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21.

회고담(回顧談) 한장경 선생






















二十二 歲에 咸興農村에서 私立學校 敎員으로 있을때에 漢學을 하는 노인집에 우리나라 歷史 大東紀年이라는 책이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빌려보았다. 이때는 日帝한테 침략당한지 八年이라 우리나라 역사책을 보기만하면 압수하는 까닭에 역사책을 얻어 보기는 극히 어려웠다. 그 책을 보고 이 나라 사람으로서 제나라역사를 몰라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그 책을 비밀히 읽었다. 또 그 이웃洞里에 燃藜室記述이라는 역사책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도 비밀히 빌려다 읽었다. 그때 每日申報에 朝鮮儒敎淵源이라는 논문이 계속 발표되었는데 우리나라 역사가 전연 발표되지 못하고 있던 當時에 이 論文은 나의 歷史硏究에 적지 아니한 도움을 주었다. 나는 학교에서 퇴근하여 숙소에 돌아오면 신문에서 꼭 이 논문을 베껴가지고 그날 밤으로 이것을 精讀하였다. 그 학교를 그만둔 후에 己未年의 三一運動을 겪고 나니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우리역사를 알아야 되겠다는 民族意識이 높아지고 나도 우리역사를 더 깊이 연구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서 그해 가을에 歷史遺蹟을 探訪하기 爲하여 期限없는 南道旅行을 떠났다. 서울에 와서 몇일간 여러 史蹟을 돌아보고 더 南으로 내려가서 公州 扶餘 恩津 鷄龍山을 거쳐서 淸州 報恩 錦山을 보고 全州에 들어갔다가 萬頃江을 내려가는데 旅費가 떨어졌다. 할 수 없이 金堤郡 農村의 어느 私立學校 敎員으로 就任하여 一時지내기로 했는데 그럭저럭 지내다보니 육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이 학교에 있는 동안에 全北과 全南에 있는 史蹟을 모두 돌아보고 여름과 겨울의 방학을 이용하여 慶州 金海等地의 史蹟을 찾아보았다. 이 學校를 그만둔 후에는 北間島와 西間島를 돌아다니면서 고대 우리 祖上들이 경영하던 滿洲方面의 사적을 찾아보았다. 나의 역사연구 十年間 한가지 풀리지 않는 문제는 우리나라의 古代에는 農民이 全人口의 九割이 넘는데 우리 역사책은 主로 王室과 貴族들의 역사로 되어있고 農民의 역사는 全然 기록되어 있지 아니한 것이다. 나는 農民의 歷史를 알고 싶었다. 그러던次에 朝鮮農民이라는 月刊雜誌가 발간되었음으로 나는 거기에 入社하여 農村問題를 연구하면서 農民歷史를 아울러 연구했다. 이렇게 五,六 年 역사를 연구하면서 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역사는 되는대로 發展變化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떠한 원리와 법칙을 따라서 발전하고 變化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이 원리와 법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먼저 읽은 것이 西洋哲學이오 여기에 四,五年의 歲月을 보냈는데 여기에서는 아무 所得이 없었다. 다음에는 宋代의 程朱哲學인 理氣說을 연구하고 우리나라 선현들의 학설도 읽어보았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아무런 原理와 法則을 發見치 못했다. 그래서 易學속에는 무엇이 있는가하고 八一五解放 三年前에 처음으로 易學에 들어가니 이것이 내가 易學을 硏究하기 始作한 動機다. 易學은 宇宙萬物에 모두 生하고 자라고 여물고하는 生長成法則이 있고 時運에도 生長成法則이 있고 時運에 生長成법칙이 있는 까닭에 人類歷史에도 또한 이러한 법칙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宇宙의 法則이 바로 人類歷史의 發展變化하는 法則이 되는 것이오 여기에서 비로소 이제까지 追求하던 人類歷史의 發展變化하는 法則을 大略 짐작한 것이오 그 實은 人類歷史의 發展變化하는 法則이 곧 易學原理의 主要部分임을 알게 되었다. 1967년회고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