 맺아서 체(體)가 정(定)하는 상(象)인데, 천지(天地)는 한 개의 씨의 생성(生成)하는 상(象)으로서 천지자연수(天地自然數)의 생성중심(生成中心)이 되는 삼팔(三八)의 수(數)에 당(當)하므로 역괘(易卦)의 삼획팔괘(三劃八卦)는 또한 한 개(個)의 씨의 상(象)으로 되어 그 속에 천지(天地)의 도(道)를 미륜(彌綸)하고 있는 것이다. 천지자연수(天地自然數)는 일(一)에서 팔(八)까지가 총삼십육總(三十六)이오 역(易) 팔괘(八卦)의 기획(奇劃) 일(一) 우획(耦劃) 이(二)의 합계(合計)가 또한 삼십육이니(三十六)이니, 그러므로 팔괘(八卦)라는 팔수(八數)는 역리(易理)의 체(體)가 정(定)하는 수(數)이오 지금 원자학(原子學)에 팔(八)이 안정수(安定數)로 되어 있는 것도 또한 이 이(理)에 기(基)한 것이다.


●팔괘(八卦)의 상(象)은 다음과 같다☰건(乾)은 순양(純陽)이므로 천(天)의 운행(運行)하는 상(象)이 되고 순양(純陽)은 광명(光明)의 상(象)이므로 태양(太陽)의 상(象)이 되어 건자(乾字)를 쓰니, 건(乾)은  간(倝)과을(乙)로 되어  간(倝)은 태양(太陽)이 비로소 나와서 광명(光明)하다는 뜻이오을(乙)은 물(物)의 발전(發展)하는 형용(形容)이다. 그러므로 건(乾)은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이 비친다는 뜻이오 사람에 있어서는 남체(男體)의 상(象)이 되며, 천지간(天地間)의 모든 운동(運動)은 건양(乾陽)의 능동작용(能動作用)에 의(依)하여 행(行)하는 것이므로 건(乾)은 생명원(生命元)이 되는 것이다.
☷곤(坤)은 순음(純陰)이므로 지(地)와 달의 음질(陰質)의 취응(聚凝)한 상(象)이 되고 순음(純陰)은 물(物)의 형질(形質)을 생(生)하는 상(象)이 되므로 곤자(坤字)를 쓰니, 곤(坤)은 토(土)와 신(申)으로 되어 토기(土氣)가 신(伸)하여 만물(萬物)의 형질(形質)을 생(生)한다는 뜻이다. 곤음(坤陰)은 반드시 건양(乾陽)을 승수(承受)하여 물(物)을 생(生)하는 것이므로 수동작용(受動作用)으로써 건양(乾陽)을 받아서 내부(內部)에 양기(陽氣)를 함(含)하고 외면(外面)에 광명(光明)을 생(生)하여, 그 작용(作用)은 건(乾)과 함께 생명원(生命元)이 되고 그 형질(形質)은 지(地)와 달이 된 것이며, 사람에 있어서는 여체(女體)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육자(六子)
 건(乾)은 남체(男體)의 상(象)이오 곤(坤)은 여체(女體)의 상(象)이므로 건곤(乾坤)을 부모(父母)로 하여 육괘(六卦)가 생(生)하고 이 육괘(六卦)를 육자(六子)라 한다. 곤(坤)이 건(乾)을 교(交)하여 일양(一陽)을 득(得)한 진(震)☳ 감(坎)☵ 간(艮)☶의 삼괘(三卦)는 이음일양(二陰一陽)이 되고 이것을 양괘(陽卦)라하며, 건(乾)이 곤(坤)을 교(交)하여 일음(一陰)을 득(得)한 손(巽)☴ 이(離)☲ 태(兌)☱의 삼괘(三卦)는 이양일음(二陽一陰)이 되고 이것을 음괘(陰卦)라 하니, 이는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은 기성(旣成)한 속에 차세대(次世代)로 될 신생명(新生命)이 생(生)하면 그 신생명(新生命)이 물(物)의 주(主)가 되는 것이므로 곤(坤)이 건(乾)을 교(交)하여 일양(一陽)을 득(得)한 것은 그 일양(一陽)이 주(主)가되어 양괘(陽卦)가 된 것이오, 건(乾)이 곤(坤)을 교(交)하여 일음(一陰)을 득(得)한 것은 그 일음(一陰)이 주(主)가되어 음괘(陰卦)가 된 것이다. 만물(萬物)이 지상(地上)에서 생생(生生)함에는 반드시 아래에서 생(生)하여 위로 올라가는 것이므로 건곤(乾坤)의 상교(相交)에 의(依)하여 소득(所得)한 육자(六子)는, 이것을 장중소(長中少)로써 나누면 하획(下劃)이 주(主)가 된 것은 장(長)이 되고 중획(中劃)이 주(主)가 된 것은 중(中)이 되고 상획(上劃)이 주(主)가 된 것은 소(少)가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진(震)은 장남(長男)이오 감(坎)은 중남(中男)이오 간(艮)은 소남(少男)이며, 손(巽)은 장녀(長女)이오 이(離)는 중녀(中女)이오 태(兌)는 소녀(少女)이다. 또 만물(萬物)의 생생(生生)함에는 기정형(氣精形)의 순서(順序)를 따라서 처음에 기(氣)가 생(生)하고 다음에 정(精)이 생(生)하고 내종에 형(形)이 생(生)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장남장녀(長男長女)인 진손(震巽)은 기(氣)가되고 중남중녀(中男中女)인 감리(坎離)는 정(精)이 되고 소남소녀(少男少女)인 간태(艮兌)는 형(形)이 되는 것이다.
☳진(震)은 처음에 생(生)한 기(氣)이오 일양(一陽)이 중음중(重陰中)에 있어 분출(奮出)하려하여 고동작용(鼓動作用)을 행(行)하는 상(象)이 되니, 양기(陽氣)가 중음중(重陰中)에서 고동작용(鼓動作用)을 행(行)하는 것은 전기(電氣)의 음양상격(陰陽相激)하는 뇌(雷)의 작용(作用)에 의(依)한 것이므로 진(震)은 뇌(雷)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양체(陽體)의 씨인 양자(陽子)는 반드시 양체(陽體)에 있어 생명(生命)이 고동(鼓動)하고 항구(恒久)히 계승(繼承)하는 것인데, 삼남중(三男中)에서 오직 진뢰(震雷)가 기(氣)로 되어 항구성(恒久性)이 있고 또 고동작용(鼓動作用)으로써 능동작용(能動作用)을 행(行)하여 운동(運動)이 계속(繼續)하고 있으므로 진괘(震卦)에 생명(生命)의 계승작용(繼承作用)이 있어 양자(陽子)의 원(元)인 건원(乾元)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역학(易學)에는 오직 진괘(震卦)에는 장자(長子) 또는 자(子)를 말한 것이오 자(子)라 함은 건곤(乾坤)을 계세(繼世)하는 진자(震子)라는 뜻이다. 진괘(震卦)에는 뇌동(雷動)과 계세(繼世)의 상(象)이 있고 진자(震字)가 또한 뇌정(雷霆) 과 임신(姙娠)이라는 뜻이 있으므로 괘명(卦名)을 진(震)이라 한 것이오 사람에 있어서는 남체(男體)의 정자(精子)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손(巽)은 처음에 생(生)한 기(氣)이오 천기(天氣)가 하강(下降)하여 지(地)를 접(接)하여 서로 견인(牽引)하는 자기(磁氣)의 상(象)이며 자기(磁氣)의 힘에 의(依)하여 풍(風)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손(巽)은 풍(風)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손(巽)의 자기(磁氣)는 비록 기(氣)이로되 음성(陰性)의 기(氣)이므로 양자(陽子)의 상(象)이 없고, 진자(震子)의 의부(依附)하는 바의 체(體)로 되어 진(震)의 양기(陽氣)와함께 항구(恒久)한 것이다. 손자(巽字)는 본시(本是)  (?)으로서 (?)와 기(丌)로 되고 (?)는 물(物)을 구(具)하는 형상(形象)이므로 손(巽)은 기상(丌上)에 서물(庶物)을 구(具)하여 천(薦)한다는 뜻이니, 이는 지(地)가 천(天)의 양기(陽氣)를 순승(順承)하여 만물(萬物)을 생(生)함을 상(象)함이오 사람에 있어서는 여체(女體)의 고(股)의 상(象)이 되어 음양상박(陰陽相薄)의 상(象)이 있는 것이다.
☵감(坎)은 기(氣)의 다음에 생(生)한 정(精)이니 정(精)이라 함은 기(氣)와 형(形)의 중간(中間)에 있어 그 성(性)이 유동(流動)하여, 산(散)하면 기(氣)로 되고 취(聚)하면 형(形)으로 되는 것이라, 감(坎)은 곤음중(坤陰中)에 건양(乾陽)을 함(含)하여 외암내명(外暗內明)한 정(精)이오 수(水)가 또한 유동(流動)하는 정(精)으로서 내(內)가 투명(透明)함으로 감(坎)은 수(水)의 상(象)이 되는 것이며, 감(坎)은 또한 달의 조직(組織)의 상(象)이 되니, 이는 달은 곤음(坤陰)의 속에 건양(乾陽)을 함(含)하고 건양(乾陽)의 기(氣)에 의(依)하여 운행(運行)함이 수(水)와 같은 까닭이다. 감자(坎字)는 토(土)와 흠(欠)으로되어 함혈(陷穴)이라는 뜻인데, 수(水)는 지(地)와 서로 떠나지 못하고 반드시 지(地)의 비함(卑陷)한 곳에 고이는 것이므로 감(坎)이라 한 것이오 사람에 있어서는 남체(男體)의 양정수(陽精水)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이(離)는 기(氣)의 다음에 생(生)한 정(精)이오 건양(乾陽)이 곤음(坤陰)에 의부(依附)하여 내암외명(內暗外明)한 정(精)인데 건(乾)의 순양(純陽)은 광명(光明)의 상(象)이 되고, 순양(純陽)의 속에 일음(一陰)을 득(得)하면 양기(陽氣)가 격화(激化)하여 화(火)를 생(生)하는 것이므로 이(離)는 화(火)의 상(象)이 되는 것이며, 이(離)는 또한 태양(太陽)의 조직(組織)의 상(象)이 되니 이는 태양(太陽)은 건양(乾陽)이 곤음(坤陰)에 의부(依附)하여 광(光)을 발(發)함이 화(火)와 같은 까닭이다. 이자(離字)에는 양리(兩麗)라는 뜻과 조(鳥)라는 뜻의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이(離)는 화(火)를 발(發)하는 음궁(陰宮)으로서 음체(陰體)의 자궁(子宮)의 상(象)이 되므로 양정(陽精)의 부리(附麗)하는 양리(兩麗)의 상(象)이 되고 또 양체(陽體)의 양정수(陽精水)가 음체(陰體)의 자궁(子宮)으로 넘어갈 때에는 반드시 양체(兩體)의 사이에 있는 공간(空間)의 절처(絶處)를 비월(飛越)하여야하고 공간(空間)의 절처(絶處)를 비월(飛越)함에는 반드시 화(火)의 발양작용(發揚作用)과 수(水)의 유통작용(流通作用)이 병행(倂行)하여야 하는 것이니, 이는 수화(水火)가 통명(通明)하여 절처(絶處)에 봉생(逢生)하는 이(理)이다. 양체(陽體)의 양정(陽精)이 음체(陰體)의 자궁(子宮)으로 넘어감에는 수화(水火)의 작용(作用)으로써 공간(空間)의 절처(絶處)를 비월(飛越)하는 것이므로 감(坎)의 양정수(陽精水)에는 습비(習飛)의 상(象)이 있어 감(坎)을 습감(習坎)이라 하는 것이오, 이(離)의 자궁(子宮)에는 비월(飛越)하는 정(精)을 승수(承受)하는 조(鳥)의 상(象)이 있어 조명(鳥名)의 이자(離字)를 쓴 것이며, 사람에 있어서는 여체(女體)의 자궁(子宮)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간(艮)은 내종에 생(生)한 형(形)이니 지기(地氣)가 상승(上升)하여 천(天)을 접(接)하고 아래의 이음(二陰)에 부(附)하여 지(止)하므로 산(山)의 상(象)이 된 것이다. 간(艮)은 진자(震子)가 반전(反顚)하여 양기(陽氣)가 위에 뭉치고 기(氣)가 형(形)을 이룬 것이므로 씨가 생장(生長)하여 열매를 맺는 상(象)이 되는데, 삼남중(三男中)에 가장 유소(幼少)하여 아직 성실(成實)치 못한 과실(果實)이 되고 후일(後日)의 장성(長成)하기를 대(待)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과자(果字)의 반자(半字)를 써서 간(艮)이라 한 것이다. 산(山)은 위의 양기(陽氣)가 아래의 음질(陰質)에 부(附)하여 만물(萬物)을 종(終)하고 만물(萬物)을 시(始)하는 곳이므로 간(艮)은 사람에 있어서는 물(物)의 종시작용(終始作用)을 행(行)하는 남체양근(男體陽根)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태(兌)는 내종에 생(生)한 형(形)이니 내부(內部)에 양기(陽氣)를 함(含)하여 발선(發宣)하는 작용(作用)을 갈무리하고 외부(外部)에 음정(陰精)이 엉기어 형(形)을 이루고 있는 것은 수(水)가 갑아서(고여서) 상일(上溢)하는 것이므로 택(澤)의 상(象)이 된 것이다. 만물(萬物)의 음체(陰體)의 씨인 음자(陰子)는 형질(形質)의 작성작용(作成作用)을 행(行)하는데 천지간(天地間)에 처음으로 형(形)이 나타난 것이 수(水)이오 수(水)의 성형(成形)한 것이 택(澤)이며 육자중(六子中)에 최후(最後)에 성형(成形)한 것이 또한 태택(兌澤)이니, 그러므로 태택(兌澤)에는 형질(形質)을 작성(作成)하는 작용(作用)이 있어 음자(陰子)의 원(元)인 곤원(坤元)이 된 것이다.
태(兌)는 일음(一陰)이 이양(二陽)을 포(包)하고 음양(陰陽)이 가회(嘉會)하여 모든 생물(生物)의 혈액(血液) 진액등(津液等)이 되므로 열(說)(悅)의 상(象)이 되는데, 삼녀중(三女中)에 가장 유소(幼少)하여 구(口)의 상(象)이 있으되 아직 언(言)을 발선(發宣)치 못하고 후일(後日)의 장성(長成)하기를 대(待)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열자(說字)의 언(言)을 덜어서 반자(半字)인 태(兌)를 쓴 것이며, 사람에 있어서는 여체(女體)의 난자(卵子)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팔괘중(八卦中)에서 건곤(乾坤)은 양물(陽物)과 음물(陰物)로서 음양불측(陰陽不測)하는 신(神)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며, 음양(陰陽)의 교호작용(交互作用)하는 역(力)이 곧 생명(生命)이오 건곤(乾坤)은 바로 생명원(生命元)이니, 그러므로 신(神)과 생명(生命)은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이(理)가 되는 것이며, 신(神)은 무형(無形)하여 영원불궁(永遠不窮)하고 생명(生命)은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으로 화(化)하는데 생명(生命)의 속에는 반드시 신(神)이 갈무리되어 있으므로 팔괘(八卦)의 속에는 무형(無形)한 신작용(神作用)과 유형(有形)한 만물(萬物)의 본능작용(本能作用)이 있어 그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니, 이가 역학(易學)에 복희씨(伏羲氏)가 비로소 팔괘(八卦)를 획(劃)하여 써 신명(神明)의 덕(德)을 통(通)하고 만물(萬物)의 정(情)을 유(類)한다고 한 것이며, 그러므로 역괘상(易卦象)에는 모두 신작용(神作用)과 만물본능(萬物本能)의 작용(作用)의 상(象)이 있는 것이다.


■ 태양(太陽)과 달의 생성(生成)생명(生命)이 기화(氣化) 정화(精化)하여 처음으로 유형물(有形物)을 생(生)한 것은 태양(太陽)이다. 이것을 역리(易理)로써 보건대 건곤생명원(乾坤生命元)이 운행(運行)하여 뇌풍(雷風)의 기(氣)를 생(生)하고 뇌풍(雷風)의 기(氣)가 운행(運行)하여 수화(水火)의 정(精)을 생(生)하고, 그것이 건곤(乾坤)의 통천작용(統天作用)과 수화(水火)의 취산작용(聚散作用)에 의(依)하여 건곤(乾坤) 뇌풍(雷風) 수화(水火)가 합(合)하여 생명(生命) 기(氣) 정(精)의 유형체(有形體)가 결성(結成)되니, 이가 곧 태양(太陽)이다. 생명(生命)의 운동(運動)에는 음양(陰陽)이 호근(互根)하여 선후(先後)의 별(別)이 없는 것이나 그 처음에 발생(發生)할 때에는 스스로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이 있어 능동(能動)이 선(先)하여 양(陽)이 되고 수동(受動)이 후(後)하여 음(陰)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천지간(天地間)에서 유형(有形)한 조직체(組織體)의 시생(始生)한 것은 능동작용(能動作用)을 행(行)하는 양물(陽物)인 태양(太陽)이다. 그러므로 태양계(太陽系) 우주(宇宙)에서는 태양(太陽)이 가장 먼저 출생(出生)한 것이다.
태양(太陽)이 이미 생(生)하여 능동작용(能動作用)을 행(行)하면 반드시 수동작용(受動作用)을 행(行)하는 음물(陰物)의 조직체(組織體)가 생(生)치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오, 또 만물(萬物)은 독음독양(獨陰獨陽)으로서는 운동(運動)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므로 태양(太陽)은 음체(陰體)를 얻은 연후(然後)에 운동(運動)이 행(行)하고 생명(生命)이 계계생생(繼繼生生)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태양(太陽)의 시생(始生)하는 때에 음체(陰體)가 태양(太陽)에서 분리(分離)하여 한 음성(陰性)의 조직체(組織體)를 이루는 것이오, 이가 곧 지구(地球)이다. 태양(太陽)은 양체(陽體)이오 지구(地球)는 음체(陰體)인데 지구(地球)가 어떻게 하여 태양(太陽)에서 생(生)하는가 하면, 이는 원시생물(原始生物)이 자체(自體)의 분렬(分裂)에 의(依)하여 번식(繁殖)하고 또한 남체(男體)의 속의 정자(精子)에서 여체(女體)가 출생(出生)하는 이(理)와 같은 것이다. 사람의 남녀(男女)는 모두 양체(陽體)의 정자(精子)에서 생(生)하는 것인즉 이는 여체(女體)가 남체(男體)에서 생(生)하는 것이오 사람은 일월(日月)에서 생(生)한 것이므로 사람의 여체(女體)가 남체(男體)에서 생(生)하는 것은 지구(地球)가 태양(太陽)에서 출생(出生)하는 원리(原理)에서 발원(發源)한 것이오, 그러므로 지구(地球)는 태양(太陽)속에서 생(生)한 것이다.
태양(太陽)에서 지구(地球)가 생(生)하면 지구(地球)는 음체(陰體)이오 음체(陰體)는 그 조직(組織)이 우(偶)하므로 지구(地球)의 내부(內部)에서 우(偶)하려는 작용(作用)이 일어나서 스스로 수토(水土)의 일부(一部)가 분리(分離)하여 반공중(半空中)에 역상(逆上)하는 것이오, 팔괘중(八卦中)에서 토(土)의 상승(上升)한 것이 산(山)이오 수(水)의 상승(上升)한 것이 택(澤)이니, 그러므로 반공중(半空中)에 역상(逆上)하여 조직체(組織體)를 이룬 것은 산택(山澤)의 상(象)인 달이다. 지구(地球)와 달과의 관계(關係)를 역리(易理)로써 보면 지구(地球)는 여체(女體)의 상(象)이오 달은 여체(女體)의 태궁(胎宮)의 상(象)이며, 달이 생(生)한 이후(以後)에 비로소 태양(太陽)과 달의 음양(陰陽)의 의(義)가 맺아져 만물(萬物)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태양(太陽)이 수화(水火)의 정(精)을 얻어서 비로소 유형물(有形物)이 된 것이므로 태양(太陽)과 지구(地球) 달의 사이에서 출생(出生)한 만물(萬物)은 모두 수화(水火)로써 체(體)를 삼는 것이오, 지구(地球)와 달도 또한 수화(水火)로써 체(體)를 삼아서 유형화(有形化)한 것이다. 그러나 동일(同一)히 수화(水火)로써 체(體)를 삼고 있으되, 양물(陽物)과 음물(陰物)의 조직형태(組織形態)는 서로 동일(同一)치 아니하니, 양물(陽物)은 음(陰)을 체(體)로하고 양(陽)을 용(用)으로 하는 까닭에 태양(太陽)은 내부(內部)에 수(水)가 있고 외부(外部)에 화(火)가 발양(發揚)하는 것이며, 지구(地球)와 달은 내부(內部)에 화(火)를 갈무리하고 외부(外部)에 수(水)가 유행(流行)하는 것이다. 태양(太陽)은 내수외화(內水外火)하고 지구(地球)와 달은 내화외수(內火外水)하므로 일월(日月)이 상교(相交)하는 때에 수화(水火)의 취산작용(聚散作用)이 행(行)하여 만물(萬物)의 생멸작용(生滅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태양(太陽)은 뇌풍(雷風)의 기화체(氣化體)가 정화체(精化體)로 된 것이므로 태양(太陽)에서는 뇌풍(雷風)의 기(氣)가 우주운행(宇宙運行)의 원동력(原動力)이 되어 전기(電氣) 자기(磁氣) 및 화정(火精)이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는 것이오, 달은 정화체(精化體)가 산택(山澤)의 형화체(形化體)로 된 것이므로 달에서는 산택(山澤)의 형(形)이 만물태육(萬物胎育)의 태궁(胎宮)이 되어 산택(山澤 )및 수정(水精)이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달은 지(地)에서 수토(水土)가 역상(逆上)한 것으로서 달의 산택(山澤)과 지상(地上)의 산택(山澤)은 그 원(源)이 동일(同一)하므로 달과 지상조석(地上潮汐)과의 사이에 밀접(密接)한 인력작용(引力作用)이 있는 것이며, 달의 산택(山澤)은 육자중(六子中)에 최소(最少)하여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아직 미성(未成)하고 세상(世上)에 출생(出生)치 아니하여 태중(胎中)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胎兒)의 상(象)이며, 또 달은 지(地)의 태궁(胎宮)으로서 산택(山澤)으로써 형질(形質)을 삼고 있으니, 태육중(胎育中)의 산택(山澤)과 달의 형질(形質)인 산택(山澤)은 별개(別個)의 두 산택(山澤)이 아니라 전연(全然) 동일(同一)한 산택(山澤)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산택(山澤)이 최소(最少)하여 여물지 못하고 있으므로 달도 또한 여물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지상(地上)의 만물(萬物)은 일월(日月)의 작용(作用)에 의(依)하여 생생(生生)하고 있는데 달이 아직 여물지 못하고 있으므로 만물(萬物)도 또한 여물지 못하고, 사람도 인류전체(人類全體)가 아직 자라는 과정(過程)에 있는 것이다.
건곤생명원(乾坤生命元)은 건원(乾元)과 곤원(坤元)으로 되어 있고, 건원(乾元)과 곤원(坤元)은 실제로(實際)로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하고 있는 일월(日月)속에 있으니, 태양(太陽)은 남체(男體)의 상(象)이오 뇌풍(雷風)의 기(氣)가 태양(太陽)의 운행(運行)을 주(主)하는데, 뇌(雷)가 건곤육자중(乾坤六子中)에 가장 먼저 생(生)하여 양성작용(陽性作用)을 행(行)하므로 진자(震子)인 뇌(雷)가 건원(乾元)이 되어 만물(萬物)을 자시(資始)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며, 달은 여체태궁(女體胎宮)의 상(象)이오 산택(山澤)의 형(形)이 달의 조직(組織)을 주(主)하는데, 택(澤)이 건곤육자중(乾坤六子中)에 가장 내종에 생(生)하여 음성작용(陰性作用)을 행(行)하므로 음정(陰精)인 태택(兌澤)이 곤원(坤元)이 되어 만물(萬物)을 자생(資生)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기정형(氣精形)의 순서(順序)에는 기(氣)가 먼저 생(生)하여 시(始)하고, 형(形)이 내종에 생(生)하여 성(成)하는 것이므로 물(物)을 시(始)하는 건원(乾元)은 육자중(六子中) 먼저 생(生)한 양기(陽氣)인 뇌(雷)를 용(用)하고 물(物)을 작성(作成)하는 곤원(坤元)은 내종에 생(生)한 음정(陰精)인 택(澤)을 용(用)하는 것이니, 건원곤원(乾元坤元)이 모두 기정형(氣精形)의 생생(生生)하는 음양(陰陽)의 자연질서(自然秩序)이다. 건원(乾元)과 곤원(坤元)을 인신(人身)으로써 보면 건원(乾元)은 남체(男體)의 정자(精子)의 상(象)이오 곤원(坤元)은 여체(女體)의 난자(卵子)의 상(象)이다.


註  ●서괘(序卦)의 일월생성(日月生成)서괘(序卦)로써 일월(日月)의 생성(生成)하는 상(象)을 보건대 건괘(乾卦)의 대명(大明)은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을 말함이오 곤괘(坤卦)의 빈마(牝馬)는 달의 작용(作用)을 말함이니 이는 건곤(乾坤)이 일월(日月)의 상(象)으로 되고 있음을 총론(總論)한 것이다. 수송괘(需訟卦)에 건양(乾陽)과 수(水)와 뇌풍(雷風)의 상(象)이 있어 비로소 태양(太陽)의 상(象)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오 수송괘(需訟卦)의 다음인 사비괘(師比卦)는 수토(水土)의 상(象)인데 수토(水土)가 지구(地球)에서 분리(分離)하여 천공중(天空中)에 올라가서 달이 되니, 이가 곧 비괘(比卦)의 현비(顯比)와 소축괘(小畜卦)의 밀운(密雲)이며 밀운(密雲)이라 함은 토(土)가 역상(逆上)하여 산(山)이 되고 수(水)가 역상(逆上)하여 택(澤)이 된 것으로서 공중(空中)의 산택(山澤)이 곧 달의 조직체(組織體)이다.
서괘(序卦)라 함은 무엇인가 하면, 천지(天地)는 일개생명(一個生命)의 유기체(有機體)로서 모두 자체(自體)안에 자체(自體)의 생성법칙(生成法則)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만물각개(萬物各個)의 생장성(生長成)에는 모두 동일(同一)한 기원(起源)과 공통(共通)한 법칙(法則)이 있어 어느 한 부분(部分)에 변화(變化)가 발생(發生)하면 전유기체(全有機體)가 반드시 그것을 인연(因緣)하여 연쇄적변화(連鎖的變化)가 일어나며, 또 그 변화형태(變化形態)는 각기자체(各其自體)의 생생법칙(生生法則)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십사괘(六十四卦)의 괘서(卦序)는 이미 건남(乾男)이 있으면 반드시 곤녀(坤女)가 있고 건곤남녀(乾坤男女)가 있으면 또 반드시 육십이괘(六十二卦)의 자녀생식(子女生殖)이 있는 것이니 이것이 연년생생(緣緣生生)이오 역학(易學)은 이 생명체(生命體)의 연년생생(緣緣生生)의 이(理)로써 육십사괘(六十四卦)를 서정(序定)하여 시운(時運)의 생장성(生長成)하는 상(象)을 말하고 그것으로써 천지인사(天地人事) 및 만물(萬物)의 운행변화(運行變化)하는 상(象)을 밝힌 것이다.
서괘(序卦)는 역학(易學)의 가장 주요(主要)한 조직(組織)이니, 이것을 인신(人身)으로써 보면 인신(人身)의 이목구비 두복수족등(耳目口鼻 頭腹手足等)은 신체(身體)를 구성(構成)하는 원재(原材)이오 이 원재(原材)가 각각(各各) 그 위치(位置)에 당(當)하여 배열(配列)된 까닭에 사람에게 생명(生命)이 있고 성정(性情)이 생(生)하는 것이다. 역학(易學)은 천지(天地)의 조직(組織)과 준사(準似)하여 하나의 생명체(生命體)로 되어 그 속에 신명(神明)의 작용(作用)이 행(行)하고 만물(萬物)의 성정(性情)이 동(動)하는 것이니, 이는 육십사괘(六十四卦)라는 원재(原材)가 각각차서(各各次序)대로 그 위치(位置)에 당(當)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학(易學)을 지은 성인(聖人)이 그 차서(次序)의 착란(錯亂)될 것을 염려(念慮)하여 특(特)히 서괘(序卦) 일편(一篇)을 지어서 한 생생체계(生生體系)를 이루어 놓은 것이다. 서괘(序卦)의 조직(組織)을 인신(人身)으로써 보면 인류(人類)의 창생(創生) 남체(男體)의 조직(組織) 여체(女體)의 조직(組織) 태궁(胎宮)의 조직(組織) 및 태아(胎兒)의생성(生成)의 다섯 부분(部分)으로 되어 있고, 우주(宇宙)로써 보면 일월(日月)의창생(創生) 일월(日月)의광명(光明) 일월(日月)의 상호관계(相互關係) 달의 음정작용(陰精作用) 후천월(后天月)의 태육(胎育)의 다섯 부분(部分)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우주만물(宇宙萬物)의 변화(變化)에는 변역(變易) 반역(反易) 교역(交易)의 삼역(三易)이 있으니,
변역(變易)이라 함은 물(物)의 발전과정(發展過程)에 그 작용(作用)이 대대물(對待物)로 변(變)하는 형태(形態)이니, 한(寒)이 서(暑)로 변(變)하고 서(暑)가 한(寒)으로 변(變)하면서 음양(陰陽)이 호역(互易)하여 물(物)을 생생(生生)하는 것 등(等)이 곧 변역(變易)이오 지금에 어느 일물(一物)이 이질(異質)의 타물(他物)로 전변(轉變)하는 것을 화학적변화(化學的變化)라 하는 것은 또한 변역(變易)의 한 형태(形態)이며, 역괘(易卦)의 차서중(次序中)에 변역(變易)하는 형태(形態)의 괘(卦)는 모두 팔괘(八卦)이다.
반역(反易)이라 함은 물(物)의 발전과정(發展過程)에 현상(現狀)의 속에서 그 대대(對待)되는 물(物)이 발용(發用)하는 때는 그 대대물(對待物)은 반드시 본체(本體)되는 현상(現狀)과 도역(倒逆)하여 반생(反生)하는 형태(形態)이니, 구사물(舊事物)의 속에서 신사물(新事物)이 생(生)하는 때에는 그 신사물(新事物)의 작용(作用)은 반드시 구사물(舊事物)의 형태(形態)와 상반(相反)하는 것으로서, 모체중(母體中)에서 태아(胎兒)가 모체(母體)와 역생(逆生)하여 있고 그믐달이 초생(初生)달로 도생(倒生)하는 것등(等)이 곧 반역(反易)이오, 지금에 생물체(生物體)에서 생생작용(生生作用)의 변화(變化)가 일어나서 새로운 작용(作用)을 생(生)하는 것을 생리적변화(生理的變化)라 하는 것은 또한 반역(反易)의 한 형태(形態)이며, 역괘(易卦)의 차서중(次序中)에 반역(反易)하는 형태(形態)의 괘(卦)는 모두 오십육괘(五十六卦)이다.
교역(交易)이라 함은 물(物)의 운동과정(運動過程)에 그 위치(位置)가 대대물(對待物)로 환역(換易)하는 형태(形態)이니, 태양(太陽)이 상(上)에 있고 지(地)가 하(下)에 있어 상하(上下)의 위치(位置)가 정(定)하여 있으되 물(物)을 생생(生生)함에는 태양(太陽)의 양기(陽氣)가 지(地)에 하(下)하여 광열(光熱)로 되고 지(地)의 수기(水氣)가 상(上)하여 운우(雲雨)로 되는 것등(等)이 곧 교역(交易)이오 지금에 물(物)의 본질(本質)은 변(變)치 아니하고 오직 상여(相與)하는 형태(形態)만 변(變)하는 것을 물리적변화(物理的變化)라 하는 것은 또한 교역(交易)의 한 형태(形態)이며, 역괘(易卦)의 차서중(次序中)에는 교역(交易)하는 형태(形態)의 괘(卦)는 없다.
만물(萬物)의 생생(生生)한 차서(次序)를 보건대 최초(最初)에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이 생(生)하여 천지일월(天地日月)을 생(生)한 것은, 음양(陰陽)의 상역(相易)하는 화학적변화(化學的變化)인 변역(變易)의 이(理)에 의(依)하여 비로소 유형(有形)이 생(生)한 것이오, 그 다음에는 부모(父母)가 자(子)를 생(生)하는 생리적변화(生理的變化)인 반역(反易)의 이(理)에 의(依)하여 세세(世世)로 계생(繼生)하는 것이며, 오직 물리적변화(物理的變化)인 교역交易으로서는 물物이 계생繼生치 못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서괘序卦에는 변역(變易)과 반역(反易)만으로써 차서(次序)를 정(定)한 것이다. 서괘육십사괘중(序卦六十四卦中)에 변역(變易)하는 차서(次序)는 팔괘(八卦)로서 전괘(全卦)의 팔분(八分)의 일(一)이오 반역(反易)하는 차서(次序)는 오십육괘(五十六卦)로서 전괘(全卦)의 팔분(八分)의 칠(七)이니, 이는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은 팔분(八分)의 일(一)이 화학적변화(化學的變化)인 변역(變易)의 형태(形態)로써 생생(生生)을 계세(繼世)하는 것이오, 팔분(八分)의 칠(七)이 생리적변화(生理的變化)인 반역(反易)의 형태(形態)로서 생생(生生)을 계세(繼世)하는 것이다. 우주창생(宇宙創生)의 초(初)에는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이 시생(始生)하는 때이므로 부전자수(父傳子受)하는 반역(反易)의 상(象)이 없고 오직 무중생유(無中生有)하는 변역(變易)의 상(象)이 있으므로 서괘(序卦)는 변역(變易)하는 상(象)의 건곤(乾坤)으로써 수괘(首卦)를 삼은 것이며, 금후(今後)에도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생(生生)에는 팔분(八分)의 일(一)이 항상(恒常) 변역(變易)의 형태(形態)인 화학적변화(化學的變化)로써 생생(生生)하고 팔분(八分)의 칠(七)이 항상(恒常) 반역(反易)의 형태(形態)인 생리적변화(生理的變化)로써 생생(生生)하는 것이다. 이것을 물(物)의 생생(生生)의 예(例)로써 보면 생리적변화(生理的變化)의 계세(繼世)는 태생(胎生)의 상(象)이오 화학적변화(化學的變化)의 계세(繼世)는 화생(化生)의 상(象)이니, 식물(植物)이나 동물(動物)이 부모(父母)가 자(子)를 생(生)함과 같은 것은 태생(胎生)의 상(象)이오, 선천월(先天月)이 변(變)하여 후천월(后天月)이 되는 것 같은 것은 화생(化生)의 상(象)이다.


第三節 씨의 발생(發生)
■ 씨는 일월(日月)에서 생(生)한다천지간(天地間)을 유행(流行)하고 있는 생명(生命)은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공간적(空間的)으로는 무한(無限)히 확대(擴大)하고 시간적(時間的)으로는 무궁(無窮)히 계승(繼承)하고 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는데, 이 작용(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는 반드시 만물(萬物)의 씨를 생(生)하여 공간적(空間的)으로는 자손(子孫)을 번식(蕃殖)하여 그 생생(生生)하는 경역(境域)을 넓혀야 하고 시간적(時間的)으로는 생(生)하고 자라고 여물고하여 세세(世世)로 이어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천지간(天地間)에 무한(無限)히 확대(擴大)하고 무궁(無窮)히 계승(繼承)하고 하는 작용(作用)을 가진 유형물(有形物)로서 지상(地上)에 가장 큰 힘을 미치고 있는 것은 오직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이니,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은 지상(地上)에 하시(下施)하여 공간적(空間的)으로는 비치지 아니하는 곳이 없고 시간적(時間的)으로는 비치지 아니하는 때가 없으므로 만물(萬物)의 씨는 반드시 태양(太陽)에서 생(生)한 연후(然後)에 무한무궁(無限無窮)한 것이다.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속에 있는 건원(乾元)은 만물(萬物)을 창시(創始)하는 작용(作用)이 있는데 건원(乾元)은 곧 생명(生命)의 계승작용(繼承作用)을 가지고 있는 진자(震子)이오 진자(震子)는 또한 건곤(乾坤)의 육자(六子)의 장(長)으로서 물(物)의 창시(創始)되는 상(象)이 있으니 그러므로 태양(太陽)속에 있는 진자(震子)가 씨의 창시(創始)의 원(元)이 되는 것이다. 만물(萬物)이 형(形)을 가지고 있는 자(者)는 그 형체(形體)에 모두 일정(一定)한 한도(限度)가 있어 소비(消費)하면 진(盡)하는 것이로되 오직 화(火)는 소착(燒着)할 물체(物體)만 있으면 공간적(空間的)으로 얼마든지 퍼져나갈 수가 있고 시간적(時間的)으로 얼마든지 계속(繼續)하여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니, 이는 화(火)에 무한무궁(無限無窮)한 작용(作用)이 있는 까닭이오, 화(火)의 무한무궁(無限無窮)한 작용(作用)은 태양(太陽)의 광명중(光明中)의 진자(震子)에서 오는 것이며, 그러므로 태양(太陽)속의 진자(震子)는 번식(繁殖)하고 계세(繼世)하고 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여 씨의 원(元)이 되는 것이다.
건곤(乾坤)의 생명원(生命元)은 진자(震子)로써 씨의 창시(創始)의 원(元)을 삼는데, 씨는 무한무궁(無限無窮)히 확대계승(擴大繼承)하기 위(爲)하여 반드시 음체(陰體)인 지상(地上)에 하시(下施)되는 것이니, 이는 태양(太陽)은 양기(陽氣)로서 씨를 창생(創生)하는 작용(作用)이 있고 지(地)는 음(체陰體)로서 씨를 승수(承受)하여 기르는 작용(作用)이 있는 까닭이며, 씨의 원(元)은 진자(震子)인 뇌(雷)이오 씨를 지상(地上)에 하시(下施)하는 역(力)은 천기(天氣)를 지상(地上)에 시행(施行)하는 자기(磁氣)인 풍(風)이니 그러므로 뇌(雷)와 풍(風)은 건곤생명원(乾坤生命元)의 운행(運行)하는 기(氣)로 되는 것이오 태양(太陽)이 또한 건곤생명원(乾坤生命元)과 뇌풍(雷風)의 기(氣)를 합(合)하여 기화(氣化)의 생명체(生命體)로 되는 것이며, 건괘(乾卦)에는 이것을 상(象)하여 천행건(天行健)이라 하니, 천(天)은 생명원(生命元)인 건곤(乾坤)이오 행(行)은 천기(天氣)가 공간적(空間的)으로 시행(施行)하는 풍(風)이오 건(健)은 생명(生命)이 건부(乾父)를 닮아서 시간적(時間的)으로 계세작용(繼世作用)을 행(行)하는 진자(震子)이다. 천행건(天行健)의 세 작용(作用)은 그 이름은 서로 다르나 모두 건곤생명원(乾坤生命元)이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운동(運動)을 일으켜서 뇌풍(雷風)의 기(氣)를 생(生)하고 건곤뇌풍(乾坤雷風)이 통일(統一)된 작용(作用)으로써 하나의 기화생명체(氣化生命體)를 이룬 것이니, 이 기화생명체(氣化生命體)는 형(形)이 생기기 이전(以前)의 천지혼돈체(天地混沌體)의 상(象)이오 또한 만물(萬物)의 생기기 이전(以前)의 무형(無形)한 기화(氣化)의 씨의 상(象)이다. 어떠한 생명체(生命體)이든지 그 생명체(生命體)에는 반드시 자체운동(自體運動)의 작용(作用)과 공간적(空間的)으로 장성(長成)하는 작용(作用)과 시간적(時間的)으로 영속(永續)하는 작용(作用)과의 세 가지 작용(作用)이 있으니, 이는 삼용일체(三用一體)의 형태(形態)이라. 천행건(天行健)은 바로 이 삼용일체(三用一體)의 조직(組織)을 말함이니, 천(天)은 자체운동(自體運動)의 작용(作用)이오 행(行)은 공간적(空間的) 장성(長成)의 작용(作用)이오 건(健)은 시간적(時間的) 영속(永續)의 작용(作用)이다.
기화(氣化)의 씨는 무형(無形)한 생명체(生命體)로서 유형화(有形化)할 것을 전제(前提)로 한 것이오,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의 생(生)하는 것이 곧 만물(萬物)의 생(生)하는 시초(始初)인데, 만물중(萬物中)에서 무형(無形)으로부터 유형(有形)을 생(生)하여 물(物)의 생성작용(生成作用)을 행(行)하는 것은 수화(水火)의 정(精)이다. 수화(水火)는 분산(分散)하면 기(氣)로 화(化)하여 무형(無形)이 되고 기(氣)가 취(聚)하면 정(精)이 되어 형체(形體)를 이루는 것이니, 그러므로 수화(水火)의 정(精)은 유형(有形)의 시(始)가 되는 것이오, 무형(無形)한 기화(氣化)의 씨는 수화(水火)의 정(精)을 얻어서 체(體)를 삼아 비로소 형(形)을 생(生)하니 이가 곧 정화(精化)의 씨이오 계사(繫辭)에「정(精)과 기(氣)가 물(物)이 된다」함은 생명원(生命元)이 뇌풍(雷風)의 기(氣)와 수화(水火)의 정(精)을 합(合)하여 만물(萬物)의 형체(形體)를 이룬다 함을 말함이다. 기화(氣化)의 씨가 정화(精化)의 씨로 되는 작용(作用)은 일월(日月)에서 행(行)하는 것이니, 태양(太陽)의 화정(火精)속에는 기화(氣化)의 씨가 있고 기화(氣化)의 씨에는 씨의 창시(創始)의 원(元)인 건원진자(乾元震子)가 있으며, 달에는 곤음(坤陰)의 수정(水精)속에 곤원(坤元)인 태택(兌澤)이 있어 건원진자(乾元震子)를 승수(承受)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건원진자(乾元震子)와 달의 곤원태택(坤元兌澤)이 합(合)하여 정화(精化)의 씨를 작성(作成)하는 것이니 곤괘(坤卦)에 「지(至)하다 곤원(坤元)이여 만물(萬物)이 자(資)하여 생(生)한다」함은 달에서 만물(萬物)의 씨가 생(生)함을 말함이다. 천지(天地)의 생성순서(生成順序)는 태양(太陽)에서 지구(地球)가 생(生)하고 지구(地球)에서 달이 생(生)하여, 태양(太陽)과 달은 그 근원(根源)이 동일(同一)하므로 건원(乾元)과 곤원(坤元)이 또한 그 근원(根源)이 동일(同一)하고 다만 그작용(作用)이 상이(相異)할뿐이니, 작용(作用)이 상이(相異)한 까닭에 자신(自身)에게 무(無)한 것을 상대방(相對方)에게서 얻기 위(爲)하여 이원(二元)이 상구(相求)하여 음양(陰陽)의 의(義)가 되는 것이오, 본시(本是) 근원(根源)이 동일(同一)한 까닭에 서로 합(合)하여 일체(一體)가되어 씨를 작성(作成)하는 것이다.
달에서 정화(精化)의 씨가 생(生)하면 이에 달 속에 있는 산택(山澤)의 형(形)을 얻어서 형화(形化)의 씨를 이루는 것이니, 산택(山澤)은 육자중(六子中)에 최후(最後)에 생(生)한 형(形)으로서 형질(形質)을 작성(作成)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므로 만물(萬物)의 씨는 모두 달의 산택(山澤)으로써 형질(形質)을 삼는 것이다.


■ 식물(植物) 동물(動物) 사람의 발생(發生)만물(萬物)의 씨의 발생(發生)하는 순서(順序)를 역서(易序)의 이(理)로써보건대, 만물(萬物)의 씨의 원(元)은 진자(震子)로서 남체(男體)에서 생(生)하는 것이므로 씨의 발생(發生)하는 순서(順序)도 또한 삼남(三男)의 순서(順序)로 되어, 먼저 장남(長男) 진(震)의 형(形)이 생(生)하고 다음에 중남(中男) 감(坎)의 형(形)이 생(生)하고 내종에 소남(少男) 간(艮)의 형(形)이 생(生)하는 것이다. 진(震)은 양(陽)이 지중(地中)에서 반생(反生)하여 뇌(雷)의 상(象)이 되니 뇌(雷)는 만물(萬物)의 씨의 원(元)이오 또한 식물(植物)의 체(體)가 토중(土中)에서 반도(反倒)하여 근(根)이 지중(地中)에 착(着)하고 간(幹)이 지상(地上)에 출(出)하는 상(象)이니 그러므로 식물(植物)의 씨가 만물(萬物)의 씨의 원(元)으로서 먼저 생(生)한 것이며, 감(坎)은 양(陽)이 음중(陰中)에 함(陷)하여 횡평(橫平)하여 수(水)의 상(象)이 되고 능(能)히 스스로 유행(流行)하니, 이것은 동물(動物)의 체(體)가 횡평(橫平)하여 자유(自由)로히 운동(運動)하는 상(象)이오 그러므로 식물(植物)의 다음에 동물(動物)의 씨가 생(生)한 것이다. 간(艮)은 화(火)의 염상작용(炎上作用)에 의(依)하여 양(陽)이 지상(地上)에 솟아서 산(山)의 상(象)이 되어 천(天)을 접(接)하니 이것은 사람이 직립(直立)하여 천지(天地)를 종관(縱貫)하는 상(象)이오 그러므로 동물(動物)의 다음에 사람이 생(生)한 것이다.
식물(植物) 동물(動物) 사람은 그 형태(形態)와 생리(生理)는 서로 다르나 모두 그 원(源)이 태양(太陽)과 달에서 나온 것이므로 본질(本質)은 서로 동일(同一)하여 식물체(植物體)의 속에 이미 동물(動物)의 발생(發生)할 요소(要素)가 있고 동물체(動物體)의 속에 이미 사람의 발생(發生)할 요소(要素)가 있는 것이다. 식물(植物) 동물(動物) 사람의 구성요소(構成要素)의 본질(本質)이 동일(同一)한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처음에 식물(植物)의 씨가 생길 때에 어느 한 종류(種類)의 식물(植物)만이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다른 종류(種類)가 잇따라 생기고 한 것이 아니라 신(神)의 주재(主宰)하고 있는 생명체(生命體)가 수다(數多)한 식물(植物)의 종류(種類)로 분신(分身)되어 유형화(有形化)하는 것이오 그 수다(數多)한 식물(植物)의 종류(種類)의 작용(作用)을 종합(綜合)하면 도루 통일(統一)된 천지생명체(天地生命體)의 작용(作用)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물(物)의 시생(始生)을 상(象)한 건원곤원(乾元坤元)에「만물(萬物)이 자시자생(資始資生)한다」하여 씨가 시생(始生)할 때에 만물(萬物)의 씨가 모두 창생(創生)되었음을 말한 것이오, 생명체(生命體)는 신(神)의 주재(主宰)에 속(屬)하므로 생명체(生命體)의 분신(分身)이 곧 신(神)의 체(體)의 분신(分身)이니, 그러므로 식물(植物)의 전종류(全種類)는 모두 신(神)의 체(體)의 분신(分身)으로 되어 전(專)혀 천지(天地)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순종(順從)하는 것이다.
식물(植物)이 이미 발생(發生)한 뒤에는 수다(數多)한 종류(種類)의 식물요소(植物要素)를 체(體)로하여 수다(數多)한 종류(種類)의 동물(動物)이 발생(發生)하니, 동물(動物)은 식물(植物)보다 한 차원(次元) 더 높은 생물(生物)이라, 동물(動物)은 식물(植物)보다 그 구성요소(構成要素)가 증가(增加)하고 있으므로 식물(植物)에는 운동(運動)의 자유(自由)가 없고 동물(動物)은 운동(運動)의 자유(自由)가 있으며 동물(動物)의 본능생활(本能生活)은 식물(植物)보다 자유(自由)로이 행(行)하고 식물(植物)의 전종류(全種類)를 체(體)로 한 까닭에 식물(植物)을 그 생양자료(生養資料)로 하고 있는 것이며, 동물(動物)도 어느 한 종류(種類)의 동물(動物)이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다른 종류(種類)의 동물(動物)이 잇따라 생긴 것이 아니다.
식물(植物)이나 동물(動物)은 처음 창생당시(創生當時)에 각종류(各種類)의 씨가 모두 따로따로 생기고 그 뒤에는 다만 각종류(各種類)의 족속(族屬)이 번식(蕃殖)할 뿐이다.
사람은 식물(植物)의 전종류(全種類)의 요소(要素)와 동물(動物)의 전종류(全種類)의 요소(要素)를 체(體)로 하여 식물(植物)과 동물(動物)을 그 생양자료(生養資料)로 하고 전지구상(全地球上)에 단일종류(單一種類)로 되어 있는데, 식물(植物)과 동물(動物)은 수다(數多)한 종류(種類)로 나뉘어 있으므로 종류(種類)와 종류(種類)의 사이에는 서로 크게 차별(差別)되고 있으되 동일종류(同一種類)는 그 성품(性品)이 대체(大體)로 동일(同一)하며, 사람은 동일종류(同一種類)로 되어 있으므로 세계인류(世界人類)의 생리(生理)는 대체(大體)로 동일(同一)하되 각인(各人)의 개성(個性)은 서로 크게 차별(差別)되고 있으니 생리(生理)가 동일(同一)한 까닭에 세계인류(世界人類)는 모두 공동생활(共同生活)을 할 수가 있고 개성(個性)이 차별(差別)한 까닭에 인간사회(人間社會)의 복잡(複雜)한 생활(生活)을 각기(各其) 분업(分業)하여 수행(遂行)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식물(植物) 동물(動物) 사람의 발생(發生)한 요소(要素)가 무엇인가를 보건대 건원진자(乾元震子)와 곤원태택(坤元兌澤)이 상교(相交)하면서 진자(震子)가 수정(水精)을 합(合)한 수뢰조직(水雷組織)은 초목(草木)의 씨로 된 것이니 이는 뇌(雷)(진자(震子))는 씨의 원(元)이오 수(水)는 유형(有形)의 시(始)이라, 씨의 원(元)이 유형(有形)의 시(始)와 합(合)하는 때에 생물(生物)의 최초(最初)인 식물(植物)의 씨가 생(生)하는 것이며 저 원소(元素)의 생길 때에 원자(原子)의 양자수(陽子數)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질(質)이 변화(變化)하여 여러 가지 종류(種類)의 원소(元素)가 생기는 것이니, 이 이(理)에 의(依)하여 씨의 생기는 때에도 태양(太陽)에서 기화(氣化)의 씨가 달에 하시(下施)되고 기화(氣化)의 씨의 요소(要素)의 많고 적음과 달에서 화합(化合)하는 물(物)의 요소(要素)에 의(依)하여 여러 가지 종류(種類)의 씨가 생기는 것이며 수뢰조직(水雷組織)은 태양(太陽)에서 기화(氣化)의 씨가 달에 하시(下施)되고 기화(氣化)의 씨의 요소(要素)가 달의 수정(水精)의 요소(要素)를 합(合)하여 식물(植物)의 씨가 생긴 것이오 이는 정화(精化)의 씨의 시초(始初)이다. 기화(氣化)의 씨의 요소(要素)의 많고 적음에 의(依)하여 그것이 정화(精化)하는 때에 질(質)이 변(變)하여 여러 종류(種類)의 초목(草木)의 씨가 생(生)한 것이다.
식물(植物)의 씨의 각종류(各種類)가 이미 발생(發生)한 뒤에는 식물(植物)의 씨의 요소(要素)인 진자(震子)와 수정(水精)에 다시 토질(土質)의 요소(要素)를 합(合)한 것이 곧 동물(動物)의 씨이니, 토(土)는 형질(形質)의 성(成)하는 것이므로 동물(動物)의 씨는 정화(精化)의 씨의 형화(形化)한 것이오 이는 수토조직(水土組織)의 금(禽)이다. 금(禽)이라 함은 조수(鳥獸)의 총명(總名)이니, 식물(植物)의 씨의 수다(數多)한 종류(種類)의 요소(要素)에 토질(土質)의 요소(要素)를 합(合)하는데, 그 요소(要素)들의 많고 적음에 의(依)하여 여러 종류(種類)의 동물(動物)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토(土)에는 화정(火精)을 함(含)한 산(山)과 수정(水精)을 함(含)한 지(地)와의 두 가지가 있으므로 수정(水精)의 토질(土質)을 합(合)한 씨는 냉혈동(冷血動物)이 되고 화정(火精)의 토(土)를 합(合)한 씨는 온혈동물(溫血動物)이 되는 것이다.
온혈동물중(溫血動物中)에서 화정(火精)을 가장 많이 함유(含有)한 자(者)는 호(虎)이니 그러므로 호(虎)는 눈에 화광(火光)을 발(發)하고 신작용(神作用)이 있는 것이며, 호(虎)의 씨의 요소(要素)에 다시 태양(太陽)의 화정(火精)의 요소(要素)를 합(合)한 것이 사람의 씨이다. 호(虎)의 씨의 요소(要素)에 태양(太陽)의 화정(火精)을 합(合)한 것이 사람의 씨이라 함은, 호(虎)가 변(變)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오 또 소위(所謂) 진화론(進化論)과 같이 수(獸)가 변(變)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니 이는 수(獸)가 한번 형체(形體)를 이루면 그 외부(外部)의 광색(光色)같은 것은 변(變)할 수가 있으되 그 기본(체基本體)인 장부조직(臟腑組織)이나 자웅(雌雄)의 씨같은 것은 변(變)할 수가 없는 까닭에 소위(所謂) 진화론(進化論)은 성립(成立)될 수 없는 것이다. 호(虎)의 씨는 진자(震子)와 수정(水精)에 화기(火氣)있는 토질(土質)을 합(合)하여 구성(構成)되고 사람의 씨는 호(虎)씨의 요소(要素)인 진자(震子) 수정(水精) 화기(火氣)의토(土) 등(等)을 합(合)하여 체(體)를 삼고 거기에 태양(太陽)의 화정(火精) 요소(要素)를 더 합(合)하여 구성(構成)된 것이라 함이니 호(虎)씨의 요소(要素)에 태양(太陽)의 화정(火精)을 더 합(合)한 것이 곧 호(虎)씨의 질(質)이 변(變)하여 사람의 씨로 되고 사람의 화(火)가 천(天)의 화(火)를 응(應)하여 몸이 직립(直立)하고 사람의 체중(體中)에서 화기(火氣)가 발양(發揚)하여 언어(言語)를 발선(發宣)하고 화기(火氣)의 팽탕작용(烹湯作用)에 의(依)하여 사람의 얼굴과 몸에 털이 생(生)치 아니하는 것이다. 천지간(天地間)에 먼저 식물(植物)이 생기고 식물(植物)을 체(體)로 하여 동물(動物)이 생기고 식물(植物)과 동물(動物)을 체(體)로 하여 사람이 생기고 함은 바로 신(神)의 창조사업(創造事業)에 속(屬)하는 일로서 신(神)의 계획(計劃)한 바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이다.


註  ●서괘(序卦)의 생물(生物) 발생순서(發生順序)진자(震子)가 수정(水精)을 합(合)한 수뢰조직(水雷組織)은 둔괘(屯卦)의 상(象)이니 둔괘(屯卦)는 초목(草木)의 씨의 시생(始生)하는 상(象)이오, 진자(震子)와 수정(水精)에 다시 토질(土質)을 합(合)한 수토조직(水土組織)은 사괘(師卦) 비괘(比卦)의 상(象)이니 사괘(師卦) 비괘(比卦)는 금(禽)의 시생(始生)하는 상(象)이다. 산택(山澤)의 기(氣)가 밀운(密雲)으로 되어 천공중(天空中)에서 성형(成形)하고 그것이 건양(乾陽)의 광명(光明)을 수(受)한 것은 이괘(履卦)의 상(象)이므로 이괘(履卦)에 달의 상(象)과 호(虎)의 상(象)이 있고, 호(虎)씨의 조직(組織)에 태양(太陽)의 화(火)를 합(合)하면 사람의 씨로 되는 것이므로 이괘(履卦)에 사람이 호미(虎尾)를 이(履)하는 상(象)이 있는 것이다. 동인괘(同人卦)는 달의 음정(陰精)이 건양(乾陽)과 태양(太陽)의 화(火)를 승수(承受)하여 사람의 씨를 작성(作成)하는 상(象)이 있으므로 인자(人字)로써 괘명(卦名)을 삼은 것이다. 동인괘(同人卦)에 선호도이후소(先號咷而後笑)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 속에는 호(虎)의 씨를 체(體)로 하여 사람의 씨가 생겼다는 뜻이 있는 것이니, 호도(號咷)는 호(虎)의 대호(大號)함이오, 소(笑)는 모든 생물중(生物中)에 오직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獨特)한 행동(行動)이다. 이는 먼저에 호(虎)가 생기고 그 다음에 사람이 생겼다는 뜻으로서 호(虎)는 동물(動物中)에서 가장 사람의 체(體)의 조직(組織)과 근사(近似)한 동물(動物)이며, 그러므로 호자(虎字)가 호(虍)와 인(人)으로되고, 사람에게 신(神)과 상통(相通)한 선행(善行)이 있는 때에 호(虎)가 와서 보호(保護)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체(體)의 조직(組織)은 호(虎)의 체(體)와 근사(近似)하므로 혁괘(革卦)에는 대인호변(大人虎變) 군자표변(君子豹變)이라 하니, 이는 대인(大人)은 호(虎)의 눈과 같이 화광(火光)을 발(發)하고 군자(君子)는 표(豹)의 문채(文彩)와 같이 광채(光彩)를 발(發)한다 함이다.
모든 생물(生物)의 체(體)를 수화(水火)의 상(象)으로써 보건대 동물(動物)의 체(體)는 감수(坎水)의 횡평(橫平)한 상(象)이오 사람의 체(體)는 간산(艮山)의 고(高)와 화(火)의 염상(炎上)하는 직립(直立)한 상(象)이라 유형(有形)한 무생물(無生物中)에서 스스로 동작(動作)하는 것은 수화(水火)이오 만물(萬物)의 체(體)는 수화(水火)의 기(氣)에 의(依)하여 운동(運動)하는 것인데, 식물체(植物體)의 조직(組織)은 수화(水火)의 기(氣)가 모두 부족(不足)하므로 스스로 동작(動作)하는 기(氣)가 없고 기(氣)의 동작(動作)에 의(依)한 정신작용(精神作用)도 거의 없으며, 그 씨의 조직체(組織體)에 수기(水氣)는 승(勝)하고 화기(火氣)가 부족(不足)한 자(者)는 체(體)가 수(水)의 상(象)과 같이 횡평(橫平)하여 스스로 동작(動作)하는 기(氣)가 있고 기(氣)의 동작(動作)에 의(依)한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으니, 이것이 동물(動物)의 씨로 되는 것이며, 씨의 조직체(組織體)에 수화(水火)의 기(氣)가 조화(調和)한 자(者)는 화(火)의 염상작용(炎上作用)에 의(依)하여 체(體)가 직립(直立)하여 종횡자재(縱橫自在)한 동작(動作)을 행(行)할 수가 있고 수화통명(水火通明)한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는 것이니, 이것이 사람의 씨로 되는 것이다. 동물(動物)의 씨가 사람의 씨보다 먼저 생(生)하는 것은, 태초(太初)에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이 생(生)할 때에 수(水)가 먼저 현형(現形)하여 자연수(自然數)의 일(一)이 되고 다음에 화(火)가 현형(現形)하여 자연수(自然數)의 이(二)가 되고 한 이(理)에 의(依)한 것이다.
식물(植物)은 반도(反倒)하고 동물(動物)은 횡평(橫平)하고 사람은 직립(直立)하니, 이는 물(物)이 처음에 천(天)에서 하래(下來)하여 반도(反倒)한 체(體)가 되고 그것이 지(地)의 평면(平面)에 와서 횡평(橫平)한 체(體)가 되고 그것이 다시 천(天)을 향(向)하고 상승(上升)하여 직립(直立)한 체(體)가 되고 하는 상(象)이오, 이것이 만물(萬物)이 천(天)에서 생(生)하고 지(地)에 내려와서 장(長)하고 성(成)한 연후(然後)에 다시 천(天)으로 환행(圜行)한다는 이(理)이다. 그러므로 식물(植物) 동물(動物) 사람은 생장성(生長成)의 상(象)이 되고 있으니, 식물(植物)은 의지현상(意志現象)이 없고 순전(純全)히 자연법칙(自然法則)에 의(依)하여 살고 있으므로 이는 물(物)이 시생(始生)하여 유치(幼穉)한 생(生)의 시운(時運)의 상(象)이오, 동물(動物)은 의지(意志)도 있고 자유(自由)로이 행동(行動)도 하여 본능생활(本能生活)로써 서로 생장경쟁(生長競爭)을 행(行)하고 있으니 이는 물(物)이 세력(勢力)으로 상승(相勝)하는 장(長)의 시운(時運)의 상(象)이오, 사람은 양족(兩足)이 지(地)를 이(履)하고 두(頭)가 천(天)을 향(向)하여 천지(天地)를 종관(縱貫)하여 직립(直立)하고 본능생활(本能生活) 이외(以外)에 또한 이성(理性)으로써 인류공동체생활(人類共同體生活)을 영위(營爲)하니, 이는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천(天)으로 환행(圜行)하는 성(成)의 시운(時運)의 상(象)이다.


■ 남녀(男女)의 분화(分化)사람의 남녀분화(男女分化)의 이(理)를 보건대 사람의 씨는 건원(乾元)인 진자(震子)와 곤원(坤元)인 태택(兌澤)으로써 구성(構成)된 것이므로 남체(男體)와 여체(女體)가 모두 진자(震子)와 태택(兌澤)으로써 조직(組織)된 것이오 남체(男體)의 정자(精子)와 여체(女體)의 난자(卵子)도 독음독양(獨陰獨陽)이 아니라 원소(元素)가 모두 진자(震子)와 태택(兌澤)의 건원곤원(乾元坤元)의 합체(合體)한 것이니, 남녀(男女)의 조직원체(組織原體)는 조금도 상이(相異)함이 없는 것이다. 다만 남녀(男女)의 상이(相異)한 바는 남체(男體)는 곤(坤)이 건양(乾陽)을 얻은 양괘(陽卦)의 상(象)으로서 음(陰)이 체(體)가 되고 양(陽)이 용(用)이 되니, 양(陽)이 용(用)이 된 까닭에 진자(震子)가 용(用)이 되어, 남체(男體)는 양성(陽性)인 정자(精子)를 보유(保有)하는 것이오 여체(女體)는 건(乾)이 곤음(坤陰)을 얻은 음괘(陰卦)의 상(象)으로서 양(陽)이 체(體)가되고 음(陰)이 용(用)이 되니, 음(陰)이 용(用)이 된 까닭에 태택(兌澤)이 용(用)이 되어 여체(女體)는 음성(陰性)인 난자(卵子)를 보유(保有)하는 것이다. 남녀(男女)는 동일(同一)한 천행건(天行健)의 씨이면서 남녀(男女)의 분화(分化)가 생(生)하는 것은 건곤생명원(乾坤生命元)의 교호작용(交互作用)과 팔괘(八卦)의 호상대대(互相對待)와 및 뇌정(雷霆) 풍우(風雨) 일월(日月) 한서(寒暑)의 작용(作用)에 의(依)하여 건도(乾道)는 남체(男體)가되고 곤도(坤道)는 여체(女體)가 된 것이니, 계사(繫辭)에「강유(剛柔)가 상마(相摩)하고 팔괘(八卦)가 상탕(相盪)하여 고(鼓)하기를 뇌정(雷霆)으로써하고 윤(潤)하기를 풍우(風雨)로써하고 일월(日月)이 운행(運行)하고 한번 한(寒)하고  한번 서(暑)하여 건(乾)의 도(道)는 남(男)을 성(成)하고 곤(坤)의 도(道)는 여(女)를 성(成)한다」함은, 이 남녀분화(男女分化)의 이(理)를 말한 것이며, 건도곤도(乾道坤道)의 도(道)는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고 함을 말함이오, 음양(陰陽)이 균등(均等)하여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고 하는 대대작용(對待作用)의 도(道)가 서로 조절(調節)되어 있으므로 지상(地上)의 남녀수(男女數)도 대체(大體)로 자연조절(自然調節)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남체(男體)의 정자(精子)는 진자(震子)가 용(用)이 되고 진자(震子)는 태양(太陽)에서 와서 달의 광명중(光明中)에서 생성(生成)한 것이므로 정자(精子)는 태양(太陽)의 광명(光明)과 같이 항상(恒常)한 것이오 여체(女體)의 난자(卵子)는 태택(兌澤)이 용(用)이 되고 태택(兌澤)은 달의 음정중(陰精中)에서 태양광명(太陽光明)을 받아서 생성(生成)한 것이므로 난자(卵子)는 달의 음정(陰精)과 같이 영허(盈虛)가 있는 것이니, 난자(卵子)가 달로 더불어 영허(盈虛)하는 것은 이 까닭이며, 사람은 그 씨가 일월(日月)에서 내려온 까닭에 남녀체중(男女體中)의 정자난자(精子卵子)는 부단(不斷)히 일월변화(日月變化)의 작용(作用)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인체(人體)는 정자(精子)와 난자(卵子)가 합체(合體)하여 구성(構成)되는 것이므로 건원(乾元)과 곤원(坤元)의 이원운행(二元運行)으로 되어 기(氣)와 정(精) 정신(精神)과 육체등(肉體等)의 분별(分別)이 있으며, 광명(光明)의 상(象)인 진자(震子)는 기(氣)로서 영원(永遠)히 존속(存續)하고 음정(陰精)의 상(象)인 태택(兌澤)은 형질(形質)로서 생멸(生滅)이 있으니, 그러므로 광명(光明)과 음정(陰精)의 합체(合體)에 의(依)하여 조직(組織)된 인체(人體)는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상(象)이 되어, 광명(光明)한 기(氣)로써 구성(構成)된 천성(天性)은 영원(永遠)히 존속(存續)하는 것이오 음정(陰精)인 형질(形質)로써 구성(構成)된 육체(肉體)는 사생(死生)이 있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씨가 처음에 발생(發生)할 때에는 각기(各其) 종류(種類)대로 모두 창생(創生)된 것이오, 한번 창생(創生)된 후(後)에는 지상(地上)에서 세세계승(世世繼承)과 종족번식(種族蕃殖)의 작용(作用)을 행(行)할 뿐이오 다시는 창생(創生)되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는 씨가 생(生)의 시운(時運)에만 창생(創生)되고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다만 자라기만 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학(易學)에는 생(生)의 시운(時運)에만 사람의 씨를 시생(始生)하는 상(象)이 있고 그 뒤에는 지상(地上)에서 남녀(男女)가 분화(分化)하여 자손(子孫)을 생(生)하는 상(象)만 있는 것이다.


■ 생장성(生長成)의 시운(時運)시운(時運)이라 함은 어떠한 것인가 하면, 천지간(天地間) 만물(萬物)은 모두 자체(自體)의 생생법칙(生生法則)을 가지고 있어, 그 개체(個體)가 시간적(時間的)으로 생(生)하고 자라고 여물고 하는 생장성(生長成)의 운동(運動)을 행(行)하므로, 이 만물(萬物)을 통일(統一)하고 있는 천지(天地)에도 또한 생장성(生長成)의 상(象)이 있어, 시간적(時間的)으로 생(生)의시운(時運) 장(長)의시운(時運) 성(成)의시운등(時運等) 시운(時運)의 별(別)이 있는 것이오 만물(萬物)은 각(各) 개체(個體)가 그 일생(一生) 동안에 생장성(生長成)하면서 또한 만물(萬物) 전체(全體)가 그 시운(時運)을 따라서 함께 생장성(生長成)의 운동(運動)을 행(行)하는 것이다. 개체(個體)의 생장성(生長成)과 시운(時運)의 생장성(生長成)의 상(象)을 사람의 생생(生生)의 예(例)로써 보건대, 남녀체(男女體)의 정자(精子) 난자(卵子)의 조직(組織)은 생(生)의 상(象)이오, 남체(男體)의 정자(精子)가 여체(女體)의 난자(卵子)와 상교(相交)하여 태아(胎兒)가 생육(生育)하는 것은 장(長)의 상(象)이오 태아(胎兒)가 완성(完成)되어 모체(母體)에서 출산(出産)하는 것은 성(成)의 상(象)이니, 이것은 개인(個人)의 생장성(生長成)이다. 생장성(生長成)이라 함은 생(生)에서 장(長)으로 넘어가고 장(長)에서 성(成)으로 넘어갈 때에 모두 획기적(劃期的) 변화(變化)가 있는 것이므로 사람의 출생이후(出生以後)에 유소(幼少) 청장(靑壯) 노쇄(老衰)같은 순서(順序)는 생장성(生長成)의 상(象)이 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인류전체(人類全體)가 원시시대(原始時代)에는 인류(人類)의 창생(創生)되는 원시인(原始人)으로 되어 있으니 이는 생(生)의 시운(時運)의 사람의 상(象)이오 생(生)의 시운(時運)의 말(末)에 지상(地上)에 수(水)의 충격(衝激)하는 변화變化가 생(生)하여 신명(神明)한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이므로 원시인(原始人)의 대부분(大部分)은 수중(水中)에 독(瀆)하고 신명(神明)한 사람의 씨만  이 지상(地上)에 착생(着生)하여 자라고 그것이 현재(現在)의 인류(人類)가 되니, 이것은 장(長)의 시운(時運)의 사람의 상(象)이오, 현재(現在)의 인류(人類)는 비록 원시인(原始人)에 비(比)하여 발달(發達)하고 있으나 아직 천성(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인간본연(人間本然)의 자태(姿態)에 비춰보면 한 미성품(未成品)이 되고 있으며, 다시 이 지상(地上)에 뇌화(雷火)의 변화(變化)가 일어나서 선(善)한 사람을 여물게 하는 것이므로, 선(善)한 사람은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신(神)과 상우(相和)하고 천성(天性)이 여물지 못한 사람은 화(火)의 화열(火熱)로 인(因)하여 쭉정이가 되어 스스로 소멸(消滅)하는 것이니, 이는 성(成)의 시운(時運)의 사람의 상(象)이다. 만물(萬物)의 자라는 것은 수(水)로써하고 여무는 것은 화(火)로써 하는 것이므로 장(長)하는 때에는 수(水)의 변화(變化)가 있고 성(成)하는 때에는 화(火)의 변화(變化)가 있는 것이다.
시운(時運)이 변(變)할 때마다 지상(地上)의 인사(人事)가 변(變)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시운(時運)이라 함은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생성(生成)하는 행정작용(行政作用)이므로 시운(時運)이 변(變)하면 먼저 지운(地運)이 변(變)하고 지운(地運)이 변(變)하면 만물(萬物)의 생성(生成)이 변(變)하고 인사(人事)가 따라서 변(變)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원시인(原始人)의 살던 생(生)의 시운(時運)의 전지운(前地運)과 현재인류(現在人類)의 살고 있는 장(長)의 시운(時運)의 현지운(現地運)과 금후(今後)의 성(成)의 시운(時運)의 미래지운(未來地運)은 비록 동일(同一)한 지구(地球)이로되 그 작용(作用)은 서로 다른 것이다. 물(物)의 생장성(生長成)의 이(理)로써 보면 생(生)의 시운(時運)의 전지운(前地運)은 열매의 조직체(組織體)와 같이 지구(地球)가 보합작용(保合作用)을 행(行)하고 장(長)의 시운(時運)의 현지운(現地運)은 열매에서 싹이 나오고 줄기와 가지가 뻗음과 같이 지구(地球)가 발현작용(發顯作用)을 행(行)하고 성(成)의 시운(時運)의 미래지운(未來地運)은 열매가 여뭄과 같이 지구(地球)가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인류(人類)의 생장성(生長成)하는 시운(時運)의 연수(年數)는 어떠한가 하면 지구(地球)에는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을 받아서 만물(萬物)을 생성(生成)하는 절후(節候)의 마디가 있다. 태양(太陽)은 주천(周天)의 도(度)를 운행(運行)하면서 일주야(一晝夜)에 지구(地球)를 한번 씩 돌고 있으니, 이것은 지상(地上)의 일일(一日)이다. 태양(太陽)은 일일(一日)에 지구(地球)를 일주(一周)하면서 또한 춘분점(春分點)에서 다시 춘분점(春分點)으로 되돌아오고 그 되돌아오는 일수(日數)는 삼백육십오일(三百六十五日) 오시간여(五時間餘)로서 이것은 지상(地上)의 일세(一歲)이며, 이 일세(一歲)동안에는 기후(氣候)의 한서(寒暑) 주야(晝夜)의 장단(長短)으로 인(因)하여 사시(四時)와 만물(萬物)의 온갖 변화(變化)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춘분점(春分點)은 해마다 그 위치(位置)가 동일(同一)한 것이 아니라, 매년(每年)에 조금씩 동(東)에서 서(西)로 이동(移動)하여 약(約) 일만이천팔백여년(一萬二千八百餘年) 후(後)에는 지금의 춘분점(春分點)이 추분점(秋分點)으로되고 약(約) 이만오천칠백여년(二萬五千七百餘年) 후(後)에는 다시 최초(最初)의 춘분점(春分點)으로 돌아와서 매섭(每攝) 이만오천칠백여년(二萬五千七百餘年)을 일주기(一週期)로 하여 순환(循環)하는 것이며, 일세(一歲)동안에 사시(四時)와 같은 변화(變化)가 있으므로 이 주기(週期) 동안에 만물(萬物)의 생성(生成)에 적지 아니한 변화(變化)가 있는 것이다. 태양(太陽)이 일세(一歲)에 춘분점(春分點)으로 되돌아오는 기간(期間)은 사시(四時)의 형태(形態)로서 풍토(風土)가 일한일서(一寒一暑)하면서 만물개체(萬物個體)의 생장성작용(生長成作用)을 행(行)하는 것이오 이만오천칠백여년(二萬五千七百餘年)에 춘분점(春分點)으로 되돌아오는 기간(期間)은 시운(時運)의 형태(形態)로서 천지(天地)가 일합일벽(一闔一闢)하면서 만물통체(萬物統體)의 생장성작용(生長成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류(人類)의 생장성(生長成)하는 시운(時運)은 만물통체(萬物統體)의 생장성(生長成)의 이(理)에 의(依)하여 이 이만오천칠백여년(二萬五千七百餘年)을 마디로 하여 행(行)하는 것이오 인류(人類)가 창생이후(創生以後)에 생(生)의 시운(時運)과 장(長)의 시운(時運)을 경과(經過)한 동안은 최소(最少)로 오만수천년(五萬數千年)이 걸린 것이다.
인류(人類)의 생장성(生長成)하는 시운(時運)의 년수(年數)는 여러 만년(萬年)이 걸리고 있으므로 동일(同一)한 시운중(時運中)에도 또한 생장성(生長成)의 시기(時期)의 구분(區分)이 있으니, 그러므로 원시인(原始人)의 생(生)의 시운(時運)에도 생(生)의 시기(時期) 장(長)의 시기(時期) 및 성(成)의 시기(時期)가 있어, 인류(人類)의 창생(創生)은 생(生)의 시운중(時運中)의 생(生)의시기(時期)에 당(當)하고 수중(水中)의 독(瀆)은 생(生)의 시운중(時運中)의 성(成)의 시기(時期)에 당(當)하는 것이며, 현재인(現在人)의 장(長)의 시운(時運)에도 생(生)의 시기(時期) 장(長)의 시기(時期) 및 성(成)의 시기(時期)가 있어 지금은 장(長)의 시운중(時運中)의 성(成)의 시기(時期)에 당(當)하고 있는 것이다.

 註 ●河圖 洛書 및 八卦圖의 時運象徵 (內容 未記述)

第二章   사람의 정신작용(精神作用)
第一節   천성(天性)의 조직(組織)
■ 생명(生命)과 천성(天性)사람은 그 씨가 일월(日月)에서 와서 건곤생명원(乾坤生命元)과 뇌풍(雷風)의 기(氣)와 수화(水火)의 정(精)으로써 구성(構成)되고 그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반드시 생생(生生)을 영위(營爲)함에 필요(必要)한 천성(天性)을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천성(天性)은 씨로 더불어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조직(組織)이 되고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천성(天性)도 또한 씨와 같이 건곤(乾坤) 뇌풍(雷風) 수화(水火)로써 구성(構成)되는 것이며 다만 씨와 천성(天性)의 상이(相異)한 바는 씨는 형이하(形而下)한 것이오 천성(天性)은 형이상(形而上)한 것이다. 천성(天性)의 발(發)하는 때에는 심(心)과 정(情)의 작용(作用)이 생(生)하는 것인데, 지금에 정신(精神)이라는 말은 이 천성심정(天性心情)을 총칭(總稱)한 것이다. 건괘(乾卦)에는「성명(性命)」「성정(性情)」을 말하니, 이는 천성(天性)이 건곤(乾坤)에 본원(本源)하고 있다 함이오, 계사(繫辭)에「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함을 도(道)라 이르고 계(繼)하는 자(者)가 선(善)이오 성(成)하는 자(者)가 성(性)이라」하니 이는 건곤생명원(乾坤生命元)의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는 도(道)에서 선(善)이 계생(繼生)하고 선(善)의 여문 것이 곧 성(性)이므로 천성(天性)은 건곤(乾坤)에 본원(本源)하여 선(善)의 여문 것이라 함이오(역괘중(易卦中)에 오직 뇌풍항괘(雷風恒卦)의 항자(恒字)가 심(心)으로써 구성(構成)된 것은 천성(天性)에서  생(生)한 심(心)이 뇌풍(雷風)의 기(氣)로써 운행(運行)되고 있음을 말함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천성(天性)은 사람의 씨와 같이 건곤(乾坤)과 뇌풍(雷風)을 합(合)한「천행건(天行健)」의 상(象)이 되는 것이며, 천성(天性)과 씨는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의 상이(相異)이므로 천성天性은 일음일양(一陰一陽)하는 형이상(形而上)한 도(道)에서 계생(繼生)하는 것이오 씨는 형이하(形而下)한 기(器)의 내부(內部)에 형이상(形而上)한 도(道)를 갈무리 하고 있는 것이다.


■ 천성(天性)의 생성(生成)천성(天性)이라 함은 선(善)이 일음일양(一陰一陽)하는 도(道)에서 계생(繼生)하여 여문 것이니 선(善)과 성(性)은 어떻게 서로 관련(關聯)되어 있는가 하면, 건괘(乾卦)에는 원(元)을 인(仁)이라 하고 인(仁)에서 발(發)하는 작용(作用)을 선(善)이라 하는데, 만물(萬物)의 씨는 원(元)의 상(象)이 되므로 씨의 알맹이는 인(仁)이 되며, 씨의 알맹이를 인(仁)이라 하므로 씨에서 발생(發生)하는 새싹은 선(善)이 되는 것이며, 천성(天性)과 씨는 그 조직형태(組織形態)가 동일(同一)하므로 천성(天性)의 알맹이는 또한 인(仁)이 되고 인(仁)에서 발생(發生)하는 작용(作用)은 선(善)이 되는 것이니, 천성(天性)에 인(仁)과 선(善)을 말하는 것은 이 까닭이다. 인(仁)은 천성(天性)의 알맹이이오 선(善)은 천성(天性)의 인(仁)에서 생(生)하는 새싹이라, 새싹이 자라고 열매를 맺아서 여무는 때에 다시 알맹이인 인(仁)이 생겨서 천성(天性)이 되는 것이니, 이가 곧 선(善)이 계생(繼生)하여 여문 것이 천성(天性)이라 함이오 만일 새싹이 계생(繼生)하더라도 그것이 여물지 못하면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가 되어 생생(生生)이 끊어지는 것이니, 이것은 천성(天性)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천성(天性)은 반드시 선(善)하여 새싹이 계생(繼生)하는 것이므로 천성(天性)을 선(善)하다고 하는 것이오 사람이 만일(萬一) 육체(肉體)를 기르기에만 힘쓰고 불선(不善)을 행(行)하면 불선(不善)은 쭉정이의 상(象)으로서 알맹이가 없는 것이므로 그것은 천성(天性)을 이루지 못하고 본능생활(本能生活)만을 하는 동물성(動物性)이 되고 마는 것이다.
초목(草木)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화(花)이오 화(花)에는 색(色)과 향(香)과 밀(蜜)이 있는데, 색(色)은 광(光)이오 광(光)은 목(目)에 속(屬)하여 이괘(離卦)의 상(象)이 되고 향(香)은 취(臭)이오 취(臭)는 비(鼻)에 속(屬)하여 손괘(巽卦)의 상(象)이 되고 밀(蜜)은 미(味)이오 미(味)는 구(口)에 속(屬)하여 태괘(兌卦)의 상(象)이 되니 화(花)의 아름다운 것은 이 삼음괘(三陰卦)의 상(象)을 인(因)함이오 인체(人體)의 육체미肉體美가 주(主)로 면상(面上)에 있는 것은 면상(面上)에 목비구(目鼻口)의 삼음괘(三陰卦)의 화상(花象)이 있는 까닭이다. 화(花)는 삼음괘(三陰卦)의 형질(形質)로써 조직(組織)된 까닭에 그 아름다움이 외형(外形)에 나타나고 있으나 화(花)의 형질(形質)은 오래 지속(持續)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노쇄(老衰)하여 떨어지는 것이며, 화(花)에 열매가 맺힌 연후(然後)에 그 열매의 미(美)가 새로 나타나서 그것이 영원(永遠)히 계속(繼承)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화(花)의 참다운 아름다움은 화(花)의 형질(形質)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화(花)의 속에서 열매가 맺혀서 여무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 이(理)에 의(依)하여 사람도 그 형질(形質)은 백년인생(百年人生)으로 되어 있으되 그 천성(天性)이 여문 것은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하여 영원(永遠)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이니, 형질(形質)이 비록 아름답다 하더라도 천성(天性)이 여물지 못하면 결국(結局) 쭉정이의 인간(人間)이 되고마는 것이다. 천성(天性)의 조직(組織)은 씨와 같으므로 또한 씨와 같이 생(生)하고 자라고 여물고 하는 생장성(生長成)의 작용(作用)이 있는 것이오, 씨는 수화(水火)로써 체(體)를 삼고 있는데, 수화(水火)의 정(精)은 기(氣)와 형(形)의 중간성(中間性)으로 되어 유형(有形)도 되고 무형(無形)도 되고하여 만물(萬物)의 체내(體內)를 유행(流行)하면서 변화무상(變化無常)한 취산작용(聚散作用)을 행(行)하고, 만물(萬物)의 체(體)는 정기(精氣)가 취(聚)하면 생(生)하고 정기(精氣)가 산(散)하면 사(死)하는 것이므로 만물(萬物)의 생장성(生長成)의 변화(變化)는 모두 만물(萬物)의 체내(體內)를 유행(流行)하고 있는 수화(水火)의 취산작용(聚散作用)에 의(依)하여 행(行)하는 것이며 천성(天性)도 씨와 같이 수화(水火)로써 체(體)를 삼고 있으므로 또한 생장성(生長成)의 운동(運動)이 있어 인(仁)에서 선(善)이 계생(繼生)하여 여문 연후(然後)에 천성(天性)이 되는 것이다. 씨의 생장성(生長成)하는 과정(過程)에는 나무에 수액(水液)이 오르고 내리고 지엽(枝葉)이 생(生)하고 마르고 하는 변화(變化)가 있으므로 천성(天性)의 생성(生成)하는 과정(過程)에도 또한 이러한 변화(變化)가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건도(乾道)의 약진변화(躍進變化)하는 이(理)로써 보면, 천성(天性)이 자라는 것은 사람의 정신생활(精神生活)의 약진(躍進)이오 천성(天性)의 여무는 것은 사람의 정신생활(精神生活)의 변화(變化)이라, 사람의 일생중(一生中)에 한번은 정신생활(精神生活)의 약진(躍進)이 있은 연후(然後)에 천성(天性)이 자라는 것이오, 사람의 일생중(一生中)에 한번은 정신생활(精神生活)의 변화(變化)가 있은 연후(然後)에 천성(天性)이 여무는 것이니, 이는 자라는 때에는 반드시 하단(下段)에서 상단(上段)으로 뛰어 올라가는 약진(躍進)이 있고 여무는 때에는 반드시 외향(外向)이 내향(內向)으로 되어 광명(光明)을 갈무리하는 변화(變化)가 있고 한 까닭이다.


■ 관찰(觀察) 사려(思慮) 판단(判斷) 기억등(記憶等) 작용(作用)천성(天性)은 무형(無形)하여 방소(方所)도 없고 형체(形體)도 없고 한 까닭에 능(能)히 무한(無限)한 공간(空間)을 주행(周行)하면서 만사만물(萬事萬物)을 접응(接應)하고 또 능(能)히 무궁(無窮)한 시간(時間)의 과거(過去)와 미래(未來)를 추상(推想)하고하여 모든 계획(計劃)을 세워서 그 생생(生生)을 영위(營爲)하고 있는 것이며, 만일 천성(天性)이 형체(形體)가 있다고 하면 이것은 일편(一偏)의 기관(器官)으로 국한(局限)되어 그 기관(器官)의 맡은 바의 임무이외(任務以外)에는 전(全)혀 접응(接應)치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천성(天性)은 형이상(形而上)한 도(道)에서 계생(繼生)하여 상(上)에 형(形)하고 있으므로 비록 무형(無形)하되 그 기(氣)가 반드시 어떠한 형태(形態)를 이루고 있는 것이며, 그 형태(形態)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면, 천성(天性)은 수화(水火)로써 체(體)를 삼고 또 천성(天性)과 형질(形質)은 하나는 형이상(形而上)하고 하나는 형이하(形而下)하여 이원운행(二元運行)의 이(理)가 있으므로 천성(天性)은 이 이(理)에 의(依)하여 마치 화(火)가 물체(物體)의 정상(頂上)에 의부(依附)하여 화염체(火炎體)를 이루고 광(光)을 발(發)하고 있음과 같이 천성(天性)의 화기(火氣)가 수정(水精)에 위부(依附)하여 무형(無形)한 화염형태(火炎形態)로 되어 유형(有形)한 육체(肉體)의 두뇌(頭腦)에 의부(依附)하여 양광(陽光)을 발(發)하고 있는 것이니, 이는 천성(天性)은 인신중(人身中)의 음중(陰中)의 양(陽)이오 사람의 두뇌(頭腦)가 또한 인신(人身)의 양기(陽氣)의 총회처(總會處)로서 음중(陰中)의 양(陽)이 되어, 천성(天性)의 양기(陽氣)와 두뇌(頭腦)의 양기(陽氣)가 동일신(同一身)의 동일양기(同一陽氣)이므로 천성(天性)은 화염체(火炎體)의 형태(形態)로써 인신(人身) 최상부(最上部)인 두뇌(頭腦)에 의부(依附)하여 천(天)을 향(向)하고 있는 것이며, 천성(天性)의 화염체(火炎體)가 천(天)을 향(向)하고 있으므로 사람의 육체(肉體)가 또한 천(天)을 향(向)하여 직립(直立)하고 있는 것이다.
천성(天性)은 수화(水火)로써 체(體)를 삼고 있는데 수(水)는 투명(透明)하고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여 수동적(受動的)으로 물(物)을 영사(映寫)하는 작용(作用)이 있고, 화(火)는 광명(光明)하고 발현작용(發顯作用)을 행(行)하여 능동적(能動的)으로 물(物)을 조사(照射)하는 작용(作用)이 있는지라, 천성(天性)의 광명(光明)은 화(火)의 조사작용(照射作用)으로써 모든 사물(事物)의 상(相)을 관조(觀照)하고 천성(天性)의 투명(透明)은 수(水)의 영사작용(映寫作用)으로써 광명(光明)의 관조(觀照)한 사물(事物)의 상(相)을 사래(寫來)하여 한 도상(圖像)을 이루니 이 도상(圖像)에는 만사만물(萬事萬物)의 형태(形態), 사물상호(事物相互)의 관계(關係), 생성소장(生成消長)하는 동태등(動態等) 그 생생(生生)하는 온갖 모양이 여실(如實)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천성(天性)이 그 광명(光明)으로써 이 도상(圖像)을 살펴보는 것은 관찰(觀察)이 되는 것이오, 도상(圖像)의 모든 사물(事物)을 관찰(觀察)하여 그 이해득실(利害得失)을 밝히는 것은 사려(思慮)가 되는 것이오, 이 관찰(觀察)과 사려(思慮)를 통(通)하여 생생(生生)의 최선(最善)한 길을 택(擇)하는 것은 판단(判斷)이 되는 것이오, 관찰(觀察) 사려(思慮) 판단(判斷)한 것과 경험(經驗) 학문(學問)한 것등(等)을 이 도상(圖像)속에 수장(收藏)하는 것은 기억(記憶)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이(耳)의 총(聰)은 수(水)의 투명작용(透明作用)에서 생(生)하고 목(目)의 명(明)은 화(火)의 광명작용(光明作用)에서 생(生)하는 것인데, 천성(天性)의 조사영사작용(照射映寫作用)도 수화(水火)의 광명투명(光明透明)에서 생(生)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천성(天性)의 총명(聰明)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관찰(觀察) 사려(思慮) 판단(判斷 )기억등(記憶等) 작용(作用)은 모두 천성(天性)의 총명(聰明)에서 생(生)하는 것이다.


■ 기도(祈禱)의 원리(原理)수화(水火)에는 또 승강작용(升降作用)이 있으므로 만물(萬物)의 기(氣)가 상하(上下)로 승강작용(升降作用)을 행(行)함에는 반드시 수화(水火)의 기(氣)를 쓰는 것이오, 만물(萬物)의 생식작용(生殖作用)에 양체(陽體)의 정(精)이 음체(陰體)로 넘어갈 때에도 반드시 수화(水火)의 승강작용(升降作用)이 생(生)하여 양체(兩體)의 공간(空間)을 비월(飛越)하는 것이니, 이것을「수화통명(水火通明)이룬 곳에 절처봉생(絶處逢生)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천지간(天地間)에는 태양(太陽)의 화정(火精)속에 수(水)가 있고 달의 수정(水精)속에 화(火)가 있어 일월(日月)의 수화(水火)가 부단(不斷)히 대공간(大空間)의 상하(上下)를 승강(升降)하면서 천지(天地)의 기(氣)를 상통(相通)하는 것이다. 사람의 천성(天性)도 수화(水火)로써 체(體)를 삼고 있으므로 천(天)과 사람과의 사이에 수화(水火)가 승강(升降)하여 기(氣)가 상통(相通)하고 있는 것이며, 천(天)과 사람과의 기(氣)가 상통(相通)하고 있으므로 사람이 천(天)에 기도(祈禱)를 올리는 때에 그 기도(祈禱)가 천(天)에 통(通)하고 천(天)이 사람에게 영감(靈感)의 기(氣)를 내리는 때에 그 영감(靈感)이 또한 통(通)하는 것이니, 이가 기도(祈禱)의 원리(原理)이다. 정괘(鼎卦)에「성인(聖人)이 팽(烹)하여 써 상제(上帝)를 향(享)하시면 대팽(大烹)하여 성현(聖賢)을 양(養)하신다」하니, 이는 성인(聖人)이 수화(水火)를 팽(烹)하여 그 기(氣)를 신(神)에게 올리시면 신(神)은 그것을 받으시고 대수화(大水火)의 기(氣)를 팽(烹)하여 사람에게 내리어 써 성현(聖賢)을 양(養)하신다는 뜻으로서 수화(水火)의 승강작용(升降作用)에 의(依)하여 천인간(天人間)에 기도(祈禱)와 영감(靈感)의 상통(相通)하는 이(理)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천성(天性)은 수화(水火)로써 구성(構成)되어 천(天)으로 더불어 기(氣)의 승강작용(升降作用)을 행(行)하고 있으므로 천성(天性)이 선(善)하여 사람을 위(爲)하는 일을 하면 천(天)이 그 기(氣)를 받고 그 사람에게 선(善)을 내려서 선(善)이 싸이며 천성(天性)이 불선(不善)하여 사람을 해(害)하는 일을 하면 천(天)이 그 기(氣)를 받고 그 사람에게 불선(不善)을 내려서 불선(不善)이 싸이는 것이니, 이는 일상생활(日常生活)하는 중(中)에 천(天)과 사람과의 수화(水火)가 상통(相通)하는 이(理)이오 기도(祈禱)라는 것은 특(特)히 발원(發願)하는 일이 있는 때에 성(誠)을 표시(表示)하는 행동(行動)이며, 기도(祈禱)하는 때에 수화(水火)를 팽(烹)치 아니하더라도 성(誠)만 있으면 천성(天性)의 수화(水火)가 능(能)히 승강작용(升降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第二節   심정(心情)의 조직(組織)
■ 심정(心情)은 천성(天性)에서 발(發)한다인신(人身)은 정(精)과 기(氣)로써 구성(構成)된 것이오 정(精)의 속에도 다시 정(精)과 기(氣)가 있고 기(氣)의 속에도 다시 정(精)과 기(氣)가 있는 것이므로 형이상(形而上)한 천성(天性)의 속에도 또한 정(精)과 기(氣)의 작용(作用)이 있어, 기(氣)의 작용(作用)은 심(心)이 되고 정(精)의 작용(作用)은 정(情)이 되니, 심(心)과 정(情)은 이성(理性)과 감정(感情)과의 관계(關係)와 같은 것으로서 천성(天性)은 사람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반드시 발생(發生)치 아니할 수 없는 정신작용(精神作用)이다. 심(心)이라 함은 사람이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천성(天性)의 광(光)이 발(發)하여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을 비추어 만사만물(萬事萬物)을 접응(接應)하는 광명(光明)이니, 그러므로 복괘(復卦)에는 천행(天行)하는 일양(一陽)의 광명(光明)이 음체중(陰體中)을 출입(出入)하여 광명(光明)을 비추는 것을「천지지심(天地之心)」이라 한 것이오 정(情)이라 함은 개체(個體)의 형질(形質)이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천성(天性)의 생기(生氣)가 동(動)하여 스스로 발(發)하고 있는 본능(本能)이니, 그러므로 역괘(易卦)에는 씨의 구성요소(構成要素)인 진자(震子)와 태택(兌澤)이 생물(生物)의 본능(本能)을 발(發)하는 것을「천지만물지정(天地萬物之情)」이라 한 것이다.
천성(天性)에서 심(心)과 정(情)의 작용(作用)이 생(生)하는 것은 천지간(天地間)에서 태양(太陽)과 달의 운행(運行)하고 있는 이(理)에 의(依)한 것이니, 천성(天性)은 일월광명(日月光明)의 상(象)이오 심(心)은 일월광명(日月光明)의 운행(運行)하는 상(象)이오 정(情)은 일월(日月)의 진자(震子)와 태택(兌澤)의 상(象)이며, 이는 사람이 천지간(天地間)의 일월(日月)에서 출생(出生)한 까닭에 천성(天性)과 심정(心情)에 일월(日月)의 상(象)이 있는 것이다. 천성(天性)이 일월광명(日月光明)의 상(象)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일월(日月)의 광명(光明)은 천지(天地)를 범위(範圍)하여 그 형(形)이 원(圓)하고 공간(空間)을 통(統)하여 그 기(氣)가 심(深)하고 수화(水火)의 정(精)을 체(體)로 하여 그 광(光)이 수통화명(水通火明)하니, 이는 일월(日月)의 광명(光明)이 원심통명(圓深通明)하여 천지간(天地間)을 무한무궁(無限無窮)히 조명(照明)하는 것이오 사람의 천성(天性)은 순(純) 수(粹) 정(精)하니 순(純)은 포전(包全)한 것으로서 원(圓)의 상(象)이 되고 수(粹)는 취일(聚一)한 것으로서 심(深)의 상(象)이 되고 정(精)은 수화(水火)의 정(精)으로서 통명(通明)의 상(象)이 되어 순(純) 수(粹) 정(精)이 또한 원심(圓深通明)의 상(象)이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사람의 천성(天性)이 또한 원심통명(圓深通明)하여 만사만물(萬事萬物)을 주행(周行)하여 접응(接應)하니, 이 까닭에 천성(天性)은 일월광명(日月光明)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원래(元來) 사람의 천성(天性)은 신(神)에게서 품수(稟受)한 것인데 천성(天性)이 또한 일월광명(日月光明)의 상(象)이 된다 함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신(神)이라 함은 천지(天地)의 광명(光明)이 만물(萬物)을 생(生)한다는 뜻으로서 신(神)의 작용(作用)이 곧 광명(光明)이므로 천성(天性)은 신(神)에게서 품수(稟受)하고 일월광명(日月光明)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심(心)이 일월광명(日月光明)의 운행(運行)하는 상(象)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만물(萬物)은 일월광명(日月光明)의 운행(運行)에 의(依)하여 생생(生生)하고 사람의 심(心)은 사물(事物)을 조명(照明)하여 사람의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니 복괘(復卦)의 천지지심(天地之心)은 달의 광명(光明)이 음질중(陰質中)을 출입(出入)하면서 조명(照明)한다는 뜻으로 되는 것이며, 이 까닭에 심(心)은 일월광명(日月光明)의 운행(運行)하는 상(象)이 되는 것이다.
정(情)이 일월(日月)의 진자(震子) 태정(兌精)의 상(象)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일월(日月)의 진자(震子)와 태택(兌澤)이 합(合)하여 만물(萬物)의 형질(形質)을 생(生)하고 사람의 정(情)은 자체형체(自體形體)의 자람을 위(爲)하여 발동(發動)하니, 이 까닭에 정(情)은 일월(日月)의 진자(震子) 태택(兌澤)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 심(心)의 체(體)는 인례의지(仁禮義知)천성(天性)은 일월광명(日月光明)의 상(象)이 되는데, 천지(天地)에는 일월(日月)의 운행(運行)에 의(依)하여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시(四時)가 생(生)하고 그것이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사도(四道)가 되는 것이므로 천성(天性)에도 또한 사도(四道)의 상(象)과 같은 인례의지(仁禮義知)의 사덕(四德)이 있으며, 덕(德)은 심(心)의 체(體)이므로 사덕(四德)의 발용(發用)하는 것이 심(心)으로 되는 것이다. 역학(易學)의 원형이정(元亨利貞)에는 인례의간(仁禮義幹)의 상(象)을 말하고 지(知)를 말하지 아니하였는데, 계사(繫辭)에는 인성(人性)에 인지(仁知) 또는 예지(禮知)를 말하니, 이는 사도중(四道中)의 간(幹)이 곧 사덕중(四德中)의 지(知)가 된다 함이며, 사도중(四道中)의 정(貞)은 변통(變通)의 간(幹)이 되고 사덕중(四德中)의 지(知)는 심(心)의 발생(發生)하는 원(源)이 되고 있으므로 사도중(四道中)의 정(貞)을 그 형태(形態)로써 보면 간(幹)이 되고 그 작용(作用)으로써 보면 지(知)가 되는 것이다. 사시(四時)의 운행(運行)이라 함은 춘(春)에 생(生)하고 하(夏)에 자라고 추(秋)에 여물고 동(冬)에 갈무리하고 하는 생장성장(生長成藏)의 상(象)을 말함이오 사덕(四德)이라 함은 춘(春)에 생(生)한 것은 원(元)으로서 인(仁)의 상(象)이 되고, 하(夏)에 자라는 것은 형(亨)으로서 예(禮)의 상(象)이 되고, 추(秋)에 여무는 것은 이(利)로서 의(義)의 상(象)이 되고, 동(冬)에 갈무리하는 것은 정(貞)으로서 사(事)의 간(幹)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인(仁)이라 함은 내(內)로부터 외(外)에 현(顯)하여 선(善)의 생(生)하는 상(象)이니, 천성(天性)에 이러한 작용(作用)이 있는 것을 인(仁)이라 하는 것이오, 예(禮)라 함은 물(物)이 중회(衆會)하여 질서(秩序)가 바르고 아름답게 자라는 상(象)이니, 천성(天性)에 이러한 작용(作用)이 있는 것을 예(禮)라 하는 것이오, 의(義)라함은 물(物)이 다 자라서 양기(陽氣)가 내부(內部)에 들어가고 모든 대대(對待)가 조화(調和)되어 여무는 상(象)이니, 천성(天性)에 이러한 작용(作用)이 있는 것을 의(義)라 하는 것이오, 지(知)라 함은 양기(陽氣)가 내부(內部)에 갈무리하여 외면(外面)은 어두우되 내부(內部)가 광명(光明)하여 인(仁)의 발생(發生)하는 원(源)이 되는 상(象)이니, 천성(天性)에 이러한 작용(作用)이 있는 것을지(知)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시(四時)에는 역학(易學)의 현장원리(顯藏原理)로 되어 있는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이(理)가 있어, 춘(春)의 생(生)하는 것이 발전(發展)하여 하(夏)의 자라는 것이 되고 하(夏)의 자라는 것이 발전(發展)하여 추(秋)의 여무는 것이 되니, 생(生)하고 자라고 여물고하는 세 가지는 물(物)의 형현(形現)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삼현(三顯)이라 하고 동(冬)은 물(物)의 갈무리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일장(一藏)이라 하는 것이다. 사덕(四德)에도 또한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상(象)이 있으니, 인(仁)이 발전(發展)하여 예(禮)가되고 예(禮)가 발전(發展)하여 의(義)가되어, 인례의(仁禮義)의 삼덕(三德)은 모두 행동(行動)의 형현(形現)한 것이므로 삼현(三顯)이 되는 것이오 지(知)는 내부(內部)에 심장(深藏)되어 외면(外面)에 나타나지 아니하되 인간(人間)의 모든 행동계획(行動計劃)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일장(一藏)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덕(四德)은 춘현동장(春顯冬藏)의 상(象)으로써 보면 인(仁)과 지(知)가되고 천시지육(天施地育)의 상(象)으로써 보면 인(仁)과 예(禮)가되고 춘생추성(春生秋成)의 상(象)으로써 보면 인(仁)과 의(義)가되고 하장추수(夏長秋收)의 상(象)으로써 보면 예(禮)와 의(義)가 되는 것이다.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이(理)는 물(物)의 생장성장(生長成藏)하는 원리(原理)로 되어 현용(現用)치 아니하는 일장(一藏)이 생명(生命)의 원(源)을 축양(畜養)하여 가장 대용(大用)하는 고장(庫藏)의 임무(任務)를 다하는 것이니, 사람은 천성(天性)이 광명(光明)하고 심(心)의 관명(光明)이 만사만물(萬事萬物)에 운행(運行)하여 능(能)히 유심(幽深)을 통찰(洞察)하고 미래(未來)를 선견(先見)하고 하는 일장(一藏)의 지(知)가 있은 연후(然後)에 인(仁)이 생(生)하여 삼현(三顯)하는 인례의(仁禮義)로 되어 천성(天性)이 여무는 것이다.


註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이(理)삼현일장(三顯一藏)에 대(對)한 원리(原理)는 소강절(邵康節)의 학설(學說)에서 취(取)하고 소강절(邵康節)의 학설(學說)은 팔괘(八卦)의 반역(反易)의 상(象)에서 나온 것이다.
팔괘(八卦中)에서 건곤감리(乾坤坎離) 사괘(四卦)는 반역(反易)이 없으므로 원수(原數)대로 사(四)가 되고 진(震)과 간(艮)은 반역(反易)하여 양상일괘(兩象一卦)가 되므로 일(一)이 되고 손(巽)과 태(兌)는 반역(反易)하여 양상일괘(兩象一卦)가 되므로 일(一)이 되어, 모두 (合)하여 육(六)이 되니, 체(體)가 팔(八)이오 용(用)이 육(六)이라, 팔수중(八數中)에서 육(六)이 용(用)하고 이(二)가 불용(不用)하며 육(六)과 이(二)는 삼(三)과 일(一)의 (比)가 되니 삼용일불용(三用一不用)이 곧 삼현일장(三顯一藏)이다. 천(天)의 사시(四時)에 동(冬)이 퇴장(退藏)하여 귀로(歸勞)하고 지(地)의 사방(四方)에 극지(極地)가 빙결(氷結)하여 만물(萬物)이 생육(生育)치 못하고 인신(人身)에 상하전후(上下前後)가 있는데 상하전(上下前)이 모두 홀로 운동(運動)하고 있으되 오직 배(背)는 홀로 운동(運動)치 못하니 이가 모두 삼현일장(三顯一藏)이다. 그러나 이 일장부(一藏部)는 모두 고장(庫藏)의 역(役)을 행(行)하고 있으니, 동(冬)은 명춘(明春)의 생육작용(生育作用)에 대대(對待)하여 태화(太和)한 기(氣)를 보합(保合)하는 고장(庫藏)이오 대지(大地)의 극지(極地)는 지력(地力)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을 위(爲)하여 지축(地軸)의 극(極)에 정기(精氣)를 축적(蓄積)하는 고장(庫藏)이오 배(背)는 장부(臟腑)의 주요기관(主要器官)의 계속(係屬)하는 본거(本據)가 되어 일신(一身)의 생리(生理)를 주관(主管)하는 고장(庫藏)이다. 사람의 일일중(一日中)의 동작(動作)과 수면(睡眠)같은 것도 대체로 사분지삼(四分之三)을 동작(動作)하고 사분지일(四分之一)을 수면(睡眠)하여 정기(精氣)를 축양(蓄養)하여 다음날의 활동(活動)에 대비(對備)하고 정력(精力)의 사용(使用)같은 것도 또한 사분지일정도(四分之一程度)의 여축(餘蓄)을 두지 아니하면 체력(用力)이 과도(過度)하여 심대(甚大)한 피로(疲勞)를 느끼는 것이니, 이가 모두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이(理)이다. 물(物)의 생생(生生)에 일장(一藏)의 고장(庫藏)이 없으면 사물(事物)의 종(終)하는 때에 본원(本源)이 고갈(枯渴)하여 다시 시(始)치 못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심(心)에는 지(知)가 일장(一藏)의 고장(庫藏)이 되는 것이다.


■ 생육(生育) 생식(生殖) 장수(長壽)의 삼정(三情)은 만물(萬物)의 본능(本能)정(情)은 일월(日月)의 진자(震子) 태택(兌澤)의 상(象)이 되는데, 천지(天地)에는 천풍산지(天風山地)의 공간(空間)의 사층질서(四層秩序)가 있으니, 천풍산지(天風山地)라 함은 천지간(天地間)에는 상(上)에 천(天)이 있고 하(下)에 지(地)가 있고 천기(天氣)의 하강(下降)한 것은 풍(風)이 되고 지기(地氣)의 상승(上升)한 것은 산(山)이 되어, 공간(空間)의 상하질서(上下秩序)는 천풍산지(天風山地)의 사층(四層)으로 되어있다 함이다. 이 공간(空間)의 사이를 태양(太陽)의 진자(震子)와 달의 태택(兌澤)이 운행(運行)하여 천풍(天風)의 상층(上層)에는 진자(震子)가 행(行)하고 산지(山地)의 하층(下層)에는 태택(兌澤)이 행(行)하여 정대(正大) 항구(恒久) 감응(感應) 췌취(萃聚)의 사정(四情)이 된 것이다.

註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情)천지(天地)의 정위(定位)한 천지비괘(天地否卦)의 본괘(本卦)와 호괘(互卦)가 바로 천풍산지(天風山地)의 질서(秩序)로 되는 것이다. 천(天)은 상(上)에 있고 풍(風)은 천기(天氣)의 하강(下降)한 것이므로 천풍(天風)은 상(上)에 속(屬)하며 지(地)는 하(下)에 있고 산(山)은 지기(地氣)의 상행(上行)한 것이므로 산지(山地)는 하(下)에 속(屬)한다. 만물(萬物)의 씨의 기본조직(基本組織)은 진자(震子)와 태택(兌澤)인데 진자(震子)는 기(氣)이오 태택(兌澤)은 형(形)이라 그러므로 천풍(天風)의 상층(上層)에는 기(氣)의 상(象)인 뇌(雷)가 행(行)하여 뇌(雷)와 천(天)이 합(合)한 뇌천대장괘(雷天大壯卦)는 천지(天地)의 정대(正大)의 정(情)이 되고, 뇌(雷)와 풍(風)이 합(合)한 뇌풍항괘(雷風恒卦)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의 항구(恒久)의 정(情)이 된 것이며, 산지(山地)의 하층(下層)에는 형(形)의 상(象)인 택(澤)이 행(行)하여 택(澤)과 산(山)이 합(合)한 택산함괘(澤山咸卦)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의 감응(感應)의 정(情)이 되고 택(澤)과 지(地)가 합(合)한 택지췌괘(澤地萃卦)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췌취(萃聚)의 정(情)이 된 것이다.
천지(天地)는 일월(日月)의 상교(相交)에 의(依)하여 진자(震子)와 태택(兌澤)으로써 물(物)을 작성(作成)하는 것이므로 천풍(天風)의 진자(震子)와 산지(山地)의 태택(兌澤)에 물(物)의 생생(生生)하는 본능(本能)인 정대(正大) 항구(恒久) 감응(感應) 췌취(萃聚)의 사정(四情)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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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취(萃聚)의 정(情)이라 함은 지(地)가 태택(兌澤)을 합(合)한 택지(澤地)의 상(象)으로서 모체(母體)가 음자(陰子)를 포(包)하고 음자(陰子)가 형질(形質)을 취(聚)하여 생육(生育)하는 것이 곧 췌취(萃聚)의 정(情)이며, 만물(萬物)은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스스로 형질(形質)을 취합(聚合)하여 생육(生育)치 아니할 수가 없으므로 췌취(萃聚)의 정(情)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본능(本能)이 되는 것이다. 택지(澤地)는 천지질서(天地秩序)의 최저위(最低位)에 있어 형질(形質)을 취응(聚凝)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므로 모든 생물(生物)에 있어서는 영양(營養)을 취(聚)하여 형질(形質)을 생육(生育)하는 생육본능(生育本能)이 되니, 생육본능(生育本能)은 모든 생물(生物)이 그 체(體)를 유지(維持)하기 위(爲)한 가장 기본(基本)되는 정(情)이다.
감응(感應)의 정(情)이라 함은 지세(地勢)가 상승(上升)하여 태택(兌澤)을 합(合)한 택산(澤山)의 상(象)으로서 산택(山澤)이 통기(通氣)하여 남녀(男女)의 이기(二氣)가 상감(相感)하여 생식작용(生殖作用)을 행(行)하는 것이 곧 감응(感應)의 정(情)이며, 만물(萬物)은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스스로 생식작용(生殖作用)을 행(行)치 아니할 수가 없으므로 감응(感應)의 정(情)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본능(本能)이 되는 것이다. 택산(澤山)은 모든 생물(生物)에 있어서는 자손(子孫)을 번식(繁殖)하는 생식본능(生殖本能)이 되니, 생식본능(生殖本能)은 비록 생육본능(生育本能)과 같이 형질(形質)의 욕구(欲求)에 의(依)한 것이로되 산(山)의 일양(一陽)이 상(上)으로 천(天)을 접(接)하여 광명(光明)을 받고 있으므로 심(心)이 감(感)치 아니하면 남녀간(男女間)의 정(情)이 동(動)치 아니하는 것이니, 이는 심(心)이 일월광명(日月光明)의 운행(運行)하는 상(象)이 되는 까닭이다.
항구(恒久)의 정(情)이라 함은 천기(天氣)가 하강(下降)하여 진자(震子)를 합(合)한 뇌풍(雷風)의 상(象)으로서 뇌풍(雷風)이 상여(相與)하여 천행건(天行健)한 양자(陽子)가되고 양자(陽子)의 세세계승(世世繼承)하는 것이 곧 항구(恒久)의 정(情)이며, 만물(萬物)은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스스로 항구(恒久)히 계승(繼承)치 아니할 수가 없으므로 항구(恒久)의 정(情)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본능(本能)이 되는 것이다. 뇌풍(雷風)은 천기(天氣)가 지(地)에 접(接)하는 위(位)에 있고 기(氣)는 영구계속(永久繼續)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므로 모든 생물(生物)에 있어서는 생명(生命)을 영구(永久)히 계속(繼續)하려는 장수본능(長壽本能)이 되니, 장수본능(長壽本能)은 음식(飮食)을 취(取)하고 기(氣)를 호흡(呼吸)하여 형질(形質)을 보강(補强)함에 힘쓰고 있는 것이나, 지(地)에 접(接)한 형질(形質)에는 사생(死生)이 있고 뇌풍(雷風)의 기(氣)는 항구(恒久)하여 신작용(神作用)이 행(行)하고 있으므로 사람의 장수(長壽)는 음식(飮食) 호흡(呼吸)만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오 거기에는 신작용(神作用)의 힘이 가장 큰 것이다.
정대(正大)의 정(情)이라 함은 정(正)은 완전(完全)하고 편(偏)치 아니하다 함이오 대(大)는 비유(備有)하고 국(局)치 아니하다 함이니, 천(天)이 생명(生命)의 계승작용(繼承作用)을 행(行)하는 진자(震子)를 합(合)한 뇌천(雷天)의 상(象)으로서 만물(萬物)의 씨를 보유(保有)하는 원(源)이 되는 것이 곧 정대(正大)의 정(情)이며, 천(天)은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스스로 만물(萬物)의 씨를 생(生)치 아니할 수가 없으므로 정대(正大)의 정(情)은 천지(天地)의 본능(本能)이 되는 것이오 뇌천(雷天)은 대(大)한 자(者)가 장(壯)한 것으로서 대재건원(大哉乾元)의 여무는 상(象)이므로 만물(萬物)의 씨를 보합(保合)하는 이(理)가 있는 것이다. 만물(萬物)은 각기(各其) 자체(自體)의 씨만을 보유(保有)하여 개체(個體)의 정(情)만이 있는데 천지(天地)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유기적(有機的)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이므로 천지(天地)에는 만물(萬物)의 씨가 전부(全部) 보유(保有)되어 통체(統體)의 정(情)이 있으니, 그러므로 정대(正大)한 통체(統體)의 정(情)은 천지(天地)에만 있고 만물(萬物)에는 없으며, 이가 만물(萬物)이 모두 천(天)에서 생(生)한 소이(所以)이다.
천성(天性)의 사덕(四德)에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이(理)가 있으므로 사정(四正)에 또한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이(理)가 있으니 췌취(萃聚) 감응(感應) 항구(恒久)의 삼정(三情)은 천지(天地)에도 있고 만물(萬物)에도 있어 외면(外面)에 형현(形現)한 것이므로 이는 삼현(三顯)의 상(象)이 되는 것이오 정대(正大)의 정(情)은 천(天)에 갈무리하여 외현(外現)치 아니하는 것이므로 이는 일장(一藏)이 되는 것이니, 천(天)에 만물(萬物)의 씨를 보유(保有)하는 일장(一藏)의 정(情)은 만물(萬物)의 삼현(三顯)하는 정(情)의 발원(發源)이 되는 것이다.


■ 심(心)과 정(情)의 조화(調和)사람의 본능(本能)은 개체형질(個體形質)의 생생(生生)에서 생(生)하는 것이므로 본능생활(本能生活)은 개체(個體)를 중심(中心)으로하여 행(行)하고 개체이외(個體以外)의 사회생활(社會生活)에는 어두운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천성(天性)에는 심(心)과 정(情)의 양면(兩面)이 있어 심(心)의 광명(光明)은 이성(理性)이 되어 만인공공(萬人公共)의 사회생활(社會生活)을 영위(營爲)하고, 정(情)의 본능(本能)은 감정(感情)이 되어 개성특수(個性特殊)의 개체생활(個體生活)을 영위(營爲)하여 양자(兩者)가 서로 조화(調和)하는 것이다. 정(情)의 본능(本能)이 억세면 심(心)의 광명(光明)이 어둡고 심(心)의 광명(光明)이 밝으면 정(情)의 본능(本能)이 화(和)하는 것이니 심(心)은 광명(光明)함을 주(主)하고 정(情)은 기화(氣和)함을 주(主)하는 것이다. 심(心)과 정(情)에는 또한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의 상(象)이 있으니, 심(心)은 인례의지(仁禮義知) 사덕(四德)의 발용(發用)하는 것으로서 사시유행(四時流行)의 상(象)이 되니, 사시(四時)는 시간(時間)이오 정(情)은 췌취(萃聚) 감응(感應) 항구(恒久) 삼정(三情)의 작용(作用)으로서 천지(天地)의 상하질서(上下秩序)의 상(象)이 되니, 천지(天地)의 상하(上下)는 공간(空間)이다. 시간(時間)은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를 총칭(統稱)함이오 인례의지(仁禮義知)는 사람의 마땅히 행(行)하는 도덕(道德)인데 사람은 심(心)의 광명(光明)으로써 과거(過去)를 돌아보고 현재(現在)를 살피고 미래(未來)를 내다보아 도덕(道德)에 합(合)하는 생활(生活)을 하는 것이 곧 사시유행(四時流行)하는 시간(時間)의 이(理)에 맞는 것이다. 공간(空間)은 우리 눈앞에 보이는 현실(現實)이오 삼정(三情)은 본능(本能)으로서 그때그때의 현실(現實)에 응(應)하여 발로(發露)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은 정(情)이 승(勝)하여 공간(空間)의 현실(現實)만을 보고 시간(時間)의 과거(過去)와 미래(未來)를 보지 못하면 심(心)의 광명(光明)이 어두워져서 동물생활(動物生活)에 타락(墮落)하는 것이오 이는 동물(動物)은 전(專)혀 현실생활(現實生活)과 본능생활(本能生活)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第三章   신(神)과 인간(人間)
第一節   인간(人間)은 신(神)의 창조(創造)
■ 신(神)의 존재(存在)하는 원리(原理)천지간(天地間)의 모든 생물(生物)은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한 형질(形質)이 생(生)하는데, 유형(有形)한 형질(形質)에는 생(生)하고 멸(滅)함이 있으되 그 생멸(生滅)의 속에는 또한 생멸(生滅)의 없는 장존(長存)하는 것이 있으니, 초목(草木)의 예(例)로써 보면 씨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열매가 맺히고 하면 싹이나 줄기나 열매는 생멸(生滅)이 있으되 그 씨의 속에 있는 세세계승(世世繼承)하는 작용(作用)은 영원(永遠)히 멸(滅)치 아니하여, 지금의 초목(草木)의 씨는 몇 억천만년(億千萬年) 전(前)의 우주창생시(宇宙創生時)에 발생(發生)한 씨가 전래(傳來)한 것이니, 이 형질(形質)의 생(生)하고 멸(滅)하고 하는 것은 생명(生命)의 작용(作用)이오 영원(永遠)히 멸(滅)치 아니하는 것은 신(神)의 작용(作用)이다. 이제 이 우주간(宇宙間)에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고 있는 신(神)의 계시다는 것을 역리(易理)로써 보건대
첫째로 사람은 천지(天地)의 자연법칙(自然法則)속에서 출생(出生)하여 건곤생명원(乾坤生命元) 뇌풍(雷風)의기(氣) 수화(水火)의정(精)으로써 구성(構成)되고, 이 생명(生命) 기정(氣精)으로써 구성(構成)된 생명체(生命體)는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영위(營爲)하기 위(爲)하여 반드시 천성작용(天性作用)을 가지는 것이므로 사람은 천성(天性)을 가지고 심정작용(心情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며, 이 생명기정(生命氣精)은 사람만이 독특(獨特)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출생(出生)하기 이전(以前)에 천지간(天地間)에는 이미 생명기정(生命氣精)의 대자연(大自然)이 있어 천지(天地)의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니, 천지(天地)의 체(體)와 사람의 체(體)와는 대소(大小)의 차(差)와 형태(形態)의 상이(相異)가 있을 뿐이오 그 본성(本性)은 전연(全然) 동일(同一)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天地)의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는 사람의 소자출(所自出)한 본원(本源)으로서 이미 사람의 천성(天性)과 같은 심정작용(心情作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역괘(易卦)에「천지지심(天地之心)」「천지지정(天地之情)」이라 함은 천지(天地)의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의 심정작용(心情作用)을 말한 것이다.
둘째로 사람은 자신(自身)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스스로 자신(自身)의 행동(行動)을 주재(主宰)하는 천성(天性)이 있고 이 천성(天性)은 일신(一身)의 생생(生生)에 필요(必要)한 계획(計劃)을 세우고 있는 것이며,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生物)이 모두 그러하여 충어(虫魚)같은 미물(微物)도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그 생생(生生)에 필요(必要)한 정신작용(精神作用)을 가지고 있고 그보다 생리(生理)가 조금 더 복잡(複雜)한 고등동물(高等動物)은 충어(虫魚)보다 조금 더 고등(高等)한 정신작용(精神作用)을 가지고 있고 동물(動物)보다 차원(次元)의 월등(越等)한 생리(生理)를 가지고 있는 인간(人間)은 또한 그에 적응(適應)하는 월등(越等)한 정신작용(精神作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생물(生物)이 정신작용(精神作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생(生生)하는 자연법칙(自然法則)이다. 천지(天地)는 만물(萬物)을 포유(包有)하는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로 되고 있으므로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이 곧 천지(天地)의 생생(生生)이라 천지(天地)는 자체(自體)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반드시 천지(天地)의 생생(生生)을 통일적(統一的)으로 주재(主宰)하는 천성(天性)이 있는 것이오 이 천지(天地)의 주재(主宰)는 또한 스스로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에 필요(必要)한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만들고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천지(天地)의 주재(主宰)는 곧 천지(天地)의 천성(天性)으로서 천지(天地)의 창시(創始)와 함께 존재(存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간(天地間)에는 사람의 출생(出生)하기 이전(以前)에 이미 천지(天地)의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는 천성(天性)이 있어 심정작용(心情作用)으로써 의식적(意識的) 계획적(計劃的)으로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한 것이오 사람의 심정작용(心情作用)은 이 천지(天地)의 심정작용(心情作用)에서 품부(稟賦)된 것이다.
 셋째로 천지간(天地間)의 모든 생물(生物)은 반드시 생명(生命)과 정신(精神)과의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이(理)로써 구성(構成)되어 동일체내(同一體內)에서 운동(運動)하는 힘이 곧 생명(生命)이오 운동(運動)을 일으키는 힘이 곧 정신(精神)이다. 이것을 인신(人身)의 예(例)로써 보면 생명(生命)은 무형(無形)이 유형(有形)으로 화(化)하여 생명체(生命體)가 되는 것이므로 형이하(形而下)한 기(器)가 되는 것이오 정신(精神)은 무형(無形)그대로 있어 형화(形化)치 아니하는 것이므로 형이상(形而上)한 도(道)가 되는 것이라, 사람은 자신(自身)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반드시 그 생생(生生)에 적은(適應)하는 무형(無形)한 정신(精神)을 가지고 만사만물(萬事萬物)을 접응(接應)하여 자체(自體)의 생생(生生)하기 위(爲)한 모든 언행동작(言行動作)을 주재(主宰)하고 이목구비수족등(耳目口鼻手足等) 육체(肉體)에 대(對)하여 그 임무(任務)를 명령(命令)하며, 유형(有形)한 육체(肉體)는 수동작용(受動作用)을 행(行)하므로 다만 감각기관(感覺器官)에 의(依)하여 얻어진 소감(所感)을 정신(精神)에 호소(呼訴)하고 정신(精神)의 설계(設計)한 생생계획(生生計劃)에 대(對)하여 근육(筋肉)을 움직여서 그것을 실천(實踐)할 뿐이니, 그러므로 인신(人身)의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는 자(者)는 유형(有形)한 육체(肉體)가 아니라 곧 무형(無形)하여 만사만물(萬事萬物)을 접응(接應)하는 작용(作用)을 가진 정신(精神)이다. 생명(生命)과 정신(精神)과의 이(理)를 천지(天地)로써 보면 천지간(天地間)의 만물(萬物)은 지극(至極)히 번다(繁多)하고 지극(至極)히 착잡(錯雜)하되 모두 질서정연(秩序整然)한 운동(運動)으로써 공통(共通)한 법칙(法則)속에서 그 생생(生生)을 영위(營爲)하여 하나도 생생작용(生生作用)으로부터 유기(遺棄)됨이 없고 또 만물상호간(萬物相互間)에는 상호극제(相互克制)와 상호부조(相互扶助)의 두 작용(作用)이 자연(自然)스럽게 행(行)하여 모두 조화(調和)된 상태(狀態)로써 그 생생(生生)을 완수(完遂)하고 있으니, 이는 만물(萬物)이 여기저기에서 우연홀연(偶然忽然)히 단독적(單獨的)으로 생겨서 각기(各其) 독자적(獨自的)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한 계통(系統)의 법칙(法則)밑에서 유기적(有機的)으로 서로 관련(關聯)되고 통일(統一)되어 어느 일물(一物)도 이 유기적(有機的) 계통(系統)의 권외(圈外)에서 단독(單獨)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간(天地間)의 만물(萬物)은 공간적(空間的)으로는 유기적(有機的)으로 서로 연결(連結)되어 있고 시간적(時間的)으로는 통일적(統一的)으로 영속부절(永續不絶)하는 운행(運行)을 하고 있으니, 이는 천지간(天地間) 만물(萬物)이 하나의 유기적(有機的)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를 이루고 있음이오 건괘(乾卦)에「대(大)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萬物)이 자(資)하여 시(始)하니 이에 천(天)을 통(統)하도다」함은 만물(萬物)이 건곤(乾坤)의 생명원(生命元)에서 시생(始生)하여 하나의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를 이루고 있다 함을 말함이다. 천지(天地) 생명체(生命體)는 이와 같이 무한대(無限大) 무궁원(無窮遠)하므로 그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는 정신작용(精神作用)도 또한 거기에 적응(適應)하여 무한대(無限大) 무궁원(無窮遠)하여 우주(宇宙)의 대공간(大空間)의 극점(極點)과 대시간(大時間)의 미래(未來)를 통관(通觀)하고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생(生生)을 의식적(意識的) 계획적(計劃的)으로 주재(主宰)하고 있는 것이니 소위(所謂) 자연법칙(自然法則)이라 함은 천지주재자(天地主宰者)의 생생계획서(生生計劃書)를 말함이다.
이상(以上) 세 가지의 이(理)에 의(依)하여 천지(天地)에는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는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오 설괘(說卦)에는「신(神)이라 함은 만물(萬物)을 묘(妙)하게하여 언(言)을 하는 자(者)이라」하고 계사(繫辭)에는「변화(變化)의 도(道)를이지(知)하는 자(者)가 신(神)의 소위(所爲)를이지(知)한다」하여 천지간(天地間)에 물(物)의 생생변화(生生變化)를 주재(主宰)하는 자(者)를 신(神)이라 하니, 그러므로 천지(天地)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이 곧 신(神)이다. 천지(天地) 생명체(生命體)의 정신작용(精神作用)과 천지주재(天地主宰)인 신(神)은 전연동일(全然同一)한 것으로서 이것을 자연현상(自然現象)의 면(面)으로써 볼 때에는 정신작용(精神作用)이라 하고 천지주재(天地主宰)의 면(面)으로써 볼 때에는 신(神)이라 하는 것이다.
천지간(天地間) 만물(萬物)은 모두 신(神)의 의식적작용(意識的作用)에 의(依)하여 계획적(計劃的)으로 창조(創造)되어 생생(生生)하는 것이므로 어느 일물(一物)도 우연홀연(偶然忽然)히 발생(發生)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지정지묘(至精至妙)한 계획(計劃)밑에서 유기적(有機的) 통일적(統一的)으로 창조(創造)된 것이니, 그러므로 우리 인간(人間)도 무형(無形)한 신(神)의 자연법칙(自然法則) 속에서 출생(出生)하여 신(神)의 자손(子孫)이 되고 사람의 천성(天性)도 신(神)의 작용(作用)을 품수(稟受)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신(神)은 무형(無形)하여 볼 수가 없으므로 그 유무(有無)를 알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것을 인신(人身)으로써 보면 사람이 타인(他人)을 대(對)하는 때에 그 상대인(相對人)에게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고 없는 것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나 그에게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는 줄은 우리의 체험(體驗)으로써 확적(確的)히 알 수 있는 것이니, 이는 사람마다 자신(自身)에게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으므로 타인(他人)에게도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는 줄을 아는 것이며 이 체험(體驗)을 더 추연해석(推衍解釋)하여 보면 인간(人間)은 반드시 사람마다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고 또 그 정신작용(精神作用)은 모두 공통(共通)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사람마다  각기(各其) 독자적(獨自的)으로 우연홀연(偶然忽然)히 오다가다 얻은 것이 아니라 모두 동일(同一)한 원(源)으로부터 품수(稟受)한 것임이 분명(分明)한즉 인간(人間)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의 본원(本原)은 반드시 어느 한곳에 있는 것이오 이 정신작용(精神作用)의 본원(本原)은 곧 천지(天地)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인 신(神)이다. 그리고 신(神)은 무형(無形)한 까닭에 능(能)히 천지간(天地間)의 만사만물(萬事萬物)을 창조(創造)하시는 것이니, 이는 사람의 천성(天性)이 무형(無形)한 까닭에 능(能)히 무한무궁(無限無窮)한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을 주편(周遍)하여 만사만물(萬事萬物)을 접응(接應)함과 같은 것이다.
신(神)이라 함은 천(天)의 광명(光明)이 만물(萬物)을 생(生)한다는 뜻인데 역학(易學)에는 신(神)을 제(帝) 또는 상제(上帝)라하고 또한 조고(祖考)라하니 상제조고(上帝祖考)는 그 명칭(名稱)은 서로 다르되 모두 신(神)을 말한 것으로서 다만 신(神)과 사람과의 대칭(對稱)을 달리한 것뿐이다. 상제(上帝)라 함은 천상(天上)에서 광명(光明)을 하수(下垂)하여 만물(萬物)을 생(生)한다는 뜻으로서 상제(上帝)와 민중(民衆)과의 상하(上下)의 분(分)을 대칭(對稱)한 것이오 조고(祖考)라 함은 만물(萬物)을 시생(始生)하는 조상부모(祖上父母)라는 뜻으로서 조상부모(祖上父母)와 자손(子孫)과의 계통(系統)의 서(序)를 대칭(對稱)한 것이다.
신(神)은 만물(萬物)의 상제(上帝) 조상(祖上)으로서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하신 것인즉 신(神)은 만물(萬物) 이전(以前)에 어디에서 창조(創造)된 것인가 하면, 창조(創造)라 함은 무형(無形)에서 유형물(有形物)을 조출(造出)하는 일이니 천지태초(天地太初)의 무형중(無形中)에서 비로소 유형물(有形物)의 생(生)한 것이 곧 만물(萬物)의 창조(創造)이다. 천지간(天地間)에는 천지(天地)의 생기는 처음에 건곤생명원(乾坤生命元)이 있어 무형(無形)한 중(中)에 스스로 통일적(統一的)으로 운동(運動)하여 생명(生命)이 되는 것이며, 이 생명(生命)은 형(形)이 생(生)치 아니하여 무형(無形)으로 되어 있으되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스스로 그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는 신(神)이 있어, 생명(生命)과 신(神)은 일체이원(一體二元)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생명(生命)과 신(神)은 선후(先後)의 별(別)이 없고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의 두 작용(作用)이 되어 형이상(形而上)한 작용(作用)은 신(神)이 되고 형이하(形而下)한 작용(作用)은 생명(生命)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유형(有形)하기 이전(以前)에 이미 신(神)이 존재(存在)하여 유형(有形)한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하시니, 천지(天地)의 시(始)가 곧 신(神)의 시(始)이오 신(神)의 시(始)가 곧 만물생생(萬物生生)의 시(始)이다.


■ 신(神)은 영원무궁(永遠無窮)신(神)이 유형(有形)한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하는 순서(順序)를 기정형(氣精形)의 상(象)으로써 보면 천지간(天地間)에 양기(陽氣)가 먼저 음중(陰中)에서 동(動)하여 뇌(雷)가되고 뇌(雷)의 충격작용(衝激作用)에 의(依)하여 화(火)를 생(生)하였는데, 화(火)는 의부(依附)할곳이 없어서 형(形)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다음에 음기(陰氣)가 수동적(受動的)으로 동(動)하여 자기(磁氣)인 풍(風)이 되고 풍(風)의 응수작용(凝收作用)에 의(依)하여 수액(水液)을 생(生)하니, 이것이 천지유형(天地有形)의 시(始)이다. 유형(有形)의 시(始)인 수(水)가 생(生)한 연후(然後)에 화(火)가 수(水)에 의부(依附)하여 광명(光明)을 발(發)하니, 그러므로 수화(水火)는 만물창생(萬物創生)의 시(始)가되고 만물(萬物)의 생생(生生)함에는 모두 수화(水火)를 체(體)로 하는 것이며, 수화(水火)에도 형이상(形而上)한 것과 형이하(形而下)한 것이 있는데 형이상(形而上)한 수화(水火)는 신(神)의 체(體)가되고 형이하(形而下)한 수화(水火)는 만물(萬物)의 체(體)가 되는 것이다. 이미 수화(水火)가 생生한 뒤에는 무형(無形)한 신(神)은 유형(有形)한 수화(水火)를 물(物)의 체(體)로 하여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하시고 스스로 수화(水火)의 속에 갈무리하여 유형(有形)한 만물(萬物)로 나타나시는 것이니, 그러므로 천지간만물(天地間萬物)은 모두 신(神)이 유형(有形)으로 표현(表現)된 것으로서 만물(萬物)의 내부(內部)에는 신(神)을 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만물창조(萬物創造)의 순서(順序)를 생명원(生命元) 뇌풍(雷風) 수화(水火)라고한 것은 다만 그 무형(無形)과 유형(有形)의 순서(順序)를 말함이오 실제(實際)에 있어서는 생명원(生命元)과 생명(生命)도 선후(先後)의 별(別)이 없고 생명(生命)과 신(神)도 선후(先後)의 별(別)이없고 생명원(生命元)과 뇌풍(雷風) 수화(水火)도 또한 선후(先後)의 별(別)이없고 건곤생명원(乾坤生命元)이 있는 때에 그 속에 스스로 생명(生命)이 있고 신(神)이 있고 뇌풍(雷風) 수화(水火)가 있어 한 개(個)의 천지생명체(天地生命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천지간(天地間)에 포함(包含)되어 있는 만물(萬物)은 그 형질(形質)에 모두 생멸(生滅)이 있고 사람도 그 형질(形質)에 사생(死生)이 있어 모두 유한유궁(有限有窮)하며, 사람의 정신(精神)도 생전(生前)에는 천성(天性)이 되고 사후(死後)에는 귀신(鬼神)이 되어 늘 변화(變化)하고 있고, 천지간(天地間)에서 오직 신(神)만이 영원무궁(永遠無窮)하니, 이는 천지(天地)의 유기적(有機的)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의 정신(精神)의 상(象)인 신(神)은 사람의 공동생활체(共同生活體)인 국가사회(國家社會)의 유기적(有機的) 통일적(統一的) 정신작용(精神作用)과 동리(同理)한 까닭이다. 사람은 각개인(各個人)이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는 정신작용(精神作用)을 가지고 있는 동시(同時)에 그 여러 개인(個人)의 공동생활체(共同生活體)인 국가사회(國家社會)에도 또한 여러 개인(個人)의 유기적(有機的) 통일적(統一的)인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엉키어 있어 그 국가사회(國家社會)의 생생(生生)을 영위(營爲)하고 있는 것이며, 각개인(各個人)은 반드시 사생(死生)이 있으되 공동생활체(共同生活體)인 국가사회(國家社會)는 개인(個人)들의 세대교체(世代交替)에 의(依)하여 항구(恒久)히 존속(存續)하는 것이니, 우리 인류사회(人類社會)가 유사이래(有史以來)로 면면(綿綿)히 연속(連續)하는 것이 그 일례(一例)이오 그러므로 국가사회(國家社會)를 운영(運營)하는 유기적(有機的) 통일적(統一的) 정신작용(精神作用)도 또한 항구(恒久)하여 국가사회(國家社會)를 영원(永遠)한 미래(未來)까지 존속(存續)시켜 나가는 것이다. 국가사회(國家社會)의 유형(有形)한 행정시설(行政施設)은 사람의 육체(肉體)의 생존(生存)하는 작용(作用)의 상(象)이 되고 무형(無形)한 정치계획(政治計劃)은 사람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의 상(象)이 되어 무형(無形)한 정치계획(政治計劃)이 부단(不斷)히 행(行)한 연후(然後)에 유형(有形)한 행정시설(行政施設)이 실시(實施)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정치계획(政治計劃)은 영원(永遠)히 존속(繼續)되는 것이오 정치계획(政治計劃)의 행(行)치 못하는 날은 그 국가사회(國家社會)의 패쇄(敗衰)하는 날이다. 이 이(理)에 의(依)하여 천지(天地)의 유기적(有機的) 통일적(統一的) 생명체(生命體도) 그 생물(生物)의 개개체(個個體)는 생멸(生滅)이 있으되 천지생명체(天地生命體)는 영원무궁(永遠無窮)히 계승(繼承)하고 천지생명체(天地生命體)의 생생(生生)을 운영(運營)하는 정신작용(精神作用)도 또한 영원무궁(永遠無窮)하여 천지생명체(天地生命體)를 영원(永遠)한 미래(未來)까지 계계생생(繼繼生生)시켜 나가는 것이니, 이가 신(神)의 영원무궁(永遠無窮)하신 소이(所以)이다. 혹(或)은 생각하기를 만물(萬物)은 우주(宇宙)의 자연법칙(自然法則)에 의(依)하여 스스로 생성(生成)하는 것이오 신(神)의 소위(所爲)가 아니라고 하나, 자연법칙(自然法則)이라 함은 하나의 생생계획서(生生計劃書)에 불과(不過)한 것이오 생생계획서(生生計劃書)가 저절로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能動)하는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있어 그 계획서(計劃書)대로 활용(活用)하는 때에 만물(萬物)이 생생(生生)되는 것이니 신(神)이라 함은 이 능동(能動)하는 정신작용(精神作用)을 말함이오 자연법칙(自然法則)이라 함은 신(神)의 마련한 생생계획서(生生計劃書)를 말함이오 생생계획서(生生計劃書)를 활용(活用)한다함은 신(神)이 자신(自身)의 마련한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자신(自身)이 능동(能動)하여 몸소 실시(實施)하는 것이다. 마치 인간사회(人間社會)의 모든 건설(建設)에는 건설계획서(建設計劃書)가 있는데, 이 건설계획서(建設計劃書)가 저절로 물(物)을 건설(建設)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능동(能動)하는 정신작용(精神作用)을 가진 사람이 있어 그 계획서(計劃書)대로 활용(活用)하는 때에 비로소 건설(建設)이 이루어짐과 같은 것이다. 인간사회(人間社會)의 모든 건설(建設)이 사람의 무형(無形)한 정신작용(精神作用)에 의(依)하여 이루어짐과 같이 천지간(天地間)의 만물(萬物)도 또한 무형(無形)한 신(神)의 뜻에 의(依)하여 생생(生生)하는 것이다.
천지생생(天地生生)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인 신(神)은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천지(天地)의 대공간(大空間)에 가득히 차 있는 만물(萬物)을 하나도 주지(周知)치 못하심이 없고 또 그들 만물(萬物)을 영원(永遠)히 계승(繼承)시키기 위(爲)하여 만물(萬物)의 생생발전(生生發展)하여 나가는 천지(天地)의 대시간(大時間)의 영원무궁(永遠無窮)한 미래(未來)를 선지(先知)치 못하심이 없으니 이는 신(神)의 지(知)이며 신(神)은 또 그들 만물(萬物)에게 자체(自體)의 생생법칙(生生法則)을 부여(賦與)하시어 어느 일물(一物)도 공간적(空間的) 시간적(時間的)으로 그 생(生)을 완수(完遂)치 못함이 없게 하시니 이는 신(神)의 능(能)이다. 계사(繫辭)에「건(乾)은 이易(이)로써 지(知)하고 곤(坤)은 간(簡)으로써 능(能)하다」하니 건(乾)의 지(知)와 곤(坤)의 능(能)은 건곤생명원(乾坤生命元)이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하기 위(爲)한 지능(知能)으로서 이가 곧 신(神)의 지능(知能)이니 신(神)은 건지곤능(乾知坤能)으로써 천지(天地)의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고 계시는 것이다.


■ 신(神)은 태양(太陽)에 위거(位居)천지(天地)의 신(神)과 사람의 천성(天性)은 그 본성(本性)이 동일(同一)한 것인데, 사람의 천성(天性)이 무형(無形)하고 모든 사물(事物)에 주편(周遍)하여 일정(一定)한 거처(居處)가 없는 것이로되 또한 인신(人身)의 두뇌(頭腦)에 의부(依附)하여 모든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것인즉 신(神)도 천지(天地)를 통괄(統括)하여 비록 재(在)치 아니하신 곳이 없고 행(行)치 아니하시는 곳이 없으되 또한 반드시 위거(位居)하시는 곳이 있는 것이다. 신(神)은 생명(生命)과 일체이원(一體二元)이 되니 형이상(形而上)한 천행건(天行健)의 상(象)이 되고 수화(水火)의 형이상(形而上)한 기(氣)를 합(合)하여 체(體)를 삼는 것이오 천지간(天地間)의 광명(光明)의 본원(本源)이되는 태양(太陽)이 또한 건곤(乾坤)과 뇌풍(雷風)을 합(合)한 천행건(天行健)의 상(象)으로서 수화(水火)의 유형(有形)한 정(精)을 합(合)하여 유형체(有形體)로 된 것이니, 무형(無形)한 신(神)과 유형(有形)한 태양(太陽)은 그 조직(組織)의 상(象)이 동일(同一)하므로 신(神)은 태양(太陽)에 위거(位居)하시어 생생(生生)의 정(政)을 행(行)하시는 것이다. 신자(神字)가 천상(天上)의 광명(光明)이 하수(下垂)하여 만물(萬物)을 신출(伸出)한다는 뜻으로 되어 있는 것도 또한 신(神)이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에 위거(位居)하시어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하시는 상(象)을 말한 것이오,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을 달에 시(施)하여 만물(萬物)의 씨를 작성(作成)한다는 것도 또한 신(神)이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에 위거(位居)하시어 만물(萬物)의 씨를 창조(創造)하시는 이(理)를 말한 것이며, 이가 곧 신(神)이 먼저 수화(水火)를 창조(創造)하여 광명(光明)을 발(發)하게 하시고 그 수화(水火)를 물(物)의 체(體)로 하여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하시고 만물(萬物)로 하여금 광명(光明)속에서 살게 하시는 이(理)이다. 광명(光明)이라 함은 수화(水火)가 합(合)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우주간(宇宙間)의 대수화(大水火)를 체(體)로하고 있는 신(神)은 우주간(宇宙間)의 대광명(大光明)이 바로 그 체(體)로 되는 것이오 그러므로 우주간(宇宙間)에서 광명(光明)을 발(發)하고 있는 모든 항성(恒星)은 한덩어리의 광명(光明體)로서 사람의 두뇌(頭腦)와 같은 조직체(組織體)로 되어 신(神)의 위거(位居)하시는 곳이 되는 것이며, 태양(太陽)도 항성(恒星)의 하나이므로 태양계(太陽系)의 우주(宇宙)에서는 태양(太陽)이 신(神)의 위거(位居)하시는 곳이 되는 것이다. 신(神)과 생명(生命)은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이(理)로 되고 생명(生命)이 유형화(有形化)하여 처음으로 태양(太陽)을 구성(構成)한 것이므로 신(神)이 또한 태양(太陽)에 위거(位居)하시는 것이오 신(神)이 만물생생(萬物生生)의 정(政)을 행(行)하시므로 만물(萬物)의 씨의 원(元)이 또한 태양(太陽)에서 나오는 것이다.
신(神)의 위거(位居)하시는 태양(太陽)에는 수화(水火)가 있고 수화(水火)에는 취산작용(聚散作用)이 있어 생멸(生滅)의 현상(現象)이 있는 것이나, 천지통일신(天地統一神)은 유일절대(唯一絶對)하여 통체(統體)와 개체(個體)를 초월(超越)하고 그 통일체내(統一體內)에 비록 취산작용(聚散作用)이 행(行)하고 있으되 취(聚)하여도 그 체내(體內)에 취(聚)하고 산(散)하여도 그 체내(體內)에 산(散)하여 취(聚)와 산(散)을 초월(超越)하고 있으므로 천지(天地)의 신(神)은 영원불궁(永遠不窮)한 유일신(唯一神)이 되는 것이다.
신(神)이 태초(太初)에 모든 생물(生物)을 생(生)하실 때에 식물(植物)은 토중(土中)에 착근(着根)하여 스스로 수토(水土)의 영양(營養)을 섭취(攝取)하고 살며, 동물(動物)은 천연물(天然物)을 아무런 가공(加工)도 없이 그대로 먹고 몸에는 모피(毛皮)와 갑피(甲皮)같은 것을 두르고 의복(衣服)을 입을 필요(必要)가 없는 것이나, 사람은 그와는 달라서 천연물(天然物)을 그대로만 먹을 수가 없고 반드시 인공(人工)을 가(加)하여 먹으며, 몸을 보호(保護)하기 위(爲)하여는 반드시 의복(衣服)을 입어야 하며, 또 생활(生活)에 필요(必要)한 온갖 기구(器具)를 만들어야 하는 것인데, 사람이 처음으로 발생(發生)할 당시(當時)에는 인지(人智)가 열리지 못하여 자체(自體)의 지력(智力)으로써 자체(自體)의 생활(生活)을 영위(營爲)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사람을 창조(創造)하신 신(神)은 자체(自體)를 인신(人身)으로 화(化)하여 신인(神人)이 되어 사람들의 모든 생활(生活)을 지도(指導)하시니 이 신인(神人)은 지상(地上)에 인류(人類)의 형상(形象)이 나타난 시초(始初)이며 신(神)이 사람을 창조(創造)하실 때에 신(神)의 형상(形象)대로 지으셨다 하는 것도 이 신인(神人)과 인류(人類)와의 관계(關係)를 말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신인(神人)은 곧 신(神)이오 사람이 신(神)에서 출생(出生)하였다 함은 곧 신인(神人)에서 출생(出生)하였다 함이다. 신(神)은 태양(太陽)에 위거(位居)하시면서 태초(太初)에 신인(神人)으로 화(化)하여 지상(地上)에 내려와서는 어느 곳에 좌정(坐定)하시는가 하면 이것을 역리(易理)로써 보건대 지(地)의 상승(上升)한 것은 간산(艮山)이오 간산(艮山)의 일양(一陽)은 천(天)에 접(接)하고 있으므로 신(神)이 지상(地上)에 내려와서 신인(神人)으로 화신(化身)하는 때는 반드시 간산상(艮山上)에 좌정(坐定)하시어 인류(人類)의 대시조(大始祖)가 되신 것이며, 그러므로 간(艮)이 상괘(上卦)로 되는 괘(卦)의 상효(上爻)에는 모두 신(神)과 광명(光明)의 상(象)이 있는 것이다.


第二節   사생(死生)과 귀신(鬼神)
■ 만물(萬物)은 신(神)의 분신(分身)신(神)이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하심에는 어떻게 창조(創造)하시는가 하면 그 상(象)은 기정형(氣精形)의 상(象)에 나타나고 있다. 천행건(天行健)한 뇌풍(雷風)의 기(氣)는 신(神)의 상(象)이오 뇌풍(雷風)의 반역(反易)한 산택(山澤)의 형(形)은 만물(萬物)의 상(象)이니, 이는 만물(萬物)의 산택(山澤)의 형(形)은 신(神)의 뇌풍(雷風)의 기(氣)에서 생(生)하는 까닭이며 무형(無形)한 뇌풍(雷風)의 기(氣)가 유형(有形)한 산택(山澤)의 형(形)으로 화(化)함에는 반드시 그 중간(中間)에 무형(無形)도 되고 유형(有形)도 되고 하는 수화(水火)의 정(精)의 취산작용(聚散作用)에 의(依)하여 행(行)하는 것이다. 이 이(理)에 의(依)하여 무형(無形)한 신(神)이 유형(有形)한 만물(萬物)의 개체(個體)를 창조(創造)하심에는 천지통일신(天地統一神)이 통일체(統一體) 그대로는 만물(萬物)의 개체(個體)로 형화(形化)치 못하고 반드시 수화(水火)의 취산작용(聚散作用)과 같은 분신작용(分身作用)이 행(行)하여야 하는 것이며, 신(神)의 분신(分身)한 것이 곧 귀신(鬼神)이니, 신(神)이라 함은 천지통일신(天地統一神)을 말함이오, 귀(鬼)라 함은 개체(個體)의 본능(本能)의 혼(魂)을 말함이오 귀신(鬼神)이라 함은 개체(個體)의 본능(本能)과 이성(理性)의 혼(魂)을 말함이다. 신(神)의 분신작용(分身作用)이 귀(鬼)와 신(神)의 두 가지로 나뉘우는 것은 사람의 천성(天性)이 발용(發用)하는 때에 스스로 심(心)과 정(情)의 두 가지로 나뉘움과 같은 것이니, 신(神)은 광명(光明)한 본체(本體)인 천성(天性)의 상(象)이오 귀(鬼)는 진자(震子) 태정(兌精)의 작용(作用)인 정(情) 즉(卽) 본능(本能)의 상(象)이오, 귀신(鬼神)은 광명(光明)한 천성(天性)의 운행작용(運行作用)인 심(心)의 상(象)이다.
신(神)의 분신(分身)에 의(依)하여 개체(個體)가 생기는 때에 귀신(鬼神)이 생(生)하는 것인데, 만물개체(萬物個體)의 씨가 달에서 생(生)하므로 신(神)의 분신(分身)하는 작용(作用)도 또한 달에서 행(行)하는 것이니, 이는 태양(太陽)이 진자(震子)를 달에 발시(發施)하고 달의 태정(兌精)이 그것을 승수(承受)하여 만물(萬物)의 씨를 승수(承受)함과 동일(同一)한 이(理)로서, 태양(太陽)에 위거(位居)하신 신(神)이 그 양기(陽氣)를 달에 시(施)하면 달의 음기(陰氣)는 그것을 승수(承受)하여 신(神)의 분신(分身)인 개체(個體)의 신(神)을 작성(作成)하여 귀신(鬼神)이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씨는 반드시 귀신(鬼神)을 체(體)로하고 귀신(鬼神)은 달에 의부(依附)하여 지상만물(地上萬物)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씨가 처음에 창생(創生)될 때에 오직 생(生)의 시운(時運)에만 발생(發生)하고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그 이미 발생(發生)한 씨가 지상(地上)에서 자라서 번식(蕃殖)함과 같이 신(神)의 분신작용(分身作用)에 의(依)하여 만물(萬物)이 발생(發生)하는 것도 또한 생(生)의 시운(時運)에만 식물(植物)의 수다(數多)한 종류(種類), 동물(動物)의 수다(數多)한 종류(種類)가 모두 그 종류(種類)대로 생기고 사람도 생(生)의 시운(時運)에 신(神)의 형상(形象)대로 한 종류(種類)가 생기고,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종류(種類)가 느는 것이 아니라 각종류(各種類)가 지상(地上)에 내려와서 그 종류(種類)의 족속(族屬)이 느는 것이니 그러므로 신(神)의 분신작용(分身作用)은 오직 생(生)의 시운(時運)에만 행(行)하고 신(神)의 전체(全體)가 모든 생물(生物)의 각종류(各種類)로 분신(分身)되는 것이다.


■ 사후(死後) 귀신(鬼神)의 이(理)사람은 신(神)의 분신작용(分身作用)에 의(依)하여 귀신(鬼神)을 체(體)로 하여 생(生)하는 것인데, 사후(死後)에는 귀신(鬼神)이 어떻게 하여 생(生)하는가 하면, 만물(萬物)에는 사생(死生)이 있고 그 사생(死生)은 생물(生物)의 씨를 조직(組織)한 기정형(氣精形)의 취산작용(聚散作用)을 인(因)함이다. 만물(萬物)은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이 생(生)하고 정(精)과 기(氣)가 취(聚)하여 물(物)의 형질(形質)을 이루는 것이므로 물(物)의 사(死)하는 때에는 취(聚)한 것이 산(散)하면서 형질(形質)이 소멸(消滅)하여 다시 무형(無形)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물(物)이 형질(形質)을 이루는 것은 생(生)함이오 형질(形質)이 멸(滅)하는 것은 사(死)함이다. 뇌풍(雷風)의 기(氣)는 무형(無形)하고 기(氣) 그대로는 형질(形質)이 생(生)치 아니하니, 처음부터 생(生)치 아니한 자(者)는 또한 멸(滅)할것이 없으므로 뇌풍(雷風)의 기(氣)는 생멸(生滅)이 없이 항존(恒存)하는 것이오 수화(水火)의 정(精)은 무형(無形)도 되고 유형(有形)도되어 취산(聚散)이 있으되 그 본체(本體)는 수화(水火)대로 항존(恒存)한 것이오, 산택(山澤)의 형(形)은 유형(有形)한 것으로서 산(山)은 지(地)가 염상(炎上)하는 화(火)를 갈무리하여 형(形)이 생(生)한 것이오 택(澤)은 유하(流下)하는 수(水)를 멈추어서 형(形)이 생(生)한 것이므로 산택(山澤)은 생멸(生滅)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씨의 속에 있는 뇌풍(雷風)의 기(氣)는 사생(死生)이 없이 항존(恒存)한 것이오 씨에서 싹이 생(生)하여 형질(形質)이 있은 연후(然後)에 사생(死生)이 있는 것이니, 이가 곧 취(聚)한 자(者)는 반드시 산(散)하고 생(生)한 자(者)는 반드시 사(死)한다 하는 이(理)이다. 이것을 수목(樹木)의 열매로써 보건대 열매의 속에 있는 천행건(天行健)한 씨의 기(氣)는 항구(恒久)히 계생(繼生)하여 사멸(死滅)치 아니하는 것이오 열매에서 싹이 나서 지엽(枝葉)이 자라면 그 지엽(枝葉)은 유형(有形)한 까닭에 생멸(生滅)이 있는 것이니, 싹의 트는 것이 곧 장래(將來)에 싹의 사(死)하는 장본(張本)이 되는 것이다. 사생(死生)의 이(理)를 사람의 일신(一身)으로써 보면 육체(肉體)는 유형(有形)한 형질(形質)로서 열매의 싹의 상(象)이오 천성(天性)은 무형(無形)한 기(氣)로서 씨의 속에 있는 천행건(天行健)한 기(氣)의 상(象)이라 그러므로 육체(肉體)에는 사생(死生)이 있으되 천성(天性)은 항구(恒久)히 계생(繼生)하여 멸(滅)치 아니하고 육체(肉體)의 사(死)한 뒤에도 유혼(游魂)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인사후(人死後)에 귀신(鬼神)이 존재(存在)하는 원리(原理)이다.
사람은 정기(精氣)가 취(聚)하면 생(生)하고 정기(精氣)가 산(散)하면 사(死)하는 것인데, 처음에 취(聚)하여 생(生)할 때에 이미 천성(天性)과 육체(肉體)의 이원운행(二元運行)의 이(理)가 있으므로 내종에 산(散)하여 사(死)하는 때에도 또한 이원분리(二元分離)의 이(理)가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인사후(人死後)에는 천성(天性)이 육체(肉體)로부터 분리(分離)하여 독자(獨自)히 존재(存在)할 수 있는 것이다. 물(物)의 취(聚)한 자(者)는 반드시 산(散)하는 것이오 그 산(散)하는 때에는 또한 그 취(聚)한 바의 기간(期間)의 장단구속(長短久速)과 그 취(聚)한바의 형체(形體)의 대소후박(大小厚薄)에 따라서 그 산(散)하는 기간(期間)에도 지속(遲速)이 있는 것이니, 이는 물(物)의 생장성원리(生長成原理)가 그러한 것이다. 사람의 천성(天性)은 장구(長久)한 기간(期間)에 정기(精氣)가 취(聚)하여 자라고 여문 것이므로 사람이 사(死)하여 정기(精氣)가 분산(分散)하는 때에는 그 사(死)하는 즉시(卽時)로 아무런 형적(形迹)도 없이 소산(消散)하는 것이 아니라 수화(水火)를 체(體)로한 화염체(火炎體)는 육체(肉體)와 분리(分離)된 뒤에 어느 기간(期間)동안은 소산(消散)치 아니하고 독자(獨自)히 존재(存在)하는 것이니 이것을 유혼(游魂)이라 한다. 계사(繫辭)에「정(精)과 기(氣)가 물(物)이 되고 혼(魂)이 유(游)하여 변(變)이 되는지라 그런 고(故)로 귀신(鬼神)의 정상(情狀)을이지(知)한다」하니, 이는 수화(水火)의 정(精)과 뇌풍(雷風)의 기(氣)가 취합(聚合)하여 사람의 형질(形質)이 되고 정기(精氣)의 분산(分散)하는 때에 천성(天性)이 육체(肉體)와 유리(遊離)하여 유혼(游魂)이 되고 유혼(游魂)이 변화(變化)를 행(行)하는 것이 곧 귀신(鬼神)의 정상(情狀)이라 함이다. 사람의 생전(生前)의 천성(天性)에 심(心)과 정(情)의 분별(分別)이 있으므로 사후(死後) 유혼(游魂)의 변화(變化)에도 귀신(鬼神)의 정상(情狀)이 있으니, 정(情)은 귀(鬼)의 작용(作用)이오 상(狀)은 신(神)의 작용(作用)이라 생전(生前)의 본능(本能)인 정(情)은 귀(鬼)의 작용(作用)으로 되고 생전(生前)의 심(心)의 광명(光明)은 신(神)의 작용(作用)으로된 것이다.
사람의 천성(天性)에는 여물고 여물지 못하고 한 차이(差異)가 있으므로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에도 또한 이와 같은 차이(差異)가 있어, 천성(天性)이 여물면 귀(鬼)와 신(神)의 작용(作用)이 아울러있고 천성(天性)이 여물지 못하면 생전(生前)의 정(情)의 상(象)인 귀(鬼)의 작용(作用)은 있으되 심(心)의 상(象)인 신(神)의 작용(作用)은 없는 것이다. 사후(死後)에 귀(鬼)와 귀신(鬼神)의 작용(作用)이 어떻게 서로 다른가하면 사람의 생전(生前)에 본능(本能)에서 발(發)한 감정(感情)은 개체(個體)의 독자(獨自)한 것으로서 그 사람의 독자(獨自)한 감정(感情)에 그치는 것이오 생전(生前)에 심(心)의 광명(光明)에서 발(發)하는 이성(理性)은 만인공공(萬人公共)한 것으로서 인류공통(人類共通)의 이념(理念)이 되는 것인데, 생전(生前)의 감정(感情)이 사후(死後)의 귀(鬼)로 되고 생전(生前)의 이성(理性)이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으로 되는 것이므로 귀(鬼)와 귀신(鬼神)의 작용(作用)은 바로 감정(感情)과 이성(理性)의 상태로(狀態)로 발현(發現)되는 것이다. 사후(死後)의 귀신작용(鬼神作用)은 인류공통(人類共通)의 이념(理念)과 같은 것으로서 유일신(唯一神)의 작용(作用)과 상통(相通)하는 것인데, 이것을 신(神)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귀자(鬼字)를 붙여서 귀신(鬼神)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사람의 사후(死後) 귀신(鬼神)이라 하는 신(神)과 유일신(唯一神)은 그 작용(作用)이 동일(同一)하여 고저(高低)의 분(分)도 없고 불합(不合)하는 분(分)도 없고 정사(正邪)의 분(分)도 없고 완전(完全)히 산통(相通)하고 있으나 유일신(唯一神)은 천지간(天地間) 통천(統天)의 신(神)으로서 개체(個體)가 통체(統體)를 초월(超越)하고 있으나 사람의 귀신(鬼神)은 개체(個體)에 붙어있던 유혼(游魂)으로서 비록 신(神)의 작용(作用)은 있으되 한편에 개체(個體)의 본능성(本能性)을 지니고 있으므로 귀(鬼)의 작용(作用)인 개체성(個體性)을 이탈(離脫)치 못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귀신(鬼神)은 인간(人間)의 대인(大人)의 격(格)이 되어 대인(大人)으로 더불어 그 길흉(吉凶)을 합(合)하고 있으되 역시(亦是) 귀(鬼)와 신(神)의 합체상태(合體狀態)를 이탈(離脫)치 못하는 것이다. 계사(繫辭)에「천지(天地)의 수(數)가 오십오(五十五)이니 이것이 써 변화(變化)를 성(成)하고 귀신(鬼神)을 행(行)하는 바이라」하니 이는 천지자연수(天地自然數)는 십(十)에서 성(成)하는 것이므로 알(一)로부터 십(十)까지를 합(合)한 오십오수(五十五數)에서 천지(天地)의 변화(變化)가 이루어 만물(萬物)이 여물고 만물(萬物)의 여무는 때에 귀신(鬼神)의 작용(作用)이 행(行)한다 함이다. 이것을 수목(樹木)으로써 보면 열매가 익어서 씨가 여문 연후(然後)에 생명(生命)이 세세계승(世世繼承)하는 것이오 씨가 여물지 아니하면 쭉정이가 되어 그것을 심어도 싹이 나지 아니하여 생명(生命)이 끊어지는 것이며, 수목(樹木)에는 심정작용(心情作用)이 없으므로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은 없으나 씨의 세세계승(世世繼承)하는 작용(作用)이 곧 귀신(鬼神)의 작용(作用)이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십수(十數)에서 여물면 변화(變化)를 성(成)하여 귀신(鬼神)의 작용(作用)을 행(行)한다 한 것이다. 이 이(理)에 의(依)하여 사람의 천성(天性)도 선(善)이 계생(繼生)하여 여문 연후(然後)에 귀신(鬼神)의 작용(作用)이 행(行)하고 사후(死後)에도 귀신(鬼神)이 있는 것이며, 천성(天性)이 여물지 못하면 생전(生前)에 본능생활(本能生活)을 하던 감정(感情)만이 남아서 귀(鬼)만 있고 귀신(鬼神)이 없는 것이다. 생전(生前)의 본능(本能)인 정(情)은 사후(死後)에도 유(游)하여 귀(鬼)가 되는데, 동물(動物)은 순전(純全)히 본능생활(本能生活)을 하고 있으니, 그러므로 동물(動物)의 사후(死後)에도 반드시 귀(鬼)가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사람과 동물(動物)이 사후(死後)에 서로 환생(幻生)하여 사람의 귀(鬼)가 동물(動物)로 태어나기도 하고 동물(動物)의 귀(鬼)가 사람으로 태어나고 하는 것이다.


■ 인간세계(人間世界)와 귀신세계(鬼神世界)신(神)의 분신작용(分身作用)에 의(依)하여 사람은 귀신(鬼神)을 체(體)로 하여 생(生)하고 그 사후(死後)에는 도루 귀신(鬼神)이 되어 다시 무형(無形)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그러므로 천지간(天地間)에는 무형(無形)한 귀신작용(鬼神作用)이 행(行)하여, 마치 인간사회(人間社會)에 수다(數多)한 심정작용(心情作用)이 행(行)함과 같은 것이며, 이 까닭에 천상(天上)에는 무형(無形)한 신세계(神世界)가 있어 지상(地上)의 인간세계(人間世界)와 유사(類似)한 조직(組織)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역경(易經)에「항어인호항어귀신호(况於人乎况於鬼神乎)」아 하여 매매(每每)사람과 귀신(鬼神)을 병칭(倂稱)한 것은 유형(有形)한 인간세계(人間世界)와 무형(無形)한 신세계(神世界)가 이 천지간(天地間)에 병존(倂存)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천상(天上)의 신세계(神世界)와 지상(地上)의 인간세계(人間世界)가 그 조직(組織)이 유사(類似)하고 그 화복(禍福)도 또한 유사(類似)하므로 겸괘(謙卦)에는「귀신해영이복겸(鬼神害盈而福謙) 인도오영이호겸(人道惡盈而好謙)」이라 하니 이는 귀신(鬼神)과 사람의 두 세계(世界)가 서로 통(通)하여 공통(共通)한 생리(生理)를 가지고 그 미워하고 좋아하고 함이 상동(相同)하다 함을 말함이다. 또 사람의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은 생전(生前)에 천성(天性)의 여문 사람이라, 그러므로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이 천명(天命)을 받들어 시명작용(施命作用)을 행(行)하고 인간세계(人間世界)에 대(對)하여 해(害)와 복(福)의 권능(權能)을 행사(行使)하는 것이니, 인간사회(人間社會)에서 고래(古來)로 교영(驕盈)한 자(者)가 망(亡)하고 겸양(謙讓)한 자者가 흥(興)하는 것은 모두 귀신(鬼神)의 해복작용(害福作用)에 의依한 것이다.
천상(天上)의 신세계조직(神世界組織)은 인간사회(人間社會)와 같은 고하계급(高下階級)이 있는데, 인간사회(人間社會)의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그 고하계급(高下階級)이 인격(人格)의 고하(高下)로써되지 아니하고 주(主)로 생장경쟁(生長競爭)에 의(依)한 세력강약(勢力强弱)으로써 결정(決定)되는 것이나, 신세계(神世界)에는 생장경쟁(生長競爭)이라는 것이 없고 유일신(唯一神)의 지엄(至嚴)하신 주재하(主宰下)에 전혀(專)혀 선악(善惡)의 정도(程度)로써 그 계급(階級)의 고하(高下)가 결정(決定)되는 것이다. 종교(宗敎)를 창설(創設)하신 석가(釋迦) 공자(孔子) 예수 같은 성인(聖人)은 신도(神道)로써 교(敎)를 설(設)하시고 생장성(生長成)의 시운(時運)에 맞춰서 민중(民衆)을 가르쳐서 유일신(唯一神)의 사업(事業)을 직접(直接) 대행(代行)하였으므로 이는 바로 유일신(唯一神)의 체(體)의 일부(一部)로 되어 있는 것이오 귀신(鬼神)이 아니며 그러므로 삼성인(三聖人)같은 이는 달에 거(居)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神)의 위거(位居)하시는 태양(太陽)을 중심中心으로하여 환행(圜行)하고 있는 어느 지근(至近)한 별에 거(居)하시는 것이며, 그 외(外)의 현철(賢哲)들은 귀신(鬼神)이 되어 달에 의부(依附)하는 것이오, 생전(生前)에 악(惡)을 행(行)한 자(者)는 귀(鬼)로 되어 지상(地上)에 의부(依附)하지 못하고 지하(地下)에 있으니, 지하(地下)는 화산(火山)의 갈무리하여 있는 곳이라 이가 곧 종교(宗敎)에서 말하는 바의 열화(熱火)가 끓는 지옥(地獄)이오, 그 외(外)의 평범(平凡)한 자(者)는 또한 귀성(鬼性)이 승(勝)하여 지상(地上)에 의부(依附)하는 것이다. 이 사층(四層)의 계급(階級)은 공간(空間)의 천풍산지(天風山地)의 계층(階層)과 비슷한 것이오, 인간(人間)의 화복(禍福)을 주관(主管)하는 자(者)는 달에 의부(依附)하고 있는 귀신(鬼神)이오, 인간사회(人間社會)에서 평범(平凡)한 사람들과 상접(相接)하는 자(者)는 주(主)로 지상(地上)의 귀(鬼)이니 계사(繫辭)에 인모귀모(人謀鬼謀)라든가 기제미제괘(旣濟未濟卦)에 벌귀방(伐鬼方)이라든가 하는 것은 모두 지상(地上)의 귀(鬼)를 말한 것이다.


■ 귀신(鬼神)의 영허소장(盈虛消長)사람의 씨는 일월(日月)에서 생(生)하는데 일월(日月)에는 영허(盈虛)하는 이(理)가 있고, 사람의 천성(天性)은 수화(水火)로써 체(體)를 삼는데, 수화(水火)에는 취산(聚散)의 이(理)가 있으니, 그러므로 사람의 천성(天性)에 일월수화(日月水火)의 영허취산(盈虛聚散)하는 이(理)가 있고 사람으로 더불어 본성(本性)이 동일(同一)한 귀신(鬼神)에 또한 영허취산(盈虛聚散)하는 이(理)가 있는 것이다. 풍괘(豐卦)에「일(日)이 중(中)한즉 측(昃)하고 월(月)이 영(盈)한즉 식(食)하나니 천지(天地)의 영허(盈虛)도 시(時)로 더불어 소(消)하고 식(食)하고 하건대 하물며 사람이며 하물며 귀신(鬼神)이라오」하니 이는 천지일월(天地日月)도 그 시(時)를 따라서 영허소식(盈虛消息)이 있는 것인데 사람이나 귀신(鬼神)이 어찌 영허소식(盈虛消息)하는 시(時)가 없으리오 함이다. 소식(消息)이라 함은 종(終)하고 새로 생(生)한다 함이라, 사람은 생사(生死)하는 것이 곧 소식(消息)이오 귀신(鬼神)은 취산(聚散)하는 것이 곧 소식(消息)이다.
사람과 귀신(鬼神)은 일월(日月)에서 생(生)하는 것인데, 일월(日月)에 운행(運行)하는 도(度)가 있어 주야(晝夜) 회망(晦望)의 영허소식(盈虛消息)이 있으므로 사람의 생장성(生長成)에도 도(度)가 있고 귀신(鬼神)의 취산(聚散)에도 시(時)가 있어, 사람과 귀신(鬼神)이 시(時)로 더불어 소식(消息)하는 것이다. 사람과 귀신(鬼神)의 소식(消息)이라 함은 사람이 죽어서 귀신(鬼神)이 되고 귀신(鬼神)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하는 것이 곧 소식(消息)인데 이 소식(消息)에는 환생(幻生)과 장존(長存)의 두 가지 형태(形態)가 있는 것이다.
천지(天地)가 영허(盈虛)하여 일월(日月)의 광명(光明)이 소식(消息)하면서 주야회망(晝夜晦望)이 순환(循環)하니, 이것은 광명(光明)의 환생(幻生)하는 상(象)이오, 광명(光明)은 비록 소식(消息)하되 광명(光明)의 본체(本體)는 항상(恒常)하여 생멸(生滅)이 없으니, 이것은 광명(光明)의 장존(長存)하는 상(象)이다. 일월(日月)의 광명(光明)에 환생(幻生)과 장존(長存)의 상(象)이 있으므로 일월(日月)에서 생(生)한 사람과 귀신(鬼神)에도 또한 환생(幻生)과 장존(長存)의 상(象)이 있으니, 귀신(鬼神)은 달에서 사람의 씨의 체(體)로 되고 사람의 사후(死後)에 다시 귀신(鬼神)이 되어 귀신(鬼神)에 소식(消息)이 있는 것은 귀신(鬼神)의 환생(幻生)하는 상(象)이오 귀신(鬼神)의 형태(形態)에는 소식(消息)이 있으되 귀신(鬼神)의 본원(本源)은 항존(恒存)하여 생멸(生滅)이 없는 것은 귀신(鬼神)의 장존(長存)하는 상(象)이다. 귀신(鬼神)의 환생(幻生)과 장존(長存)의 상(象)은 사람의 생장성(生長成)하는 형태(形態)에도 나타나고 있으니, 사람이 무형(無形)한 귀신(鬼神)에서 생(生)하여 유형(有形)으로 화(化)하는 것은 곧 귀신(鬼神)이 무형(無形)으로부터 유형(有形)으로 화(化)한 것이므로 사람의 출생(出生)하는 것은 귀신환생(鬼神幻生)의 상(象)이 되는 것이오 사람의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귀신(鬼神)의 작용(作用)이 생(生)하는 것은 곧 귀신(鬼神)이 유형중(有形中)에 갈무리하여 항존(恒存)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여무는 것은 귀신장존(鬼神長存)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사람과 귀신(鬼神)은 그 본원(本源)이 동일(同一)하며 다만 육체(肉體)의 사생(死生)과 형(形)의 현장(顯藏)이 있을 뿐이니, 그러므로 사(死)의 속에 생(生)의 원(原)이 있고 생(生)의 속에 사(死)의 본(本)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생(生)하는 것은 귀신환생(鬼神幻生)의 상(象)이오 사람의 여무는 것은 귀신장존(鬼神長存)의 상(象)인데, 사람의 자라는 것은 생(生)과 성(成)의 중간(中間)에 있어 귀신(鬼神)의 작용(作用)을 내부(內部)에 포함(包含)하고 형질(形質)이 외면(外面)에 나타나서 유형(有形)한 형질(形質)을 기르기 위(爲)하여 물질생활(物質生活)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생(生)하면 반드시 자라야하고 또 사람이 여물기 위(爲)하여는 반드시 자라야 하는 것이니, 이 자라는 기간중(期間中)에 잘 자라면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유형(有形)속에 귀신(鬼神)의 작용(作用)이 생(生)하여 그 사후(死後)에도 귀신(鬼神)이 장존(長存)하는 것이다.


第四章   사람의 생생(生生)
第一節   생생(生生)의 환운동(圜運動)
■ 우주(宇宙)는 원상조직(圓狀組織)만물(萬物)의 생생(生生)에는 종(終)하고 시(始)함이 있어, 종(終)하는데서 다시 시(始)하여 순환(循環)하는 것이오, 순환(循環)하여 끝이 없은 연후(然後)에 그 생생(生生)이 영원(永遠)하여 궁(窮)치 아니하는 것이니, 이것을 환운동(圜運動)이라하며, 천지(天地)는 자체(自體)가 영원불궁(永遠不窮)히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반드시 환운동(圜運動)을 행(行)하는 것이오「건(乾)은 환(圜)이 된다」함은 천지(天地)의 환운동(圜運動)을 말한 것이다.
환운동(圜運動)에는 공간운동(空間運動)과 시간운동(時間運動)의 두 가지 형태(形態)가 있다. 천지(天地)의 공간(空間)은 한 광명체(光明體)로 되어 광명(光明)의 비치는 범위(範圍)안이 곧 천지(天地)의 공간(空間)인데, 광명(光明)은 일훈(日暈) 월훈(月暈)과 같이 원상(圓狀)으로 되어 있으므로 공간(空間)도 또한 원상(圓狀)으로 되어 있고, 공간(空間)이 원상(圓狀)으로 되어 있는 까닭에 공간(空間)을 돌고있는 지구(地球)와 달도 모두 환전(圜轉)하는 환운동(圜運動)을 행(行)하는 것이다.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은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의 양작용(兩作用)으로서 시간(時間)의 추이(推移)하는 구간(區間)이 곧 공간(空間)이오 공간(空間)을 역행(歷行)하는 기간(期間)이 곧 시간(時間)이다. 공간(空間)에 환운동(圜運動)이 있으므로 시간(時間)에도 또한 환운동(圜運動)이 있어 지구(地球)와 달의 공간적(空間的) 환운동(圜運動)은 또한 주야(晝夜) 사시四時 회망(晦望)과 같은 시간적(時間的) 환운동(圜運動)으로 되는 것이오 따라서 천지간(天地間)에 생생(生生)하고 있는 모든 생물(生物)의 생생(生生)에도 반드시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의 환운동(圜運動)이 있어, 끝없는 생생(生生)을 계속(繼續)하는 것이니, 초목(草木)의 열매에서 싹이 나고 싹이 줄기로 되고 줄기에 다시 열매가 맺히며 충류(虫類)의 난(卵)에서 유충(幼虫)이 나고 유충(幼虫)이 성충(成虫)으로되고 성충(成虫)이 다시 난(卵)을 생(生)하며, 조류(鳥類)가 난(卵)을 생(生)하고 난(卵)에서 다시 조(鳥)가 생(生)하고 함과 같은 것은, 모두 공간적(空間的) 환운동(圜運動)과 시간적(時間的) 환운동(圜運動)의 양면(兩象)을 겸(兼)하여 세세(世世)로 계승(繼承)하여 궁(窮)치 아니하는 것이다.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함에는 천지(天地)와 생물(生物)과의 사이에 또한 환운동(圜運動)이 있어야하고, 만일(萬一) 환운동(圜運動)이 없으면 직선운동(直線運動)이 되고 직선운동(直線運動)은 어느때든가 또는 어느곳에서든가 반드시 끝나는데가 있고, 끝나는데가 있으면 궁(窮)함이 있어 영원(永遠)치 못한 것이다.
천지(天地)의 생생운동(生生運動)은 모두 환운동(圜運動)을 행(行)하고 있으므로 만물(萬物)의 구조(構造)도 모두 원상(圓狀)으로 되어 있으니, 저 일월(日月) 지구(地球)의 형태(形態)가 원상(圓狀)을 띠고 있음은 물론(勿論)이오, 지상(地上)에서 우리 인간(人間)을 비롯하여 조수(鳥獸) 충어(虫魚) 식물등(植物等)의 구조(構造)가 모두 원상(圓狀)으로 되어 원주상(圓柱狀)의 체간(體幹) 지속(肢屬) 경엽등(莖葉等)과 평원상(平圓狀)의 안면(顔面) 목엽등(木葉等)과 원구상(圓球狀)의 안구(眼球) 자란(子卵) 과실등(果實等)과 원공상(圓孔狀)의 이공(耳孔) 비공(鼻孔) (구강등口腔等) 무수(無數)한 원상물(圓狀物)이 나열(羅列)되어 있고 심지어(甚至於) 우리의 주위(周圍)를 둘러싼 산봉(山峰)이 모두 원상(圓狀)이오 초목(草木)의 엽상(葉上)에 맺힌 수적(水滴)도 원구상(圓球狀)이오 수은(水銀)이나 철속(鐵屬)의 용액(鎔液)을 산포(散布)하면 또한 원구상(圓球狀)이 되니, 이는 천지(天地)의 운동(運動)이 모두 원공중(圓空中)을 환행(圜行)하여 잠시도(暫時)도 쉬지 아니하는 까닭에 만물(萬物)이 모두 그 작용(作用)을 받아서 원상(圓狀)을 띠지 아니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천(天)에서 씨를이지(地)에 하시(下施)하면 그 씨는 생물(生物)이 되어 어떠한 형태(形態)로든지 다시 천(天)으로 환행(圜行)하는 것이오, 생물(生物)이 천(天)으로 환행(圜行)한다 함은 부모(父母)가 자(子)를 생(生)하고 자(子)가 부모(父母)를 닮아서 세세계승(世世繼承)하는 것이 곧 공간적(空間的) 환운동(圜運動)과 시간적(時間的) 환운동(圜運動)을 통(通)하여 천(天)으로 환행(圜行)하는 상(象)이다. 만물(萬物)은 신(神)에서 생(生)하여 신(神)을 부모(父母)로 하므로 만물(萬物)이 장성(長成)하여 신(神)을 닮는 것이 곧 신(神)과 만물(萬物)의 환운동(圜運動)인데 신(神)은 무형(無形)하니, 만물(萬物)이 어떻게 신(神)을 닮을 수가 있는가 하면 신(神)이라 함은 우주생명체(宇宙生命體)의 정신(精神)이라 만물(萬物)의 정신(精神)이 신(神)의 형상(形像)과 일치(一致)하는 것이 곧 신(神)을 닮는 것이며 지상(地上)에 출생(出生)한 생물중(生物中)에서 식물(植物)과 동물(動物)은 비록 신(神)을 부모(父母)로하고 있으되 그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신(神)을 닮을 수가 없으므로 세세계승(世世繼承)하는 자(子)가 되지 못하는 것이오 오직 사람은 신(神)의 자손(子孫)으로서 그 천성(天性)이 신(神)을 닮아서, 천성(天性)에 신작용(神作用)이 있고 사후(死後)에 다시 귀신(鬼神)이 되는 것이므로 신(神)과 사람과의 사이에는 공간적(空間的) 시간적(時間的)으로 환운동(圜運動)이 행(行)하고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천지(天地)의 신(神)은 자체(自體)가 영원(永遠)히 생생(生生)하시기 위(爲)하여 사람을 생(生)하여 함께 환운동(圜運動)을 행(行)하는 것이오, 여기에 사람의 영귀성(靈貴性)이 있는 것이다.


■ 동식물(動植物)과 사람의 차이(差異)동물(動物)에도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없는 것은 아니나, 동물(動物)의 정신(精神)은 신(神)을 닮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사람과 동물(動物)은 모두 그 씨의 발생당시(發生當時)에 이미 그 체(體)의 조직(組織)이 전연(全然) 상이(相異)하고 있는 까닭이다. 생물(生物)의 조직(組織)은 모두 수화(水火)로써 체(體)를 삼고 있는데, 사람의 체(體)는 수화(水火)의 조화(調和)된 태궁(胎宮)에서 태육(胎育)되므로 한열(寒熱)이 조절(調節)되어 두부(頭部)는 한(寒)하고 한(寒)한 부분(部分)에는 털이 생(生)하며, 얼굴이나 몸같은 것은 수화(水火)의 팽탕작용(烹湯作用)에 의(依)하여 열(熱)하고 열(熱)한 부분(部分)에는 털이 생(生)치 아니하여 혁(革)이 되는 것이니, 태궁(胎宮) 혁괘(革卦)의「수화상식(水火相息)」과「혁면(革面)」은 이 뜻을 말한 것으로서, 수화상식(水火相息)이라 함은 팽탕작용(烹湯作用)이 행(行)함이오 혁면(革面)이라 함은 동물(動物)의 면상(面上)에는 털이 있어 모피(毛皮)가 되고 사람의 면상(面上)에는 털이 없어서 혁(革)이 된다 함이다. 사람은 몸에 양기(陽氣)가 성(盛)하여 화기(火氣)가 염상(炎上)하므로 신체(身體)는 화(火)의 염상체(炎上體)와 같이 삼각형(三角形)으로 직립(直立)하여 천지(天地)를 관통(貫通)하고 천성(天性)이 또한 화염체(火炎體)로 되어 두뇌(頭腦)에 의부(依附)하여 천(天)을 향(向)하며 천성(天性)은 수화(水火)가 조화(調和)되어 수(水)는 투명(透明)하고 화(火)는 광명(光明)하므로 투명작용(透明作用)과 광명작용(光明作用)으로써 사물(事物)을 접응(接應)하여 신작용(神作用)이 행(行)하며 화(火)의 양기(陽氣)의 발양작용(發揚作用)으로 인(因)하여 언어(言語)를 발선(發宣)하며, 신체(身體)가 직립(直立)한 까닭에 수지(手指)를 써서 기물(器物)을 공작(工作)하며, 언어(言語)와 수공(手工)이 있는 까닭에 문자(文字)를 발명(發明)하여 사부(師傅)의 교(敎)가 행(行)하니, 사부(師傅)의 교(敎)는 신도(神道)이라 사람이 신도(神道)를 행(行)하는 것이 곧 신(神)을 닮는 소이(所以)이다. 동물(動物)은 그 씨의 발생(發生)하는 때에 이미 수기(水氣)가 승(勝)하고 화기(火氣)가 적어서 염상(火炎)과 같은 염상체(炎上體)가 되지 못하므로 그 태궁(胎宮)에 수화(水火)의 팽탕작용(烹湯作用)이 행(行)치 못하여, 소위 고등동물(高等動物)들도 얼굴이나 전신(全身)에 털이 생(生)하여 모피(毛皮)에 싸여 있으며 수(水)의 형(形)은 수평(水平)으로 되어 지면(地面)을 횡평(橫平)으로 흐르고 있으므로 수기(水氣)가 승(勝)하고 있는 동물(動物)의 체(體)는 모두 횡평(橫平)하여 배(背)를 하늘로 하고 복(腹)을 땅으로 하여 천지(天地)를 직립(直立).치 못하며 사람은 그 체(體)가 직립(直立)하므로 그 가족계통(家族系統)도 위의 조상부모(祖上父母)로부터 아래의 자손(子孫)에 이름과 같은 종계(縱系)와 부부(夫婦) 형제(兄弟)와 같은 횡계(橫系)와의 양계(兩系)가 동거(同居)하여 수화(水火)의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는데, 동물(動物)은 그 체(體)가 횡평(平橫)하므로 그 새끼를 유양(乳養)하는 기간(期間) 이외(以外)에는 종계족속(縱系族屬)이라는 것이 없고 오직 자웅상종(雌雄相從)하는 횡계(橫系)만이 있는 것이오, 사람이 천지(天地)의 신(神)을 조고(祖考)로 모시는 것도 또한 종계(縱系)의 이(理)에 이(依)한 것이다. 동물(動物)은 화기(火氣)가 부족(不足)하여 화(火)의 광명(光明)이 약(弱)하므로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어두우며, 양기(陽氣)가 적어서 발선(發宣)하는 힘이 없으므로 언어(言語)를 발(發)치 못하는 것이다. 또 사람의 식물(食物)은 대개(大槪) 수화(水火)로써 가공(加工)하여 그 정(精)을 섭취(攝取)하고, 음용수(飮用水)는 도처(到處)에 있는 것이로되 오직 생명체(生命體)인 토중(土中)에서 솟아 나오는 물이 생명수(生命水)로 되어 물의 최정(最精)한 것이므로 음용수(飮用水)는 정천(井泉)을 파서 마시는 것인데, 동물(動物)의 식료(食料)는 수토(水土)에서 생(生)하는 천연물(天然物)을 가공(加工)함이 없이 그대로 조식(粗食)하고 있으니, 동물(動物)은 화기(火氣)가 적어서 광명(光明)치 못하고 수기(水氣)가 비록 승(勝)하되 수(水)가 탁(濁)하여 투명(透明)치 못하고 한 까닭에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어둡고 탁(濁)하여 신(神)을 닮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天地)는 영원불궁(永遠不窮)한 환운동(圜運動)을 행(行)하고 생생(生生)을 세세계승(世世繼承)하기 위(爲)하여 먼저 식물(植物)을 생(生)하고 그 식물(植物)을 생양자료(生養資料)로 하여 한 차원(次元)의 높은 동물(動物)을 생(生)하고, 다시 식물(植物)과 동물(動物)을 생양자료(生養資料)로 하여 더 한 차원(次元)의 높은 사람을 생(生)하고 사람의 천성(天性)으로 하여금 신(神)을 닮게 하여 신과(神)과 사람이 함께 환운동(圜運動)을 행(行)하고 있으니, 이것이 천지(天地)가 사람을 생(生)한 소이(所以)이오, 사람은 천지(天地)의 영원(永遠)한 생생작용(生生作用)의 일역(一役)을 맡기 위(爲)하여 이 세상(世上)에 출생(出生)한 것이다. 동물(動物)이 식물(植物)을 생양자료(生養資料)로하고 사람이 동식물(動植物)을 생양자료(生養資料)로하는 것은 만물(萬物)의 자라는 때에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의 작용(作用)을 아울러 행(行)하는 천지(天地)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이니 이는 동물(動物)과 식물(植物)은 양기(陽氣)가 부족(不足)하고 형질(形質)이 승(勝)하고 천성(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신(神)을 닮지못하는 것이므로 식물(植物)은 자체(自體)의 형질(形質)을 희생(犧牲)하여 신(神)에게 바쳐서 윗 차원(次元)의 동물(動物)의 형(形質)로 화(化)하고, 동물(動物)이 또한 자체(自體)의 형질(形質)을 희생(犧牲)하여 신(神)에게 바쳐서 윗 차원(次元)의 사람의 형질(形質)로 화(化)하는 것으로서 모든 생물(生物)이 일련(一聯)이 되어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으로써 신(神)을 닮는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운동(運動)이다.
식물(植物) 동물(動物) 사람의 일련(一聯)의 관계(關係)는 천지(天地)의 창조(創造)될때에 이미 정(定)하여진 것이니, 이것을 생장성(生長成)의 상(象)으로써 보건대, 신(神)이 처음으로 생물(生物)을 창조(創造)할 때에 생물(生物)의 기본조직(基本組織)인 형질(形質)을 먼저 만들고 순전(純全)히 신(神)의 뜻인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따르게 하고 행동(行動)의 자유(自由)를 주지 아니하니, 이는 생물(生物)의 기본조직(基本組織)이 행동(行動)의 자유(自由)를 가지고 있으면 신(神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어겨서 스스로 자체(自體)의 조직(組織)을 파괴(破壞)하는 일이 있는 까닭이오, 생물(生物)의 기본조직(基本組織)은「생(生)」의 상(象)인데, 기본조직(基本組織)을 파괴(破壞)하는 것은 곧 자체(自體)의 생(生)을 파괴(破壞)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생물(生物)의 기본조직(基本組織)에는 자유(自由)가 없고 오직 자연법(自然法則)을 순종(順從)할뿐이며, 이것이 최초(最初)로 창조(創造)된 식물(植物)이다.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에는 모두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의 양상(兩象)이 있는데 식물(植物)은 행동(行動)의 자유(自由)가 없으므로 그 운행(運行)이라고는 토중(土中)에 착근(着根)하여 주위(周圍)에 있는 영양(營養)을 취(取)하고 타력(他力)에 의(依)하여 생식작용(生殖作用)을 행(行)하는등(等)의 본능생활(本能生活)을 영위(營爲)할뿐이니 이는 물(物)이 다만 조직체(組織體)를 가지고 살고만 있는 생(生)의 상(象)으로써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어기는 일이 없이 신(神)의 뜻을 순종(順從)하고 있으나 행동(行動)의 자유(自由)가 없는 까닭에 또한 신(神)에게로 환행(圜行)하는 작용(作用)도 없는 것이다. 식물(植物)에는 초목(草木)의 수다(數多)한 종류(種類)가 있어 그 수(數)를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번잡(繁雜)하니, 이는 식물(植物)이 각기(各其) 신(神)의 체(體)의 작용(作用)을 일부분(一部分)씩을 나누어 받아서 그 개체(個體)를 삼는 까닭에 신(神)의 체(體)의 전체(全體)가 모두 부분(部分)으로 나뉘어서 수다(數多)한 식물종류(植物種類)가 생긴 것이오, 이 식물(植物)의 전종류全(種類)의 작용(作用)을 하나로 종합(綜合)하여 놓으면 또한 신(神)의 체(體)의 전체작용(全體作用)을 이루는 것이니 그러므로 식물(植物)의 전종류(全種類)는 곧 신(神)의 체(體)의 전체(全體)로서 지상(地上)의 모든 생물(生物)의 기본조직(基本組織)이 되는 것이다.
식물(植物)의 다음에는 식물(植物)의 기본조직(基本組織)인 형질(形質)을 바탕으로 하여 그 형질(形質)에는 역시(亦是) 조직(組織)을 변개(變改)할만한 행동(行動)의 자유(自由)가 없고 신(神)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따라서 생(生)하고 자라고 노(老)하고 죽고하면서 다만 그 형질(形質)을 움직여서 생육(生育) 생식(生殖) 장수(長壽)의 세 본능(本能)을 수행(遂行)할 수 있는 행동(行動)의 자유(自由)를 가지는 한 생물(生物)이 창조(創造)되니, 이가 곧 동물(動物)이다. 그러므로 동물(動物)은 식물(植物)의 형질(形質)을 그 체(體)의 기본조직(基本組織)으로하여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순응(順應)하고 거기에 본능생활(本能生活)을 수행(遂行)할 수 있는 행동(行動)의 자유(自由)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본능생활(本能生活)의 자유(自由)는 생물(生物)이 자라기 위(爲)하여는 가장 기본(基本)되는 자유(自由)인데, 동물(動物)은「장(長)」의 상(象)이되므로 자라는 동안의 본능생활(本能生活)을 영위(營爲)하기 위(爲)하여 행동(行動)의 자유(自由)가 있는 것이다. 다만 동물(動物)에는 천성중(天性中)의 본능(本能)인 정(情)만 있고 천성(天性)의 여무는 작용(作用)이 없으므로 신(神)에게로 환행(圜行)하는 작용(作用)이 없으며, 동물(動物)에도 수다(數多)한 종류(種類)가 있는 것은 동물(動物)이 각기(各其) 신(神)의 정(情)의 일부분(一部分)씩을 나누어 받아서 그 본능(本能)을 삼는 까닭에 신(神)의 정(情)의 전체(全體)가 나뉘어서 수다(數多)한 동물종류(動物種類)가 생긴 것이오, 이 동물(動物)의 전종류(全種類)의 본능(本能)을 하나로 종합(綜合)하여 놓으면 또한 신(神)의 정(情)의 전체(全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물(動物)의 전종류(全種類)의 본능(本能)은 곧 신(神)의 정(情)의 전체(全體)로서 이것이 모든 생물(生物)의 본능(本能)의 원(源)이 되는 것이다.
동물(動物)의 다음에는 식물(植物)의 형질(形質)을「생(生)」의 기본조직(基本組織)으로하여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따르고 동물(動物)의 본능(本能)을「자라는 작용(作用)」으로하여 자유(自由)로이 행동(行動)하고 그 위에 신(神)에게로 환행(圜行)하기 위(爲)하여 그 형상(形象)은 신(神)의 형상(形象)을 닮고 언어(言語)의 자유(自由)를 가지는 한 생물(生物)이 창조(創造)되니, 이가 곧 사람이다. 사람은 천지유일신(天地唯一神)의 형상(形像)대로 되어 있으므로 세계인류(世界人類)가 단일종류(單一種類)로 되고 언어(言語)는 천성(天性)의 여무는 작용(作用)을 가진 자(者)만이 사용(使用)할 수 있는 것인데, 설괘(說卦)에「신(神)이라 함은 만물(萬物)을 묘(妙)하게하고 언(言)을 하는 자(者)이라」하여 신(神)이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하고 사람에게 언어(言語)를 주어 서로 수작(酬酌)한다 함을 말함이니 이는 사람은「성(成)」의 상(象)으로서 식물(植物)의 형질(形質)과 동물(動物)의 본능(本能)을 합(合)하고 또 신(神)의 언어(言語)를 배워서 천성(天性)의 여무는 작용(作用)을 행(行)한다 함이며, 사람이 언어(言語)를 통(通)하여 신(神)으로 더불어 수작(酬酌)할 수 있는 것이 곧 능(能)히 신(神)에게로 환행(圜行)하는 소이(所以)이다.
세인중(世人中)에는 흔히 사람을 동물(動物)의 일종류(一種類)로 보는 일도 있으나 사람과 동물(動物)은 그 생생(生生)하는 차원(次元)이 전연(全然)다르다. 사람은 식물(植物)의 형질(形質)로써 육체(肉體)의 조직(組織)을 삼고 그것이「생(生)」의 상(象)이 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육체(肉體)는 식물(植物)과 같이 신(神)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따라서 생장노사(生長老死)하고 있으니, 인체중(人體中)에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순종(順從)하는 것은 오직 이 육체(肉體)이며, 인체(人體)가 식물(植物)의 요소(要素)를 가지고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따라서 생(生)하고 있으므로 사람은 반드시 식물(植物)을 취(取)하여 자체생양(自體生養)의 자료(資料)를 삼는 것이며, 사람은 동물(動物)의 자유행동(自由行動)하는 본능(本能)으로써 생활(生活)의 본능(本能)을 삼고 그것이「장(長)」의 상(象)이 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육체(肉體)는 동물(動物)과 같이 본능(本能)을 따라서 행동(行動)하고 있으니 이 까닭에 인간(人間)의 본능생활(本能生活)은 모두 동물적(動物的)이며, 인체(人體)가 동물(動物)의 요소(要素)를 가지고 본능생활(本能生活)을하여 자라고 있으므로 동물(動物)을 취(取)하여 자체생양(自體生養)의 자료(資料)를 삼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생활(生活)이 본능생활(本能生活)에 그친다고 하면 이는 동물(動物)과 별(別)로 차별(差別)이 없다고 할 것이나 사람은 그 형상(形像)이 신(神)을 닮고 언어(言語)를 통(通)하여 신(神)으로 더불어 수작(酬酌)할 수가 있으므로 사람의 육체중(肉體中)에 동물(動物)의 요소(要素)가 들어 있을 뿐이오 동물(動物)의 일종류(一種類)는 아니다. 사람과 동물(動物)의 생장성(生長成)하는 상(象)을 비교(比較)하여 보더라도 천지자연수(天地自然數)에 양수(陽數)의 종(終)인 구수(九數)는 자라는 극수(極數)가되고 음수(陰數)의 종(終)인 십수(十數)는 여무는 극수(極數)가 되는데, 사람은 남체(男體)는 구규(九竅)가 열리고 여체(女體)는 십규(十竅)가 열려서 음양장성(陰陽長成)의 극수(極數)를 가지고, 남녀(男女)가 모두 여체(女體)의 십규(十竅)에서 구합삭(九合朔)을 지낸 십삭(十朔)만에 출생(出生)하므로 자연수(自然數) 오십오(五十五)가 구전(具全)하여 음양(陰陽)이 조절(調節)되고 신(神)의 작용(作用)이 행(行)하는 것이며, 동물(動物)은 비록 고등동물(高等動物)이라 하더라도 구규(九竅)만이 열리고 십규(十竅)가 되지 못하므로 육체(肉體)만 자라고 천성(天性)이 여물지 못하는 것이니, 이가 사람이 동물(動物)보다. 한 차원(次元) 높은 위(位)에 있는 소이(所以)이며, 이 까닭에 동물(動物)은 자체(自體)를 희생(犧牲)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자료(資料)가 되는 것이 자체(自體)의 형질(形質)을 한 차원(次元) 높은 사람의 형질(形質)로 화(化)하여 신(神)에게로 한 차원(次元) 접근(接近)하는 소이(所以)이다. 신(神)은 사람으로 더불어 환행(圜行)하기 위(爲)하여 사람을 생(生)하고 사람을 기르기 위(爲)하여 동식물(動植物)을 희생(犧牲)하고 있으므로 사람은 반드시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신(神)을 닮는 수양(修養)을 쌓은 연후(然後)에, 자체(自體)를 희생(犧牲)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하고 있는 동식물(動植物)에 대(對)하여 그 은덕(恩德)을 보답(報答)함이 되는 것이오, 만일 사람이 그 천성(天性)을 여물게 하지 못하고 한갓 자기 육체(肉體)가 살찌기 위(爲)하여 다른 생물(生物)만을 희생(犧牲)하여 없애면 이는 무고살생(無故殺生)이 되어 천지생생(天地生生)의 대덕(大德)에 어그러지는 것이다


■ 신(神)과 사람의 상우(相祐)천지(天地)는 영원불궁(永遠不窮)히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사람을 생(生)하고 사람은 신(神)을 닮아서 세세계승(世世繼承)한 연후(然後)에 생생(生生)의 임무(任務)를 다하는 것이니, 사람이 신(神)의 법칙(法則)을 본받아서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는 것이 곧 신(神)을 닮는 일이다. 우(祐)라함은 천우신조(天佑神助)라는 뜻으로서 사람이 신(神)을 돕고 신(神)이 사람을 돕고 함을 우(祐)라 하는 것이니, 계사(繫辭)에「가(可)히 더불어 신(神)을 우(祐)한다」함은 사람이 신(神)을 우(祐)함을 말함이오 대유괘(大有卦)에「천(天)으로부터 우(祐)한다」함은 신(神)이 사람을 우(祐)함을 말함이다. 사람이 신(神)을 우(祐)한다 함은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함이오 신(神)의 사업(事業)이라 함은 신(神)이 천지(天地)의 영원(永遠)한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하여 사람으로 더불어 환운동(圜運動)을 행(行)하는 것이 곧 신(神)의 사업(事業)이다. 그러므로 천지간(天地間)에는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일보다 더 큰 사업(事業)이 없고 만물중(萬物中)에는 사람이 가장 영귀(靈貴)한 것이며, 인간사회(人間社會)의 생생사업(生生事業)은 모두 신(神)이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사업(事業)으로서 정치(政治) 학술(學術)같은 것도 비록 그것이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하여 영위(營爲)되고 있으되 그 사업(事業)은 신(神)의 계획(計劃)에 의(依)한 사업(事業)으로서 사람들이 신(神)의 뜻을 받들어서 행(行)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유의(自由意志)가 있어서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할 수도 있고 또 해(害)할 수도 있는지라, 사람이 신(神)의 뜻을 받들어서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는 것은 천(天)을 순(順)하는 것이오 천(天)을 순(順)하는 자(者)는 천(天)의 우(祐)를 받는 것이며, 신(神)의 뜻을 받들지 아니하고 불선(不善)을 행(行)하여 도리어 사람의 생생(生生)을 해(害)하는 것은 천(天)을 역(逆)하는 일이오 천(天)을 역(逆)하는 자(者)는 천(天)의 우(祐)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신(神)의 자손(子孫)으로서 신(神)으로 더불어 환운동(圜運動)을 행(行)하고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는 것이 곧 신(神)을 닮는 것이니, 환(圜)함과 우(祐)함과 닮음과는 동일(同一)한 일에 대한(對)한 표현(表現)을 달리한 것으로서, 이것을 생생운동(生生運動)하는 면(面)으로써 보면 환운동(圜運動)이 되고, 세세계승(世世繼承)하는 면(面)으로써 보면 신(神)을 닮음이 되고, 사업(事業)을 행(行)하는 면(面)으로써 보면 신(神)을 우(祐)함이 되는 것이다. 건문언(乾文言)에「대인(大人)은 귀신(鬼神)으로 더불어 그 길흉(吉凶)을 합(合)한다」하니 이는 대인(大人)이 길(吉)하다 하는 것을 귀신(鬼神)도 길(吉)하다하고 대인(大人)이 흉(凶)하다하는 것을 귀신(鬼神)도 흉(凶)하다 한다는 뜻으로서 대인(大人)이 신(神)을 닮아서 그 천성(天性)에 신작용(神作用)이 있으므로 대인(大人)과 귀신(鬼神)이 완전(完全)히 합치(合致)한다 함이다.
사람은 그 일상생활(日常生活)에 쓰고 있는 물자(物資)와 기구(器具)는 천연물(天然物)을 그대로 쓰는 것은 거의 없고 반드시 인공(人工)을 가(加)하여 쓰며, 사람의 공동생활(共同生活)에 필요(必要)한 모든 제도(制度)는 천연물(天然物)로는 전연(全然) 존재(存在)하지 아니한 것이므로 사람이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본받아서 새로 제정(制定)하는 것이니, 이는 사람이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사업(事業)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천지(天地)의 미성(未成)한 천공(天工)을 대행(代行)하고 천공(天工)은 사람을 대(待)하여 완성(完成)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사(繫辭)에는 천지인(天地人)을 삼재(三才)라하니 재(才)라함은 물(物)을 창생(創生)하는 재능(才能)을 말함이라, 천(天)은 만물(萬物)의 씨를 창생(創生)하여 지(地)에 시(施)하고 지(地)는 천(天)의 하시(下施)한 씨를 승수(承受)하여 형질(形質)을 창생創生하고 사람은 천연물(天然物)에 인공(人工)을 가(加)하여 그 소용(所用)하는 물자(物資)를 생산(生産)하니 이는 천지인(天地人)이 모두 물(物)을 창생(創生)하는 재능(才能)이 있으므로 이것을 삼재(三才)라 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이 지상(地上)에는 천지(天地)가 창생(創生)한 천연물(天然物)과 사람이 가공(加工)한 인공물(人工物)이 전역(全域)을 차지하고 그 이외(以外)에는 조류(鳥類)의 소(巢) 봉의(蜂蟻)의 집 거미의 그물 같은 것이 있을 뿐이며, 사람이 삼재(三才)의 위(位)에 있는 것이 곧 천지(天地)로 더불어 환행(圜行)하는 지위(地位)에 있는 소이(所以)이다.
인공물(人工物)의 창제(創製)와 제도(制度)의 제정(制定)같은 것은 공간(空間)에 속(屬)하는 일이오 시간(時間)의 운행(運行)에도 또한 천공(天工)과 인공(人工)과의 관계(關係)가 있으니, 이는 곧 사람이 천시(天時)를 순(順)하는 일이다. 천시(天時)라 함은 일년(一年)의 사시(四時)나 생장성(生長成)의 시운(時運)과 같은 것이니, 예(例)컨대 봄이 오면 만물(萬物)은 발생(發生)하는 것이로되 백곡(百穀)같은 것은 인공(人工)으로써 토양(土壤)을 경기(耕起)하고 씨를 심은 연후(然後)에 그 발육(發育)이 정상(正常)한 것이오 가을이 되면 백곡(百穀)은 성숙(成熟)하는 것이로되 여름에 인공(人工)으로써 배양(培養)한 연후(然後)에 가을의 결실(結實)이 완전(完全)한 것이니, 이가 인공(人工)으로써 천시(天時)를 순(順)함이다. 천지(天地)의 시(時)의 변화(變化)에는 시운(時運)이 있는데, 시운(時運)이 변(變)할 때마다 사람은 그 시운(時運)에 맞춰서 제도(制度)를 새로 만들고 생활양식(生活樣式)을 변개(變改)한 연후(然後)에 각기(各其) 적의(適宜)함을 득(得)하는 것이니, 생(生)의 시운(時運)인 원시사회(原始社會)의 인간(人間生活)과 지금의 장(長)의 시운(時運)의 인간생활(人間生活)의 상이(相異)한 것은 이 까닭이다. 그러므로 시운(時運)이 변(變)할 때마다 반드시 선각자(先覺者)가 나와서 새 시운(時運)에 맞는 새 생활(生活)을 지도(指導) 하는 것이니, 이는 비록 봄이 되어도 인공(人工)으로써 백곡(百穀)을 심지 아니하면 가을에 완전(完全)한 결실(結實)을 얻을 수 없음과 같이 비록 시운(時運)의 변(變)하는 때라 하더라도 사람이 인공(人工)으로써 그 시운(時運)에 맞는 사업(事業)을 행(行)치 아니하면 그 시운(時運)에 맞는 천우(天祐)를 받지 못하는 까닭이다. 시운(時運)의 변화(變化)는 천공(天工)이오 시운(時運)에 맞는 사업(事業)을 행(行)하는 것은 인공(人工)이니 시운(時運)의 변화(變化)하는 때에 선각자(先覺者)가 나와서 다음 시운(時運)을 예견(豫見)하고 그 시운(時運)에 맞는 사업(事業)을 인공(人工)으로써 창설(創設)하는 것이 또한 물(物)을 창생(創生)하는 삼재(三才)의 일이며 시운(時運)의 변(變)하는 때가 오면 천공(天工)은 또한 반드시 인공(人工)으로써 천공(天工)을 대성(代成)할 수 있는 선각자(先覺者)를 이 세상(世上)에 보내는 것이다.


第二節   자유의지(自由意志)와 선악(善惡)
■ 선악(善惡)이 모두 자유(自由)사람의 천성(天性)이 발용(發用)함에는 자유(自由)가 있어 그것이 자유의지(自由意志)가 되는 것이니. 이는 사람은 각기(各其) 거주(居住)를 달리하고 그 거주(居住)하는 곳의 지의(地宜) 기후(氣候) 식물등(食物等)이 동일(同一)치 아니하므로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적의(適宜)히 재성(裁成)할 수 있는 자유의(自由意志)를 가지지 아니할 수가 없고, 또 사람은 신(神)을 우(祐)하여 모든 생활자료(生活資料)를 생산(生産)하고 공동(共同生活)에 필요(必要)한 제도(制度)를 만들어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사업(事業)을 행(行)하고 함에는 그 계획(計劃)을 세우고 재능(才能)을 발휘(發揮)하여 인공(人工)을 행(行)할 수 있는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가지지 아니할 수가 없고 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는 그 출생(出生)하는 때에 천지(天地)로부터 품수(稟受)한 천부(天賦)의 자유(自由)이니 계사(繫辭)에「천하(天下)가 무엇을 사(思)하며 무엇을 여(慮)하리오 천하(天下)가 동귀(同歸)하되 길은 다르고 일치(一致)하되 여(慮)는 백(百)이라」하니 동귀일치(同歸一致)라함은 신(神)에게로 귀일(歸一)함을 말함이오 길이 다르고 여(慮)가 백(百)이라 함은 각자(各自)의 천성(天性)에 자유(自由)가 있다 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천성(天性)의 자유(自由)는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고 또 사람을 생양(生養)하기 위(爲)하여 천(天)으로부터 받은 바의 자유(自由)로서 이것은 신(神)을 우(祐)하는 자유(自由)이오 천공(天工)을 대행(代行)하는 자유(自由)이다.
사람은 자유의지(自由意志)와 생(生)을 영위(營爲)하는 지능(知能)이 있고 또 사람의 천성(天性)은 선(善)의 계생(繼生)하여 여문 것이므로 천성(天性)은 선(善)한 것인데 사람에게 악(惡)이 있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먼저 선악(善惡)이라는 것을 역리(易理)로써 보면 천성(天性)은 씨의 조직(組織)과 같은 것으로서 씨에서 싹이 나오는 것이 곧 선(善)인즉 씨가 여물지 아니하고 쭉정이로 되어 싹이 나오지 아니하는 것은 선(善)을 해(害)함이 있는 까닭이오, 선(善)을 해(害)하는 것이 곧 악(惡)이니, 이는 생생(生生)하여 발육(發育)함은 선(善)이 되고 생생(生生)을 해(害)하는 것은 악(惡)이 된다함이며, 그러므로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사업(事業)을 돕는 것은 선(善)한 일이오, 생양사업(生養事業)을 해(害)하는 것은 악(惡)한 일이니, 이가 선악(善惡)을 판별(判別)하는 표준(標準)이 되는 것이다.
혹(或)은 말하기를 신(神)이 사람을 창조(創造)하실 때에 무엇 때문에 사람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와 지능(知能)을 주어서 악(惡)을 행(行)하게하고 또 그 악(惡)을 방지(防止)치 아니하는가 하는데, 신(神)이 만물(萬物)을 창조(創造)하실 때에 먼저 식물(植物)을 지어서 행동(行動)의 자유(自由)와 지능(知能)을 주시지 아니하고, 다음에 동물(動物)을 창조(創造)하심에 행동(行動)의 자유(自由)만을 주시고 지능(知能)을 주시지 아니하며, 그 다음에 사람을 창조(創造)하심에 천지유일신(天地唯一神)의 형상(形像)대로 짓고 신(神) 자신(自身)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自由意志)와 지능(知能)을 그대로 주시고 신(神)의 말하는 언어(言語)를 주어서 신(神)과 사람이 서로 수작(酬酌)하게 하시어 사람으로 하여금 자라고 여물어서 신(神)에게로 환행(圜行)하도록 하시었으므로, 사람은 인공(人工)으로써 천공(天工)의 미성(未成)함을 대성(代成)하고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신작용(神作用)이 생(生)하여 천(天)으로 환행(圜行)하는 것이니, 사람의 자유(自由)는 사람의 자라는 동안 아무런 제한(制限)을 받지 아니하는 천부(天賦)의 자유(自由)이다. 신(神)과 생명(生命)은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이(理)로 되는데 신(神)은 영원(永遠)한 생생(生生)을 주재(主宰)하므로 만물(萬物)의 씨를 창조(創造)하심에 모두 영원성(永遠性)을 부여(賦與)하여 세세(世世)로 계승(繼承)케 하시니,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생장성운동(生長成運動)에 있어서, 생(生)의 상(象)인 씨의 창조(創造)와 성(成)의 상(象)인 열매의 여무는 것은 신(神)이 직접주재(直接主宰)하시고 씨에서 싹이 나와서 열매를 맺기까지의 형질(形質)의 자라는 동안은 유형(有形)을 주재(主宰)하는 생명체(生命體)가 그 임무(任務)를 맡고 있는 것이며, 물(物)의 유형(有形)하는 동안에는 신(神)은 형질중(形質中)에 갈무리하여 다만 그를 따라 가실 뿐이다. 이것을 사람의 생생(生生)으로써 보면 사람의 씨의 시생(始生)하는 일과 사람의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신(神)에게로 환행(圜行)하는 일은 신(神)이 주재(主宰)하시고, 사람의 출생이후(出生以後)에 육체(肉體)를 생양(生養)하고 정신(精神)을 수련(修鍊)하는 등(等) 자라는 동안의 일은 하나의 독립(獨立)된 생명체(生命體)로 되어있는 사람 자신(自身)의 임무(任務)로 되는 것이다.
신(神)이 사람을 창조(創造)하실 때에 신(神)의 형태(形像)대로 지은 까닭에 신(神)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와 지능(知能)이 있음과 같이 사람에게도 자유의지(自由意志)와 지능(知能)을 부여(賦與)하신것인데, 사람은 자라는 동안에 그 자유의지(自由意志)와 지능(知能)을 마음껏 행사(行使)하여 선(善)할 수도 있고 악(惡)할 수도 있으며, 신(神)은 다만 사람의 행위(行爲)의 결과(結果)에 대(對)하여 해복(害福)을 주실 뿐이다. 해복(害福)이라 함은 사람이 자라는 동안에 선(善)을 행(行)하든지 악(惡)을 행(行)하든지 그것은 모두 사람의 자유(自由)이오 선(善)이 쌓이면 사람의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신(神)을 닮아 알맹이가 되고 악(惡)이 쌓이면 천성(天性)에 신작용(神作用)이 없어서 쭉정이가 되는 것이니, 이가 곧 해복(害福)이오 이것을 자연법칙면(自然法則面)으로써 보면 응보(應報)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自己)의 자유의지(自由意志)대로 행(行)한 행위(行爲)에 대(對)하여 그 자신(自身)이 책임(責任)을 지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自身)이 자라는 자유(自由)를 가지고 있으므로 남을 자라게 하는 능력(能力)의 자유(自由)도 있어 능(能)히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사업(事業)을 행(行)할 수가 있는 것이오 여무는 일은 그렇지 아니하여 자신(自身)의 여무는 것도 신(神)의 주재(主宰)에 속(屬)하는 것이므로 남을 여물게 할 수는 없으며, 다만 사부(師傅)가 제자(弟子)의 천성(天性)을 여물게 하는 것은 사부자신(師傅自身)의 자유능력(自由能力)이 아니라 성인(聖人)이 설(設)하여 놓은 신도(神道)의 교(敎)로써 가르치는 까닭이니 그러므로 사람은 신작용(神作用)에 의(依)하여서만 천성(天性)이 여물수가 있는 것이다.


●자유(自由)의 본질(本質)사람에게는 자라는 동안에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고 또 자라는 동안에 생장경쟁(生長競爭)이 있으므로 사람의 자라는 동안에는 각인(各人)으로부터 생장경쟁(生長競爭)의 자유(自由)가 발동(發動)하여 온 인류세계(人類世界)는 모두 경쟁(競爭)이오 모두 자유(自由)이니, 그러므로 이 세상(世上)에는 자기(自己)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것도 발휘(發揮)하는것도 자유(自由)이오, 남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침해(侵害)하는것도 자유(自由)이오, 세력(勢力)을 가진 자(者)가 민중(民衆)을 억압(抑壓)하여 정권(政權)을 행사(行使)하는것도 자유(自由)이오 민중(民衆)들이 자체(自體)의 이익(利益)을 호위(護衛)하기 위(爲)하여 정권(政權)에 대항(對抗)하는것도 자유(自由)이다. 과거(過去)의 자본주의(資本主義) 사회(社會)의 약소민족침략(弱小民族侵略)도 자본주의(資本主義)들의 자유(自由)이었고 지금의 공산주의(共産主義者)들이 민중(民衆)을 노예화(奴隸化)하고 자체(自體)가 노동귀족화(勞動貴族化)하는 것도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들의 자유(自由)이다. 자유(自由)라는 것은 본질(本質)이 이러한 것이다. 만일 이러한 자유(自由)에 대(對)하여 소위(所謂) 사람의 자유(自由)를 존중(尊重)하여 이러한 자유(自由)도 존중(尊重)하고, 저러한 자유(自由)도 존중(尊重)한다면, 이 세상(世上)에는 강자(强者)만이 살고 약자(弱者)는 살 수 없어서 이 세상(世上)에는 자유(自由)라는 것이 전연말살(全然抹殺)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유(自由)를 행사(行使)하는 행위(行爲)에는 스스로 남의 생(生)을 위(爲)하는 행위(行爲)와 남의 생(生)을 해(害)하는 행위(行爲)가 있고 남의 생(生)을 위(爲)하는 행위(行爲)는 선(善)이 되고 남의 생(生)을 해(害)하는 행위(行爲)는 악(惡)이 되는 것이다.

●선악(善惡)의 표준(標準)선악(善惡)이라는 것을 인체(人體)로써 보면 건강(健康)은 선(善)이오 질병(疾病)은 악(惡)이니 이는 건강(健康)은 사람을 생(生)하게하므로 선(善)이 되고 질병(疾病)은 사람의 생(生)을 해(害)하므로 악(惡)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독립(獨立)한 개체(個體)로 되어 있어 그 모든 행위(行爲)는 철두철미(徹頭徹尾 )자기개체(自己個體)의 생(生)을 위(爲)하기로 되어 있는 것이오, 결(決)코 남을 위(爲)하는 것이 아니니, 사람의 행위(行爲)가 어떻게 남의 생(生)을 위(爲)할 것인가 하면, 사람의 자유행위(自由行爲)에는 체(體)와 용(用)이 있다. 사람은 개체(個體)로 되어 있어 그 행위(行爲)는 반드시 개체(個體)의 생(生)을 위(爲)하는 것이므로 개체(個體)의 생(生)을 위(爲)하는 행위(行爲)는 자유행위(自由行爲)의 체(體)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반드시 공동생활(共同生活)을 영위(營爲)하기로 되어 있는 까닭에 자기(自己)가 자기개체(自己個體)의 생(生)을 위(爲)하는 방법(方法)은 두 가지 길이 있으니 즉(卽) 자기(自己)가 남을 위(爲)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개체(自己個體)만을 철저(徹底)히 위(爲)하는 개인주의(個人主義)를 통(通)하는 길과 자기(自己)가 남을 위(爲)하고 그 남들로 하여금 또한 나를 위(爲)하게 하는 공동체(共同體)를 통(通)하는 길이 있다. 자기(自己)가 남을 위(爲)치 아니하고 오직 자기개체(自己個體)만을 철저(徹底)히 위(爲)하는 개인주의(個人主義)의 길은 결국(結局) 이 넓은 사회(社會)안에서 자기(自己)를 위(爲)하는 사람은 자기(自己) 혼자 뿐이며, 자기(自己)가 남을 위(爲)하고 그 남들이 또한 나를 위(爲)하는 공동체(共同體)의 길은 결국(結局) 이 넓은 사회(社會)가 모두 나를 위(爲)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니, 넓은 사회(社會)가 모두 서로 위(爲)하고 서로 돕고 하는 것이 인류사회(人類社會)의 본연(本然)의 자세(姿勢)이오 사람이 남을 위(爲)하는 행위(行爲)가 곧 자기(自己)의 생(生)을 위(爲)하는 행위(行爲)이며, 그러므로 사람이 남을 위(爲)하는 행위(行爲)는 자유행위(自由行爲)의 용(用)이 되는 것이다. 이 체(體)와 용(用)의 이(理)를 요약(要約)하면 사람의 자유행위(自由行爲)의 체(體)는 자신(自身)이 직접(直接)으로 자기개체(自己個體)의 생(生)을 위(爲)하는 것이오 자유행위(自由行爲)의 용(用)은 남을 위(爲)하여 간접(間接)으로 자기개체(自己個體)의 생(生)을 위(爲)하는 것이니, 사람의 자유행위(自由行爲)에 이 체(體)와 용(用)이 구비(具備)한 연후(然後)에 능(能)히 그 생(生)을 완수(完遂)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체(體)만 있고 용(用)이 없으면 제 자신(自身) 혼자만이 자신(自身)을 위(爲)하는 사람이 되고 이 세상(世上)에서 남과 상접(相接)할 수 없는 고신척영(孤身隻影)이 되고 역리(易理)에는 이러한 사람을 기국(器局)의 좁은 소인(小人)이라 하고 악(惡)을 범(犯)하는 자(者)는 남의 생(生)을 위(爲)할 줄을 알지 못하는 이러한 소인(小人)들이라고 한 것이다.
기국(器局)의 좁은 소인(小人)들은 그 안계(眼界)가 적으므로 그 개체(個體)의 생(生)을 영위(營爲)할 때에 저 혼자가 제 생(生)을 위(爲)하드래도 사회(社會)에 큰 해(害)가 없는 것이나, 만일 그러한 소인(小人)들이 사회(社會)의 지배권(支配權)을 가지는 때는 사회(社會)로 하여금 자기(自己)의 개체(個體)를 봉양(奉養)케 하여 드디어 큰 악(惡)에 빠지는 것이다.


■ 지금의 인간(人間)은 자라는 과정(過程)에 있는 미성품(未成品)사람의 천성(天性)은 선(善)한 것인데 지금에 인간사회(人間社會)에서 악(惡)이 자주 발생(發生)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면, 사람의 천성(天性)이 선(善)하다 함은 천성(天性)의 여문 것을 말함이오 사람의 자라는 과정(過程)에는 아직 천성(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온전한 선(善)이 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자라는 과정(過程)에 있는 사람은 하나의 미성품(未成品)으로 되어 있는 까닭이다. 지금은 장(長)의 시운(時運)에 당(當)하여 사람들이 모두 미성품(未成品)으로 되어있어, 사람들의 천성(天性)이 또한 미성품(未成品)으로 되어 있으므로 선(善)이 되지 못하고 악(惡)이 발생(發生)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모든 생물(生物)은 개체(個體)를 가지고 생육(生育)하는 본능(本能)이 있으므로 개체(個體)의 자라는 때에는 반드시 생장경쟁(生長競爭)을 행(行)하여 타(他)를 극제(克制)하는 것이오 특(特)히 장(長)의 시운중(時運中)에 있어서는 그 생장경쟁(生長競爭)의 결과(結果)가 악(惡)에 까지 발전(發展)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수목(樹木)의 예(例)로써 보건대 수목(樹木)은 아무 의식(意識)이 없으되 또한 생장경쟁작용(生長競爭作用)을 가지고 서로 배척(排斥)하면서 자체(自體)의 생장(生長)을 기(期)하고 장차(將且) 열매를 맺고 여물어서 세세계승(世世繼承)하여 영원불궁(永遠不窮)히 생생(生生)하려 하는 것이며, 만일 생장경쟁(生長競爭)에 패(敗)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면 세세계승(世世繼承)의 작용(作用)이 끊어지는 것이므로 수목(樹木)은 열매를 맺기 위(爲)하여 생장경쟁(生長競爭)을 행(行)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목(樹木)에는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없고 전(全)혀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순(順)하여 신(神)의 생생사업(生生事業)을 해(害)하는 일이 없으므로 악(惡)은 발생(發生)치 아니하는 것이다. 동물(動物)같은 것은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가지고 생장경쟁(生長競爭)을 행(行)하고 있으나 그 것은 상호간(相互間)의 충돌(衝突)에 불과(不過)하고 의식적(意識的) 계획적(計劃的)으로 신(神)의 생생사업(生生事業)을 해(害)하는 것이 아니므로 또한 악(惡)이 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오직 사람은 생장경쟁(生長競爭)을 행(行)하는 때에 의식적(意識的) 계획적(計劃的)으로 타(他)를 극(克)하여 신(神)의 생생사업(生生事業)을 해(害)하는 일이 있으므로 생장경쟁(生長競爭)의 격심(激甚)한 장(長)의 시운(時運)에 악(惡)이 발생(發生)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악(惡)의 생(生)하는 것을 인체(人體)의 조직(組織)으로써 보건대 사람의 정신(精神)과 육체(肉體)는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이(理)로 되는데, 정신(精神)에는 신작용(神作用)이 있어 만인공공(萬人公共)한 것이므로 거기에는 이성(理性)이 있고 악(惡)이 없으며, 육체(肉體)는 개인(個人)마다 각각(各各) 사유(私有)한 개체(個體)로서 거기에는 본능(本能)의 감정(感情)이 있고 감정(感情)에는 피아(彼我)의 구별(區別)이 강(强)하고 개체(個體)의 사(私)가 생(生)하는 까닭에 흔히 이성(理性)이 밝지 못하고 화기(和氣)를 상(傷)하여 악(惡)이 생(生)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선(善)을 쌓으면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알맹이가 되고 악(惡)을 쌓으면 천성(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쭉정이가 되어 스스로 소멸(消滅)하는 것인데, 악(惡)이 쭉정이로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신(神)은 사람의 자유(自由)로운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또 자유(自由)로이 자라게 하기 위(爲)하여 사람의 자라는 동안에 사람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를 부여(賦與)하고 사람은 자유의(自由意志)에 의(依)하여 모든 소원(所願)을 성취(成就)하는 것이므로 신(神)은 사람이 자유의지(自由意志)를 행사(行使)하는 동안은 선악간(善惡間)에 사람의 행위(行爲)를 그대로 허(許)하고 사람의 소원(所願)하는대로 따라가시는 것이니 이는 사람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은 연후(然後)에 충분(充分)히 자랄 수 있는 까닭이며, 사람의 언행(言行)은 천지환행(天地圜行)의 이(理)에 의(依)하여 선악간(善惡間)에 모두 신(神)에게로 올라가고 신(神)은 그것을 받으시는 대로 모두 그 사람에게 돌려주시어 그 사람의 소원(所願)을 성취(成就)시키시는 것이다. 즉(卽) 사람은 선(善)을 행(行)하면 선(善)이 쌓여서 자라고 악(惡)을 행(行)하면 악(惡)이 쌓여서 자라는 것이며, 선(善)의 자란 것은 열매가 여물어서 영원(永遠)한 씨가 되는 것이오 악(惡)의 자란 것은 쭉정이가 되어 생생(生生)이 끊어지는 것이니, 사람이 선(善)을 행(行)하는 자(者)는 열매가 되기를 원(願)하는 자(者)이오 악(惡)을 행(行)하는 자(者)는 쭉정이가 되기를 원(願)하는 자(者)이라, 자신(自身)의 자유의지(自由意志)로써 선악(善惡)을 행(行)하여 열매가되고 쭉정이가  되고 하는 것은 모두 그 소원(所願)을 성취(成就)하는 일이다.
곤괘(坤卦)에「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적불선지가필유여앙(積不善之家必有餘殃)」이라 하니 이는 사람이 자유의지(自由意志)로써 선악(善惡)을 적(積)하여 그 소원(所願)하는 경앙(慶殃)을 받음을 말함이며, 여기에도 또한 환운동(圜運動)의 상(象)이 있으니, 자가(自家)에서 선(善)함이 나가면 반드시 선(善)의 응보(應報)가 돌아오고, 자가(自家)에서 불선(不善)함이 나가면 반드시 불선(不善)의 응보(應報)가 돌아오는 것인데, 자가(自家)에서 나가서 자가(自家)에 돌아오는 것은 공간적(空間的) 환운동(圜運動)이오, 지금에 나가서 후일(後日)에 돌아오는 것은 시간적(時間的) 환운동(圜運動)이다. 여름에 초목(草木)의 자랄 때에는 어느 열매가 알맹이로 되고 어느 열매가 쭉정이로 되고 할 것을 분별(分別)할 수가 없는 것이나, 가을이 되면 알맹이와 쭉정이가 스스로 선별(選別)되어 알맹이만 남고 쭉정이는 소멸(消滅)되는 것이니, 이는 천지(天地)의 생생법칙(生生法則)이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라는 때에 자유의지(自由意志)의 길을 바르게 향(向)하여 충실(充實)히 자라면 알맹이가 또한 충실(充實)히 여무는 것이오 충실(充實)히 자라지 못하면 비록 성(成)의 시운(時運)이 도래(到來)하더라도 충실(充實)한 알맹이가 되지 못하는 것이며, 지금의 인간(人間)은 장(長)의 시운(時運)에 처(處)하여 아직 여물지 못한 미성품(未成品)이 되고 있으므로 악(惡)을 행(行)하는 일이 있어 쭉정이로 되는 자(者)가 적지 아니한 것이다. 인체(人體)로써 보면 건강(健康)은 사람의 생명(生命)을 완전(完全)히 하는 것이므로 선(善)하여 알맹이의 상(象)이 되고 질병(疾病)은 사람의 생(生)을 해(害)하여 사(死)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악(惡)하여 쭉정이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인간사회(人間社會)안에 사람의 생(生)을 해(害)하는 악인(惡人)이 있는 것은 사람의 신체(身體)에 질병(疾病)이 있음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신체(身體)의 질병(疾病)을 치료(治療)하여 그 생(生)을 완전(完全)하게 하는 것은 비록 질병치료중(疾病治療中)에 그 사람에게 고통(苦痛)을 주고 신체일부를(身體一部)를 수술(手術)하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선(善)이 되고 악(惡)이 되지 아니하는 것이며, 이 이(理)에 의(依)하여 사회(社會)안의 악인(惡人)의 자유(自由)를 구속(拘束)하고 엄형(嚴刑)을 가(加)하고 하는 것은 사회(社會)의 질병(疾病)을 치료(治療)하여 그 사회(社會)의 생(生)을 완수(完遂)하기 위(爲)함이니, 그러므로 이것은 선(善)이 되고 악(惡)이 되지 아니하는 것이며, 혁괘(革卦)에「탕무혁명순호천이응호인(湯武革命順乎天而應乎人)」이라 함은 천시(天時)와 인심(人心)에 순응(順應)하여 사회(社會)안의 악정치(惡政治)를 제거(除去)하고 사회(社會)의 생(生)을 완수(完遂)하는 사업(事業)을 행(行)함을 혁명(革命)이라 한 것이다. 여기에 혁명(革命)이라 함은 순천응인(順天應人)하는 혁명(革命)을 말하는 것이므로 혁명(革命)은 선(善)한 것이며, 장(長)의 시운(時運)에 세력(勢力)의 강약(强弱)으로써 서로 정권(政權)을 쟁탈(爭奪)하는 것은 비록 정권(政權)을 탈취(奪取)하되 그것은 사회(社會)를 생생(生生)하는 운동(運動)이 아니므로 혁명(革命)이라고 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성악설(性惡說)사람의 천성(天性)을 악(惡)하다고하는 성악설(性惡說)이 있는데, 천성(天性)은 사람의 모든 행위(行爲)를 주재(主宰)하여 인체(人體)의 건강(健康)함과 같은 것이므로 천성(天性)은 반드시 선(善)한 것이며, 저 소위(所謂) 성악설(性惡說)은 마치 세간(世間)에 질병(疾病)에 걸린 사람이 많음을 보고 사람의 몸은 질병(疾病)으로서 조직(組織)되었다 함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몸은 건강(健康)으로서 조직(組織)되고 질병(疾病) 같은 것은 일시적(一時的) 불건강(不健康) 현상(現象)에 불과(不過)한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천성(天性)은 선(善)한 것이오 저 악(惡)같은 것은 생장경쟁(生長競爭)의 과정(過程)에서 천성(天性)이 질병(疾病)에 걸려서 일시적(一時的)으로 발생(發生)하는 것이오 천성(天性)에는 악(惡)이 없는 것이다.

■ 천명(天命)은 일생(一生)의 사명(使命)사람에게는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어 신(神)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어기고 악(惡)의 발생(發生)하는 일이 있으므로 사람은 그 출생(出生)하는 때에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영위(營爲)함에 필요(必要)한 천성(天性)을 천(天)으로부터 품수(稟受)하는 동시(同時)에 또한 세상(世上)에 출생(出生)하여 어떠한 일을 한다는 사명(使命)을 천(天)으로부터 아울러 품수(稟受)하니, 이가 천명(天命)이오, 건괘(乾卦)에 「건도(乾道)가 변화(變化)하여 각각(各各) 성명(性命)을 정(正)한다」함은 물(物)이 천성(天性)과 천명(天命)을 바르게 행(行)한다 함을 말함이다. 천성(天性)은 원심통명(圓深通明)하여 공간(空間)의 상(象)이 되고 천명(天命)은 사람의 일생(一生)동안에 수행(遂行)할 바의 사명(使命)이므로 시간(時間)의 상(象)이 되는데, 공간(空間)은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하여 그 일부를(一部)를 변개(變改)할 수가 있으므로 천성(天性)에는 자유(自由)가 있어 능(能)히 공간(空間)의 자연물(自然物)에 대(對)하여 인공(人工)을 가(加)할 수가 있는 것이오 시간(時間)은 사람의 힘의 전연(全然) 미치지 못하는 경역(境域)이므로 스스로 기정(旣定)된 사명(使命)이 있어 사람은 천시(天時)를 봉행(奉行)하면서 그 사명(使命)을 다하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생물(生物)이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으로 화(化)하여 이 세상(世上)에 생(生)한 자(者)는 반드시 천명(天命)을 받고 있는 것이니, 이는 모든 생물(生物)이 세상(世上)에 나올 때에 다만 우연홀연(偶然忽然)히 되는대로 오다가다 나온 것이 아니라 모두 신(神)의 체(體)의 일부분(一部分)을 나눠 받고 나온 까닭이다. 식물(植物)이나 동물(動物)은 수다(數多)한 종류(種類)로 나뉘어서 생(生)하고 있는데, 이들은 형질(形質)을 주(主)로 하고 있으므로 그 소위(所謂) 천명(天命)이라는 것은 그 종류(種類)의 형질(形質)의 생생계승(生生繼承)하는 일이니 그 일례(一例)로는 양목(楊木)은 양목(楊木)으로 생(生)하여 양목(楊木)의 씨를 보유(保有)하는 것이 그의 천명(天命)이오, 상목(桑木)은 상목(桑木)으로 생(生)하여 상목(桑木)의 씨를 보유(保有)하는 것이 그의 천명(天命)이오, 우(牛)는 우(牛)로 생(生)하여 (牛)우의 씨를 보존(保存)하는 것이 그의 천명(天命)이오 마(馬)는 마(馬)로 생(生)하여 마(馬)의 씨를 보존(保存)하는 것이 그의 천명(天命)이다. 그러므로 양상우마(楊桑牛馬)는 모두 그 종류(種類)대로 공통(共通)한 개성(個性)을 가지고 동일(同一)한 임무(任務)를 수행(遂行)하여 모두 자연(自然)스럽게 그 천명(天命)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단일종류(單一種類)로 되어 공동생활(共同生活)의 사회(社會)를 조직(組織)하고 사람의 생활(生活)은 극(極)히 복잡(複雜)하여 반드시 분업협업(分業協業)이 있는 것이므로 사람은 그 종류(種類)는 단일(單一)하고 있으되 그 성격(性格) 지식(知識) 기능(技能) 같은 개성(個性)은 실로(實)로 천차만별(千差萬別)한 것이니, 사람의 개성(個性)의 천만(千萬)가지 차이(差異)는 동식물(動植物)의 천만(千萬)가지 종류(種類)의 차이(差異)와 필적(匹敵)하는 것이며,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한 분업협업(分業協業)으로써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기 위(爲)하여 각기(各其) 독수(獨殊)한 성격(性格) 지식(知識) 기능등(技能等) 개성(個性)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곧 천명(天命)이다. 사람은 독수(獨殊)한 개성(個性)을 가지고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는 것으로써 일생(一生)의 사명(使命)을 삼고 있으므로 사람은 동식물(動植物)과 같이 자체(自體)의 형질(形質)이 자라고 자손(子孫)을 번식(繁殖)하고 하는 것으로는 천명(天命)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동식물(動植物)은 수다(數多)한 종류(種類)로 나뉘어 있으므로 그 종족보존(種族保存)이 한 사명(使命)으로 되어 있으나, 사람은 세계인류(世界人類)가 모두 단일종류(單一種類)로 되고 있으므로 그 종족(種族)의 보존(保存)은 천명(天命)이 되지 아니하고 인류전체(人類全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는 사업(事業)이 천명(天命)으로 되는 까닭이며, 사람이 자라는 동안에 자유의지(自由意志)로써 그 사명(使命)을 다하는 것은 천명(天命)을 순(順)함이되고 사명(使命)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천명(天命)을 역(逆)함이 되는 것이다.
천명(天命)인 사명(使命)은 사람의 일생(一生)동안에 수행(遂行)하는 일이므로 어느 일면(一面)으로는 운명(運命)도 되는 것이니. 마치 동식물(動植物)의 양상우마(楊桑牛馬)는 일생(一生)을 양상우마(楊桑牛馬)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에 완전(完全)히 운명(運命)으로 되어 있음과 같은 것이다. 이런 면(面)으로 볼 때에는 사람의 천명(天命)도 또한 운명(運命)이 되는 것이오, 또 사람의 살고 있는 시운(時運)도 시간(時間)에 속(屬)하여 있으므로 또한 운명(運命)이 되는 것이니, 사람은 시간(時運)이라는 운명(運命)의 속에서 살면서 그 품수(稟受)한 바의 사명(使命)을 다하고 있으므로 그 일생(一生)의 활동(活動)은 스스로 운명(運命)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時間)속의 인간(人間)의 실생활(實生活)은 공간(空間)에 속(屬)하니, 공간(空間)에 속(屬)하는 일은 인공(人工)으로써 선(善)하게 할 수도 있고 악(惡)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비록 어떠한 시운(時運)이 도래(到來)하더라도 사람은 그 시운(時運)에만 의존(依存)하는 것이 아니오 공간(空間)에 속(屬)하는 일은 최선(最善)의 인공(人工)을 가(加)하여 인간생활(人間生活)에 이용(利用)하고 인공(人工)으로써 할 수 있는 인사(人事)를 다한 연후(然後)에 시운(時運)을 대(待)하는 것이 곧 천명(天命)을 순(順)함이다.
천성(天性)과 천명(天命)은 하나는 자유(自由)이오 하나는 운명(運命)으로서 서로 대립(對立)하고 있는듯하나, 두가지가 모두 천(天)으로부터 품수(稟受)한 것으로서 그 본원(本源)이 동일(同一)하므로 사람은 그 자유의지(自由意志)로써 천성(天性)의 지선(至善)을 다하고 천명(天命)을 순(順)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사업(事業)을 행(行)하는 때에 천성(天性)의 자유(自由)와 천명(天命)의 운명(運命)이 스스로 일치(一致)하는 것이니, 설괘(說卦)에「이(理)를 궁(窮)하고 성(性)을 진(盡)하여 써 명(命)에 지(至)한다」함은 천성(天性)과 천명(天命)의 일치(一致)한 경지(境地)를 말함이오 천성(天性)과 천명(天命)의 일치(一致)한 자(者)는 천성(天性)의 여문 자(者)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自身)의 품수(稟受)한 천명(天命)이 무엇인지를 알기가 어렵고,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고서 자기가 이 세상(世上)에 태어난 사명(使命)을 다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비록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고 있으되 인간(人間)으로 신(神)을 우(祐)하는 일을 행(行)하면 또한 스스로 사명(使命)을 다하는 일이 되는 것이니, 이는 인류(人類)의 공동생활(共同生活)에는 여러 가지의 분업협업(分業協業)이 있으되 그 귀착(歸着)하는 곳은 모두 신(神)을 우(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第三節   효(孝) 충(忠) 의(義)는 삼대륜(三大倫)
■ 효충의(孝忠義)는 신도(神道)이다사람의 행동(行動)하는 운리(倫理)로서 신(神)과 상통(相通)하는 삼대륜(三大倫)이 있으니, 삼대륜(三大倫)이라 함은 부자도(父子道)의 효(孝)와 국민도(國民道)의 충(忠)과 부부도(夫婦道)의 의(義)를 말함이다. 효충의(孝忠義)의 삼대륜(三大倫)은 신(神)의 수시(垂示)하신 천륜(天倫)인데, 장(長)의 시운(時運)의 사람들은 자라는 과정(過程)에 있어 생장경쟁(生長競爭)을 행(行)하여 자기(自己)의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주장(主張)하고 신(神)의 뜻을 알지못하여 이 천륜(天倫)을 바르게 쓰지 못하고 도리어 당시(當時)의 군주(君主)와 귀족(貴族)들에게 잘못 이용(利用)된 일도 있는 것이며, 성(成)의 시운(時運)에는 이것이 인간사회(人間社會)의 최대(最大) 윤리(倫理)로 되는 것이다. 삼대륜(三大倫)은 남만을 위(爲)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結果的)으로는 자신(自身)의 생생(生生)을 위(爲)하는 일이 되는 것이며, 또한 천지(天地)가 환운동(圜運動)을 하여 자신(自身)에서 나간 선불선(善不善)이 다시 자신(自身)에게로 돌아온다는 원리(原理)도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삼대륜(三大倫)은 인간사회(人間社會)의 모든 도덕(道德)의 발원(發源)이 되는 것이다.


■ 효(孝)의 원리(原理)효(孝)는 천지(天地)의 생생원리(生生原理)의 중심(中心)이 되고 있는 것이니, 사람이 생(生)하고 자라고 함에는 신(神)으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조상부모(祖上父母)의 천명(天命)의 줄을 통(通)하여 천명(天命)을 받는 것이므로 천명(天命)의 줄을 연계(連繼)하는 것이 곧 효(孝)이다.

註  ●효(孝)의 이(理)췌괘(萃卦)에「왕격유묘치효향야(王假有廟致孝享也)」라 하여 자손(子孫)이 묘(廟)를 세워서 부모(父母)의 신(神)을 봉향(奉享)하는 것을 효(孝)라 하고 그 다음에「용대생순천명(用大牲順天命)」이라하여 모(母)가 자(子)의 출산(出生)을 위(爲)하여 자신(自身)은 희생(犧牲)하는 것을 천명(天命)이라 하니 이는 부모(父母)가 종(終)하고 자(子)가 부모(父母)를 계승(繼承)하여 천명(天命)을 잇는 것이 곧 효(孝)라 한 것이다.
사람의 살고 있는 이 지구(地球)는 태양(太陽)을 중심(中心)으로하여 공전(公轉)하고 신(神)이 또한 태양(太陽)에 위거(位居)하심으로 사람은 지구(地球)와 함께 태양(太陽)을 공전(公轉)하면서 또한 신(神)을 중심(中心)으로하여 환행(圜行)하는 것이오, 태양(太陽)과 지구(地球)와의 사이에 전기(電氣)와 자기(磁氣)를 인(因)한 인력(引力)의 줄이 있으므로 신(神)과 사람과의 사이에도 또한 천행건(天行健)의 뇌풍(雷風)의 기(氣)를 인(因)한 천명(天命)의 줄이 있어 조손계통(祖孫系統)의 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환운동(圜運動)은 원심운동(遠心運動)과 향심운동(向心運動)으로 되어 있는지라, 사람이 무형(無形)한 천조신(天祖神)에서 출생(出生)하여 유형(有形)으로 되어 자자손손(子子孫孫)이 한 세대(世代)씩 늘어 나가는 것은 중심(中心)에서 멀어지는 원심운동(遠心運動)이오 사람의 원심운동(遠心運動)은 각인(各人)마다 그 위치(位置)가 다르고 세대(世代)마다 그 궤도(軌道)가 늘어나서 동일(同一)한 위치(位置) 동일(同一)한 궤도(軌道)를 걷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그러므로 사람은 얼굴이나 성질(性質)의 전연(全然) 동일(同一)한 자(者)는 한 사람도 없는 것이오, 사람의 출생(出生)한 이후(以後)에 그 향(向)하여 나가는 길은 유형(有形)으로부터 다시 무형(無形)으로 되어 천조신(天祖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니, 이는 중심(中心)을 찾아가는 향심운동(向心運動)이며, 그러므로 사람은 그 출생(出生)하는 날부터 일생(一生)동안의 걸어가는 행로(行路)는 신(神)의 계신 곳으로 향(向)하여가는 것이다.
사람은 신(神)을 중심(中心)으로하여 간단(間斷)없이 원심운동(遠心運動)과 향심운동(向心運動)을 아울러 행(行)하고 있으니, 원심운동(遠心運動)을 행(行)하는 것은 공간적(空間的)으로 무한(無限)히 확대(擴大)하기 위(爲)하여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이 생(生)하여 중심(中心)에서 멀어지는 것이며, 이는 사람의 형질(形質)의 자라는 운동(運動)이오, 향심운동(向心運動)을 행(行)하는 것은 시간적(時間的)으로 무궁(無窮)히 계승(繼承)하기 위(爲)하여 원심(遠心)의 종점(終點)에서 미래(未來)의 시점(始點)을 찾아서 무형(無形)한 중심(中心)을 향(向)하여가는 것이며, 이는 사람의 천성(天性)의 여무는 운동(運動)이다. 천지(天地)의 생생운동(生生運動)은 모두 환운동(圜運動)으로 되고 직선운동(直線運動)은 없는지라, 사람이 조상(祖上)으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것은 그것이 생생운동(生生運動)이므로 반드시 환운동(圜運動)이오 직선운동(直線運動)이 아니며, 환운동(圜運動)에 연결(連結)되어 계속(繼續)하는 생생운동(生生運動)은 또한 환운동(圜運動)이므로 사람이 향(向)하여가는 길도 또한 직선(直線)이 아니오 반드시 환운동(圜運動)이니, 그러므로 사람이 환운동(圜運動)을 행(行)하여가는 길은 그것의 원형(圓形)이거나 나선형(螺旋形)이거나를 물론(勿論)하고 반드시 시발(始發)하는 중심(中心)을 향(向)하여 환행(圜行)하는 것이다.
사람이 신(神)을 중심(中心)으로한 원심운동(遠心運動)과 향심운동(向心運動)은 스스로 신(神)과 사람과의 사이에 연계(連繼)되어있는 줄을 통(通)하여 행(行)하는 것이오 이 줄은 사람의 조상(祖上)이 신(神)에서 출생(出生)하여 세세(世世)로 계승(繼承)하여 내려오는 줄이므로 이것은 천명(天命)의 줄이 되는 것이다. 지구(地球)와 태양(太陽)과의 인력(引力)의 줄은 원심운동(遠心運動)의 줄과 향심운동(向心運動)의 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상반(相反)되는 두 운동(運動)을 한 줄로써 행(行)하고 있음과 같이, 신(神)과 사람과의 천명(天命)의 줄도 또한 한줄로 되어 있어 조상(祖上)으로부터 세세연속(世世連續)하는 원심운동(遠心運動)의 줄이 곧 사람이 신(神)에게로 환행(圜行)하는 향심운동(向心運動)의 줄이 되어, 사람이 신(神)에게로 돌아감에는 반드시 조상부모(祖上父母)의 내려오신 줄을 도로 걸어 올라가는 것이다. 신(神)과 사람과의 천명(天命)의 줄에는 조상부모(祖上父母)의 위(位)도 있어 신(神)을 향(向)하는 향심운동(向心運動)은 반드시 동일(同一)한 줄에 위(位)하신 여러 조상부모(祖上父母)의 마디를 거쳐서 올라가는 것이므로 신(神)을 향(向)하는 마음이 곧 조상부모(祖上父母)를 향(向)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는 때에 비로소 천명(天命)의 줄이 연계(連繼)되어 신(神)에 대(對)한 효(孝)가 되는 것이오, 신(神)을 향(向)하는 마음이 곧 조상부모(祖上父母)를 향(向)하는 마음이므로 신(神)에 대한 효(孝)가 바로 조상부모(祖上父母)에 대(對)한 효(孝)가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신(神)에 대(對)한 효(孝)가 없이는 조상부모(祖上父母)에도 효(孝)가 되지 못하며, 또 조상부모(祖上父母)에 대(對)한 효(孝)가 없이는 신(神)에도 효(孝)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신(神)에 대(對)한 효(孝)라함은 사람이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는 일이라, 사람이 신(神)을 우(祐)하면 신(神)은 환운동(圜運動)의 이(理)에 의(依)하여 사람의 우(祐)를 받으시는 대로 천혜(天惠)를 내리어 사람을 우(祐)하시는 것이니, 이는 사람이 신(神)을 우(祐)하는 일이 또한 자신(自身)이 신(神)의 우(祐)를 받는 결과(結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신(神)에게 효(孝)하는 것은 또한 자신(自身)의 생생(生生)을 위(爲)하는 일이오 신(神)이 천혜(天惠)를 내리어 사람을 우(祐)하시는 것은 또한 그 자손(子孫)을 생양(生養)하여 영원(永遠)한 생생사업(生生事業)을 행(行)하시기 위(爲)함이니 이와 같이 신(神)과 사람이 상우(相祐)하여 천지(天地)가 영원불궁(永遠不窮)히 생생(生生)하는 것이 효(孝)의 원리(原理)로 되는 것이다.
효(孝)의 원리(原理)로써 보면 자손(子孫)이 조상부모(祖上父母)를 위(爲)하는 것은 곧 자신(自身)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자신(自身)과 신(神)과의 천명(天命)의 줄을 연계(連繼)하는 일이오 조상부모(祖上父母)가 자손(子孫)을 애육(愛育)하는 것은 또한 자신(自身)의 세세계승(世世繼承)하는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자기자손(自己子孫)과 신(神)과의 천명(天命)의 줄을 연계(連繼)하는 일이다. 자손(子孫)이 조상부모(祖上父母)를 위(爲)하고 조상부모(祖上父母)가 자손(子孫)을 애육(愛育)하고 하는 것은 모두 자기(自己)의 생생(生生)을 위(爲)하는 일이면서 또한 자손(子孫)은 조상부모(祖上父母)의 공덕(功德)을 보답(報答)하고 조상부모(祖上父母)는 신(神)의 자손(子孫)을 생양(生養)하여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는 것이니 조상부모(祖上父母)와 자손(子孫)과의 사이는 자(自)와 타(他)를 초월(超越)하여 동일(同一)한 천명(天命)의 줄위에서 생생(生生)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효(孝)라는 것은 다만 생존(生存)한 부모(父母)를 위(爲)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천성(天性)을 여물게하고 신(神)의 사업(事業)을 (祐)하여 신(神)을 향(向)하는 마음과 이미 작고(作故)하신 조상부모(祖上父母)를 향(向)하는 마음이 일치(一致)하고 아울러 수하(手下)의 자손(子孫)들에게 선언선행(善言善行)을 수범(垂範)하여 조상부모(祖上父母)와 수하자손(手下子孫)들과의 사이에 천명(天命)의 줄이 연계(連繼)되게하는 것이 곧 작고(作故)하신 조상부모(祖上父母)에 대(對)한 효(孝)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조상신(祖上神)에서 출생(出生)하여 시간적(時間的) 계승(繼承)으로는 조상(祖上)과 자손(子孫)의 계세(繼世)하는 계통(系統)이 되고 공간적(空間的) 확대(擴大)로는 세계인류(世界人類)의 연지(連枝)하는 형제(兄弟)의 의(誼)가 되는데, 사람이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한다 함은 별(別)다른 남이 아니오 곧 자기의 세계형제(世界兄弟)를 생양(生養)하는 것이다. 세계인류(世界人類)는 비록 피부색(皮膚色)이 서로 다르고 언어풍속(言語風俗)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 하더라도 모두 동일신(同一神)에서 출생(出生)하여 동일조상(同一祖上)을 모시고 있는 형제(兄弟)이오 비록 촌수(寸數)의 늘고 밭고 한 차이(差異)는 있다 하더라도 각자(各自) 분리(分離)된 남남이 아니며 소위(所謂) 동민족(同民族)과 이민족(異民族)의 차이(差異)라는 것은 다만 촌수(寸數)의 늘고 밭고 함과 혼인(婚姻)을 통(通)하고 통(通)치 아니하고 한 차이(差異) 밖에는 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사람이 유형(有形)한 육체(肉體)로써 서로 접촉(接觸)하는 것은 극(極)히 국한(局限)되어 있으되 무형(無形)한 천성(天性)에는 신(神)의 작용(作用)이 있어 전인류(全人類)가 모두 공통(共通)한 것이니, 역괘(易卦)에는 달에서 사람의 씨의 생(生)함을 상(象)한 괘명(卦名)을「동인(同人)」이라 하고 거기에 또「천하(天下)의 지(志)를 통(通)한다」고한 것은, 인류(人類)의 씨가 모두 달에서 출생(出生)하여 그 본원(本源)이 동일(同一)하고 천하(天下)사람의 지(志)가 서로 통(通)한다 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인류(世界人類)가 형제(兄弟)의 의(誼)로써 서로돕고 서로 친화(親和)하는 것은 신(神)의 생생사업(生生事業)을 우(祐)하는 것이므로 그것이 곧 신(神)에 대(對)한 효(孝)가 되는 것이다.


■ 충(忠)의 원리(原理)충(忠)은 사람은 자체(自體)가 생생(生生)하기 위(爲)하여 심(心)의 체(體)인 덕(德)을 광명(光明)케하여 자체(自體)가 소속(所屬)하여 있는 사회(社會)의 생생(生生)을 돕고 사업事業을 수(修)하는 것이 곧 충(忠)이다.

註  ●충(忠)의 이(理)건문언(乾文言)에「충(忠)과 신(信)이 써 덕(德)을 진(進)하는 바이라」한바 덕(德)이라 함은 사람이 물(物)을 생양(生養)하는 마음의 체(體)를 말함이니, 충(忠)은 중심(中心)으로부터 물(物)을 애육(愛育)하는 마음이 솟아나옴을 말함이오 마음이 충(忠)하면 능(能)히 물(物)을 생양(生養)한다 함이다.
사람은 국가사회(國家社會)의 공동생활체(共同生活體)의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그 공동체(共同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중심(中心)에서 나오는 공동생활(共同生活) 정신(精神)이 곧 충(忠)이다. 사람은 그 사회(社會)에 출생(出生)하는 날에 스스로 그 국가사회(國家社會)의 일원(一員)이 되어, 국가사회(國家社會)의 생생(生生)이 곧 자신(自身)의 생생(生生)과 직결(直結)되는 것이므로 국민(國民)은 국가(國家)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충(忠)하는 것이 곧 자신(自身)의 생생(生生)을 위(爲)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自身)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각기직무(各其職務)를 통(通)하여 자기(自己)를 이(利)하고 아울러 사회(社會)를 이(利)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일에 참여(參與)하는 것은 국가사회(國家社會)의 생생(生生)을 위(爲)하는 충(忠)이 되는 동시(同時)에 또한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여 신(神)에 대(對)한 충(忠)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생활(生活)에는 형질(形質)로된 육체(肉體)의 생활(生活)과 천성작용(天性作用)인 정신(精神)의 생활(生活)과의 이원작용(二元作用)이 있는데, 육체(肉體)는 유형(有形)한 개체(個體)로 되어 개개인(個個人)의 독자(獨自)한 것이므로 육체생활(肉體生活)은 개체(個體)를 중심(中心)으로하여 행(行)하는 것이니, 이가 곧 본능생활(本能生活)이오 정신(精神)은 무형(無形)한 기(氣)로서 인류공통(人類共通)한 것이므로 정신생활(精神生活)은 전인류(全人類)의 소자출(所自出)한 신(神)을 중심(中心)으로 하여 행(行)하는 것이니, 이가 곧 이성생활(理性生活)이다. 사람의 정신(精神)은 신(神)을 중심(中心)으로하여 생활(生活)하고 있으므로 조상부모(祖上父母)에 대(對)한 효(孝)가 또한 신(神)에 대(對)한 효(孝)가되고 국가사회(國家社會)에 대한 충(忠)이 또한 신(神)에 대(對)한 충(忠)이 되는 것이며 동일(同一)히 신(神)을 우(祐)하는 일에 효(孝)와 충(忠)의 분별(分別)이 있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이것을 계계생생(繼繼生生)하는 조손전승관계(祖孫傳承關係)로써 볼 때에는 효(孝)가되고 공동생활(共同生活)하는 상하조직관계(上下組織關係)로써 볼 때에는 충(忠)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식물(植物)의 형질(形質)을「생(生)」의 기본조직(基本組織)으로하여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따르고, 동물(動物)의 본능(本能)을「자라는 작용(作用)」으로하여 자유(自由)로이 행동(行動)하며, 또 이들 식물(植物)과 동물(動物)을 생활자료(生活資料)로 하여 생생(生生)하고 있으므로 사람의 생생법칙(生生法則)이 식물동물(植物動物)과 동일(同一)하고 사람의 충효(忠孝)의 이(理)도 또한 식물동물(植物動物)의 생리(生理)와 상통(相通)하는 것이다. 초목(草木)이 뿌리로부터 점차(漸次)로 생장(生長)하여 본말(本末)의 차서(次序)가 있는 것은 사람이 조상(祖上)으로부터 대대(代代)로 계승(繼承)하는 형태(形態)와 같고 초목(草木)의 생장(生長)에 절(節)이 있는 것은 사람의 조손전승(祖孫傳承)하는 촌수(寸數)의 형태(形態)와 같으니 근본(根本)은 조상부모(祖上父母)의 상(象)이오 지엽(枝葉)은 자손(子孫)의 상(象)이라 초목(草木)의 지엽(枝葉)은 그 소자출(所自出)한 근본(根本)을 비호(庇護)하기 위(爲)하여 지엽(枝葉)을 뿌리의 신장(伸張)한 범위(範圍)만치 신장(伸張)시켜 뿌리가 일광(日光)에 건조(乾燥)됨을 방지(防止)하고 뿌리는 수분(水分)과 영양(營養)을 흡수(吸收)하여 지엽(枝葉)에 전달(傳達)하여 근본(根本)과 지엽(枝葉)이 모두 그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서로 비호(庇護)하고 서로 양육(養育)하니 이는 사람의 조상부모(祖上父母)와 자손(子孫)이 서로 그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천명(天命)의 줄을 연계(連繼)함과 같은 것이며, 초목(草木)의 지엽(枝葉)이 그 근본(根本)을 위(爲)하는 것은 효(孝)의 상(象)이 되므로 사람이 조상부모(祖上父母)를 위(爲)하는 효(孝)는 초목(草木)의 효(孝)의 이(理)와 상통(相通)하는 것이다.
동물체(動物體)의 각기관(各器官)은 순차적(順次的)으로 생장분기(生長分岐)하는 초목(草木)과는 달라서 그 출생(出生)하는 때에 통체(統體)가 이미 조직(組織)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출생(出生)하면서 스스로 그 소속(所屬)한 공동생활체(共同生活體)의 일원(一員)이 됨과 같고 동물체(動物體)의 각기관(各器官)이 그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공동(共同)으로 그 통체(統體)의 생생(生生)을 영위(營爲)하는 것은 사람이 자체(自體)의 생생(生生)을 위(爲)하여 그 소속(所屬)한 국가사회(國家社會)의 생생(生生)을 돕고 있음과 같은 것이며, 동물체(動物體)의 각기관(各器官)이 그 통체(統體)를 위(爲)하는 것은 충(忠)의 상(象)이 되므로 사람이 국가사회(國家社會)를 위(爲)하는 충(忠)은 동물체(動物體)의 충(忠)의 이(理)와 상통(相通)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간(天地間)의 모든 생물(生物)의 생생(生生)은 모두 효충(孝忠)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서괘(序卦)에「유부부연후유부자(有夫婦然後有父子) 유부자연후유군신(有父子然後有君臣) 유군신연후유상하(有君臣然後有上下) 유상하연후예의유소착(有上下然後禮義有所錯)」이라 하니 부자(父子)는 식물체(植物體)의 상(象)이오 군신(君臣)의 권력조직(權力組織)인 국가도(國家道)는 동물체(動物體)의 상(象)이오 상하도(上下道)는 자연질서(自然秩序)인 예의(禮義)의 착(錯)하는 인도(人道)의 상(象)이니, 이는 식물(植物)이 있은 연후(然後)에 동물(動物)이 있고 동물(動物)이 있은 연후(然後)에 사람이 있다하는 상(象)이다. 부자도(父子道)는 부모(父母)가 전력(全力)을 다하여 자녀(子女)를 생양(生養)하여 국가사회(國家社會)에 바치는 것으로서 이는 식물(植物)이 자체(自體)를 희생(犧牲)하여 동물체(動物體)를 생양(生養)하는 상(象)이오 국가도(國家道)는 국가(國家)가 전력(全力)을 다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하여 그 천성(天性)을 여물게 하는 것으로서, 이는 동물(動物)이 자체(自體)를 희생(犧牲)하여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상(象)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체(自體)를 생양(生養)하여주는 식물동물(植物動物)의 은덕(恩德)을 잊지 아니하는 것은 바로 자체(自體)를 생양(生養)하여주는 부모(父母) 국가(國家)의 은덕(恩德)을 잊지 아니하는 행위(行爲)와 상통(相通)하는 것이오 이 자체(自體)를 생양(生養)하여주는 은덕(恩德)을 잊지 아니하는 것이 곧 효충(孝忠)의 길이다.


■ 의(義)의 원리(原理)의(義)는 의(義)라함은 음양양물(陰陽兩物)이 서로 화합(和合)하여 하나의 새로운 합동체(合同體)를 이루는 것이오 그러므로 일부일부(一夫一婦)의 배합(配合하는 것을 천지(天地)의 대의(大義)라 한 것이다

註  ●의(義)의 이(理)가인괘(家人卦)에「남녀정천지지대의(男女正天地之大義)」라 하고 귀매괘(歸妹卦)에「천지지대의(天地之大義)」라 하니 이는 부부(夫婦)의 음양화합(陰陽和合)을 의(義)라 한 것이다.
사람의 사회생활(社會生活)은 가정(家庭)을 기본단위(基本單位)로 하여 행(行)하는 것이므로 가인괘(家人卦)에는「가(家)를 정(正)하매 천하(天下)가 정(定)한다」하여, 각개(各個)의 가정(家庭)이 사회조직(社會組織)의 기본(基本)이 되고 있음을 말하고, 또 「남(男)이 외(外)에 정위(正位)하고 녀(女)가 내(內)에 정위(正位)하여 남녀(男女)가 정(正)함은 천지(天地)의 대의(大義)」라 하여 부부(夫婦)라 함은 일남일녀(一男一女)가 서로 화합(和合)하고 각기(各其) 내외(內外)의 위(位)가되어 한 가정(家庭)을 이루는 것이므로 일부일부(一夫一婦)가 상배(相配)하는 것이 곧 대의(大義)라 함을 말하고, 손괘(損卦)에는「삼인(三人)이 행(行)하면 일인(一人)을 손(損)하고 일인(一人)이 행(行)하면 그 우(友)를 득(得)한다」하여, 이인상배(二人相配)하는 일부일부제(一夫一婦制)가 천지(天地)의 도(道)라 함을 말한 것이다. 천하(天下)의 중남중녀중(衆男衆女中)에서 오직 일남일녀(一男一女)가 상합(相合)하여 부부(夫婦)가되니 그 부부(夫婦)의 의(義)가 대(大)한 것이오 부부(夫婦)가 된 연후(然後)에는 일생(一生)동안에 부(夫)는 일부(一婦)를 위(爲)하고 부(婦)는 일부(一夫)를 위(爲)하여 함께 살고 있으니, 그 부부(夫婦)의 의(義)가 화(和)한 것이며, 남녀(男女)가 일부일부(一夫一婦)의 의(義)를 지키는 것은 서로 그 상대편(相對便)을 위(爲)하는 일인 동시(同時)에 또한 서로 그 자신(自身)의 생생(生生)을 위(爲)하는 일이다.
역괘(易卦)에는 남녀(男女)의 혼인(婚姻) 부부(夫婦)의 가정(家庭) 동몽(童蒙)의 출생(出生)의 세곳에 모두 신도(神道)를 말하니, 이 세 가지는 가정생활(家庭生活)의 주요(主要)한 일이오 그 중(中)에서도 가정(家庭)의 질서(秩序)를 세우는 부부(夫婦)의 의(義)가 그 중심(中心)이 되고 있어 가도(家道)를 정(正)한 연후(然後)에 국가사회(國家社會)의 생생사업(生生事業)도 행(行)할 수가 있고 효충(孝忠)한 자손(子孫)도 이러한 가정(家庭)에서 출생(出生)할 수가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부부간(夫婦間)에 의(義)의 화(和)한 가정(家庭)은 또한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여 신도(神道)가 행(行)하는 것이다.


●생활(生活)의 체용(體用)세간(世間)에는 개인주의사상(個人主義思想)을 가지고 자기(自己)의 개체(個體)의 생(生)만을 위(爲)하고 타인(他人)의 생(生)을 불고(不顧)하는 일이 허다(許多)한데 이것은 생활(生活)의 체용(體用)을 알지못하는 까닭이다. 자체(自體)의 생(生)을 위(爲)하는 것은 생활(生活)의 (體)이오 타인(他人)의 생(生)을 위(爲)하는 것은 생활(生活)의 용(用)이니, 사람은 내가 남을 위(爲)하는 때에 남이 또한 나를 위(爲)하여 비로소 공동생활(共同生活)을 영위(營爲)하는 것이라, 사람이 자체(自體)의 생(生)만을 위(爲)하고 남의 생(生)을 위(爲)하지 아니하면 이는 생활(生活)의 체(體)만있고 생활(生活)의 용(用)이 없는 것이므로 그 사람은 남으로 더불어 공동생활(共同生活)을 영위(營爲)하지 못하고 고립(孤立) 독존(獨存)한 생활(生活)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오 인간(人間)은 고립독존(孤立獨存)으로서 생활(生活)할 수는 없는 것이다. 충효의(忠孝義)의 원리(原理)도 실(實)은 생활(生活)의 체용(體用)에서 생(生)한 것이다.


第五章   미래(未來)의 성(成)의 시운(時運)
第一節 세상(世上)의 변화(變化)
■ 선천(先天)과 후천(后天)의 시운(時運)지금 이 시점(時點)은 만물(萬物)의 자라고 있는 장(長)의 시운(時運)이오, 물(物)의 자라는 자(者)는 반드시 여물어서 성(成)하는 것이므로 앞으로 오는 미래시운(未來時運)은 성(成)의 시운(時運)이다. 옛적에 생(生)의 시운(時運)으로부터 장(長)의 시운(時運)으로 넘어올 때에는 생(生)의 시운(時運)을 선천(先天)이라 하고 장(長)의 시운(時運)을 후천(后天)이라 하였는데 지금에는 장(長)의 시운(時運)으로부터 장차 성(成)의 시운(時運)으로 넘어가서 선세(先世) 건곤(乾坤)으로부터 차세대(次世代)의 건곤(乾坤)이 생(生)하는 것이므로 생(生)과 장(長)의 두 시운(時運)을 합(合)하여 모두 선천(先天)이라 하고 성(成)의 시운(時運)을 후천(后天)이라 한다. 후자(后字)는 후(後)라는 뜻과 여왕(女王)이라는 뜻과 선세(先世)를 계승(繼體)한다는 뜻과의 세 가지 뜻이 있으므로 장(長)하는 양운(陽運)의 후(後)에 성(成)하는 음운(陰運)이 계(繼)하고 은운(陰運)은 여(女)의 상(象)이라 하여 미래(未來)의 성(成)의 시운(時運)을 후천(后天)이라 한 것이다.
시운(時運)의 장(長)과 성(成)의 상(象)을 수목(樹木)의 생생(生生)으로써 보면 여름에 수목(樹木)의 양기(陽氣)가 내부(內部)로부터 외부(外部)에 발선(發宣)하고 수액(水液)이 뿌리로부터 위로 역상(逆上)하고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한 줄기 가지 잎사귀가 나와서 여러 갈래로 나뉘우고 하는 것은 장(長)의 시운(時運)의 상(象)이오, 가을에 외부(外部)의 양기(陽氣)가 수목(樹木)의 내부(內部)에 들어가서 수렴(收斂)하고 수액(水液)이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와서 뿌리로 돌아가고 열매가 여물어서 차세대(次世代)의 씨로 되고하는 것은 성(成)의 시운(時運)의 상(象)이다. 지금의 장(長)의 시운(時運)의 일을 옛적의 생(生)의 시운(時運)의 일에 비(比)하여 보면 인간계(人間界)의 일만으로써 보더라도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이 생(生)한 것과 소(少)에서 다(多)가 생(生)한 것이 그 대부분(大部分)이니, 옛적보다 인문(人文)이 발달(發達)하고 인구(人口)가 팽창(膨脹)한 것도 장(長)의 상(象)이오 사람들의 각종(各種) 생활자료(生活資料)와 여러 가지 기물(器物)이 새로 발명(發明)된 것도 또한 장(長)의 상(象)이다. 그런데 생(生)의 시운(時運)에서 장(長)의 시운(時運)으로 넘어올 때에는 일년(一年)으로치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오는 때와 같아서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이 생(生)하는 것이지만, 앞으로 장(長)의 시운(時運)에서 성(成)의 시운(時運)으로 넘어갈 때에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와 같아서 생장(生長)하던 것이 모두 수렴(收斂)으로 변(變)하고 이제까지 무성(茂盛)하던 잎사귀가 서리를 맞아서 떨어지고 여문 열매와 쭉정이가 분별(分別)되는 것이다.


■ 지구(地球) 달 사람의 변화(變化)우주(宇宙)의 천체(天體)는 그 조직(組織)이 음양(陰陽)의 이원작용(二元作用)으로 되어 수렴작용(收斂作用)과 발산작용(發散作用)이 있으므로 그 생생(生生)하는 과정(過程)에는 스스로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고 하여 수렴(收斂)하는 시운(時運)과 발산(發散)하는 시운(時運)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태양계(太陽系)의 우주(宇宙)도 시운(時運)의 변화(變化)가 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地球)도 부단(不斷)히 변화(變化)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地球)는 발생(發生)하는 당시(當時)에 단번(單番)에 완성(完成)된 것이 아니오 거기에도 생장성(生長成)의 상(象)이 있어 생(生)의 시운(時運)에 생(生)하고 장(長)의 시운(時運)에 자라며 지금에는 장(長)의 시운(時運)에서 성(成)의 시운(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이다. 지구(地球)가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수목생성(樹木生成)의 이(理)와같이 내부(內部)에 있는 양기(陽氣)가 외부(外部)로 발선방출(發宣放出)되어 음양(陰陽)이 조화(調和)치 못하므로 기후(氣候)의 극한(極寒)과 극서(極暑)가 있고 남북극(南北極)의 지(地)가 동결(凍結)하는 것이오 성(成)의 시운(時運)에는 양기(陽氣)가 외부(外部)로부터 내부(內部)에 입(入)하여 지열(地熱)이 높아지고 극한(極寒)과 극서(極暑)가없어 기후(氣候)가 온화(溫和)하고 남북극지방(南北極地方)의 얼음이 풀리는 것이니 지금에 남북극(南北極)의 얼음이 조금씩 풀리고 있는 것은 지구(地球)가 장(長)의 시운(時運)에서 성(成)의 시운(時運)으로 넘어가는 징조(徵兆)이다.
지구(地球)에 어떠한 변화(變化)가 생(生)하면 지구(地球)의 태궁(胎宮)으로 되어있는 달에도 또한 변화(變化)가 생(生)하는 것이다. 달의 조직(組織)은 간산(艮山)과 태택(兌澤)으로되고 간태(艮兌)는 건곤(乾坤)의 육자중(六子中)에 최소(最少)하므로 모체(母體)의 태궁중(胎宮中)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胎兒)의 상(象)이 되는데, 태중(胎中)의 태아(胎兒)는 반드시 여물어서 모복외(母腹外)로 출산(出産)하는 것이라 성(成)의 시운(時運)이되면 태중(胎中)에 있는 달도 또한 여물어서 변화(變化)하고 달이 변화(變化)하면 그 궤도(軌道)가 또한 변화(變化)하는 것이다. 달의 변화(變化)하는 상(象)을 생성(生成)의 이(理)로써 보건대, 사람의 태아(胎兒)가 모복중(母腹中)에 있을 때는 모체(母體)와 역행(逆行)하여 도생(倒生)의 상(象)이 되는 것인데 태아(胎兒)가 출산(出産)하면 모체(母體)와 같이 두(頭)가 천(天)을 향(向)하고 족(足)이 지(地)를 밟는 것이니, 이 이(理)에 의(依)하여 지금에는 달의 표면(表面)이 지구(地球)를 향(向)하고 이면(裏面)은 늘 이면(裏面)대로 있는 것인데 달이 여물어서 궤도(軌道)가 변화(變化)하면 월체(月體)가 뒤집혀서 지금의 표면(表面)이 안으로 숨어버리고 지금의 이면(裏面)이 지구(地球)를 향(向)하게 되는 것이다. 달의 소(消)하는 그믐에는 달이 태양(太陽)의 앞에 있고 달의 시생(始生)하는 초생(初生)에는 달이 태양(太陽)의 뒤에 있는 것이니 이 이(理)에 의(依)하여 성(成)의 시운(時運)에 달이 출생(出生)하는 때는 달이 태양(太陽)의 앞에서 태양(太陽)의 뒤로 돌아가는 상(象)이 되어 일월지구(日月地球)의 궤도(軌道)의 상호관계(相互關係)가 모두 변(變)하는 것이다.
달의 궤도(軌道)는 어떻게 변화(變化)하는가 하면 역학(易學)에는 건곤(乾坤)의 정책수(正策數)가 三百六十으로 되어 있어 이것이 주천(周天)의 정도수(正度數) 三百六十度와 일세(一歲)의 정일수(正日數) 三百六十日을 상(象)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주천도수(周天度數)는 三百六十五度餘가 되고 일세(一歲)의 일수(日數)는 三百六十五日餘가 되어 도수(度數)는 정도수(正度數)보다 오도여(五度餘)가 더 많고 일수(日數)는 정일수(正日數)보다 오일여(五日餘)가 더 많으니 이 오일여(五日餘)는 정일수(正日數)보다 늘어나는 윤일(閏日)이다. 윤(閏)이라 함은 회임생식(懷妊生殖)하여 수(數)가 늘어난다는 뜻이라, 지금은 장(長)의 시운(時運)이므로 천시(天時)에도 매세(每歲) 오일여(五日餘)의 윤일(閏日)이 생(生)하는 것이며 매세(每歲)에 오일여(五日餘)의 윤일(閏日)이 생(生)하는 까닭에 일월(日月)의 운행(運行)을 표준(標準)한 태음력(太陰曆)에는 오세(五歲)에 약(約) 양차(兩次)의 윤일(閏日)을 두고 윤월(閏月)이 드는 해는 십삼월(十三月)이 되어 이것을 윤세(閏歲)라하고 윤세(閏歲)의 총일수(總日數)는 평균(平均) 三百八十四日인데 이것은 일세(一歲)의 정일수(正日數) 三百六十日보다 二十四日이 더 많으니, 그러므로 二十四日은 윤일수(閏日數)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모태중(母胎中)의 태아(胎兒)는 윤생(閏生)의 상(象)이므로 태아(胎兒)의 수(數)는 二十四로 되고 지금의 지구(地球)가 약(約) 二十四度를 경사(傾斜)하고 있는 것도 또한 모태중(母胎中)에 태아(胎兒)의 윤수(閏數) 二十四가 보태어 있는 까닭이다. 태중(胎中)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胎兒)는 자람이 끝나면 반드시 여물어서 모복외(母腹外)로 출산(出産)하는 것이오, 태아(胎兒)가 출산(出産)하면 태아(胎兒)의 윤수(閏數) 二十四가 줄어서 모체(母體)는 三百六十의 정수(正數)가 되는 것이므로 지구(地球)의 태궁(胎宮)에서 달이 여물어서 궤도(軌道)가 변(變)하면서 출산(出産)하면 지구(地球)에서 二十四의 윤수(閏數)가 줄고 정수(正數) 三百六十이 되어 지구(地球)의 경사(傾斜)가 바로 서는 것이니, 이가 지구(地球)와 달의 변화(變化)하는 때이다. 지구(地球)가 바로 서고 달의 궤도(軌道)가 변(變)하면 해양(海洋)과 조석(潮汐)에 큰 변화(變化)가 일어나서 수(水)가 북지(北地)에서 석(汐)하고 남천(南天)에서 조(潮)하고 또 수(水)가 만절(萬折)하여 동(東)으로 향(向)하는 것이니, 이가 성(成)의 시운(時運)의 시(始)로서 윤(閏)없는 三百六十日曆이 나오는 때이다.


註  ●태궁(胎宮) 이십사(二十四數)역괘수(易卦數)는 六十四卦인데 六十卦는 부모수(父母數)이오 사괘(四卦)는 태궁수(胎宮數)이니 일괘(一卦) 육효(六爻)로써 계산(計算)하면 육십괘(六十卦)는 三百六十으로서 정수(正數)가되고 사괘(四卦)는 二十四로서 윤수(閏數)가 되는 것이다. 역괘(易卦) 六十四卦의 총효수(總爻數)는 三百八十四數로 되어 윤세(閏歲) 三百八十四日數와 동일(同一)하고 건곤정책수(乾坤正策數) 三百六十보다 二十四가 더 많으니 이 二十四는 태궁(胎宮) 사괘(四卦)의 효수(爻數)로서 그것이 태궁(胎宮)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胎兒)의 윤수(閏數)이다. 역경(易經)의 상경(上經)은 百八十爻이오 하경(下經)은 二百四爻로서 상하(上下) 경사(傾斜)의 상(象)이 되는 것은 하경(下經)속에 태궁(胎宮) 二十四爻가 들어 있는 까닭이니, 지구(地球)의 경사(傾斜) 약(約) 二十四度도 이 이(理)에 의(依)한 것이다.
천지(天地)의 시운(時運)이 변화(變化)하면 사람의 생리(生理)에도 또한 변화(變化)가 생(生)하는 것이니,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사람의 심기(心氣)가 주(主)로 외향(外向)하여 권세(權勢) 재리(財利) 명예(名譽等) 외적(外的) 생활(生活)에 치중(置重)하고 생장경쟁(生長競爭)이 심(甚)하며, 또 시운(時運)의 상(象)을 생물(生物)로써 보면 장(長)의 시운(時運)은 동물(動物)의 상(象)이오 동물(動物)은 전(專)혀 본능생활(本能生活)을하고 거의 전부(全部)가 개체생활(個體生活)을 하는 것이므로 사람도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본능생활(本能生活)과 개체주의생활(個體主義生活)이 주생활(主生活)로 되고 극단적(極端的)으로는 동물생활(動物生活)에 타락(墮落)하는 자(者)도 없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성(成)의 시운(時運)이되면 사람들의 생리(生理)가 일전(一轉)하여 천성(天性)이 여물고 신작용(神作用)이 생(生)하여 능(能)히 공간(空間)의 유심(幽深)과 시간(時間)의 미래(未來)를 통관(通觀)할 수가 있고 개체주의(個體主義)가 변(變)하여 천하(天下)가 동인(同人)하고 세계인류(世界人類)는 모두 한 가정(家庭)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천지자연수(天地自然數)가 구수(九數)까지만 자라고 십수(十數)의 자리가 열리지 아니하여 암흑(暗黑)속에 싸여 있으므로 사람마다 그 뱃속에 독자(獨自)한 비밀(秘密)을 감추고 있어 사람과 사람사이에 서로 신뢰(信賴)할 수가 없고 서로 이해관계(利害關係)로서 다투고 있어 이 세상(世上)은 공명(公明)할 날이 없는 것이다. 장(長)의 시운(時運)에서 성(成)의 시운(時運)으로 넘어가면 십수(十數)가 열려서 자연수(自然數)가 구전(具全)하여 신(神)의 작용(作用)이 행(行)하고 사람들의 천성(天性)에 신(神)의 작용(作用)이 행(行)하면 이 세상(世上)에는 비밀(秘密)이라는 것이 존재(存在)할 수도 없고 또 사람들의 마음이 광명(光明)하여 악(惡)을 행(行)하는 비밀(秘密)을 뱃속에 두지도 아니하여 이 세상(世上)은 광화(光華)한 신세계(神世界)를 이루는 것이다.


■ 물질문명(物質文明)의 몰락(沒落)과 정신문명(精神文明)의 발달(發達)사람의 생리(生理)가 시운(時運)을 따라서 변화(變化)하므로 사람의 학문(學問)의 경향(傾向)도 또한 시운(時運)을 따라서 변화(變化)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생생(生生)에는 모두 생명(生命)과 신(神)의 이원(二元)이 있는데, 생명(生命)의 운동(運動)은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한 형질(形質)이 생(生)하여 물질(物質)이 되고, 신(神)은 무형(無形)하여 유형(有形)한 물질(物質)속에 갈무리하여 있고 사람의 천성(天性) 심정등(心情等) 정신(精神)은 형질(形質)속에 갈무리하여 있는 신작용(神作用)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형질(形質)이 자라기는 물질(物質)로써 하고 정신(精神)이 여물기는 신작용(神作用)으로써하며, 또 사람은 자라는 일만을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하여 행(行)하고 생(生)하고 여무는 일은 신작용(神作用)에 의(依)하여 행(行)하는 것이므로 그 형질(形質)이 자라기 위(爲)하여 물질생활(物質生活)을 영위(營爲)함에는 사람마다 그 개체(個體)의 자유(自由)에 의(依)하여 행(行)하는 것이다. 동물(動物)들은 천연물(天然物)에 대(對)하여 아무런 가공(加工)도 없이 그대로 먹고살지만 사람은 반드시 천연물(天然物)에 인공(人工)을 가(加)하여 그 소용(所用)하는 물자(物資)를 창제(創製)하는 것이니 이가 인공(人工)이 천공(天工)을 대성(代成)함이오 이는 사람에게 물(物)을 창제(創製)하는 재능(才能)과 자유(自由)가 있는 까닭이다.
지금은 장(長)의 시운(時運)이오 장(長)의 시운(時運)은 형질(形質)의 자라는 때이므로 사람들은 자체(自體)가 자라기 위(爲)하여 형질(形質)의 자라는 원리(原理)를 연구(硏究)하기에 심력(心力)을 다하고 있는데, 장(長)의 시운(時運)의 초기(初期)에는 사람들의 생활(生活)이 단순(單純)하고 그 정신작용(精神作用)이 또한 어리므로 그 생활(生活)에 필요(必要)한 사물(事物)에 대(對)한 연구(硏究)가 부분적(部分的)으로는 진보(進步)와 발명(發明)이 깊지 아니하였으나 그 원리(原理)를 체계적(體系的)으로 짜 놓은 학문(學問)은 없었으며, 사람들의 정신(精神)이 점차(漸次) 자람을 따라서 비로소 사물(事物)을 연구(硏究)하는 여러 가지 방법(方法)이 안출(案出)되고 그중(中)에서도 특(特)히 분석(分析)과 실험(實驗)에 의(依)하여 형질(形質)의 자라는 원리(原理)를 찾아내는 학문(學問)이 생기니 이가 곧 과학(科學)이다. 과학(科學)이라 함은 분석(分析)과 실험(實驗)에 의(依)하여 물질(物質)의 조직운행(組織運行)되는 원리(原理)를 증명(證明)하는 학문(學問)이오 분석(分析)이라 함은 초목(草木)의 자랄 때에 지엽(枝葉)이 점점(漸漸) 나뉘움과 같은 것이니 과자(科字)도 초목(草木)이 자라서 가지가 나뉘운다는 뜻이며, 그러므로 과학(科學)은 장(長)의 시운(時運)에 사람들이 자체(自體)가 자라기 위(爲)하여 형질(形質)의 자라는 원리(原理)를 안출(案出)하여 계통적(系統的)으로 그 원리(原理)의 체계(體系)를 세운 학문(學問)이다. 장(長)의 시운(時運의 초기(初期)에는 비록 과학(科學)이라는 (學問)은 없었으나 사람들이 인공(人工)으로써 천공(天工)을 대행(代行)하여 그 생활자료(生活資料)를 창제(創製)하여 살아온 것이오 이들 창제물(創製物)은 현철(賢哲)한 선지자(先知者)들이 나와서 발명발견(發明發見)한 것이니 이는 과학이전(科學以前)의 인공(人工)이나 그 이후(以後)의 인공(人工)이나가 모두 그 때와 환경(環境)에 따라서 사람의 정신(精神)에서 안출(案出)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에 온 세인(世人)이 과학(科學)의 위데(偉大)함을 경탄(敬歎)하여 과학만능시대(科學萬能時代)가 되고 있으나 이것은 결(決)코 과학(科學)의 위대(偉大)함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의 정신발달(精神發達)의 위대(偉大)함에 기인(基因)한 것이다. 사람의 정신(精神)에는 생(生)하고 자라고 여물고 하는 발전(發展)이 있고 장(長)의 시운(時運)의 사람의 정신(精神)은 시운(時運)과 함께 자라고 있으므로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하여 능(能)히 사물(事物)을 분석(分析) 실험(實驗)하여 형질(形質)의 자라는 원리(原理)인 과학(科學)이라는 학문(學問)을 발견(發見)한 것이니 그러므로 과학(科學)은 사람의 정신(精神)의 자라는 과정(過程)에 형질(形質)의 자라는 원리(原理)를 연구(硏究)하는 방법(方法)으로서 안출(案出)된 산물(産物)에 불과(不過)한 것이오 이는 사람의 정신(精神)이 위대(偉大)하여 그 자라는 때에 물질문명(物質文明)을 건설(建設)하기 위(爲)하여 과학(科學)이라는 한 용구(用具)를 쓴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科學)은 장(長)의 시운(時運)의 인류사회(人類社會)에 찬란(燦爛)한 물질문명(物質文明)을 건설(建設)한 공적(功績)은 적지 아니하나 거기에는 스스로 일정(一定)한 한도(限度)가 있고 그 한도(限度)에 달(達)하면 그 이상(以上) 더 자라지 못하고 도리어 병적증상(病的症狀)이 나타나는 것이다.
만물(萬物)에는 물질(物質)과 정신(精神)의 양면(兩面)이 있어 생장성(生長成)의 운동(運動)을 행(行)하고 있는데 사람은 정신(精神)이 선(善)하기만 하면 무한성(無限性)을 가지고 생(生)하고 자라고 여물어서 신(神)과 상통(相通)하는 것이지만 물질(物質)로 된 형질(形質)은 자라기만하고 여물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형질(形質)이 자람을 극(極)하면 여무는 것이 아니라 노쇠(老衰)하여 소멸(消滅)하는 길로 향(向)하는 까닭이다. 이것을 초목(草木)으로써 보면 여름에 초목(草木)의 지엽(枝葉)이 번성(繁盛)하여 천록(靑綠)이 만지(滿地)하면 그 영화(榮華)한 경치(景致)는 가위(可謂) 절승(絶勝)이다. 그러나 여름과 가을의 교대(交代)하는 어느 하루아침에 이르러 기후(氣候)의 변화(變化)로 인(因)하여 추풍(秋風)이 일어나면 이제까지 번영(繁榮)을 극(極)하던 지엽(枝葉)의 영화(榮華)는 일시(一時)에 고락(枯落)하고 여문 열매만이 가지의 사이에 남게 되는 것이니, 지엽(枝葉)의 영화(榮華)는 사람의 형질(形質)의 상(象)이오 여문 열매는 사람의 여문 정신(精神)의 상(象)이다. 인류사회(人類社會)는 우주(宇宙)의 시운(時運)에 응(應)하여 장(長)의 시운(時運)과 성(成)의 시운(時運)이 있으므로 장(長)의 시운(時運)에서 성(成)의 시운(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에는 이제까지의 물질문명(物質文明)은 사람의 형질(形質)과 같이 또한 초목(草木)의 지엽(枝葉)과 같이 반드시 자람을 정지(停止)하고 노쇠고락(老衰枯落)하는 것이오 그 뒤에는 사람의 여문 정신(精神)이 신작용(神作用)을 행(行)함과 같이 또한 초목(草木)의 열매가 여물어서 세세계승(世世繼承)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함과 같이 반드시 한 차원(次元) 더 높은 신작용(神作用)의 문명(文明)이 발생(發生)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학(科學)은 그 자람을 극(極)하고 한 차원(次元) 높은 새 문명(文明)을 낳을 수가 없는가 하면, 과학(科學)은 분석실험(分析實驗)하는 방법(方法)을 통(通)하여 형질(形質)의 자라는 원리(原理)를 찾아내는 학문(學問)이니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물질(物質)의 면(面)은 이러한 방법(方法)으로써 연구(硏究)할 수가 있으나 분석실험(分析實驗)의 영역외(領域外)에 있는 형이상적(形而上的) 사물(事物) 예(例)컨대 만물(萬物)의 씨는 처음에 어떻게 생기고 또 어떻게 여물어서 우주창조(宇宙創造) 당시(當時)에 생겨난 씨가 지금까지 세세계승(世世繼承)하여 전래(傳來)하는가 하는 원리(原理)라든가 만물(萬物)에는 그 생장성(生長成)하는 자연법칙과(自然法則)과 정연불란(整然不亂)한 질서(秩序)가 어떻게 생겨서 각자(各自)가 독립적(獨立的)으로 생성(生成)하면서 또한 전체(全體)가 유기적(有機的)으로 함께 생성(生成)하고 있는가 하는 작용(作用)이라든가에 대(對)하여는 일언반구(一言半句)의 답안(答案)도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과학(科學)은 사람이 형질(形質)의 자라는 원리(原理)를 찾기 위(爲)하여 안출(案出)된 학문(學問)이므로 과학(科學)으로서는 물질(物質)의 자라는 원리(原理)밖에는 연구(硏究)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형질(形質)의 자라는 동안에만 자유의지(自由意志)를 행사(行使)하고 과학(科學)은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하여 안출(案出)된 학문(學問)이오 사람의 정신(精神)의 여무는 것은 신작용(神作用)에 의(依)하여 행(行)하는 것이므로 과학(科學)으로써 사물(事物)을 연구(硏究)함에는 오직 형질(形質)의 자라는 범위(範圍)에 그치고 그 이상(以上)의 여무는 영역(領域)에 대(對)하여는 거의 무지(無知)에 가까운 것이다. 더욱이 만물(萬物)은 모두 우주신(宇宙神)에서 창조(創造)되고 신(神)을 중심(中心)으로하여 그자라는 때는 원심운동(遠心運動)을 행(行)하여 형질(形質)이 자라고, 그 여무는 때는 향심운동(向心運動)을 행(行)하여 정신(精神)이 여물면서 신(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인데, 과학(科學)은 형질(形質)의 자라는 원리(原理)를 찾는 물질학(物質學)으로서 원심운동(遠心運動)을 행(行)하고 있으며, 원심운동(遠心運動)을 행(行)하는 자(者)는 신(神)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므로 과학(科學)은 발달(發達)하면 발달(發達)할수록 신(神)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내종에는 전연(全然) 신(神)을 망각(忘却)하게 되는 것이니, 이 원심운동(遠心運動)에서 향심운동(向心運動)으로 넘어가는 전환점(轉換點)이 곧 과학(科學)으로서는 넘을 수 없는 한도(限度)로서 한차원(次元) 더 높은 문명(文明)을 탄생(誕生)할 수 없는 소이(所以)이다.
만물(萬物)에는 생장성(生長成)의 운동(運動)이 있어 자라면 반드시 여물기로 되어 있으되 형질(形質)과 같은 것은 자람이 극(極)하면 노쇠(老衰)하여 소멸(消滅)의 길로 향(向)하는데 이소멸(消滅)의 길로 걸어가는 과정(過程)에 병적증상(病的症狀)이 일어나는 것이니, 노인(老人)들의 노쇠(老衰)가 곧 이 병(病)의 증상(症狀)이다. 과학문명(科學文明)은 물질문명(物質文明)으로서 인간사회(人間社會)의 도덕(道德)이나 선악(善惡)같은 것은 전연(全然) 관섭(關涉)하지 아니하고 오직 물질생활(物質生活)의 일층향상(一層向上)을 위(爲)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인류(人類生活)의 향상(向上)을 위(爲)하여 안출(案出)한 과학(科學)이 지금에 와서는 도리어 원자무기(原子武器)를 만들어 가지고 순식간(瞬息間)에 이 지구(地球)도 파괴(破壞)할 수 있을만치 횡포(橫暴)하여 인류(人類)의 생존(生存)을 위협(威脅)하고 있으니, 이는 과학(科學)이 노쇠병(老衰病)에 걸린 증상(症狀)이다.
인구(人口)의 생산(生産)은 사람의 형질(形質)의 자라는 상(象)이오 인류(人類)의 생생운동(生生運動)은 반드시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여 음양(陰陽)이 조화(調和)한 연후(然後)에 과도(過度)한 것도 없고 불급(不及)한 것도 없고 적당(適當)히 생(生)하고 적당(適當)히 자라는 것인데, 장(長)의 시운(時運)에 사람들의 기(氣)가 모두 외향(外向)하고 그 숭상(崇尙)하는 학문(學問)인 과학(科學)이 또한 자라는 방면(方面)으로 돌진(突進)하여 발산(發散)하는 것만을 알고 내수(內收)할 줄을 알지 못하므로 형질形質이 과도過度히 자라서 인구人口의 생산(生産)이 급격(急激)히 팽창(膨脹)하여 도리어 인류자체(人類自體)의 생활(生活)을 위협(威脅)하고 있으니, 이는 형질(形質)이 너무 자라서 노쇠병(老衰病)에 걸린 증상(症狀)이다. 원자무기(原子武器)의 횡포(橫暴)와 인구생산(人口生産)의 과잉(過剩)은 과학(科學)이 형질(形質)의 자라는 일에만 편중(偏向)하고 여무는 원리(原理)를 알지 못하는 소치(所致)로 생긴 병적증상(病的症狀)이며, 이 병(病)은 과학(科學)속에는 아무런 치료방법(治療方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정신(精神)에는 생장성(生長成)의 발전(發展)이 있는지라,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형질(形質)의 자라는 원리(原理)의 학문(學問)인 과학(科學)을 발명(發明)하여 찬란(燦爛)한 물질문명(物質文明)을 건설(建設)한 것이오 과학(科學)에는 자라는 원리(原理)만 있고 여무는 원리(原理)가 없으므로 노쇠(老衰)하여 병적증상(病的症狀)이 생기고 있지만, 사람의 정신(精神)은 장(長)의 시운(時運)에서 성(成)의 시운(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에는 여물기 위(爲)하여 자라기를 구(求)하지 아니하므로 시운(時運)으로 더불어 함께 여물려고 하는 인류(人類)에게는 과학(科學)은 쓸 곳이 없는 묵은 학문(學問)이 되는 것이오 또 여문다는 일은 자라는 원리(原理)의 학문인(學問)인 과학(科學)에게는 전연(全然) 상상(想像)조차 부도(不到)하는 미지(未知)의 경역(境域)이다. 그러므로 여물기를 구(求)하는 사람에게는 여무는 원리(原理)의 학문(學問)이 필요(必要)한 것이오 이 학문(學問)은 곧 정신(精神)을 여물게 하는 정신작용(神作用)의 원리(原理)인 신학(神學)이다. 성(成)의 시운(時運)에는 오직 신학(神學)만이 사람의 정신(精神)을 여물게 하여 과도(過度)히 자란 과학(科學)의 병적증상(病的症狀)을 극복(克服)하고 음양(陰陽)의 조화작용(調和作用)으로써 자연(自然)스럽게 인구(人口)의 생산(生産)을 조절(調節)하여 인류사회(人類社會)에 물질문명(物質文明)보다 한 차원(次元) 더 높은 정신문명(精神文明)을 건설(建設)하는 것이다.
신학(神學)에 의(依)하여 정신문명(精神文明)이 건설(建設)되면 사람들은 정신(精神)이 여물어서 지난날에 형질(形質)의 자람을 위주(爲主)하던 물질문명(物質文明)을 다시 추구(追求)하는 자(者)가 없어서, 물질문명(物質文明)은 추풍(秋風)이 일어난 뒤의 지엽(枝葉)과 같이 고락(枯落)하고 신학(神學)에 의(依)한 정신문명(精神文明)이 고락(枯落)한 지엽(枝葉)사이의 열매와 같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신학(神學)이라 함은 어떠한 것인가 하면 불교(佛敎)의 불경(佛經) 유교(儒敎)의 역학(易學) 기독교(基督敎)의성경(聖經)과 같이 우주신(宇宙神)과 사람과의 관계(關係)를 말한 학문(學問)이 곧 신학(神學)이오 신학(神學)에 의(依)한 정신문명(精神文明)이라 함은 종래(從來)의 과학(科學)은 사람의 정신(精神)이 모두 외향(外向)하여 외적지식(外的知識)을 구(求)하므로써 사물(事物)에 대(對)한 지식(知識)은 광범(廣汎)하게 얻을 수가 있었으나 자신(自身)의 정신(精神)은 혼암(昏暗)하여 영적(靈的)으로는 하나의 무지(無知)한 인간(人間)이 되고 있는 것인데, 신학(神學)은 정신(精神)이 내향(內向)하여 스스로 내명(內明)하므로 신작용(神作用)이 생(生)하고 신(神)과 상화(相和)하여 육안(肉眼)으로 볼 수 없는 사물(事物)도 능(能)히 영안(靈眼)으로써 볼 수가 있고, 육이(肉耳)로써 들을 수 없는 일도 능(能)히 영이(靈耳)로써 들을 수가 있고 미래(未來)의 사물(事物)을 예관(豫觀)할 수도 있는 것이니, 이가 신학(神學)에 의(依)한 정신문명(精神文明)이다.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사람들이 자유의지(自由意志)로써 형질(形質)의 자람을 위(爲)하여 생장경쟁(生長競爭)을 행(行)하고 그 까닭에 형질(形質)의 자라는 원리(原理)의 학문(學問)인 과학(科學)을 지상(至上) 학문(學問)으로 삼고 있으므로 사람들의 정신(精神)의 광명(光明)이 모두 형질(形質)에 엄폐(掩蔽)되어 혼암(昏暗)하게 된 것이오, 성(成)의 시운(時運)에는 사람들이 신(神)으로부터 선악(善惡)에 대(對)한 심판(審判)을 받고 비로소 정신(精神)이 내향(內向)하여 스스로 그 마음을 소명(昭明)하게 하는 것이므로 사람들의 영(靈)이 통명(通明)하는 것이며, 이 장(長)과 성(成)의 시운(時運)이 바뀌우는 때에 지금까지 번영(繁榮)을 자랑하던 과학문명(科學文明)이 물러가고 한 차원(次元)더 높은 신학문명(神學文明)이 오는 것이다. 이것을 역리(易理)로써 보면 인류(人類)의 과학시대(科學時代)의 생활(生活)은 충(蠱)의 유충생활(幼虫生活)과 같고 신학시대(神學時代)의 생활(生活)은 충(蠱)의 유충(幼虫)이 성충(成虫)인 접(蝶)으로 화(化)한 생활(生活)과 같은 것이다.


第二節   새 종교(宗敎)의 출현(出現)
■ 종교(宗敎)는 신도(神道)의 교(敎)종교(宗敎)라 함은 무엇인가, 역경(易經)에「성인(聖人)이 신도(神道)로써 교(敎)를 설(設)하매 천하(天下)가 복(服)한다」한 것이 종교(宗敎)의 본지(本旨)를 말한 것이다. 신도(神道)라 함은 역경(易經)에「관천지신도이사시불특(觀天之神道而四時不忒)」이라 한바와 같이 신(神)이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고 하는 도(道)로써 물(物)을 생(生)하고 자라게 하고 여물게 하고 하는 사시(四時)의 생장성작용(生長成作用)을 행(行)함을 말함이니 우주간(宇宙間)의 만물(萬物)은 모두 신도(神道)에 의(依)한 생장성(生長成)의 작용(作用)으로써 생(生)하고 자라고 여물고 하며, 사람도 이 생장성(生長成)의 작용(作用)에 의(依)하여 무형(無形)한 신(神)으로부터 유형(有形)한 형질(形質)을 받아서 생(生)하고 생(生)한 연후(然後)에 자유의지(自由意志)로써 인공(人工)을 행(行)하여 자라고 자란 연후(然後)에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다시 신(神)에게로 환행(圜行)하는 것이다. 성인(聖人)은 이 신도(神道)의 생장성(生長成)하는 작용(作用)을 본받아서 사람이 바르게 생(生)하고 바르게 자라고 바르게 여물고 하는 교리(敎理)를 삼고 그것으로써 교(敎)를 설(設)하여 사람을 가르치시니 이에 천하(天下)의 사람이 모두 이 교리(敎理)에 복종(服從)하여 신도(神道)의 속에서 생활(生活)하게 된 것이오, 이 신도(神道)의 교리(敎理)로써 사람을 가르치는 교육(敎育)이 곧 종교(宗敎)이다.
신(神)은 우주생성(宇宙生成)의 주재(主宰)로서 유일무이(唯一無二)하여 우주생명체(宇宙生命體)를 통솔(統率)하고 있으므로 우주(宇宙)의 생명체조직(生命體組織)이 곧 신(神의 체(體)이며 그러므로 우주생명체(宇宙生命體)가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함에,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한 형질(形質)을 조출(造出)하는 생(生)의 작용(作用)과 양기(陽氣)가 발동(發動)하여 물(物)을 자라게 하는 장(長)의 작용(作用)과 음기(陰氣)가 수렴(收斂)하여 물(物)을 여물게 하는 성(成)의 작용(作用)이 있음과 같이 신(神)의 체(體)에도 또한 이 생장성(生長成)의 세 가지 작용(作用)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일신(唯一神)이 생장성(生長成)의 어느 한 작용(作用)만을 행(行)하신다고 하면 이는 한 개체(個體)의 작용(作用)이 되고마는 것이며, 통체(統體)는 개체(個體)의 작용(作用)을 행(行)할 수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성인(聖人)을 이 세상(世上)에 내시어 각기(各其) 신(神)의 체(體)의 일부분(一部分)씩을 맡게 하고 성인(聖人)은 신(神)의 계획(計劃)한 자연법칙(自然法則)에 의(依)하여 생장성(生長成)의 이(理)로써 교(敎)를 설(設)하여 사람들을 가르치신 것이며 자연법칙(自然法則)의 생장성작용(生長成作用)에는 스스로 시운(時運)의 구별(區別)이 있으므로 신도(神道)의 교(敎)에도 또한 생(生)에 대(對)한 교리(敎理), 장(長)에 대(對)한 교리(敎理), 성(成)에 대(對)한 교리(敎理)의 구분(區分)이 있는 것이니, 이가 종교(宗敎)가 각립(各立)하여 그 교리(敎理)를 달리하는 소이(所以)이다.
신(神)의 체(體)가 생장성작용(生長成作用)을 행(行)하는 상(象)을 천지일월(天地日月)로써 보면 태양(太陽)속의 유형(有形)한 음질(陰質)은 우주무형중(宇宙無形中)에서 시생(始生)한 유형체(有形體)로서 생(生)의 상(象)이 되는데, 태양(太陽)의 조직(組織)은 양기(陽氣)인 천(天)과 음기(陰氣)인 지(地)와 전기(電氣)인 뇌(雷)와 자기(磁氣)인 풍(風)과 및 수화(水火)의 정(精)으로써 구성(構成)되고, 그 중(中)에서 지풍수화(地風水火)의 음질(陰質)이 태양(太陽)에서 분리(分離)하여 지구(地球)가 된 것이니, 그러므로 태양(太陽)속의 음질(陰質)과 지구(地球)는 동질(同質)의 유형체(有形體)로서 생(生)의 상(象)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만물(萬物)은 형질(形質)이 있으면 스스로 생생작용(生生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반드시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의 양성(兩性)이 있고 이 양성(兩性)의 교호작용(交互作用)에 의(依)하여 생장성(生長成)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것인데 태양(太陽)에서 나오는 광명(光明)은 음성(陽性)으로서 양기(陽氣)의 발시작용(發施作用)을 행(行)하고 양기(陽氣)는 장(長)의 상(象)이되며, 지구(地球)에 속(屬)하여 있는 달은 지구(地球)의 태궁(胎宮)인 음성(陰性)으로서 음기(陰氣)의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여 태양(太陽)에서 오는 양기(陽氣)를 승수(承受)하여 물(物)을 여물게 하고 음기(陰氣)는 성(成)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또 신(神)의 체(體)의 생장성작용(生長成作用)을 인신(人身)으로써 보면 사람의 형질(形質)은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이 생(生)하여 마치 태양(太陽)속의 음질(陰質)과 같은 것이므로 이것은 생(生)의 상(象)이 되고 남체(男體)의 양기(陽氣)는 자라서 발시작용(發施作用)을 행(行)하여 마치 태양(太陽)의 양기(陽氣)가 지구(地球)와 달의 음질(陰質)에 발시(發施)됨과 같은 것이므로 이것은 장(長)의 상(象)이 되고 여체(女體)의 태궁(胎宮)에서 태아(胎兒)가 장성(長成)하여 모복외(母腹外)로 출산(出産)하는 것은 마치 달이 태양(太陽)의 양기(陽氣)를 승수(承受)하여 물(物)을 여물게 함과 같은 것이므로 이것은 성(成)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生)이라 함은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한 형질(形質)의 시생(始生)함을 상(象)함이오 장(長)이라 함은 양기(陽氣)가 운행(運行)하여 물(物)을 시(始)하여 형체(形體)가 자람을 상(象)함이오 성(成)이라 함은 음정(陰精)이 양기(陽氣)를 포함(包含)하고 의(義)가 화(和)하여 차세대(次世代)를 작성(作成)함을 상(象)함이다.
우주(宇宙)의 주재(主宰)인 신(神)의 체(體)에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작용(作用)이 있고 이 세 가지 작용(作用)은 각기(各其) 생장성(生長成)의 세 가지 시운(時運)과 합치(合致)하는 것이므로 성인(聖人)의 교(敎)도 또한 세 가지 작용(作用)을 구분(區分)하여 세 가지 시운(時運)에 합치(合致)하는 교(敎)를 설(設)하신 것이니, 그러므로 처음에 나온 불교(佛敎)는 신(神)의 체(體)의 생(生)하는 작용(作用)과 생(生)하는 시운(時運)을 상(象)하고, 다음에 나온 유교(儒敎)는 신(神)의 체(體)의 장(長)하는 작용(作用)과 장(長)하는 시운(時運)을 상(象)하고, 내종에 나온 기독교(基督敎)는 신(神)의 체(體)의 성(成)하는 작용(作用)과 성(成)하는 시운(時運)을 상(象)한 것이다. 세간(世間)에는 여러 가지 형태(形態)의 종교(宗敎)가 있으나 이 신도(神道)의 세 가지 작용중(作用中)에서 어느 한 작용(作用)을 교리(敎理)로 한 연후(然後)에 성인(聖人)의 교(敎)가 되는 것이오 그렇지 못한 자(者)는 성인(聖人)의 교(敎)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 불교(佛敎)의 교리(敎理)불교(佛敎)가 신(神)의 체(體)의 생(生)하는 작용(作用)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천지간(天地間)에서 최초(最初)로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이 생(生)한 것은 태양(太陽)속에 있는 지풍수화(地風水火)의 음질(陰質)인데, 불교(佛敎)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로써 형질조직(形質組織)의 요소(要素)를 삼으니 이는 불교(佛敎)가 형질(形質)의 시생(始生)함을 상(象)하여 생(生)의 상(象)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불교(佛敎)는 색(色)이 그대로 공(空)이오 공(空)이 그대로 색(色)이라 하여 만물(萬物)의 자성(自性)은 생(生)도 없고 멸(滅)도 없다하니, 이는 만물(萬物)의 형질(形質)이 공(空)에서 생(生)하여 색(色)은 공(空)을 떠나지 아니하고 공(空)은 색(色)을 떠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서,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한 형질(形質)의 생(生)하는 상(象)을 말한 것이다.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음질(陰質)이 태양(太陽)의 속에 있을 때에는 늘 태양(太陽)의 광(光)을 받아서 광명(光明)을 발(發)하고 있으나 그것이 태양(太陽)에서 분리(分離)하여 지구(地球)로 되는 때에는 음질(陰質)이 양광(陽光)을 가리워서 광명(光明)을 발(發)치 못하는 것이며, 사람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음질(陰質)과의 인연(因緣)에 의(依)하여 지상(地上)에서 생(生)하고 자라는 것이니, 이 음질(陰質)은 아(我)도 아니오 아(我)의 것도 아닌 것인데, 사람의 음질(陰質)이 자라는 때는 스스로 광명(光明)을 가리워서 무명(無明)이 되는 것이오 무명(無明)이 되면「아(我)」「아(我)의 것」이라는 주관적(主觀的) 집착(執着)이 생(生)하여 탐진치(貪嗔癡)라는 삼독작용(三毒作用)이 일어나서 일생(一生)을 번뇌(煩惱)와 고(苦)의 속에서 헤매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불교(佛敎)의 수행(修行)에 의(依)하여 아(我)라든가 아(我)의 것이라든가 하는 주관적(主觀的) 집착(執着)을 없이하면 비록 형질(形質)은 있으되 형질(形質)의 생(生)이 생(生) 그대로 있고 자라지 아니하여, 마치 태양(太陽)속에 있는 음질(陰質)이 음질(陰質)그대로 있으면서 광명(光明)을 발양(發揚)함과 같은 것이오 형질(形質)이 광명(光明)을 발(發)하면 스스로 탐진치(貪嗔癡)의 모든 번뇌(煩惱)를 해탈(解脫)하고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고(苦)가 없는 것이니, 이것을 초목(草木)으로써 보면 초목(草木)의 씨의 조직(組織)이 자라지 아니하고 조직(組織)된 그대로 있는 상(象)이며 조직(組織)된 그대로 있는 자(者)는 내부(內部)에 광명(光明)을 갈무리하고 그 작용(作用)이 적연(寂然)히 정(靜)하므로 불교(佛敎)는 그 수행(修行)의 극치(極致)를 광명(光明)과 적정(寂靜)에 두는 것이니, 이가 불교(佛敎)의 근본교리(根本敎理)이다.
태양(太陽)속의 음질(陰質)과 지구(地球)의 음질(陰質)과는 모두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되어 그 본질(本質)이 동일(同一)하고 사람의 씨는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에서 오고 있으되 그 음질(陰質)은 또한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되어 지상(地上)의 음질(陰質)에서 자라고 있으므로 불교(佛敎)에서는 사람의 생전(生前)에 잘 수행(修行)하여 천성(天性)이 씨의 조직(組織)과 같이 조직(組織) 그대로 있고 자라지 아니하면,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이 천상(天上)의 광명(光明)한 곳에서 생(生)한다 하고 이 광명(光明)한 곳을 극락세계(極樂世界)라 한다.
극락세계(極樂世界)는 광명(光明)이 찬란(燦爛)하여 아름답고 깨끗하며 나무와 궁전(宮殿)이 모두 칠보(七寶)로 되어 있다 하니 칠보(七寶)라 함은 찬란(燦爛)한 칠색광명(七色光明)으로서 이것이 바로 태양광명(太陽光明)의 칠색(七色)의 상(象)이다. 천상(天上)의 광명체(光明體)는 태양(太陽)과 달이오 달은 지구(地球)에서 분리(分離)하여 달의 음질(陰質)과 태양(太陽)속의 음질(陰質)은 그 본질(本質)이 동일(同一)하고 태양(太陽)의 광명(光明)과 달의 광명(光明)이 또한 그 본질(本質)이 동일(同一)한 것인데, 태양(太陽)은 양성(陽性)이므로 발산작용(發散作用)을 행(行)하여 생(生)함을 주(主)하고 달은 음성(陰性)이므로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여 여무는 것을 주(主)하니 그러므로 사람의 사후귀신(死後鬼神)은 발산작용(發散作用)을 행(行)하는 태양(太陽)에는 가지 못하고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는 달로 가는 것이며, 이 까닭에 태양(太陽)의 광(光)을 받아서 광명(光明)을 발(發)하고 있는 달이 곧 극락세계(極樂世界)이오 이는 귀신(鬼神)이 달에 의부(依附)한다는 이(理)에 의(依)한 것이다. 지구(地球)의 음질(陰質)과 달의 음질(陰質)은 그 본질(本質)이 동일(同一)하므로 사람은 지상(地上)에도 생(生)하고 천상(天上)의 달에도 생(生)하여 사후(死後)에 극락세계(極樂世界)로 갈 수가 있는 것이다.
불교(佛敎)는 생(生)을 상(象)하여 자라지 아니하는 수행(修行)을 쌓기 위(爲)하여 「아(我)」「아(我)의것」이라는 집착(執着)을 없애는 동시(同時)에 또한 사람의 주요(主要)한 본능(本能)을 억제(抑制)하고 있으니, 그 교인(敎人)들이 생산업(生産業)을 영위(營爲)치 아니하고 걸식(乞食)을 하는 것은 음식본능(飮食本能)을 억제(抑制)함이오 혼인(婚姻)을 하지 아니하여 가정(家庭)을 두지 아니하는 것은 생식본능(生殖本能)을 억제(抑制)함이다. 사람의 본능(本能)에는 음식본능(飮食本能) 생식본능(生殖本能) 및 장수본능(長壽本能)의 세 가지가 있는데, 아(我) 아(我)의것에 집착(執着)치 아니하고 자신(自身)의 형질(形質)을 사유(私有)치 아니하여 정신적(精神的)으로 장수본능(長壽本能)을 억제(抑制)하고 또 육체적(肉體的)으로 음식본능(飮食本能)과 생식본능(生殖本能)을 억제(抑制)하니, 이는 철저(徹底)히 자라지 아니하는 수행(修行)이다. 그러나 우주(宇宙)의 시운변화(時運變化)는 인력(人力)의 미치지 못하는 곳이므로 불교(佛敎)에도 시운변화(時運變化)에 순응(順應)하는 일이 있으니, 석가(釋迦)가 전생(前生)의 선혜보살(善慧菩薩)로부터 인세(人世)에 출생(出生)할 때에 「모든 사람이 불법(佛法)에 들어올 근성(根性)이 익었는가, 인간계(人間界)에서 부처될 때가 되었는가」하는 것을 관찰(觀察)하고 인간(人間)에 태어난 것인즉 석가(釋迦) 이전(以前)의 사람들은 아직 불법(佛法)에 들어올 근성(根性)이 익지 못하여 비록 수행(修行)을 하더라도 인간(人間)에서 부처가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오, 이가 시운변화(時運變化)의 증거(證據)이다.
불교(佛敎)는 신(神)의 체(體)의 생(生)하는 작용(作用)을 상(象)한 것인데, 그 교리(敎理)에 우주(宇宙) 유일신(唯一神)을 말하지 아니하고 수다(數多)한 천신(天神)을 말하니 이는 형질(形質)의 시생(始生)함을 상(象)한 까닭이다. 물(物)의 형질(形質)이 생(生)하는 자(者)는 모두 개체(個體)로 되어 공간(空間)에 포열(布列)하는 상태(狀態)로 되고 시생(始生)한 동몽(童蒙)과 같아서 능동적(能動的)인 통일운행(統一運行)이 행(行)치 못하니 통일운행(統一運行)은 유일신(唯一神)의 작용(作用)인데, 형질(形質)의 시생(始生)을 상한(象)한 불교(佛敎)에는 통일운행(統一運行)이 없으므로 유일신(唯一神)을 말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불교(佛敎)에도 유일신(唯一神)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교(儒敎)에서는 유일신(唯一神)을 상제(上帝)라하고 기독교(基督敎)에서는 유일신(唯一神)을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세계인류(世界人類)는 모두 유일신(唯一神)의 자손(子孫), 유일신(唯一神)의 백성(百姓)으로서 서로 형제(兄弟)가 되고 있으며 신(神)의 최대사업(最大事業)은 그 자손(子孫)인 세계인류(世界人類)를 생양(生養)하는 일이오 따라서 사람의 최대사업(最大事業)과 최대도덕(最大道德)이 또한 자신(自身)의 형제(兄弟)인 세계인류(世界人類)를 생양(生養)하는 일이니, 이 까닭에 유교(儒敎)에서는 인(仁)을 행(行)하여 백성(百姓)을 사랑하라 하고 기독교(基督敎)에서는 박애(博愛)로써 네몸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는 것이며 불교(佛敎)에서는 자비(慈悲)로써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라하니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는 것이 곧 유교(儒敎) 기독교(基督敎)와 같이 자신(自身)의 세계형제(世界兄弟)를 생양(生養)한다는 원리(原理)에서 나온 일이오 세계인류(世界人類)를 자신(自身)의 형제(兄弟)로 생각하는 것이 곧 우주유일신(宇宙唯一神)을 모시고 있는 증거(證據)이다.


■ 유교(儒敎)의 교리(敎理)유교(儒敎)가 신(神)의 체(體)의 장(長)하는 작용(作用)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유교(儒敎)의 원문(原文)은 역경(易經)이오 역경(易經)에는 태양(太陽)에서 오는 양자(陽子)인 진자(震子)가 자라서 달의 음정(陰精)과 상교(相交)하는 상(象)을 말하고 있으므로 장(長)의 시운(時運)을 상(象)한 교리(敎理)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경서괘(易經序卦)의 초두(初頭)에는 천지(天地)의 창생(創生)하는 때의 일월(日月)의 생(生)하는 원리(原理)를 말하고 중간(中間)에는 달의 자라는 원리(原理)를 말하고 종단(終端)에는 달이 여물어서 변화(變化)하는 원리(原理)를 말한 것이며 역경(易經)은 일월(日月)의 변화(變化)로써 시운(時運)의 생장성(生長成)하는 원리(原理)를 말한 까닭에 역경(易經)이라는 역자(易字)가 일월(日月)로 되고 거기에 변역(變易) 천역(遷易)한다는 뜻을 우(寓)한 것이다.
역경(易經)에 말한 일월상교(日月相交)는 태양(太陽)의 진뢰(震雷)와 달의 태택(兌澤)이 음양작용(陰陽作用)으로써 상교(相交)하는 것인데 진(震)은 장남(長男)이오 태(兌)는 소녀(少女)이며 역리(易理)에 이장이소(二長二少)의 상합(相合)을 정(正)이라 하고 장(長)과 소(少)의 상합(相合)을 부정(不正)이라 하는 것이므로 진장남(震長男)과 태소녀(兌少女)의 상교(相交)는 부정(不正)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사람이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가지고 상극(相克)을 주(主)하여 반드시 음양(陰陽)이 정(正)치 못하고 서로 생장경쟁(生長競爭)을 행(行)하여 악(惡)이 발생(發生)하는 것이며, 이 까닭에 역경(易經)에는 인류(人類)가 시생(始生)한 곳에 악(惡)을 막고 선(善)을 양(揚)함을 말한 것이며 악(惡)을 막고 선(善)을 양(揚)하는 것이 유교(儒敎)의 근본교리(根本敎理)이다. 물(物)의 자라는 것은 장차(將且) 여물기 위(爲)함이오 물(物)이 여물면 내부에(內部)에 신작용(神作用)을 포함(包含)하는 것이므로 유교(儒敎)에는 불교(佛敎)나 기독교(基督敎)와 같은 사후(死後)의 극락(極樂) 천당(天堂)의 이(理)를 말하지 아니하고 다만 이 세상(地上)에 인류세계(人類世界)가 있고 천상(天上)에 신세계(神世界)가 있고 사람의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신(神)에게로 환행(圜行)한다는 원리(原理)를 말한 것이다.


■기독교(基督敎)의 교리(敎理)기독교(基督敎)가 신(神)의 체(體)의 성(成)하는 작용(作用)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태양(太陽)에서 오는 진자(震子)는 달의 음정중(陰精中)에 입(入)한 연후(然後)에 만물(萬物)의 형질(形質)을 작성(作成)하여 여무는 것이오, 진자(震子)가 달에 입(入)하면 마치 사람의 생식작용(生殖作用)에서 남체(男體)의 정자(精子)가 여체(女體)의 난자(卵子)를 결(決)하여 입(入)하고 난자(卵子)는 자체(自體)를 희생(犧牲)하고 그 혈(血)이 정자(精子)를 포(包)하여 정자(精子)와 난자(卵子)의 상교(相交)하는 때에 만물(萬物)을 묘(妙)하게 하는 신작용(神作用)을 받고 있음과 같이 달의 음정(陰精)도 진자(震子)를 승수(承受)하는 때에 음정(陰精)이 결(決)하고 혈(血)이 위거(違去)하는 이(理)가 있는 것이며, 예수가 십자가(十字架)에서 몸을 희생(犧牲)하고 보혈(保血)의 작용(作用)으로써 그 제자(弟子)들를 포(包)하고 성령(聖靈)을 내려서 제자(弟子)들의 천성(天性)을 여물게 하여 사후(死後)에 천당(天堂)으로 가게 하는 것은 바로 달의 음정(陰精)이 진자(震子)를 육성(育成)함과 같은 것이니, 이 보혈(保血)로써 제자(弟子)들의 천성(天性)을 여물게 하여 신(神)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기독교(基督敎)의 근본교리(根本敎理)이다.
예수는 무슨까닭에 자신(自身)을 희생(犧牲)하여 제자(弟子)들을 육성(育成)하는가 하면 예수는 우주신(宇宙神)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따라서 자체(自體)의 생성(生成)을 위(爲)하여 그 제자(弟子)들의 천성(天性)을 여물게 하는 것이니, 이는 예수는 신(神)의 체(體)의 성(成)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상(象)으로서 신(神)의 자손(子孫)들을 여물게 하는 임무(任務)를 맡고 있으므로 자체(自體)를 희생(犧牲)하고 그 보혈(保血)로써 제자(弟子)들을 육성(育成)하는 것이 곧 신(神)의 생성작용(生成作用)을 대행(代行)하는 동시(同時)에 또한 자체(自體)의 생성(生成)을 완수(完遂)하는 길이 되는 까닭이다. 음정(陰精)이 양기(陽氣)를 수(受)하여 태육(胎育)함에는 반드시 음정(陰精)의 희생(犧牲)과 혈거작용(血去作用)이 행(行)하는 것이므로 예수의 십자가희생(十字架犧牲)과 보혈(保血)은 바로 이 임무(任務)를 수행(遂行)하여 신(神)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완성(完成)한 것이다.
만물(萬物)의 생장(生長)한 자(者)는 반드시 사(死)하고 물(物)의 사(死)하는 것은 죄(罪)를 짓고 사형(死刑)을 당(當)하는 상(象)이니, 그러므로 생장(生長)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출생(出生)하면서부터 원죄(原罪)를 짓고 있는 것이며, 사람이 사(死)하지 아니하고 영생(永生)하게되면 이는 원죄(原罪)를 속(贖)하는 상(象)이다. 성경(聖經)에는 세계인류(世界人類)가 모두 아담 해와의 자손(子孫)으로 되어 있는데 아담 해와가 선악과(善惡果)를 따먹고 생장(生長)한 까닭에 노사(老死)하는 죄(罪)를 짓고 그 자손(子孫)들은 모두 반드시 자라서 죽는다는 원죄(原罪)를 지은 것이오, 예수의 제자(弟子)들은 예수의 보혈(保血)에 의(依)하여 성령(聖靈)을 받고 구원(救援)을 받아서 영생(永生)하게 되는데 영생(永生)하는 것은 원죄(原罪)를 면(免)한다는 뜻이라, 이는 예수가 그 보혈(保血)로써 제자(弟子)들의 원죄(原罪)를 속(贖)한 상(象)이 되는 것이다.
달의 음정(陰精)이 태양(太陽)의 진자(震子)를 승수(承受)하여 물(物)을 작성(作成)하는 것은 수목(樹木)의 접목(接木)하는 이(理)인데, 예수의 제자(弟子)가 예수의 안에 들어가서 예수를 믿고 그 보혈작용(保血作用)에 의(依)하여 성령(聖靈)을 받는 것은 또한 접목(接木)의 상(象)이 되므로 성경(聖經)에는 이것을 포도(葡萄)나무에 가지를 접(接)함과 같다고 한 것이니 이는 예수가 달의 상(象)이 되고 있는 까닭이다. 달이 처음에 출생(出生)한 것은 우주부모(宇宙父母)의 상교(相交)에 의(依)하여 출생(出生)한 것이 아니라 그 모체(母體)인 지구(地球)에서 자연발생(自然發生)하여 분리(分離)하여 나온 것이오 지구(地球)는 달의 모체(母體)의 상(象)이니 이는 달이 모체(母體)에서 동정녀탄생(童貞女誕生)한 것이며 예수가 모태중(母胎中)에서 동정녀탄생(童貞女誕生)한 것은 달이 그 모체(母體)인 지구(地球)에서 자연발생(自然發生)한 것과 같은 것이다. 성경(聖經)에는 예수의 출생(出生)에 대(對)하여 말하기를「하나님의 말씀이 육신(肉身)이 되었다」고하니, 이것을 역리(易理)로써 보면 말씀은 택정(澤精)의 상(象)이오 택정(澤精)은 또한 달의 상(象)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함은 태양(太陽)에서 분출(分出)한 달이라는 뜻이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肉身)이 되었다 함은 달의 택정(澤精)이 예수의 육신(肉身)이 되었다는 뜻이니 달이 예수의 육신(肉身)으로 된 것이 곧 예수의 동정녀탄생(童貞女誕生)의 이(理)이다. 예수는 달의 상(象)으로서 음체(陰體)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므로 남자(男子)이면서 처(妻)를 취(聚)하지 아니하고 남의 자녀(子女)인 제자(弟子)를 포용(包容)하여 접목작용(接木作用)을 행(行)한 것이다. 예수의 제자(弟子)들은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사후(死後)에 천당(天堂)으로 가는데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은 반드시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는 달로 들어가는 것인즉 천당(天堂)도 또한 달을 말함이니 이는 불교(佛敎)의 극락(極樂)과 기독교(基督敎)의 천당(天堂)이 모두 달을 말한 것이다. 불교(佛敎) 유교(儒敎) 기독교(基督敎)의 세 종교(宗敎)는 신(神)의 체(體)의 세작용중(作用中)에서 각기(各其) 한 작용(作用)을 취(取)하여 교리(敎理)를 삼아서 인류(人類)를 교화(敎化)한 것이므로 세 종교(宗敎)는 모두 유일신(唯一神)의 일부분(一部分)씩을 상(象)하고 설교(設敎)의 목적(目的)이 또한 모두 사람이 신(神)을 닮는데에 있는 것이니, 이제 그 교리(敎理)의 이동(異同)한 바를 예거(例擧)하여 본다.


■삼교(三敎) 교리(敎理)의 상호관련(相互關聯)불교(佛敎)는 태양(太陽)속의 음질(陰質)을 상(象)하고 유교(儒敎)는 태양(太陽)의 양기(陽氣)가 지구(地球)와 달의 음정(陰精)을 상교(相交)함을 상(象)하고 기독교(基督敎)는 달을 상(象)하며 불교(佛敎)는 생(生)함을 상(象)하고 유교(儒敎)는 장(長)함을 상(象)하고 기독교(基督敎)는 성(成)함을 상(象)한 것이 그 상이(相異)한 바이다.
이 생장성(生長成)을 역리(易理)로써 보면 불교(佛敎)는 복희팔괘도(伏義八卦圖)의 상(象)이오 유교(儒敎)는 문왕팔괘도(文王八卦圖)의 상(象)이오 기독교(基督敎)는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의 상(象)이다.
불교(佛敎)의 생사해탈(生死解脫)의 이(理)는 성경(聖經)의 아담 해와의 이(理)와 상통(相通)하니 불교(佛敎)는 생(生)을 상(象)한 종교(宗敎)이오 씨의 생(生)한 것이 생(生) 그대로 있어 자라지 아니하고 모든 감각(感覺)에서 생(生)하는 탐진치(貪嗔癡)의 번뇌(煩惱)를 끊으면 고(苦)에서 해탈(解脫)되어 천상(天上)에서 생(生)하고 다시 인간세상(人間世上)으로 오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는 천상(天上)에서 영생(永生)하는 이(理)이며, 기독교(基督敎)의 창세기(創世記)에는 아담 해와가 비로소 유형(有形)한 인간(人間)으로 출생(出生)하여 생명(生命)나무의 열매만 먹고 선악(善惡)을 아는 선악과(善惡果)를 먹지 아니하면 천상(天上)에서 영생(永生)하는 것인데 사(蛇)의 유혹(誘惑)을 받아서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은 까닭에 에덴 동산에서 몰려나고 마침내 생활(生活)의고(苦) 사(死)의고(苦) 잉태(孕胎)의고(苦)가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을 서로 비교(比較)하여 보면 불교(佛敎)가 탐진치(貪嗔癡)의 마음을 끊는다 함은 자라지 아니한다는 뜻이오 기독교(基督敎)가 선악(善惡)을 모른다 함은 또한 자라지 아니한다는 뜻인데 사(蛇)의 유혹(誘惑)을 받고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은 것은 곧 자라기 시작(始作)한 상(象)이다. 그러므로 만일 아담 해와가 선악과(善惡果)(생장성(生長成))를 따먹지 아니하고 자라지 아니하여 천상(天上)에서 영생(永生)하면 이는 바로 불교(佛敎)의 교리(敎理)가 되는 것이며, 아담 해와가 사(蛇)의 유혹(誘惑)을 받은 까닭에 자라고 또 여물어서 기독교(基督敎)의 교리(敎理)가 생(生)한 것이다.
사(蛇)는 음기(陰氣)의 자라는 상(象)이니 이것을 역리(易理)로써 보면 역학(易學)은 장(長)을 상(象)한 학문(學問)이오 상경(上經)은 양(陽)의 장(長)함을 말하고 하경(下經)은 음(陰)의 장(長)함을 말한 것인데, 상경(上經) 수괘(首卦)의 양(陽)에 용(龍)의 상(象)이 있고 하경(下經) 수괘(首卦)의 음양상교(陰陽相交)에 용사(龍蛇)의 상(象)이 있으니, 이는 양(陽)의 장(長)하는 상(象)을 용(龍)이라 하고 음(陰)의 장(長)하는 상(象)을 사(蛇)라 한 것이며 해와가 사(蛇)의 유혹(誘惑)을 받았다 함은 해와는 여체(女體)로서 음정(陰精)의 자라는 충동(衝動)을 받고 있는 상(象)이다. 지금 기독교(基督敎)의 일파(一派)에서 신부(神父) 수녀(修女)의 독신제도(獨身制度)가 있는데, 이것은 아담 해와가 선악과(善惡果)를 따먹기 이전(以前)의 상(象)으로서 불교(佛敎)의 독신출가(獨身出家)의 이(理)와 상통(相通)하는 것이다.
불교(佛敎)는 사람의 생전(生前)에 번뇌(煩惱)의 마음을 끊지 못하면 몇생(生)동안 인간(人間)에 환생(幻生)하여 마음을 닦는 것이니, 이가 윤회(輪廻)의 이(理)이며, 만일 생전(生前)에 번뇌(煩惱)를 끊으면 천상(天上)에 나서 다시 이 세상(世上)에 오지 아니하는 것이며, 기독교(基督敎)에서는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천당(天堂)에 가면 천당(天堂)에서 영생(永生)한다 하니, 이것도 양교(兩敎)의 영생교리(永生敎理)가 상동(相同)한 것이다. 다만 불교(佛敎)는 생(生)을 상(象)하므로 몇생(生)동안 천상(天上)과 인세(人世)를 왕래(往來)하여 다시 인세(人世)에 와서 수행(修行)하고 수행(修行)이 되지 아니한 자(者)는 축생지옥(畜生地獄)과 인세(人世)를 윤회(輪廻)하지만 기독교(基督敎)는 성(成)을 상(象)하므로 장(長)에서 성(成)으로 넘어갈 때에 심판(審判)을 받고 영생(永生)과 쭉정이가 결정(決定)되어 있으므로 다시 축생지옥등(畜生地獄等)으로 윤회(輪廻)하는 일은 없고 다만 천상(天上)과 인세(人世)를 왕래(往來)하는 것이다. 지옥(地獄)은 불교(佛敎)와 기독교(基督敎)가 동일(同一)히 지중(地中)을 말한 것이니 지중(地中)은 열탕(熱湯)이 끓고 있는 곳인데 죄(罪)를 지은 사람의 귀(鬼)는 이 지중열탕(地中熱湯)속에 거(居)하는 것이니 지옥(地獄)은 달의 극락천당(極樂天堂)과 대조(對照)되는 것이다. 불교(佛敎)에서는 천상(天上)에 난 사람이 그 소원(所願)에 따라서 이 세상(世上)에 환생(幻生)하여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는 일이 있고 기독교(基督敎)에서도 엘리아가 요한으로 환생(幻生)하였으니, 이것이 또한 천상(天上) 인세(人世)를 왕래(往來)하는 한 형태(形態)이다.
불교(佛敎)는 신(神)의 체(體)의 형질(形質)의 시생(始生)함을 상(象)한 것이므로 신(神)의 체(體)에서 발양(發揚)하는 양기(陽氣)의 작용(作用)과 수렴(收斂)하는 음기(陰氣)의 작용(作用)이 모두 그 속에 포함(包含)되어 있어 한편에서는 부단(不斷)히 발양(發揚)하고 한편에서는 부단(不斷)히 수렴(收斂)하여 원심운동(遠心運動)과 향심운동(向心運動)이 병행(倂行)하고 귀신(鬼神)과 사람이 서로 순환생생(循環生生)하여 인세(人世)에도 나고 천상(天上)의 극락(極樂)에도 나고 축생지옥(畜生地獄)에서도 나는 것이다.
유교(儒敎)의 원문(原文)인 역학(易學)은 신(神)의 체(體)의 양기(陽氣)가 발양(發揚)하여 물(物)의 장(長)함을 상(象)한 것이오 물(物)의 장(長)하는 자(者)는 원심운동(遠心運動)을 행(行)하여 신(神)에서 점점(漸漸) 멀어지는데, 원심(遠心運動)을 행(行)하는 물(物)은 비록 신(神)과 상리(相離)하지는 못하되 또한 신(神)과 상화(相和)하지도 못하여, 자유의지(自由意志)로써 자신(自身)을 행동(行動)하고 있으니, 그러므로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의 선악(善惡)이라는 것은 그 장(長)하는 동안에 원심운동(遠心運動)을 행(行)하는 때에만 있는 것이오, 이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한 행위(行爲)의 선악(善惡)에 따라서 천성(天性)이 여물기도하고 쭉정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천성(天性)이 여무는 것은 신(神)으로부터 복(福)을 받는 상(象)이오 쭉정이가 되는 것은 신(神)으로부터 해(害)를 받는 상(象)이니, 이가 자신(自身)의 행위(行爲)에 대(對)하여 자신(自身)이 책임(責任)을 지고있는 원리(原理)이다. 사람이 장(長)하는 동안은 생(生)과 성(成)의 중간(中間)에 있어 사(死)와 관련(關聯)되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역학(易學)에는 극락지옥(極樂地獄)의 이(理)가 없고 다만 해복(害福)의 이(理)가 있는 것인데 그 실(實)은 해(害)가 지옥(地獄)으로 가는 길이오 복(福)이 극락(極樂)으로 가는 길이다.
기독교(基督敎)는 신(神)의 체(體)의 음기(陰氣)가 수렴(收斂)하여 물(物)의 성(成)함을 상(象)한 것이오 물(物)의 성(成)하는 자(者)는 향심운동(向心運動)을 행(行)하여 신(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며, 사람이 향심운동(向心運動)을 행(行)하면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신(神)에게로 돌아가고 향심운동(向心運動)을 행(行)치 아니하면 천성(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신(神)에게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신(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그 귀신(鬼神)이 소멸(消滅)치 아니하고 영생(永生)하는 것이니 이가 기독교(基督敎)의 영생(永生)의 이(理)로서 천당(天堂)으로 간다는 것이다.
유교(儒敎)와 기독교(基督敎)는 신(神)의 체내(體內)의 음양관계(陰陽關係)로서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고 하는 도(道)이므로 유교(儒敎)의 역학(易學)과 기독교(基督敎)의 성경(聖經)은 일신(一神)의 양면(兩面)으로 되어 두 글이 모두 신(神)의 계시(啓示)로 되어있는 것이다. 역학(易學)은 성인(聖人)이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칙(則)하고 시법(蓍法)을 용(用)하여 지은 글인데, 하도(河圖)는 복희씨(伏羲氏)때에 용마(龍馬)가 도(圖)를 등에 지고 하수(河水)에서 나온 것이오 낙서(洛書)는 요순(堯舜)때에 귀(龜)가 서(書)를 등에 지고 낙수(洛水)에서 나온 것으로서 모두 신(神)의 게시(啓示)하신 그림이오 시법(蓍法)은 성인(聖人)이 신명(神明)을 유찬(幽贊)하여 생(生)한 것이며, 성경(聖經)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기록(記錄)한 글로서 신(神)의 게시(啓示)에 의(依)하여 이루어진 것이니 이는 장(長)의 시운(時運)에서 성(成)의 시운(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에 천지일월(天地日月)의 변화(變化)가 있으므로 신(神)은 그 자손(子孫)들의 향(向)할바의 길을 가르치시는 동시(同時)에 또한 그 시운(時運)에 처(處)할바의 방법(方法)을 알리시기 위(爲)하여 학문(學問)으로된 역학(易學)과 신앙(信仰)으로된 성경(聖經)을 게시(啓示)로써 이 세상(世上)에 내리신 것이다. 불교(佛敎)의 경전(經典)에 신(神)의 게시(啓示)가 없는 것은 불교(佛敎)는 유일신(唯一神)을 말하지 아니하고 또 생(生)을 상(象)하여 동몽(童蒙)의 상(象)이 되는데 동몽(童蒙)은 신(神)의 게시(啓示)를 알지못하고 동몽(童蒙)의 교육(敎育)에는 스승의 말이 가장 유효(有效)한 것이므로 그 글은 주(主)로 스승인 부처의 교훈(敎訓)으로 된 것이다. 역경(易經)과 성경(聖經)은 모두 신(神)의 게시(啓示)로 된 글로서 서로 표리(表裏)가 되고 있으므로 역경서괘(易經序卦)의 초두(初頭)와 성경창세기(聖經創世記)의 초두(初頭)는 서로 깊이 통(通)하고 있는 것이다.





(赤色 漢文은 1850년대 聖經을 編緝者 任意揷入)서괘(序卦) 초두(初頭)의 건곤괘(乾坤卦)는 천지(天地)의 시(始)로서 창세기(創世記) 초두(初頭)의「태초(太初)에 하나님이 천지(天地)를 창조(創造)하심」이오
서괘(序卦)의 둔몽괘(屯蒙卦)는 수(水)가 시생(始生)하고 혼매(昏昧)의 속에서 광명(光明)이 시발(始發)하는 것으로서 창세기(創世記) 첫날의「신(神)이 수면(水面)에 운행(運行)하시고 주야(晝夜)가 나뉘움」이오


1元始、上帝創造天地)
2地乃虛曠混沌、淵際晦冥、上帝之神煦育乎水面
3上帝曰、宜有光、卽有光、
4上帝視光爲善、遂判光暗、

5謂光爲晝、謂暗爲夜、有夕有朝、是乃一日、○)
 
서괘(序卦)의 수송괘(需訟卦)는 천(天)이 수중(水中)에 있다가 천(天)과 수(水)가 나뉘우는 것으로서 창세기(創世記) 둘째 날의「궁창(穹蒼)이 생기고 궁창(穹蒼)아래의 물과 궁창(穹蒼)위의 물로 나뉘움」이오

6上帝曰、水中宜有穹蒼、使水判乎上下、
7遂作穹蒼、以分穹蒼上下之水、有如此也、
8上帝謂穹蒼爲天、有夕有朝、是乃二日、○)


서괘(序卦)의 사비괘(師比卦)는 구토(水土)가 합(合)하여 땅이 시성(始成)하는 것으로서 창세기(創世記) 셋째날의「천하(天下)의 물이 한곳으로 모여서 땅과 바다가 되고 초목(草木)이 생(生)함」이오

9上帝曰、天下諸水、宜匯一區、俾見大陸、有如此也、
10謂大陸爲地、謂匯水爲海、上帝視之爲善、
11上帝曰、地宜生草、及結實之蔬、結果之樹、果懷其核、各從其類、有如此也、
12地遂生草、及結實之蔬、結果之樹、果懷其核、各從其類、上帝視之爲善、
13有夕有朝、是乃三日、○


서괘(序卦)의 소축리괘(小畜履卦)는 달이 비로소 생겨서 일월(日月)의 광명(光明)이 지상(地上)을 비치는 것으로서 창세기(創世記) 넷째날의「두 큰 광명(光明)이 생기어 큰 광명(光明)은 낮을 주관(主管)하고 작은 광명(光明)은 밤을 주관(主管)함」이오

14上帝曰、穹蒼宜有輝光、以分晝夜、以爲兆象、以定四時年日、
15光麗於天、照臨於地、有如此也、
16上帝造二巨光、大者司晝、小者司夜、亦造星辰、
17置之穹蒼、照臨於地、
18以司晝夜、以分明晦、上帝視之爲善、19有夕有朝、是乃四日、○


서괘(序卦)의 태비괘(泰否卦)는 위의 천(天)과 하(下)의 지(地)가 상교(相交)하여 만물(萬物)이 통(通)하는 것으로서 창세기(創世記)의 다섯째날의「물과 땅위에 생물(生物)이 번성(蕃盛)함」이오

20上帝曰、水宜滋生生物、鳥飛地上、戾乎穹蒼、
21遂造巨魚、曁水中所滋生之動物、各從其類、又造羽族、各從其類、上帝視之爲善、
22祝之曰、生育衆多、鱗介充牣於海、禽鳥繁衍於地、
23有夕有朝、是乃五日、○

서괘(序卦)의 동인대유괘(同人大有卦)는 인류(人類)가 시생(始生)하여 천(天)으로부터 천우신조(天佑神助)를 받는 것으로서 창세기(創世記) 여섯째 날의 「하나님의 형상(形狀)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지상(地上) 공중(空中) 물속의 모든 생물(生物)을 다스리게 하심」이오

24上帝曰、地宜產生生物、各從其類、牲畜昆蟲走獸、各從其類、有如此也、
25遂造走獸牲畜、地上昆蟲、皆各從其類、上帝視之爲善、
26上帝曰、宜造人、其形其象肖我儕、以治海魚飛鳥牲畜、及動於地上之昆蟲、並治全地、
27遂造人、維肖乎己、象上帝形、造男亦造女、
28上帝祝之曰、生育衆多、遍滿於地、而治理之、以統轄海魚飛鳥、與地上動物、
29又曰、遍地結實之菜蔬、懷核之樹果、我予汝以爲食、
30至地上走獸、空中飛鳥、曁動於地上之生物、我賜之青草以爲食、有如此也、
31上帝視凡所造者盡善、有夕有朝、是乃六日

서괘(序卦)의 겸예괘(謙豫卦)는 달에서 발생(發生)한 사람의 씨가 비로소 지상(地上)에 내려와서 유형(有形)한 인간(人間)이 되는 것으로서 창세기(創世記) 일곱째날의「천지(天地)와 만물(萬物)이 다 이루어짐」이다.

1天地萬物旣成、
2七日上帝造物工竣、乃憩息、

그런데 서괘(序卦)에는 겸예괘(謙豫卦)의 다음인 수고괘(隨蠱卦)에 산택(山澤)의 수토기(水土氣)가 합(合)하여 사람의 형질(形質)이 생기고 거기에 풍(風)을 넣어서 고(蠱)를 생(生)하고 이에 남녀(男女)가 분화(分化)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성경(聖經)도 일곱째날의 창조완성(創造完成)은 천상(天上)에서 사람의 씨를 완성(完成)함이오 지상(地上)에서 유형(有形)한 인간형질(人間形質)을 완성(完成)한 것은 아니며, 그러므로 일곱째날이 지난 뒤에 비로소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생명(生命)을 불어넣어 아담을 창조(創造)한 것이오 사람은 남녀(男女)가 모두 남체(男體)속의 정자(精子)에서 출생(出生)한다는 이(理)에 의(依)하여 아담의 몸의 일부(一部)를 떼어서 해와를 창조(創造)하였다고 한 것이다.

3蓋是日上帝畢其工而安息、遂錫嘏此日、別之爲聖、○
4耶和華上帝創造天地之日、其畧如左、
5爾時野無草木、田間蔬菜未生、蓋耶和華上帝未降雨於地、亦無人耕之、
6惟霧由地上騰、普潤土壤、
7耶和華上帝摶土爲人、噓生氣於其鼻、乃成生靈、
8耶和華上帝植囿於東方之伊甸、置所造之人於其間、
9耶和華上帝使地生諸樹、觀可娛目、食可適口、當囿之中、有生命之樹、及別善惡之樹、
10有河流自伊甸、灌漑其囿、中分四支、
11一曰比遜、瀠洄於哈腓拉、其地產金、
12厥金精良、亦產珍珠碧玉、
13二曰基訓、環流於古實、
14三曰希底結、流於亞述東、四曰伯拉、
15耶和華上帝挈其人置伊甸囿、使之治理監守、
16命之曰、囿中樹果、任意可食、
17惟別善惡之樹、其果不可食、食之日必死、○
18耶和華上帝曰、人獨處非善、我將作一相助者以配之、
19耶和華上帝以土造野間走獸、空中飛鳥、攜至其人前、視其稱以何名、其所以稱各生物者、卽其物之名也、
20其人於牲畜飛鳥走獸、各命以名、惟己無相助者配之、
21耶和華上帝乃令其人酣睡、取其脇骨之一、彌縫其肉、
22以所取之脇骨造女、攜至其前、
23其人曰、是乃我骨中之骨、肉中之肉、可稱爲女、因自男出也、
24是以人將離父母、膠漆其妻、成爲一體、
25夫婦並裸、亦無愧焉、

역경(易經)에는 생(生)의 시운(時運)으로부터 장(長)의 시운(時運)으로 넘어갈 때에는 원시인(原始人)의 대부분(大部分)이 수중(水中)에독 (瀆)하고 오직 최초(最初)로 출생(出生)한 진자(震子)가 천지(天地) 뇌풍(雷風) 수화(水火) 산택(山澤)의 팔상(八象)을 구(具)하여 착생(着生)하여 독(瀆)치 아니하고 비로소 상제(上帝)가 인류(人類)의 조상(祖上)임을 알 것인대 성경(聖經)에 노아 홍수(洪水)는 또한 생(生)의 시운(時運)으로부터 장(長)의 시운(時運)으로 넘어가는 때로서 오직 당대(當代)의 의인(義人)이라하는 노아 가족(家族) 팔인(八人)만이 살고 그 외(外)의 사람은 전부(全部) 수독(水瀆)하였으니 이가 두 글이 서로 표리(表裏)가되는 곳이오 노아 가족(家族)의 부모(父母) 삼남(三男) 삼부(三婦)의 팔인(八人)은 바로 역경(易經)의 부모(父母) 삼남(三男) 삼녀(三女)의 팔괘(八卦)의 상(象)이다.
역학(易學)의 음양이원(陰陽二元)은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이(理)인데, 기독교(基督敎)에서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생명(生命)을 불어넣었다 하는 것도 또한 일체이원(一體二元)이며 불교(佛敎)의 인연(因緣)도 모두 상대성(相對性)을 띄어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상(象)이 되니 불(佛) 유(儒) 기독(基督)의 삼교(三敎)는 신(神)의 체(體)의 상(象)인 일월지구(日月地球)의 조직원리(組織原理)에서 나온 것이므로 모두 일체이원(一體二元)의 이(理)로 되는 것이다.


■ 삼교일체(三敎一體)의 새 종교(宗敎)사람은 신(神)의 자손(子孫)으로서 세상(世上)에 태어나서 바르게 생(生)하고 바르게 자라고 바르게 여물고 한 연후(然後)에 다시 신(神)에게로 돌아가서 신(神)을 우(祐)하여 우주(宇宙)의 생성사업(生成事業)을 행(行)하는 것이니, 이가 사람이 세상(世上)에 태어난 목적(目的)이다. 그러나 사람의 자라는 동안에는 그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하여 선악간(善惡間)에 마음대로 행(行)하고 신(神)을 믿고 믿지아니하는 것도 또한 그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속(屬)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신(神)은 그 자손(子孫)되는 세계인류(世界人類)에게 바르게 생(生)하고 바르게 자라고 바르게 여물고하는 길을 가르치시기 위(爲)하여 성인(聖人)을 세상(世上)에 보내어 신도(神道)로써 생장성(生長成)의 원리(原理)를 가르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佛敎)는 생(生)의 원리(原理)를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비록 형질(形質)을 가지고 있으되 태양(太陽) 속의 음질(陰質)과 같이 생(生) 그대로의 상태(狀態)로 있어 광명(光明)을 잃지 아니하고 어둠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는 것을 교리(敎理)로 한 것이오, 유교(儒敎)는 장(長)의 원리(原理)를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형질(形質)은 비록 자라고 있으되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이 음질(陰質)에 엄폐(掩蔽)되지 아니하고 그 성정(性情)이 광명(光明)을 발양(發揚)하는 것을 교리(敎理)로 한 것이오 기독교(基督敎)는 성(成)의 원리(原理)를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에서 보낸 성령(聖靈)을 받고 천당(天堂)으로 올라가는 것을 교리(敎理)로 한 것이니, 이 세 종교(宗敎)는 신(神)의 세 가지 작용(作用)으로서 셋이면서 하나이다.
석가(釋迦) 공자(孔子) 예수 세 성인(聖人)은 비록 그 교리(敎理)는 생장성(生長成)의 세 가지를 각기분담(各其分擔)하여 설(設)하고 있으되 모두 장(長)의 시운(時運)에 출생(出生)하고 있으므로 그 교리(敎理)에는 장(長)의 시운(時運)의 사람들을 가르치는 원리(原理)가 공통(共通)으로 들어 있으니, 이는 불교(佛敎)의 자비(慈悲)와 유교(儒敎)의 인(仁)과 기독교(基督敎)의 박애(博愛)이다. 만물(萬物)의 자라는 것은 장차(將且) 열매를 맺아서 씨가 영원(永遠)히 계계생생(繼繼生生)하기 위(爲)함이오 사람의 자라는 것도 또한 천성(天性)이 여물어서 알맹이가 생겨서 신작용(神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함인데 알맹이는 인(仁)의 상(象)이오 사람의 천성(天性)에 인(仁)이 있은 연후(然後)에 선(善)이 발육(發育)하여 천성(天性)이 여무는 것이니, 유교(儒敎)는 자람을 상(象)한 것이므로 알맹이가 되는 인(仁)을 말한 것은 당연(當然)한 일이오 불교(佛敎)의 자비(慈悲)와 기독교(基督敎)의 박애(博愛)도 모두 인(仁)이라는 뜻이며, 이는 세 성인(聖人)이 모두 장(長)의 시운(時運)에 출생(出生)하고 그 시운(時運)의 사람들이 모두 자라는 과정(過程)에 있으므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천성(天性)이 인(仁)을 행(行)하여 자라면서 여물게 하기 위(爲)하여 인(仁)과 자비(慈悲)와 박애(博愛)를 근본교리(根本敎理)로 한 것이다.
지금은 장(長)의 시운(時運)에서 성(成)의 시운(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이므로 사람들은 스스로 향심운동(向心運動)으로써 신(神)에게로 돌아가는 때이며, 신(神)에게로 돌아가면 스스로 신(神)의 체(體)의 음기(陰氣)의 수렴(收斂)하는 속에 들어가는 것이오, 신(神)의 수렴(收斂)하는 속은 곧 예수의 안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지금에 예수를 믿지 아니하고 불교(佛敎)를 믿든지 유교(儒敎)를 믿든지 기타(其他) 어떠한 종교(宗敎)를 믿든지를 물론(勿論)하고, 우주유일신(宇宙唯一神)을 믿고 신(神)의 사업(事業)을 우(祐)하는 자(者)는 모두 예수의 안으로 들어가서 결과적(結果的)으로 기독교(基督敎)를 믿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聖經)의 아담 하와 기록(記錄)에 생(生)의 시운(時運)을 상(象)한 불교(佛敎)의 교리(敎理)가 있고 노아방주기록(方舟記錄)에 장(長)의 시운(時運)을 상(象)한 유교(儒敎)의 교리(敎理)가 있고 또 삼교(三敎)의 경전중(經典中)에는 오직 성경(聖經)에 우주유일신(宇宙唯一神)인 하느님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바르게 여물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바르게 생(生)하여야하고 또 반드시 바르게 자라야 하는 것이므로 우주유일신(宇宙唯一神)의 생장성(生長成)의 세 작용(作用)을 법(法)하여 불교(佛敎)의 교리(敎理)대로 생(生)하고 유교(儒敎)의 교리(敎理)대로 자라고 기독교(基督敎)의 교리(敎理)대로 여문 연후(然後)에 능(能)히 신(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오 후천(后天)의 새 종교(宗敎)는 이러한 원리(原理)에서 출발(出發)하는 것이다.


第三節   미래(未來)의 정치(政治)
■ 사부정치(師傅政治)장(長)의 시운(時運)은 원심운동(遠心運動)의 형태(形態)로서 사람이 신(神)으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신작용(神作用)이 행(行)치 못하고 사람들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하여 정치(政治)를 행(行)하므로 생장경쟁(生長競爭)이 격심(激甚)하여 선악(善惡)이 뒤섞여 있고 세력(勢力)의 강(强)한 자(者)가 세력(勢力)의 약(弱)한 자(者)를 압제(壓制)하고 정권(政權)을 잡고 민중(民衆)의 위에 임(臨)하고 있으므로 정치형태(政治形態)가 군주정치(君主政治)이든지 자본주의(資本主義)의 정치(政治)이든지 또는 민주정치(民主政治)이든지를 불문(不問)하고 모두 권력정치(權力政治)로 되어 권력(權力)으로써 민중(民衆)을 지배(支配)하는 것이니, 이가 장(長)의 시운(時運)에 행(行)하는 정치(政治)의 특징(特徵)이다. 권력정치(權力政治)의 제도하(制度下)에서는 스스로 권력(權力)을 잡은 자(者)가 권력(權力)없는 민중(民衆)을 지배(支配)하게되어 옛적의 군주정치(君主政治)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근세(近世)의 소위(所謂) 민주정치(民主政治)라는 것도 실제(實際)에 있어서는 권력(權力)이 민중(民衆)을 지배(支配)하는 정치(政治)이오 민중(民衆)을 국가(國家)의 주권자(主權者)로 모시는 정치(政治)가 아니니, 이는 장(長)의 시운(時運)의 인간(人間)들은 자라는 과정(過程)에 있는 한 미성품(未成品)으로 되어 있으므로 사람의 생생사업(生生事業)을 수행(遂行)한다는 생각보다 그 권력(權力)을 자유의지(自由意志)대로 행사(行使)하고 싶어하는 생각이 앞서는 까닭이다.
근세(近世) 소위(所謂) 공산주의(共産主義)라는 정치(政治)가 나와서 자본주의(資本主義) 타파(打破)를 표방(標榜)하고 자본주의하(資本主義下)의 식민지(植民地)를 해방(解放)시킴에는 일조(一助)가 되고 있었으나, 우주(宇宙)의 유일신(唯一神)을 알지못하고 유물사상(唯物思想)에 빠져서 계급독재(階級獨裁)로써 민중(民衆)을 노예화(奴隸化)하는 정치(政治)를 행(行)하니 이 정치(政治)는 인간사회(人間社會)에 절대(絶對)로 용납(容納)할 수 없는 학정(虐政)이다.
정치(政治)라 함은 국가최대(國家最大)의 생생사업(生生事業)이오 어느 집권자(執權者)의 사리(私利)를 위(爲)하는 일이 아니니, 그러므로 위정자(爲政者)는 민중(民衆)의 기한(飢寒)하는 것을 자기가족(自己家族)의 기한(飢寒)함과 같이 여기고 민중(民衆)의 병고(病苦)하는 것을 자기가족(自己家族)의 병고(病苦)함과 같이 여긴 연후(然後)에 국가(國家)의 생생사업(生生事業)이 완수(完遂)되는 것이니, 이것은 봉의사회(蜂蟻社會)의 예(例)로써 알 수 있는 일이다. 봉의사회(蜂蟻社會)는 그 수다(多數)한 군중(群衆)이 자연(自然)스럽게 화합(和合)하고 각자(各自)가 모두 그 직무(職務)에 충실(忠實)하여 질서(秩序)가 자연(自然)스럽게 유지(維持)되고 있으니, 이는 그 사회(社會)의 통솔자(統率者)가 바로 부모(父母)이오 사회(社會)의 구성원(構成員)이 모두 자식(子息)으로서, 부모(父母)와 자식(子息)의 한 가족(家族)이 한 집단(集團)을 이루어, 사회원(社會員)이 곧 한 가족(家族)인 까닭이다. 인간사회(人間社會)는 그렇지 아니하여 수다(數多)한 가족(家族)으로써 구성(構成)되고 있으므로 그 통솔자(統率者)는 자기(自己)의 가족(家族)과 타인(他人)의 가족(家族)을 차별(差別)하여 민중(民衆)을 자기(自己)의 가족(家族)과 같이 생각치 아니하고 권력(權力)으로써 지배(支配)하며, 그 민중(民衆)이 또한 그 통솔자(統率者)를 자가(自家)의 존장(尊長)과 같이 생각치 아니하고 하나의 권력지배자(權力支配者)로 여겨서, 이에 봉의사회(蜂蟻社會)와 같은 자연(自然)스러운 질서(秩序)가 서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神)은 만물(萬物)의 창조주(創造主)로서 사람의 시조(始祖)가 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모두 신(神)을 모시고 신(神)의 뜻에 합(合)하는 나라를 세우면, 신(神)은 비록 무형(無形)하되 스스로 그 나라의 천조(天祖)가 되고 세계인류(世界人類)는 모두 천조일신(天祖一神)의 밑에서 일조(一祖)의 자손(子孫)이 되어 한 가족(家族)을 이루게 되는 것이니, 이는 바로 봉의사회(蜂蟻社會)의 형태(形態)이다. 그러나 신(神)은 무형(無形)하므로 사람들이 신(神)을 모시는 것은 정신(精神)의 면(面)을 말함이오 정치(政治)는 아니며, 성(成)의 시운(時運)에 실제(實際) 정치(政治)를 행(行)함에 있어서는 신(神)의 뜻을 받들어 행(行)하는 사부제도(師傅制度)가 행(行)하는 것이다.
사부제도(師傅制度)라 함은 사부(師傅)가 정치(政治)의 임(任)에 당(當)하여 신도(神道)로써 사람을 가르쳐서 지식(知識)을 열고 천성(天性)을 여물게 하고 국가(國家)의 정치기관(政治機關)은 권력기관(權力機關)이 아니라 한 교장(敎場)으로 되어 있고 국가기관(國家機關)에 종사(從事)하는 관원(官員)은 모두 사부(師傅)의 일을 행(行)하고 민중(民衆)들은 권력(權力)에 지배(支配)되는 것이 아니라 사부(師傅)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제도(制度)이다. 만물중(萬物中)에서 언어(言語)와 문자(文字)를 사용(使用)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니, 사람은 언어(言語)로써 복잡(複雜)한 의사(意思)를 표시(表示)하고 온갖 사물(事物)의 상태(狀態)를 설명(說明)하며, 문자(文字)는 모든 언어(言語)를 기록(記錄)하여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을 초월(超越)하여 원격지(遠隔地)에서도 서로 의사(意思)를 전달(傳達)할 수가 있고 몇 천백년전(千百年前)의 일이라도 문자(文字)의 기록(記錄)에 의(依)하여 그것을 알수 있는 것이며, 사람에게 언어(言語)와 문자(文字)가 있는 까닭에 사부(師傅)의 도(道)가 행(行)하여 인간(人間)의 오랜동안의 경험(經驗)과 연구(硏究)를 제자(弟子)에게 전달(傳達)하여 능(能)히 그 천성(天性)을 여물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부(師傅)와 제자(弟子)와의 관계(關係)는 비록 타인(他人)과 타인(他人)의 사이라 하더라도 그 은의(恩誼)가 부모자식간(父母子息間)의 사이와 같아서 사부(師傅)는 그 제자(弟子)를 자식(子息)과 같이 생각하고 제자(弟子)는 그 사부(師傅)를 부모(父母)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니, 사부제도하(師傅制度下)의 정치(政治)는 봉의사회(蜂蟻社會)의 형태(形態)와 거의 동일(同一)한 작용(作用)을 행(行)할 수가 있는 것이오, 비록 봉의사회(蜂蟻社會)와 동일(同一)치 아니하다 하드래도, 저 장(長)의 시운(時運)의 권력지배(權力支配)의 사회(社會)와 같이 사부(師傅)가 제자(弟子)를 기만(欺瞞)하거나 착취(搾取)하거나  음해(陰害)하거나 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리(易理)에는 성(成)의 시운(時運)에 사부정치(師傅政治)가 행(行)하기로 되어있는 것이다. 지금의 선천시대(先天時代)에도 사람을 교육(敎育)하는 사부(師傅)의 도(道)가 없는 것은 아니나 선천(先天)의 교육(敎育)은 장(長)의 시운(時運)에 처(處)하여 사람들의 심기(心氣)가 외향(外向)하여 외적지식(外的知識)의 획득(獲得)에 전력(專力)하고 있으므로 사람을 자라게 하기는 하되 사람을 여물게 하지는 못하여, 비록 교육(敎育)을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천성(天性)에 쭉정이가 많고 알맹이가 적은 것이다.  성(成)의 시운(時運)에 신도(神道)가 행(行)하는 사부정치(師傅政治)의 행(行)하는 사회(社會)에서는 유일신(唯一神)을 대시조(大始祖)로 모시고 국가(國家)의 통솔자(統率者)인 사부(師傅)는 신(神)과 상통(相通)하여 부모(父母)의 격(格)이 되고 전사회(全社會)가 한 가족(家族)으로 되어 화평(和平)한 생활(生活)을 향유(享有)하는 것이다.


註  ●역학(易學)의 부자(父子) 국가(國家) 사부(師傅)의 도(道)천지자연수(天地自然數)로써 구성(構成)된 하도낙서(河圖洛書) 및 정역수(正易數)에 부자(父子)의도(道) 국가(國家)의도(道) 사부(師傅)의도(道) 가 있으니, 하도(河圖)의 수(數)는 오행(五行)이 상생(相生)으로 되어 부전자수(父傳子受)의 상(象)이 되므로 부자(父子)의 도(道)가 되는 것이오, 낙서(洛書)의 수(數)는 오행(五行)이 상극(相克)으로 되어 세력(勢力)으로써 상승(相勝)하는 상(象)이 되므로 세력(勢力)으로써 권력(權力)을 쟁탈(爭奪)하는 국가(國家)의 도(道)가 되는 것이오, 정역(正易)의 수(數)는 오행(五行)이 극성(克成)으로 되어 사부(師傅)가 제자(弟子)의 천성(天性)을 여물게 하는 상(象)이 되므로 사부(師傅)의 도(道)가 되는 것이다.
 오행(五行)의 상극(相克)과 극성(克成)은 그 상(象)이 동일(同一)하면서 그 운행(運行)은 판연(判然)히 상이(相異)하니, 상극(相克)이라 함은 장(長)의 시운(時運)에 자신(自身)이 자라기 위(爲)하여 타(他)를 극(克)하여 자신(自身)의 자라는 자료(資料)를 삼고 자신(自身)이 피극자(被克者)의 세대계승자(世代繼承者)가 되는 것이오, 극성(克成)이라 함은 성(成)의 시운(時運)에 타(他)를 극(克)하여 그 천성(天性)을 여물게하고 타(他)로 하여금 극자(克者)의 세대(世代)를 계승(繼承)하는 자(者)로 삼는 것이니, 이는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사람이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가지고 생장경쟁(生長競爭)을 행(行)하여 타(他)를 극(克)하고 극자(克者)의 생장(生長)을 도(圖)하는 것이오, 성(成)의 시운(時運)에는 신(神)이 사람의 천성(天性)을 여물게 하는 때이므로 그 극(克)이라는 것은 극자(克者)의 생장(生長)을 위(爲)함이 아니라 타(他)를 극제(克制)하여 그 천성(天性)의 속에 신작용(神作用)을 갈무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도오행(河圖五行)의 상생(相生)하는 생(生)의 시운(時運)에는 부자(父子)의 도(道)가 행(行)하고, 낙서오행(洛書五行)의 상극(相克)하는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국가(國家)의 도(道)가 행(行)하고 정역오행(正易五行)의 극성(克成)하는 성(成)의 시운(時運)에는 사부(師傅)의 도(道)가 행(行)하는 것이다. 또 호괘(互卦)에도 부자(父子) 국가(國家) 사부(師傅)의 도(道)의 상(象)이 있으니 호괘(互卦)라함은 괘중(卦中)의 인위(人位)를 상호(相互)하여 괘(卦)를 지은 것이다. 삼획괘(三劃卦)는 중획(中劃)이 인(人)의 상(象)이오 육획괘(六劃卦)는 삼효(三爻)와 사효(四爻)가 인(人)의 상(象)이니 그러므로 육획괘(六劃卦)에서는 삼효사효(三爻四爻)와 중획(中劃)인 이효오효(二爻五爻)가 모두 인(人)의 상(象)이오 이 인상(人象)의 효(爻)를 모두 중효(中爻)라 한다. 중효(中爻)의 사획(四劃)을 상호(相互)하여 삼사오(三四五)로써 상괘(上卦)를 삼고 이삼사(二三四)로써 하괘(下卦)를 삼아서 육획괘(六劃卦)를 만든 것이 곧 호괘(互卦)이니, 그러므로 호괘(互卦)는 천지간(天地間)에 인류(人類)가 생생(生生)하고 있음을 상(象)한 것이며 호괘(互卦)에 부자(父子)의도(道) 국가(國家)의도(道) 사부(師傅)의도(道) 가 있는 것은 조가정(趙柯汀)의 학설(學說)에서 취(取)한 것이다. 서괘(序卦)의 수(首)에 있는 건괘(乾卦)의 호괘(互卦)는 역시건괘(亦是乾卦)이오 곤괘(坤卦)의 호괘(互卦)는 역시(亦是) 곤괘(坤卦)이니 이는 제일세(第一世) 건곤(乾坤)이 제이세(第二世) 건곤(乾坤)을 생(生)하는 것으로서, 부모(父母)가 자녀(子女)를 생(生)하여 세세생생(世世生生)하는 부자전승(父子傳承)의 도(道)가 되는 것이다. 서괘(序卦)의 종(終)에 있는 기제괘(旣濟卦)의 호괘(互卦)는 미제괘(未濟卦)이오 미제괘(未濟卦)의 호괘(互卦)는 기제괘(旣濟卦)이니 이는 제일세(第一世) 기제(旣濟)가 제이세(第二世) 미제(未濟)를 생(生)하고 제일세(第一世) 미제(未濟)가 제이세(第二世) 기제(旣濟)를 생(生)하는 것으로서, 서로 그 자(子)를 바꿔서 타자(他子)로써 자기(自己)의 계승자(繼承者)인 자(子)를 삼아 「자(子)를 바꿔서 가르친다」는 사부전승(師傅傳承)의 도(道)가 되는 것이다. 건(乾) 곤(坤) 기제(旣濟) 미제(未濟)의 사괘(四卦)를 제(除)하면 그 나머지의 육십괘(六十卦)는 모두 부자(父子)가 은장(隱藏)하고 자녀(子女)가 홀로 출현(出現)하니 이는 자녀(子女)가 부모(父母)를 이탈(離脫)하여 국가사회(國家社會)로 진출(進出)하는 것으로서 국가사회(國家社會)의 세세전승(世世傳承)하는 도(道)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장성(生長成)은 생(生)하기를 부자(父子)의 도(道)로써하여 부전자수(父傳子受)하는 상생(相生)으로써 계승(繼承)하는 것이오, 자라기를 국가(國家)의 도(道)로써하여 세력(勢力)의 상승(相勝)하는 상극(相克)으로써 계승(繼承)하는 것이오 여물기를 사부(師傅)의 도(道)로써하여 스승이 제자(弟子)를 교육(敎育)하는 극성(克成)으로써 계승(繼承)하는 것이다. 서괘(序卦)는 호괘(互卦)의 상(象)으로써 이 세 가지를 말하니, 사람의 생(生)함은 부자(父子)에서 시(始)하는 것이므로 부자(父子)의 도(道)인 건곤(乾坤)으로써 수(首)를 삼은 것이오, 부자(父子)가 있으면 국가사회(國家社會)가 조직(組織)되는 것이므로 둔괘(屯卦)에서 건후(建侯)한 이후(以後)는 국가사회(國家社會)의 도(道)로써 서(序)한 것이오 국가사회(國家社會)가 있으면 모든 대대(對待)를 조화(調和)하기 위(爲)하여 사부(師傅)의 도(道)로써 이간(易簡)의 이(理)를 가르치는 것이므로 사부(師傅)의 도(道)인 기제(旣濟) 미제(未濟)로써 서괘(序卦)를 종(終)한 것이다.


■일월운행법칙(日月運行法則)이 정치(政治)의 원리(原理)이다사부정치(師傅政治)는 신도(神道)에 의(依)한 정치(政治)인데, 신도(神道)라함은 천(天)에 있어서는 일월(日月)의 운행(運行)이 틀리지 아니하는 것이 신도(神道)이오 인간(人間)에 있어서는 성인(聖人)의 설(設)한 종교(宗敎)가 신도(神道)이다. 불교(佛敎) 유교(儒敎) 기독교(基督敎)는 세 성인(聖人)이 신도(神道)로써 사람을 가르친 종교(宗敎)이니, 선천시대(先天時代)의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사람들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하여 정치(政治)를 행(行)하고 있으므로 신도(神道)로써 부분적(部分的)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종교(宗敎)는 설(設)할 수가 있으나 신도(神道)로써 전민중(全民衆)을 다스리는 정치(政治)는 행(行)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장(長)의 시운(時運)에서 성(成)의 시운(時運)으로 넘어가면 정치(政治)도 또한 신도(神道)로써 행(行)치 아니하면 안되는 것이며, 신도정치(神道政治)는 일월운행(日月運行)의 법칙(法則)을 취(取)하여 그 원리(原理)를 삼는 것이니, 정역(正易)에「일월(日月)의 정(政)이 지신지명(至神至明)하다」하고 또「뇌풍(雷風)이 위(位)를 정(正)하고 정(政)을 용(用)한다」하여 일월(日月)의 운행(運行)을 정(政)이라고 한 것은 일월(日月)에 정치원리(政治原理)가 있다 함을 말함이오, 이는 사람의 씨가 일월(日月)에서 생(生)한 까닭에 일월(日月)의 운행법칙(運行法則)이 바로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사업인(事業)인 정치원리(政治原理)가 되는 것이다. 정역(正易)은 근세(近世)에 우리 나라의 역학자(易學者) 일부선생(一夫先生)이 천(天)의 게시(啓示)를 받아서 지으신 글로서 장(長)의 시운(時運)의 학문(學問)인 역경(易經)을 후계(後繼)하여 성(成)의 시운(時運)에 일월궤도(日月軌道)의 변화(變化)하는 상(象)을 예시(豫示)한 학문(學問)인데, 정역(正易)의 이(理)에 의(依)하면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만물(萬物)이 자라서 윤여(閏餘)가 생(生)하는 상(象)이오 일월(日月)의 행도(行度)에도 스스로 윤여(閏餘)가 생(生)하여 지금의 일세일수(一歲日數)가 삼백육십오일여(三百六十五日餘)가 되니 일세(一歲)의 일수(日數)는 삼백육십일(三百六十日)이 정(正)한 것이므로 지금의 매세(每歲) 오일여(五日餘)는 윤수(閏數)로 되는 것이다. 일월행도(日月行度)에 윤여(閏餘)가 있으므로 일월(日月)의 행도(行度)가 서로 차착(差錯)하여, 몇해에 한번씩은 윤일(閏日)이나 윤월(閏月)을 두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을 일월행도(日月行度)의 부정(不正)이라고 하며 일월(日月)이 부정(不正)하므로 만물(萬物)의 자라는 것도 또한 정(正)치 못하여 인구(人口)가 과도(過度)히 팽창(膨脹)하고 인심(人心)이 바르지 못한 일이 많은 것이다. 장(長)의 시운(時運)에서 성(成)의 시운(時運)으로 넘어가면 주천도수(周天度數)는 꼭 삼백육십도(三百六十度)가 되고 일세(一歲)의 월수(月數)는 꼭 십이월(十二月)이 되고 일월(一月)의 일수(日數)는 꼭 삼십일(三十日)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일월(日月)의 정(正)한 것으로서 일부선생(一夫先生)이 정역(正易)에 발표(發表)한 후천정역(后天正曆)이다. 후천정역(后天正曆)은 윤(閏)이 없고 정(正)하므로 그 시운(時運)에는 음양(陰陽)의 조화(調和)에 의(依)하여 인구(人口)가 자연조절(自然調節)되고 만물(萬物)도 여물어서 그 형(形)이 정(正)하고 인심(人心)도 정(正)을 향(向)하고 정치(政治)도 이 일월정도(日月正度)의 이(理)를 취(取)하는 것이다. 일월정도(日月正度)라함은 역경(易經)에 말한 易簡(이간)이오 이간(易簡)이라 함은 이(역)자(易字)가 일(日)과 월(月)로써 구성(構成)됨과 같이 태양(太陽)이 양기(陽氣)를 달에 발시(發施)하여 물(物)을 창시(創始)하는 작용(作用)이 극(極)히 평이(平易)함을 이(易)라하고, 간자(簡字)가 월(月)로써 구성(構成)됨과 같이 달이 태양(太陽)의 양기(陽氣)를 승수(承受)하여 물(物)을 작성(作成)하는 작용(作用)이 극(極)히 간약(簡約)함을 간(簡)이라 하는 것이며, 이간(易簡)은 곧 일월(日月)의 정(政)이다. 일월(日月)이 천지간(天地間)을 운행(運行)하여 주야(晝夜)와 사시(四時)를 생(生)하고 만물(萬物)을 생성(生成)함이 지공무사(至公無私)하여 만물(萬物)은 일월(日月)의 운행(運行)하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生)하고 자연스럽게 자라고 자연스럽게 여물면서 스스로 부유(富有)하고 스스로 일신(日新)하니 이가 일월(日月)의 이간(易簡)의 정(政)이다. 저 우매무지(愚妹無知)한 조수충어(鳥獸虫魚)도 능(能)히 교정(交精)의 작용(作用)을 행(行)하여 생장성(生長成)하고 아무 의(意識)이 없는 초목(草木)도 능(能)히 교배(交配)의 기능(機能)을 다하여 생장성(生長成)하고 있는 것은 모두 일월이간(日月易簡)의 정(政)에 의(依)한 것이다. 사람이 정치(政治)를 행(行)함에  발시(發施)하는 정령(政令)이 평이(平易)하여 인심(人心)에 합(合)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면 이는 이(易)가 되는 것이오, 승수(承受)하는 민심(民心)이 간약(簡約)하여 정령(政令)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으면 이것은 간(簡)이 되는 것이니, 정령(政令)과 민심(民心)이 서로 감응(感應)하여 생물(生物)들의 생성작용(生成作用)과 같이 자연(自然)스럽게 행(行)하는 것이 곧 이간정치(易簡政治)이다.
선천(先天)의 장(長)의 시운(時運)에는 사람들의 천성(天性)이 여물지 못하고 정치(政治)가 미성품(未成品)인 인간(人間)들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하여 행(行)하고 정치(政治)를 행(行)하는 자(者)가 일월이간(日月易簡)의 이(理)를 알지못하니, 그러므로 정치(政治)가 험조(險阻)하기만 하여 천장만조(千章萬條)의 법령(法令)을 만들고 복잡다기(複雜多歧)한 기구(機構)를 만들며, 나라의 위정층(爲政層)이 권력(權力)을 잡고 모든 법령(法令)을 만들고 있는데 실제(實際)로 나라의 법령(法令)을 어기는 자(者)는 무세무력(無勢無力)한 민중(民衆)이 아니라 법령(法令)을 만든 자(者)가 도리어 자신(自身)의 만든 법령(法令)을 어기는 것이 거의 대부분(大部分)이니, 이 까닭에 정치(政治)가 이간(易簡)치 못하여 일월(日月)의 운행법칙(運行法則)에 어그러지는 것이다. 일월(日月)의 운행법칙(運行法則)을 원리(原理)로한 후천정치(后天政治)는 어떠한가하면 후천(后天)에는 일월(日月)의 운행(運行)하는 자연법칙(自然法則)을 본받아서 사부(師傅)가 제자(弟子)를 가르치듯 하면서 사람을 생양(生養)하는 사업(事業)을 행(行)할 뿐이오 아무런 허위(虛僞) 사욕(私慾)이 없으므로 지금과 같은 천조만항(千條萬項)의 강제법령(强制法令)이 필요(必要)치 아니하고 복잡반착(複雜盤錯)한 권력기관(權力機關)이 쓸곳이 없고 온 세상(世上)이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것이 곧 정치(政治)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석가(釋迦) 공자(孔子) 기독(基督)의 세 성인(聖人)의 교(敎)는 일월(日月)의 운행(運行)하는 신도(神道)에 의(依)하여 설(設)한 것이오 후천(后天)에는 삼교(三敎)의 합일(合一)된 새 종교(宗敎)가 나와서 사람들을 교육(敎育)하는데, 교육(敎育)과 정치(政治)는 원래(元來) 한가지이오 두가지가 아니며, 또 사람의 씨가 일월(日月)에서 생(生)하였으므로 교육(敎育)과 정치(政治)가 모두 일월(日月)의 운행(運行)하는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원리(原理)로 하고 있어 또한 교육(敎育)과 정치(政治)가 그 본원(本源)이 동일(同一)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선생(一夫先生)의 제시(提示)한 정역(正曆)의 원리(原理)가 바로 후천종교(后天宗敎)와 후천정치(后天政治)의 원리(原理)로 되는 것이오, 이 정역원리(正曆原理)에 의(依)하여 새 종교(宗敎)와 새 정치(政治)가 실행(實行)되면 이 세상(世上)에는 지금 사람들의 의사(意思)의 전연(全然) 상도(想到)치 못하는 사회(社會)가 전개(展開)되는 것이다.
미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