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6.

韓國的主體性의 確立과 使命

三和 韓長庚 (1960)
韓國的主體性의 確立과 우리들의 使命 
사람은 한個의 獨立된 生命體이므로 自體의 生活이 自體에 依하여 自主化한 然後에 時代의 變遷함을 따라서 그 生活을 그에 適應케하여 늘 아름답게 하고 늘 새롭게 하면서 向上發展시킬 수가 있는 것이니, 生活의 自主化가 곧 自體의 主體性이다. 個人에게 主體性이 있음과 같이 여러 個人의 集團生活體인 國家에도 또한 主體性이 있는 것이오 國家에 主體性이 있은 然後에 그 國家生活을 向上發展시킬 수가 있는 것이니, 이 까닭에 우리 韓國에도 韓國的主體性의 確立이 切實히 要求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主體性은 무엇으로써 세우는가 하면, 사람一身의 耳目口鼻 手足等의 動作은 그들의 任意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精神의 命令에 依하여 計劃的으로 움직여서 그 生存을 營爲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精神이 그 主體가 되는 것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國家의 모든 活動도 반드시 그 活動을 自主할만한 中心思想이 서서 計劃的으로 國家의 生存을 營爲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主體性確立問題에 있어서도 國家를 늘 아름답게하고 늘 새롭게하여 一層向上發展시킬 수 있는 中心思想이 먼저 確立되지 아니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만일 國家의 中心思想이 서지 못하면 이 思想 저 思想이 서로 맞서서 思想의 混亂이 일어나는 것이니, 思想의 混亂은 政治混亂이나 經濟混亂보다도 더 危險하여 國家의 生存을 危殆롭게 하는 것이다.
國家의 主體性을 세우기 爲한 思想은 무엇을 그 內容으로 하여야 하는가 하면 거기에는 다음 세 가지의 作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思想自體의 成立이니 思想은 國家의 生存을 營爲하는 主體가 되고 있으므로 반드시 人間性의 本然에 뿌리를 박아야 하는 것이오 사람들의 尊嚴性이나 生存權을 侵害함과 같은 獨裁, 專制等 思想은 人間性의 本然에 어그러지는 것이다. 
둘째로 思想의 空間的 相通이니, 國家는 孤立하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오 世界各國과 平和的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므로 그 思想은 반드시 人類가 共通的으로 所有하는 것이어야 하며 홀로 尊大, 獨善함과 같은 國粹, 排他等 思想은 國家의 地位를 孤立시키는 것이다. 
셋째로 思想의 時間的繼續이니, 思想은 人間의 生理에 맞고 그 血管속을 끊임없이 흘러서 國家를 이끌고 나갈만한 原動力이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思想은 永續性을 가지고 本體는 굳세게 있으면서 그 作用은 時代의 變遷함을 따라서 隨時로 變通하여 時代에 맞춰서 社會를 나날이 새롭게 하는 것이다. 氣分的으로 感受하였거나 卽興的으로 造作하였거나 함과 같은 思想은 國家를 이끌고 나갈만한 힘도 없고 또 繼續되지도 못하는 것이다.   
思想의 自體成立, 空間的相通, 時間的繼續은 세가지 作用이 한 體로 되는 것이니, 이는 어떠한 生命體이든지 그 生命體에는 반드시 自體運動의 作用과 空間的으로 長成하는 作用과 時間的으로 永續하는 作用과의 세 作用이 있음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思想은 <三用이 一體>가 된 然後에 能히 自體의 힘으로서 自體의 生存을 營爲하여 國家의 主體性을 세우는 思想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의 思想의 세 作用은 어떻게 하여 成立되는 것인가 하면, 이것을 알기 爲하여는 먼저 사람은 어디에서 出生하고 무엇을 하기 爲하여 이 世上에 살고있는가, 즉 人生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生命을 가지고 있는 모든 生命體는 自體의 生命이 生存하기 爲하여 반드시 自體의 生存을 營爲함에 必要한 精神作用을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사람도 또한 그 生命이 生存하기 爲하여 그 生存을 營爲함에 必要한 精神作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生命과 精神은 서로 不可分의 關係를 가지고 一物의 兩面作用이되어 生命의 있는 곳에 반드시 精神이 있고 精神의 있는 곳에 반드시 生命이 있는 것이다. 
모든 生命體의 精神作用은 그 體의 組織에 適應하여 各各 程度의 差異가 있으니, 蟲魚에는 蟲魚의 組織體에 適應한 精神이 있고 鳥獸에는 鳥獸의 組織體에 適應한 精神이 있어, 그 體의 組織이 複雜할수록 그 精神이 또한 發達하며, 사람은 모든 生物中에 그 體의 組織이 가장 複雜하므로 그 精神이 가장 靈異하여 過去를 記憶하고 未來를 推想하여 意識的으로 計劃을 세워서 能히 온갖 天然物에 人工을 加하여 生活資料로 쓰고 能히 社會를 組織하여 共同生活을 營爲하고 있으니 이는 사람의 體의 組織이 複雜한 까닭에 또한 그와 같은 靈異한 精神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宇宙의 組織은 얼마나 複雜한가 하면 宇宙의 일은 그만두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地上의 일로만 보더라도 地上에 가득히 차 있는 植物 動物등 生物을 비롯하여 모든 生物의 生存에 直接 間接으로 여러 가지 作用을 加하고있는 太陽, 地球, 달, 水火같은 것도 모두 生命體이오 日月 地球 水火等이 모두 生命體인 까닭에 거기에서 動植物等 生物이 生長하는 것이며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無形한 電氣 磁氣 空氣等 모든 氣體도 또한 生命體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生命의 없는 곳에서는 生物이 生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宇宙間의 모든 生命體는 서로 有機的으로 聯關되어 하나도 孤立獨存하는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宇宙는 하나의 統一的 有機的 生命體이다. 
生命이 있는 곳에 반드시 精神이 있는 것이오 精神의 發達程度는 體의 組織에 適應하는 것이라 組織의 가장 廣大하고 가장 複雜한 宇宙生命體에 반드시 想像조차 할 수 없는 靈異한 精神이 있을 것은 可히 推知할 수 있는 것이다.
高等動物과 사람과의 身體組織에는 큰 差異가 없는 듯 하되 그 精神作用에 있어서는 全然 次元이 달라서 動物은 主로 本能生活을하고 있으되 사람에게는 動物들의 想像조차할 수 없는 靈異한 精神이 있어 理性을 가지고 意識的으로 計劃을 세워서 그 生活을 營爲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宇宙生命體 속의 極少한 一部分이로되 能히 이런 靈異한 精神作用을 가지고 있는데, 하물며 宇宙를 有機的으로 統一하고 있는 宇宙生命體의 精神作用은 또한 사람과는 全然 次元을 달리하여 사람으로는 到底히 想像할 수 없는 精神作用을 가지고 意識的 計劃的으로 宇宙生命體의 生存을 營爲하고 있는 것이니, 이 宇宙生命體의 精神을 이름하여 神이라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神이라함은 宇宙를 統一하고 있는 唯一神이오 意識을 가지고 있는 人格的 神이다.
 
宇宙生命體는 그 한 面은 生命의 作用이되고 다른 한 面은 精神 卽 神의 作用이 되는 것이므로 宇宙의 생기는 때에 神이 함께 생겨서 宇宙의 始初가 곧 神의 始初이다. 生命과 神은 모두 無形하고 無形에서 有形한 物質을 生하는 것이 곧 創造이니 그러므로 生命과 神은 宇宙의 原體이오 創造된 것이 아니며, 宇宙의 原體에서 運動하는 힘이 곧 生命이오 運動을 일으키는 힘이 곧 神이다. 生命과 神과의 關係는 사람의 肉體와 精神과의 關係와 같으니, 사람의 精神은 그 生存에 對한 計劃을 세우고 肉體에 對하여 그 作業을 命令하는 것이오 精神이 直接 作業하는 것은 아니며 神도 그러하여 神은 萬物의 生存에 對한 計劃을 세우고 生命을 시켜서 創造作業을 實踐케 하는 것이오 神이 直接 創造作業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宇宙創造의 經路를 生命의 運動으로써 보건대, 生命은 自體의 生存을 爲 하여 不斷히 運動치 아니하면 안되는 것이오 生命의 運動이 일어나면 生命과 物質의 中間性을 띤 無形한 氣體가 새로 생기는 것이니, 이 氣體가 곧 電氣와 磁氣이며, 電氣와 磁氣는 無形에서 有形을 生하는 中間體이다. 

生命의 運動에서 電氣와 磁氣가 生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物을 構成한 最小單位인 原子가 電氣로되고 電氣의 있는 곳에 반드시 磁氣가 있기 마련이니, 原子에는 電氣와 磁氣가 있는 것이며 太陽系宇宙의 中心이 되고 있는 太陽에 또한 電氣와 磁氣가 있으므로 太陽光波와 電波의 運動法則이 同一하고 太陽에 磁場風이 있으니, 地上風의 流行하는 原動力도 또한 太陽에 있는 磁氣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太陽系의 宇宙 안에서 最小構造인 原子와 最大構造인 太陽이 모두 電氣와 磁氣로서 構成되어 있으므로 宇宙間 萬物의 構造도 모두 電氣와 磁氣로써 基本을 삼고 있을 것을 可히 알 수가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生命의 運動이 일어나는 때에 最初로 生한 것이 곧 生命과 物質의 中間에 있는 非生命 非物質의 氣體, 卽 電氣와 磁氣라고 생각한다.  

電氣와 磁氣는 서로 不可分의 關係를 가지고 宇宙의 大氣中을 流行하면서 自體가 生存하기 爲하여 卽 自體가 有形化하여 創造되기 爲하여 不斷히 運動을 行하고 있는데, 大氣中에서 電氣의 陰陽 두 作用이 서로 衝激하면 電火를 發하며, 大氣가 零下二百餘度로 冷却하여 壓縮되면 水液을 生하니, 水火의 生한 것이 宇宙有形의 始初이다. 그러나 電火는 發하는 卽時로 消滅하여 形을 이루지 못하며, 水液은 그대로 形質을 이루니, 그러므로 無形에서 最初로 有形이 生한 것은 水이며 水의 形이 生한 然後에 火가 水液의 形質에 依附하여 形을 이루어 光明을 生한 것이니 神도 水火를 生한 然後에 비로소 有形한 運行을 하는 것이며 이가 生命의 運動에 依하여 無形이 有形으로 創造되는 徑路이다. 

生命의 創造作業은 神의 意識的 計劃에 依하여 行하여지는 것인데 神은 無形하여 나타나지 아니하고 오직 生命의 運動만이 表面에 나타나서 宇宙의 大自然을 이루고 있으므로 이것을 이름하여 自然法則이라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自然法則이라 함은 生命의 萬物創造作業을 말한 것이오 또한 神의 計劃한 設計圖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宇宙萬物의 創造를 神의 意識的計劃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宇宙間의 森羅한 萬物은 至極히 繁多하고 至極히 錯雜하되 모두 秩序整然한 運動으로써 그 生存을 營爲하여, 어느 一物도 그 生存作用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 없고 또 萬物의 相互間에는 相互克制와 相互扶助의 作用이 自然스럽게 行하여 모두 調和된 狀態로써 그 生存을 完遂하고 있으니, 이는 萬物이 여기저기에서 偶然忽然히 單獨的으로 생겨서 各自 獨自的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한 系統의 法則밑에서 有機的으로 서로 聯關되고 統一되어, 어느 一物도 이 有機的系統의 테두리 밖에서 單獨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宇宙間萬物은 空間的으로는 有機的 統一的으로 서로 連結되어 있고, 時間的으로는 同一히 生하고 자라고 여물고하는 法則에 依하여 永續不絶하는 運行을 하고 있으니, 이는 宇宙生命體의 精神인 神이 至精至妙한 計劃으로써 萬物을 創造한 것이다. 

사람은 宇宙의 一部分밖에 되지 아니하되 그 生存을 營爲함에 있어서, 잘되었건, 못되었건, 반드시 먼저 計劃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서 事業을 進行하는 것인즉, 宇宙生命體의 生存을 營爲하는 神은 萬物을 하나도 빠짐없이 生存시키기 爲 하여 宇宙의 大空間에 가득히 차 있는 萬物의 微物細菌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周知치 못함이 없고, 또 萬物을 永遠히 繼續 生存시키기 爲하여 萬物의 生生發展하여 나가는 宇宙의 大時間의 無窮한 未來를 先知치 못함이 없고, 또 萬物에게 各自의 生存法則을 賦與하여 어느 一物도 그 生存을 完遂치 못함이 없게하는 能力이 있으니, 神은 이러한 知能으로써 物의 創造計劃을 세우는 것이오,이 計劃을實踐하는 것이 곧 自然法則이다. 우리 人間도 神의 創造計劃에 依하여 創造된 것이므로 神의 精神作用의 一部分을 稟受하여 自體의 精神을 삼고 있으니 人間의 靈異한 意識, 理知, 計劃같은 것은 모두 神으로부터 받아온 것이며, 저 宇宙에 없는 靈異한 精神을 人間만이 홀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人間의 創造되기 以前에 이미 宇宙에는 生命과 함께 神이 있어 萬物을 創造한 것이오 사람이 생겨서 生命을 받는 때에 또한 神의 精神作用을 함께 받은 것이다.
그런데 生命은 그 運動을 通하여 有形化 하고 있는데 神이 홀로 有形化하지 아니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하면, 이는 사람의 精神의 無形함과 同一한 理이다. 사람의 精神이 無形한 까닭에 能히 無限한 空間을 周行하면서 萬事萬物을 接應하고 또 能히 無窮한 時間의 過去를 記憶하고 未來를 推想하여 모든 生存計劃을 세우는 것이니, 만일 사람의 精神이 形體가 있다고 하면 이것은 어느 한 器官으로 局限되어 그 器官의 맡은바의 任務 以外에는 全혀 캄캄하여, 마치 눈이 아무리 밝아도 보는作用 以外에는 다른 쓸곳이 없는 것이다. 사람의 精神의 所自出한 神도 또한 그러하여 無形한 까닭에 能히 無限無窮한 空間과 時間을 統一하여 萬物을 有機的으로 創造하고 또 永遠히 繼續生存케 하는 것이다.
우리 사람은 神에서 生하여 神의 子孫이 되고 있는데, 神은 무슨까닭에 사람을 生하였으며, 또 사람은 무엇을 하기 爲하여 살고 있는가?
宇宙의 生存은 永遠不窮한 것이오 生存의 永遠不窮한 것은 宇宙의 運動이 循環運動으로 되어 끝이 없는 까닭이다. 만일 宇宙의 運動이 直線運動으로 되면, 直線運動은 終了하는 곳에서 다시 始作하지 못하므로 어느때 어느곳에서든지 반드시 運動이 中止되어 生存이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萬物의 살고있는 이 地球가 圓狀의 軌道로써 太陽의 周圍를 돌아서 空間的으로 循環運動이 될 뿐만 아니라 空間의 循環運動은 또한 時間의 循環運動으로 되어 每年에 春夏秋冬이 反復하고 每月에 晦朔望弦이 反復하고 每日에 晝夜朝夕이 反復하며 草木이 열매에서 줄기가 나오고 줄기에 꽃이 피고 꽃이 다시 열매를 맺으며, 虫類가 알에서 幼虫이 나오고 幼虫이 成虫으로 되고 成虫이 알을 낳고 하는것等이 모두 循環運動이니, 모든 生物은 어떠한 形態로든지 반드시 循環運動을 行하는 까닭에 그 生存이 永遠不窮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닭이 먼저 나왔느냐 닭알이 먼저 나왔느냐」하는것도 宇宙의 循環運動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萬物이 神의 創造에 依하여 出生한 以上, 반드시 어떠한 形態로든지 神에게로 돌아간 然後에 循環運動이되어 그 生存이 永遠不窮한 것이며, 닭이 알을 낳고 알에서 닭이 나오는 것과 같이 神에서 萬物이 나오고 萬物이 神을 닮고 하는 것이 곧 神과 萬物의 사이에 行하는 循環運動이다. 그러나 神은 無形하니 萬物이 어떻게 神을 닮는가하면, 神이라함은 宇宙生命體의 精神을 말한 것이므로 萬物의 精神이 神의 形狀과 一致하는 것이 곧 萬物이 神을 닮는 것이며, 萬物中에 그 精神이 神의 形狀을 닮을 수 있는者는 오직 사람이다. 卽 사람의 精神만이 神의 形狀을 닮아서 神으로 더불어 循環運動을 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動物에도 精神이 없는 것은 아니나 動物의 精神은 神을 닮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사람과 動物은 그 發生當時에 體의 組織을 달리한 까닭에 그 精神도 또한 次元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生物의 組織은 宇宙의 蒼生最初에 처음으로 有形化한 水火를 體로하고 있는데, 火의 性은 위를 向하여 올라가는 것이므로 불길은 반드시 直立하여 縱으로 天을 向하는 것이오 水의 性은 아래를 向하여 내려가는 것이므로 물의 흐름은 반드시 누어서 橫으로 地의 낮은 面을 向하는 것이라, 사람의 體는 水火가 調和되어 水火의 作用이 倂行하므로 그 身體는 불길과 같이 直立하여 天을 向하면서 두 발은 땅을 밟아서 三角形으로써 天地를 直結하며, 水의 性은 透明하고 火의 性은 光明하므로 사람의 精神은 水의 透明作用과 火의 光明作用으로써 마음의 聰明을 發하며, 火氣가 發揚하여 몸이 直立하므로 손을 써서 手工을하고 입을 열어서 言語를 發하며, 言語와 手工이 있는 까닭에 文字를 發明하여 敎育制度가 생긴 것이니, 敎育은 萬物中에 오직 人類만이 가지고 있는 特權이다.
動物의 體는 水氣가 火氣보다 많은 까닭에 水가 地面을 橫으로 흐르는 것과 같이 動物의 몸은 반드시 橫하여 등이 天을 向하고 배가 地를 向하며, 火氣가 적은 까닭에 言語를 發치 못하고 光明이 밝지 못하여 精神이 어두우며 生物들의 家族系統을 보더라도, 사람은 火의 縱과 水의 橫이 아울러 있으므로 사람의 家族은 위의 祖上父母로부터 아래의 子孫에 이르는 縱系族屬과 夫婦 兄弟의 橫系族屬과의 兩系가 同居하여 사람이 그 所自出한 神을 父祖로 모시는 것도 또한 縱系의 한 形態이며, 動物은 그 體가 橫하므로 그 새끼를 乳養하는 期間以外에는 縱系族屬이라는 것이 없고 오직 雌雄이 相從하는 橫系만이 있는 것이다. 

萬物中에 사람의 精神만이 神을 닮을 수 있고 植物이나 動物은 神을 닮을 수 없는 것이므로 神은 사람을 生하여 사람의 無形한 精神으로하여금 無形한 神의 形狀을 닮게하여 神과 사람이 함께 循環運動을 行하여 永遠不窮한 生存作用을 營爲하려 하는것이오 사람은 神을 닮아서 宇宙의 永遠不窮한 生存作用의 一役을 맡기 爲하여 이 世上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人間의 靈貴하고 尊嚴한 所以이오 神의 事業이라함은 사람을 生養하는 일이다. 卽 사람을 生養하는 일이 神의 事業의 最大目標이다. 그런데 植物이나 動物은 神을 닮을만한 精神이 없어서 神과의 사이에 循環運動이 行치 못하니, 이것은 直線運動이 되지 아니하는가 하면, 여기에도 循環運動의 形態가 있다.
神이 사람을 生하여 養育함에는 반드시 그 生養資料가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가 이른바 食物連鎖의 法則이다. 

이 法則에 依하여 神은 먼저 植物을 生하고 다시 그 植物을 生養資料로하여 한 次元의 높은 動物을 生하고 또 다시 植物과 動物을 生養資料로하여 더 한 次元의 높은 사람을 生하고 이에 사람으로 하여금 神을 닮게 한 것이다. 이것을 植物이나 動物의 處地로써보면 植物은 그 精神이 神을 닮지 못하는 것이므로 自體의 形質을 犧牲하여 神에게 바쳐서 윗 次元의 動物의 形質로 化하고, 動物이 또한 自體의 形質을 犧牲하여 神에게 바쳐서 윗 次元의 사람의 形質로 化하니 이는 모든 生物이 一聯이 되어 自體의 犧牲에 依하여 한 次元씩 올라가서 神을 닮는 作用을 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動植物을 犧牲하여 自體를 生養하고 그 精神이 神을 닮아서 神으로 더불어 循環運動을 行한 然後에야, 自體를 犧牲하여 사람을 生養하고 있는 動植物에 對하여 그 恩德을 報答하는 것이 되며 또 植物이나 動物도 自體를 犧牲함에 當하여 神을 닮을만한 精神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求하여 그 사람의 形質로 化하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宇宙의 生存法則이다. 사람이 植物動物을 犧牲하여 自體를 生養하면서 그 精神이 神을 닮지 못하면 이는 無故殺生을 하는 慘酷한 일이며, 또 植物動物이 神을 닮지못하는 사람의 몸을 爲하여 自體를 犧牲하면 이는 보람 없는 헛 犧牲을하는 슬픈일이다. 

사람의 精神은 神의 形狀을 닮고 있으므로 神이 萬物을 創造하는 知能이 있음과 같이 사람에게도 小部分이나마 創造의 才能이 있는 것이다. 動物의 生活은 그 食料같은 것도 水土에서 生하는 天然物을 아무런 加工도 없이 그대로 먹고 그 工作物이라고는 거미의 그물, 새들의 둥우리, 버리의 집(벌), 개아미의 窟(개미)等 程度에 不過한 것이며, 사람의 生活은 天然物을 그대로 쓰는 것은 거의 없어서, 食料같은 것도 果實以外에 어느 하나도 加工치 아니한 것이 없고 自然水는 到處에 있는 것이로되 사람의 集團하여 사는 곳에서는 自然水를 그대로 먹지 못하는 것이므로 飮用水는 반드시 새암을 파서 먹으며, 衣服 家屋 日用器具 같은 것도 天然物로 存在하는 것은 거의 없으므로 반드시 人工을 들여서 製作하며 共同生活을 營爲함에 必要한 規定같은 것도 天然的으로는 全然 存在치 아니하므로 사람이 宇宙의 自然法則을 본 받아서 制定하는 것이니, 이는 사람의 精神이 神을 닮아서 物을 創造하는 才能이 있으므로 天工의 未成한 것을 사람의 人工이 代行하여 사람을 生養하는 資料를 삼는 것이다.
사람이 人工으로써 사람을 生養하는 일을 營爲하는 것은 神의 事業을 돕는 것이오 神의 事業을 돕는 것이 곧 神을 닮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生養하는 일은 大小를 勿論하고 모두 神의 事業을 돕는 일로서 이 世上에는 사람을 生養하는 일보다 더 큰 事業이 없고 人間社會의 政治같은 것도 그것이 사람들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營爲되는 것 같으나, 그 實은 모두 神의 營爲하는 事業으로서 天工의 未成한 것을 사람이 人工으로써 神의 뜻을 받들어서 代行하는 것이다. 社會의 財貨같은 것도 그것이 所有한 者의 私有物 같으나 그 所有者는 神의 뜻을 받들어서 그 財貨의 管理者가 되어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에 쓰라는 것이오 管理者 個人의 豪遊資料로 消費하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政權을 잡은 者자는 神의 뜻을 받들어 民衆을 生養하는 代行者이오 財貨를 所有한 者는 그 財貨를 사람의 生養에 쓰는 管理者이니, 代行者 管理者가 神의 뜻에 맞도록 그 事業을 하는 때에 그 사람의 精神이 神을 닮았다고 하는 것이오 代行者 管理者가 神을 닮는때에 이 地上에는 神의 뜻에 合하는 天國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우리가 지금 바래고 求 하는 바의 思想은 바로 神의 뜻에 合하는 地上天國을 建設한다는 思想이다. 

神의 뜻에 合하는 思想이라 함은 사람이 神으로 化한다는 神化思想이니 神化思想은 사람을 生養하는 것을 主旨로 하는 것이므로 空間的으로는 世界人類의 共通한 것이오 時間的으로는 宇宙의 生存과 함께 永久繼續하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韓國의 建國史는 神化思想에서 出發하니 檀君古記에 나타난 神市의 神人政治도 神化思想을 말함이오. 扶餘의 國民들이 水旱이 고르지 못하여 凶年이 드는때에 그 허물을 國王에게 돌리는 것도, 國王은 天의 뜻에 合하는 政治를 行하여 豊年이 들게하여 國民을 生養하는 責任이 있다하는 神化思想에 依한 것이오, 新羅에서는 임금을 次次雄이라 하였는데 次次雄은 方言에 巫라는 뜻이오 巫는 神을 섬기는 사람을 말함이라 新羅國王이 神의 뜻을 받들어서 政治를 行하므로 이것을 巫라 한 것이니, 이것도 또한 神化思想에 依한 것이며, 李朝때에 나라에서 定한 國歌에 「하나님이 保護하사 우리나라 萬歲」라고 한 것도 決코 偶然한 것이 아니오 우리의 生理에 맞아서 四千餘年間 우리의 血管속을 흘러내려 오는 神化思想의 傳統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神의 뜻에 根據하고 四千年來의 傳統을 살려서 이 地上에 天國을 建設한다 하는 神化思想을 가지는 것이 곧 韓國的主體性을 確立하는 所以라고 생각한다. (1960年代)